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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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裵)씨는 대한민국의 성씨다.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조사에서 372,064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26위이다.

연원[편집]

배씨(裵氏)의 시원은 진한 개국 설화에 등장하는 사로 6촌(斯盧六村)의 하나인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 촌장 지타(祗陀 또는 只他)이다. 그는 6부 촌장들과 박혁거세신라 초대 왕으로 추대하여 개국공신이 되고, 총재태사(冢宰太師)에 올랐다. 32년 신라 유리왕은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 가리부(加利部)를 한지부(漢祗部)로 고치고 배(裵)씨 성을 사성하였다. 정사(正史)에 처음 등장하는 배씨는 신라의 인물로 성덕왕 때의 상대등(上大等) 배부(裵賦)이며, 희강왕 때의 아찬(阿飡) 배훤백(裵萱伯), 정강왕 때의 현령(縣令) 배영숭(裵零崇)의 기록이 확인된다. 현재는 계대를 고증할 보첩이 실전되어 각 파마다 시조를 달리하고 있으며, 신라 금산가리촌 촌장에서 유래한 한반도 토착 성씨 중 하나이다.

역사 인물[편집]

본관[편집]

  • 경주배씨(慶州裵氏): 시조 배현경(裵玄慶)은 경주 사람으로 태조 왕건(王建)을 옹립하는데 큰 공을 세워 개국일등공신(開國一等功臣)에 오르고 대광(大匡)을 역임했으며, 경주배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은우(殷祐) 이후의 후사가 전하지 않아, 조선시대에 새로이 생겨난 시조 배충과(裵忠果)를 시조로 삼는다. 그는 의술(醫術)에 능하여 조선 중종 때 의서습독관(醫書習讀官)에 제수되었으며, 경주처사(慶州處士)의 호(號)가 내려졌다. 이에 후손들이 경주(慶州)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 성산배씨(星山裵氏): 시조 배위준(裵位俊)은 고려시대에 삼중대광(三重大匡) 벽상공신(壁上功臣)에 올랐다. 그의 현손 배인경(裵仁敬)이 고려 충선왕 때 추밀원사(樞密院使)를 역임하고, 고려 충숙왕 때 흥안부원군(興安府院君)에 봉해졌다.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하고 성산(星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 분성배씨(盆城裵氏): 시조 배헌(裵軒)은 고려시대에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했다. 그의 손자 배원룡(裵元龍)이 도병마사(都兵馬使) 및 평장사(平章事) 등을 역임하고, 고려 우왕 때 분성군(盆城君)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분성(盆城)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분성(盆城)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 달성배씨(達城裵氏): 시조는 고려시대에 대호군(大護軍)에 추증된 배손적(裵孫迪)으로, 그의 증손 배정지(裵廷芝)가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역임하였으며, 정지의 아들 배천경(裵天慶)이 판추밀원사(判樞密院事)를 거쳐 동경윤(東京尹)을 역임하고, 고려 공민왕 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다. 이를 계기로 후손들이 본관을 달성(達城)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 흥해배씨(興海裵氏): 시조 배경분(裵景分)은 고려시대에 겸교장군(檢校將軍)을 역임했다. 그의 6세손 배전(裵詮)이 고려 충혜왕 때 호군(護軍)을 거쳐 군부판서(軍簿判書)로 조적(曺頔)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일등좌명공신(一等佐命功臣)에 책록되고 흥해군(興海君)에 봉해졌다.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흥해(興海)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 곤산배씨((昆山裵氏): 시조 배맹달(裵孟達)은 조선 세조 때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서훈되고, 가정대부(嘉靖大夫) 행 호분위 상호군(行虎賁衛上護軍)에 올랐으며, 조선 세조 때 곤산군(昆山君)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 본관을 곤산(昆山)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 함흥배씨(咸興 裵氏): 시조 배덕수(裵德秀)는 조선시대에 교서관(校書館) 박사(博士)를 역임하였다.
  • 화순배씨(和順裵氏): 시조 배련(裵練)은 고려시대에 국자감(國子監) 진사(進士)가 되었다.
  • 협계배씨(俠溪裵氏): 시조 배진(裵縉)은 고려시대에 합문사인(閤門舍人)을 역임하였다.
  • 남해배씨(南海裵氏): 시조 배순(裵循)은 조선 성종 때 가선대부(嘉善大夫) 경기감사(京畿監査)를 역임하였다.

현대 인물[편집]

중국의 배씨[편집]

중국에서는 한자 "裴"字를 사용하며, 한국에서는 조선 중기부터 변형한자인 "裵"字를 사용해오고 있다.

배(裴, 병음 Pei)씨는 중국 고대 전설상의 인물 백익(伯益)의 후예로 영성(嬴姓) 계통이며 비자(非子)의 12대손인 진환공(秦桓公)의 아들(子) 후자침(后子鍼)을 시조로 삼는다.

중국 중세의 저명한 문벌 귀족 중 하나로, 하동 배씨(河東裴氏)로 시칭(時稱)되었다. 배씨는 진(秦), 한(漢)의 고대부터 기반을 닦아, 위(魏), 진(晋)을 거쳐 수(隋), 당(唐) 때 이르러 전성기를 누렸다. 청(淸)나라 때 편찬한 <배씨세보(裴氏世譜)>에 따르면, 배씨는 중국역사상 재상 59명, 대장군 59명, 중서시랑 14명, 상서 55명, 시랑 44명, 상시 11명, 어사 10명, 절도사, 관찰사, 방어사 25명, 자사 211명, 태수 77명을 배출했다. 그리고 작위가 공(公)이 89명, 후(候)가 33명, 백(伯)이 11명, 자(子)가 18명, 남(男)이 13명이었다. 황실과의 인척관계를 보면, 황후가 3명, 태자비가 4명, 왕비가 2명, 부마가 21명, 공주가 20명이었다. 정사에 전(傳)을 남기거나 열거된 자가 600여명에 이르고, 7품 이상의 관리들만 3,000여 명에 달하였다.

중국 인물


주석[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