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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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도성
(서울 漢陽都城)
대한민국 대한민국사적
종목 사적 제10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면적 467,922.6㎡
시대 조선 초기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누상동 산1-3번지 외
정보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

서울 한양도성(서울漢陽都城, Seoul city wall)은 조선 시대 서울을 둘러싼 도성(都城)이며, 조선 시대에는 한성(漢城)으로 불렸다. 좁은 의미로 도읍을 둘러싼 성곽과 문을 지칭하나 넓은 의미로는 성곽과 그 안의 공간을 가리킨다. 1396년 태조 이성계에 의해 축조되었고, 세종, 숙종 시기 대보수공사로 성곽의 축조방식에 차이가 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상당한 구간이 훼손되었으나 1974년 박정희 정권의 복원사업을 시작으로 2013년까지 총길이 18,627m 중 약 70% 구간의 복원작업이 완료되었다. 서울한양도성[1]은 2012년 11월 23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신청자격이 부여되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다.

축성[편집]

1395년(태조 4) 한양(지금의 서울)을 방위하기 위한 도성을 쌓으려고 도성축조도감(都城築造都監)을 설치하고 정도전에게 명하여 성터의 조사 측정을 실시하였다.

1396년(태조 5) 음력 1월 9일 기공식을 올리고 춘추 2회에 걸쳐 전국에서 징발한 장정 19만 7천 4백여 명을 동원, 전후 98일 만에 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을 따라 성의 축조를 완료하였다. 성의 길이는 9천 9백 70보(步 : 1보는 6자)이며 높이는 40자 2치로서 성을 97구(區)로 나누어 구마다 천자문에 따른 번호를 하늘 천(天) 자부터 조상할 조(弔) 자까지 붙였다.

성이 낙성된 후에는 배수지(排水地)로 5칸 수문(五間水門)·2칸 수문 등을 만드는 한편 성곽의 관문(關門)으로 숙청문(肅淸門 : 북대문)·흥인문(興仁門 : 동대문)·돈의문(敦義門 : 서대문)·숭례문(崇禮文 : 남대문)의 4대문과 홍화문(弘化門 : 동소문)·광희문(光熙門 : 수구문)·창의문(彰義門)·소덕문(昭德門 : 서소문) 4소문을 합해 8문을 완성하였다.

개수[편집]

1422년(세종 4년)에 흙으로 쌓은 곳을 모두 돌로 다시 쌓는 등 봉족(奉足)과 잡색(雜色) 32만 2천 4백 명을 동원하여 38일 만에 대대적으로 성곽을 고쳤다. 1451년(문종 1년)에도 성을 고쳤지만 임진왜란 때 일부가 부서졌다. 1616년(광해군 8년)에 개수하였으나 병자호란 때 다시 부서졌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맺은 약조중에 성벽을 쌓지 않고 보수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어 부서진 채로 방치되다가, 1704년(숙종 30년) 이조판서 이유(李儒)의 주장으로 5군문(五軍門)의 장정을 동원하여 [1711년](숙종 37)까지 수축하였으며, 1743년(영조 19년)에 다시 고쳤다. 그밖에도 효종·현종·영조·순조 시대에 부분적인 개수를 행했으나 현재 남아 있는 서울의 성곽은 대체로 태조·세종·순조 때의 것이다.[2]

태조 시기에 지어진 성은 자연석을 거칠게 갈아서 사용했으며, 아래쪽은 큰 돌을 사용하고 위로 갈수록 작은 돌로 축성하였다. 세종 시기에 지어진 성은 좀더 직각사각형의 모습을 띄고 있으나, 돌과 돌을 갈아 자연스럽게 이으려 했으며, 숙종 또는 순조 시기에는 직각사각형으로 돌을 잘라서 축성하였다.

한편 일제 강점기의 도시계획과 한국 전쟁으로 성문과 성벽이 많이 부서졌다. 지금은 삼청동·성북동·장충동 일대에 성벽이 남아 있고, 흥인지문·숭례문·숙정문·홍화문이 남아 있다.

철거[편집]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의 전차를 부설하면서 서대문과 동대문의 일부를 헐어내었고, 광화문과 용산 사이의 전차를 부설하면서 숭례문 부근을 역시 헐어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산성을 제외한 평지에 있던 성곽은 모두 헐리어 현재의 모습과 같이 되었다.

복원[편집]

1974년 박정희 대통령의 국방 유적 보존 및 정비 지시에 따라 구자춘 서울특별시장이 본격적으로 복원사업을 시작하였다. 1975년 광희문 문루 복원을 시작으로 훼손된 체성과 여장 복원, 주변 가옥 매입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1975년부터 삼청지구(창의문~숙정문) 복원에 이어 2012년 9월까지 진행된 인왕산 정상구간까지 총 길이 18,627m 중 69%인 12,771m의 복원작업이 완료되었다. 2013년 5월 4일 숭례문 복구 기념식과 함께 숭례문 남동측 광장구간 성벽복원까지 마무리 됐으며 남산 구간, 시장공관 구간, 동대문 성곽공원 구간이 추가로 복원될 예정이다.(2013.7월 현재)[3]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편집]

2012년 11월 23일, 서울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다. 세계현존수도 중 최장기간인 514년(1396~1910)간 도성 역할을 수행하였고, 내사산의 능선을 따라 자연친화적으로 축조된 점 등이 세계유산적 가치로 평가받았다. 잠정목록에 오르면 1년 뒤부터 세계유산 등재신청 자격이 부여된다.[4]

UNESCO 등재기준에 비춘 서울한양도성의 주요가치[5]
서울한양도성은 아래와 같이 UNESCO 등재기준의 (2),(3),(4),(6)번 항목에 부합한다.[6]

(2) 오랜 시간 동안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지역 내에서 일어난 건축, 기술, 기념비적 예술, 도시계획 또는 조경 디자인의 발전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류를 보여주어야 한다.
(3) 문화적 전통 또는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명의 독보적이거나 적어도 특출한 증거가 되어야 한다.
(4) 인류 역사의 중요한 단계들을 예증하는 건조물의 유형, 건축적 또는 기술적 총체, 경관의 탁월한 사례여야 한다.
(6) 사건이나 살아있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뛰어난 보편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 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되어야 한다.


 첫째, 서울한양도성은 평양성과 개경도성의 연장선상에서 독창적인 한국식 도성 형식을 갖춘다. 평지성과 산성의 구조가 결합된 포곡식 성곽이며, 그 내부에 궁궐, 종묘, 사직, 행정시설, 시장시설 및 주거지를 포함하고 있는 대규모의 도성유산이다.(2)
 둘째, 축조 당시 조선시대 도성 형식의 문루와 성곽의 원형이 잘 남아 있다. 현존하는 세계수도의 성곽유산 중 전체 길이가 18.627km로 규모가 가장 크며, 현재 10.8km의 구간이 원형 또는 복원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각 시기별로 축조 형태와 수리기술의 역사적 증거가 기록과 함께 실물과 유적으로 남아있다.(3)
 셋째, 한반도의 지형 체계를 고려해 입지가 결정됐다. 내사산의 능선을 따라 석재로 축조된 성곽의 안쪽에 판축층을 조성하는 등 지형과 일체화된 축조 기술을 보여주는 특별한 성곽 유형이다. 성곽은 자연적인 지세를 따라 지형을 잘 활용하면서 축조되었기 때문에, 내사산의 굴곡과 도성의 안팎이 함께 조망되는 뛰어난 역사도시경관을 보여준다.(4)
 넷째, 전국 각 지역 백성들의 공역으로 성곽을 축조해, 구간마다 담당 장인의 실명이 새겨져 있다. 조선왕조 오백년 동안 문루와 성곽을 주제로 집필한 문학작품과 도성풍경을 묘사한 회화작품이 많이 남아 있다.(6)

탐방구간[7][편집]

내사산의 이름을 붙여 다음과 같이 네 구간으로 나뉜다. 백악산 구간(창의문~혜화문), 낙산 구간(혜화문~광희문), 목멱산 구간(광희문~숭례문), 인왕산 구간(숭례문~창의문). 대표적인 탐방프로그램으로 종로구청의 서울성곽 스탬프투어와 서울시청의 도성길라잡이와 함께하는 한양도성투어 등이 있다. 매주 일요일 1시 30분에 안내가 시작되며 약 60명씩 선착순으로 신청받고 있다.

구간명 주요구간 거리 소요시간
백악산 창의문-돌고래쉼터-백악마루-1.21사태소나무-청운대-곡장-촛대바위

-숙정문-말바위안내소-와룡공원-경신고 성곽흔적-서울시장공관-혜화문

약4.6km 약4시간
낙산 혜화문-낙산공원-낙산-동대문성곽공원-흥인지문-오간수교-이간수문

-동대문역사문화공원-광희문

약4km 약3시간
남산 광희문-장충체육관-우수조망소-자유센터-국립중앙극장-남소문터

-소나무탐방로-N서울타워-팔각정-남산봉수대-잠두봉 포토아일랜드
-조선신궁터-안중근의사기념관-백범광장-숭례문

약4.6km 약4시간30분
인왕산 숭례문-남지터-소의문터-배재학당-정동교회-이화여고-정동공원

-돈의문터-경교장-월암근린공원-홍난파가옥-권율장군집터
-딜쿠샤(엘버트테일러가옥)-우수조망소-국사당-인왕산
-팔각정-윤동주 시인의 언덕- 윤동주 문학관-창의문

약4.6km 약4시간

백악산 구간[편집]

창의문-백악마루-1.21 소나무-청운대-숙정문-와룡공원-혜화문으로 이루어져 있는 구간이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지난 40여년간 폐쇄되었다. 2007년 일반인에게 개방되었기에 네 구간 중 성곽과 자연이 잘 보존되어 인기가 많다. 그러나 창의문~말바위안내소 구간은 아직까지 제한이 있어 하절기(3월~10월) 오전 9시 부터 오후 4시, 동절기(11월~2월) 오전 10시 부터 오후 3시 까지 입장이 가능하며 각각 퇴장시간은 오후 6시와 오후 3시 까지다.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이며,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화요일에 탐방이 제한된다. 이 구간을 탐방하기 위해선 반드시 신분증(주민등록증, 여권, 운전면허증 원본만 인정됨. 군사시설이므로 사본이나 사진,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보여주는 것도 허용되지 않음)이 필요하다. 안내소에서 신분증을 보여주고, 신청서를 작성한 뒤 패용증을 받아야 출입할 수 있다.

낙산 구간[편집]

혜화문-낙산정상-흥인지문-동대문역사문화공원-광희문을 따라 탐방한다. 이 구간은 축조시기별 다양한 성돌의 모양과 각자를 볼 수 있어 도성의 축조과정을 한 번에 훑어볼 수 있다. 낙산성곽길은 성곽의 안팎을 따라 주민참여형 대안적 재개발이 진행 중인 장수마을[8]과 데이트 명소인 이화 벽화마을을 통과한다. 4대문 중 유일하게 옹성을 갖춘 흥인지문을 지나, 동대문 운동장 지하에 묻혀 있던 성곽과 이간수문을 볼 수 있다. 이 구간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의 개발공사 중 성곽의 흔적이 발견되며 새롭게 복원되었다.

목멱산(남산) 구간[편집]

광희문-장충성곽길-자유센터-남산성곽길-조선신궁터-숭례문으로 이어진다. 조선시대 태종이 쌓은 성벽이 비교적 많이 남아있다. 주택가의 담장으로 쓰이고 있는 도성의 흔적들을 볼 수 있고 남산성곽길에선 조선신궁터, 안중근의사기념관 등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발자취를 경험할 수 있다. 남산 정상에선 복원해 놓은 봉수대를 볼 수 있다. 전국에서 올라오는 봉수가 남산으로 집결했기 때문에 정상 부근을 포함해 5 곳의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인왕산 구간[편집]

숭례문-서울시립미술관-정동길-돈의문 터-경교장-인왕산 정상-윤동주 시인의 언덕-창의문으로 이루어진다. 도성의 정문인 숭례문을 시작으로 평지성곽길의 흔적을 따라 걷다가 구간의 마지막 부분에서 인왕산을 넘는다. 이 구간은 개화기 및 일제시기 서울역사의 흔적이 잘 남아 있다. 배재학당정동제일교회,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등 개화기 중심 무대인 정동길을 거쳐 백범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경교장, 홍난파 가옥, 삼일운동 소식을 세계에 알린 미국인 특파원 테일러가 살았던 딜쿠샤를 거친다. 마지막 구간인 인왕산은 1.21 사태 이후 25년간 통제되다가 1993년 김영삼 정부 때 개방되었다. 인왕산의 주요 등산로가 성곽길이다. 내려오는 구간에 윤동주 문학관이 있다. 이곳을 걸으며 ‘서시’와 ‘별 헤는 밤’의 시상을 떠올렸다고 전해진다.

순성(巡城)놀이[편집]

조선 시대에는 성곽을 따라 걸으면서 도성 안팎의 풍경을 감상했는데 이를 '순성'이라고 했다. 조선 후기 한성부의 역사와 모습을 기록한 유본예(1777~1842)의 <한경지략>에는 '봄과 여름이 되면 한양 사람들은 도성을 한 바퀴 돌면서 주변의 경치를 구경했는데 해가 떠서 질 때까지의 시간이 걸린다'고 적혀있다. 유본예의 아버지인 유득공(1749~1807)도 <경도잡지>에서 순성을 '도성을 한 바퀴 빙 돌아서 도성 안팎의 풍경을 구경하는 멋있는 놀이'라고 호평했다.[9] 1901년 경의선 철로부설을 위해 프랑스에서 초빙된 철도기사 에밀 부르다레 또한 그의 저서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에서 "서울의 이 장벽은 하루 만에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다. 상당히 잘 걷고 산을 잘 타는 사람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산책이 된다. 대단한 구경거리로서 비범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특히 좋은 계절에 소나무와 꽃이 우거진 남산비탈을 따라갈 때, 흠잡을 데 없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구석구석을 즐길 만하다."고 하였다.[10]

현대의 '순성놀이'의 이름을 딴 행사는 2011년 9월 24일 '하루에 걷는 600년 서울, 순성놀이'의 이름으로 다시 시작됐다. 이 행사는 서울특별시와 시민단체 서울KYC의 주최 하에 개최되었으며, 매년 9~10월 실시될 예정이다.

2012년 하루에 걷는 600년 서울, 순성놀이

2012년 10월 13일, 500여명이 함께한 순성놀이 행사현장 [1] 순성놀이 홈페이지

3차원 인터랙티브 순성놀이

연합뉴스 미디어랩의 서울 한양도성 걷기에서 3차원 인터랙티브 순성놀이를 할 수 있다.

사진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서울성곽’에서 ‘서울 한양도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문화재청고시제2011-116호,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지정명칭 변경 및 지정·해제 고시》, 문화재청장, 대한민국 관보 제17560호, 392면, 2011-07-28)
  2. 자료에 현재 남은 서울 한양도성은 주로 태조, 세종, 순조라는 자료(서울시 블로그)와 태조, 세종, 숙종(낙성 표지판)이라는 자료가 혼재되어 있음.
  3. 서울특별시(2013) 서울 한양도성 시민순성관 현장순성 자료집 2013.4.20
  4. 박태정 기자. "'서울 한양도성'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라", 《뉴스1》, 2012년 12월 4일 작성. 2013년 7월 9일 확인.
  5. 송인호(2013) ‘서울 한양도성의 진정성과 완전성’ 발제문 부분 발췌하여 편집. 서울특별시 한양도성도감이 발간한 ‘서울 한양도성의 역사와 가치’ 모음집에 수록. 서울시립대 송인호 교수는 서울학연구소 소장 겸 이코모스 코리아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있음. 이코모스는 유네스코 공식자문기구로서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심의 및 연구를 보조한다
  6. Operational Guidelines for the Implementation of World Heritage Convention(2008) 2-D-77
  7. 종로구청의 서울성곽 스탬프투어의 코스(서울시 주관의 탐방구간도 동일함)를 김도형(2011) 순성의 즐거움을 참고하여 편집함.
  8. 문혜정 기자. "성북구 장수마을 주거환경관리사업 본격추진", 《한국경제》, 2013년 5월 2일 작성. 2013년 7월 16일 확인.
  9. 김도형(2011). 순성의 즐거움- 서울성곽 600년을 걷다. 효형출판.
  10. 에밀 부르다레(2009).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 글항아리. 정진국 옮김

바깥 고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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