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환 (목회자)
| 문동환 文東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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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생 | 1921년 0월 0일 (92세) |
| 국적 | |
| 학력 | 미국 하트퍼드 대학교 신학대학원 신학석사 |
| 직업 | 개신교 목사 사회운동가 |
| 소속 | 前 서울 수도교회 목사 |
| 종교 | 개신교 |
| 배우자 | 문혜림 |
| 자녀 | 문영미(딸) |
| 부모 | 문재린(부), 신신묵(모) |
| 친척 | 문익환(형) 문호근(조카) 문성근(조카) |
문동환(文東煥, 1921년 ~ )은 대한민국의 장로교 목회자이다. 역시 장로교 목회자인 문익환의 동생이다.
목차 |
생애 [편집]
북간도 지역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일찍 기독교에 입문했다. 아버지는 간도에서 목회자로 일하고 있었으며, 시인 윤동주와는 한동네에서 자랐다.[1] 어릴 때 ‘동만의 조선족 대통령’으로 불리던 윤동주의 외삼촌 김약연을 보면서 목회자가 될 꿈을 키웠다.[2]
룽징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중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김재준을 만났고, 그의 영향을 받아 일본의 신학교로 유학했다. 그러나 이때는 태평양 전쟁 말기라 학도병 징집의 위험이 있어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다시 만주로 돌아와야 했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는 가족이 모두 월남하여 서울로 들어왔다.
서울에서 김재준의 주선으로 문익환과 함께 조선신학교에 편입하였다.[3] 한국 전쟁 중인 1951년에는 미국으로 유학하였고, 웨스턴 신학대학교, 프린스턴 신학교, 하트포드 신학대학교에서 차례로 공부했다.[4]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1961년부터 한신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수도교회 등에서 목회하였다.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재야 운동에 뛰어들어 투옥되기도 했다. 문익환도 문동환에 뒤이어 재야 운동에 동참하여 형제가 함께 활동했다.
말년에는 미국 뉴저지 주에서 활동 중이다. 6·15 남북 공동선언을 지지하는 6. 15남북공동선언실현 재미동포협의회 공동의장을 맡는 등 통일 운동을 벌여 왔다. 2002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무현을 지지했다.[5]
배우자 문혜림 [편집]
문혜림 (文惠林, 페이 문, 1936년 ~ , 본명 : 헤리엇 페이 핀치벡)이 문동환 (목회자)의 배우자이다. 문혜림은 1986년 의정부와 동두천에서 매매춘하는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두레방을 처음 시작하였다. 그녀의 딸 문영미씨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아무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샘터사)를 썼다.[6]
같이 보기 [편집]
주석 [편집]
- ↑ 문동환. “떠돌이 목자의 노래 - ‘민족운동의 요람’서 운명을 타고나다”, 《한겨레》, 2008년 7월 20일 작성. 2008년 8월 12일 확인.
- ↑ 문동환. “떠돌이 목자의 노래 - ‘용정의 농구광에 운동금지 불호령”, 《한겨레》, 2008년 7월 23일 작성. 2008년 8월 12일 확인.
- ↑ 문동환. “떠돌이 목자의 노래 -‘세 기둥’ 밑에서 ‘기독론’ 탐미”, 《한겨레》, 2008년 8월 3일 작성. 2008년 8월 12일 확인.
- ↑ 문동환. “떠돌이 목자의 노래 - ‘교육+신학’의 꿈 미국서 뭉게뭉게”, 《한겨레》, 2008년 8월 10일 작성. 2008년 8월 12일 확인.
- ↑ 장크리스토퍼. “뉴욕 대규모 노무현 후원회, 감동의 두시간 - 정몽준 후원회장, 적극 참여”, 《오마이뉴스》, 2002년 12월 7일 작성. 2008년 8월 12일 확인.
- ↑ 문혜림. “아내에게 바치는 '떠돌이 목자의 노래'”, 《오마이뉴스》, 2009년 10월 2일 작성. 2010년 6월 1일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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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민주회복국민선언 서명자 (총 71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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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로 | |
| 독립투사 | |
| 제헌의원 | |
| 천주교 | |
| 개신교 | |
| 불교 | |
| 학계 | |
| 문인 | |
| 언론인 | |
| 법조인 | |
| 여성계 | |
| 정치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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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명동 3·1 민주 구국선언 참가자 (서명자:총 20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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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속 기소 | |
| 불구속 기소 | |
| 기타 관련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