성저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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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저십리(한자: 城底十里, 영어: Seongjeosimni / outer old Seoul)는 조선 시대 당시 한성부에 속한 성외(城外) 외곽지역을 일컫는 지역으로, 한성부 도성으로부터 4km(10리) 이내의 지역이다. 오늘날의 서울특별시 강북구·동대문구·마포구·서대문구·성동구·성북구·용산구·은평구·여의도 일대와 종로구·중구 일부가 이에 해당한다.

역사[편집]

통일신라때 한산주(漢山州)의 일부였다가 고려때 양주의 일부가 되었으며, 현재 서대문구의 일부와 용산구 일대는 문종 때 남경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조선이 건국하여 한양이 도읍으로 지정되고, 서울성곽이 준공되는 등 새 도읍의 기틀이 완성되자 1395년에 한성부에 편입되었다.

사대문안인 한양 성내지역과 다르게 상주 인구가 상당히 적었으며, 성묘, 벌목 등이 금지되어 있어 '조선시대의 그린벨트'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조선정부는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세종 이후에 한양 외곽에 금표(禁票)를 여러 개 설치하였으며, 성저십리의 경계이기도 하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성저십리의 경계로 북쪽은 북한산, 남쪽은 한강 노도(露渡), 동쪽은 양주 송계원·대현(大峴)[1]·중랑포(中浪浦)·장안평, 서쪽은 양화도(楊花渡)·고양덕수원(高揚德水院)[2], 모래내(沙川)를 따라 난지도(蘭芝島) 부근까지였다. 현재로 치면 한강(용산포구)-마포-불광동-북한산-우이천-미아리-중랑천을 잇는다. 참고로, 성저십리보다 좁은 성저오리(城底五里)의 범위는 마포-부암동-정릉-종암동-청량리-왕십리-한남동 일대였다고 한다.

도성내 지역뿐만 아니라 성저십리 지역에도 한성부 산하의 방을 두었는데, 현재의 마포구 일부는 '서강방', 용산구 일대와 마포구 동부는 '용산방', 종로구 창신동, 숭인동 및 성북구 서부, 강북구 일부는 '숭신방', 종로구 부암동, 부기동, 평창동 일대 및 은평구는 '상평방', 서대문구 일대와 마포구 일부, 여의도는 '연희방', 서대문구 일부는 '반송방', 동대문구와 성북구 동부는 '인창방', 성동구 일대는 '두모방'을 두었다.

1914년일제 조선총독부가 행정구역을 대개편하면서 사대문 안과 용산구 서부지역(특히 한강로, 경부선, 서울역 인근) 및 마포 일부 동부지역과 종로구 숭인동, 창신동 일대만 경성부에 남기고, 경성부에 속했던 옛 한성부 성저십리의 대부분 지역을 경기도 고양군에 편입시켰다. 이후 1936년에 용산 동부와 마포 나머지 지역, 옛 숭신방 지역, 서대문구 일부 지역이 경성부에 재편입되고, 1949년에 나머지 옛 성저십리 지역이 서울특별시에 편입됨으로써 서울로 전부 환원되었다.

한성부 성저십리 지역 (조선말기 기준)[편집]

  •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 부기동, 부암동, 숭인동, 창신동
  •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황학동
  • 서울특별시 성북구 일원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일원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일원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일원
  • 서울특별시 성동구 대부분 지역
  • 서울특별시 마포구 대부분 지역 (상암동 일부 제외)
  • 서울특별시 은평구 대부분 지역 (진관동 제외)
  • 서울특별시 강북구 대부분 지역 (우이동 일부 제외)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895년 한성부 편입 (추정)지역[편집]

  •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 군자동, 능동, 화양동
  •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
  •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 일부 (추정)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동 (추정)
  •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 (추정)

참고문헌[편집]

주석[편집]

  1. 지금의 우이천
  2. 지금의 응암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