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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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 曺, 租)씨는 중국 및 한국의 성씨이다.

나라 조 (趙 / 赵)[편집]

중국 赵姓[편집]

조(赵, Zhào)씨는 주나라 목왕산융 지역 산시성 호족 조보(造父)가 진(晉)나라에 속하였던 조(趙)에 봉해져 후에 조(趙)나라가 되므로 자손들이 성으로 삼았고, 조 무령왕이 유명하다. 전국시대 말기 조나라는 진나라 태자를 괴롭힌 죄로 진나라에 의해 수도 조나라 한단이 불태워지면서 멸망했다. 조고(趙高)는 진(秦)나라 환관으로 진나라 멸망의 계기가 되었다. 백가성(百家姓) 1위, 2013년 기준 7위의 성이다.

한국 趙氏[편집]

조(趙)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984,913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7위이다. 한국의 조씨는 선계 미상인 본이 많아 정확히 상고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성씨와는 달리 동원동근(同源同根)을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본관이 다르다고 해서 통혼하지 않던 관례가 있었다. 또한 풍양, 한양, 양주 조씨는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서로 본관이 혼동되어 기록되었다.[1] 총 68개 본관이 있다.

  • 직산 조씨(稷山 趙氏)의 시조 조성(趙成)은 백제의 개국공신(開國功臣)이다. 2000년 기준 인구는 3,387명이다.
  • 풍양 조씨(豊壤 趙氏)의 시조 조맹(趙孟)은 고려 개국공신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바우(岩)로 풍양현(현 남양주시 진건면 송능리) 천마산 동굴에 은둔하여 농사를 짓던 사람이라고 한다. 2000년 기준 인구는 113,798명이다.
  • 함안 조씨(咸安 趙氏)의 시조 조정(趙鼎)은 고려 개국공신이다. 그는 원래 후당(後唐) 사람으로 신라 말기에 동래하였다고 한다. 2000년 기준 인구는 259,196명이다.
  • 한양 조씨(漢陽 趙氏)의 시조 조지수(趙之壽)는 고려 중엽에 조순대부 첨의중서사(朝順大夫 僉議中書事)를 지냈다. 그의 독자 조휘(趙暉)의 후손들이 쌍성총관부의 총관을 계승했다. 고려 왕족이라는 설도 있다.[2][3] 2000년 기준 인구는 307,746명이다.
  • 평양 조씨(平壤 趙氏)의 시조 조춘(趙椿)은 고려 예종 때 인물이다. 고려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서 남송에 가서 금나라를 토평하였다고 한다. 2000년 기준 인구는 41,047명이다.
  • 김제 조씨(金堤 趙氏)의 시조 조연벽(趙連壁)은 고려 고종 때 상장군(上將軍)을 지냈다. 2000년 기준 인구는 14,509명이다.
  • 배천 조씨(白川 趙氏)의 시조 조지린(趙之遴)은 본명은 조유고(趙惟固)이고 태조 조광윤의 차남 조덕소(趙德昭)의 아들이다. 979년(고려 경종 4년) 난을 피해 고려로 들어와 황해도 배천에 정착하였고, 고려 현종 때에 좌복야 참지정사가 되었다고 한다. 2000년 기준 인구는 66,155명이다.
  • 임천 조씨(林川 趙氏)의 시조 조천혁(趙天赫)은 송 태조 조광유의 손자인 기왕(冀王) 조유길(趙惟吉)의 다섯째 아들이라 한다. 그는 송나라에서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서두공봉관(西頭供奉官)이 되었으나, 979년 조광의(趙匡義)가 황위를 찬탈한 이후 고려로 도망쳐 와서 임천(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에 정착하여 살았다고 한다. 2000년 기준 인구는 11,040명이다.
  • 신창 조씨(新昌 趙氏)의 시조 조영규(趙英珪)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이다. 초명은 평(評). 조상의 가계가 불분명하고 자나 호를 가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평민 출신으로 추측된다.

무리 조 (曺 / 曹)[편집]

한국 曺氏[편집]

조(曺)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362,817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27위이다. 한국의 조(曺)씨는 순수한 한반도 토착 성본으로서 대종은 창녕 조씨이다.

창녕 조씨의 시조 조계룡(曺繼龍)신라 진평왕의 사위이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조에 예향(禮香)이라는 여성이 하늘에 기도를 올리니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는데, 겨드랑이에 조(曺)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 아이에게 진평왕은 성은 조(曺), 이름은 계룡(繼龍)으로 지어주었으며, 성장하여 진평왕의 부마가 되었다고 한다.

중국 曹姓[편집]

조(曹, Cáo)씨는 초나라, 주나라, 소그드인 계통이 있다. 초나라 조(曹)씨는 (妘)씨에서 파생된 성씨로 전한다. 주무왕(周武王)의 동생 진탁(振鐸)이 조(曹)나라에 봉해져 후손들이 (曹)을 성으로 하였다. 소그드인 사용하는 9가지 성씨 가운데 (曹)씨가 있다. 인물로는 서초의 장령 조구(曹咎), 후한 재상 조조(曹操), 삼국시대 위나라 개국자 조비(曹丕)등이 있다. 백가성(百家姓) 26위, 2013년 기준 30위의 성이다.

조세 조 租[편집]

조(租)씨는 한국 고대 토성이다. 7세기 신라-가야 출신의 백제 관료 조미압(租未押)이 있었다. 조미압은 종발성, 현재 부산의 현령이었다고 한다. 조세 조(租)씨는 현재 남아 있지 않으나, 고려 초기 한국의 토착 호족들이 유사한 성씨,다른 성씨로 바꾼 경우가 있다.

주석[편집]

  1. "봉릉 도감에서 성릉 안에 고려조의 재상인 조맹의 묘가 있으니 옮길 것을 청하다" 여기에는 조맹(趙孟)이 한양조씨의 시조로 기록되어있다. 여기서 한양조씨는 풍양조씨를 가리키는 것이다.
  2. 고려사 조돈(趙暾) 전(傳)에서 일문이 모두 봉군되기에 이르었다.(一門以全 位至封君)라는 내용이 있는데 일문이란 일가친척을 가리키고, 때로는 조상까지도 포함시킬 수 있다. 일문이 모두 봉군되려면 그 집안은 왕족이거나 왕족에 버금가는 귀족 가문일 수 밖에 없다. 또한 태조실록에도 나해(那海)는 그 어머니 조씨가 고려의 왕족으로써(那海以其母趙氏 高麗王族)이라는 내용이 있다.
  3. 쌍성총관부에 대한 연구 성과와 반성, 고려시대 성씨의 유동성에서도 관련된 내용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