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에드거 후버
존 에드거 후버(John Edgar Hoover,1895년 1월 1일 ~ 1972년 5월 2일)는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이었다. 1924년 수사국(FBI의 전신) 국장으로 임명되어 1935년 연방수사국 창설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연방수사국에서 그는 1972년 죽을 때까지 재직했다. 후버 덕분에 연방수사국은 대규모의 효율적인 범죄 전담 부서로 성장했으며, 지문 파일 집중화나 과학 수사 등 경찰 기술의 현대적 발전을 이루었다.
후버는 미국에서 높이 인정받았으나 그가 죽은 뒤 그는 점차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많은 비판자들은 그가 연방수사국의 사법권을 남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적과 정치 활동가를 위협하는데 연방수사국을 이용하여 정치 지도자들의 비밀을 모았으며, 불법적인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했다. 후버가 그렇게 오랫동안 연방수사국 국장으로 재직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지금은 임기가 10년으로 제한된다.) 반공주의자인 에드거는 사회주의 운동을 했거나, 에드거 자신이 공산주의자로 의심한 헬렌 켈러, 마틴 루서 킹 목사, 존 스타인벡,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등을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인물로 감시하였다. 그래서 스타인벡은 법무장관에게 "에드거의 똘마니들이 감시하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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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삶과 교육[편집]
후버는 1895년 새해에 워싱턴 D.C 에서 태어나서 이스턴 마켓 (Eastern Market)에서 성장했다. 후버는 대학 시절 동안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일을 했고[1] 또한 카파 알파 오더 (Kappa Alpha Order, Alpha Nu 1914)의 멤버가 되었다. 1917년 후버는 조지 워싱턴 대학교로부터 법학 학위를 획득하였다.
동성애자 설[편집]
평소 존 에드거 후버는 동성애자나 흑인들의 인권행사를 반대했다. 특히 동성애자에 대해 매우 큰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존 에드거 후버는 젊은 남성 수사요원과 함께 공석이나 사석을 구분하지 않고 손을 잡거나 하는 등의 불분명한 행동을 하였고 어떨때는 여장을 하고 방에 있었다고 한다. 존 에드거 후버가 죽고 나서도 후버의 동성애자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주석[편집]
바깥 고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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