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성씨)
류(柳, 劉) 또는 유(兪, 庾)씨는 동아시아의 성씨로, 널리 사용되는 성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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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편집]
류씨는 단일 계통이 아니라는 것이 통설이다. 류씨는 신라 시대 부터 류씨를 사용한 전주 류씨와 신라-고려 전환기에 류씨로 창성한 문화 류씨, 고려말 류절을 시조로 하는 풍산 류씨와 기타 본관으로 구분된다.
유(柳)씨는 공문서에서는 두음법칙에 따라 ‘유’로 표기해 왔으나,[1] 2007년 8월 1일부터 ‘류’로도 쓸 수 있도록 허가하였다. [2][3]
죽일 류 [편집]
중국의 '류'(劉, 刘 : Liu, Lau, Lao)씨는 6~7가지 계통이 있다. 주나라 이후 정(鄭)나라에서 류(劉)씨가 파생되었다. 한고조 유방과 어머니 유오(劉媼)도 류씨로, 남부 초나라 영토였던 저장성 출신이다. 그리고 요족들이 Liu, Lao 라는 성을 쓰고 있다. 또한 강소성 호족 항전이 유방에게 투항하고 류(劉)씨로 개칭하였다. 삼국시대 유봉은 본래 구(寇)씨였다. 흉노 어부라의 자손이 유(류:劉)씨로 변경하였다. 북위 선비족 출신의 독고(獨孤)씨가 유씨로 변경하였다. 몽골족들도 비교적 간단한 성씨인 류(Liu, Yu)씨를 성으로 많이 사용한다. 현재 중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범용성씨 중 하나이다.
한국의 '류'(劉, 刘 : Yoo, Ryoo)씨는 대한민국 성씨 순위는 32위, 22만 명이다. 한나라 왕자들이 권력 다툼에서 패배하여 한반도로 도망치는 사례가 있었으며, 유헌(劉憲)은 낙랑 지역 태수을 지냈다. 서기 120년경 유헌(劉憲)은 낙랑태수였는데 왕조에게 피살된 기록이 전한다. 유인원(劉仁願)와 유인궤(劉仁軌)는 당나라 나당연합군의 무장으로 참가했다. 현재 한국 유(류:劉)씨의 주류는 강릉, 거창유씨, 시조는 유전 (1051년)(劉筌)인데, 송나라 병부상서를 지냈다고는 하지만, 기록이 불분명하여 정확한 고증은 아니다. 황해도 호족 가운데 유(류:劉)씨가 있었다고 전하며, 고려 왕건의 태후 신명순성왕후의 성은 유씨(류:劉氏), 본관은 충주(忠州)로 유긍달(劉兢達)의 딸이다. 유긍달(劉兢達)의 선조는 전하지 않으나, 왕건과의 교우 관계 등의 요소 때문에 한반도 토착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의하면 현재 한국 류(劉)씨의 대종인 거창류(劉)씨나, 아니면 고려때 왕후를 많이 배출한 충주류(劉)씨는 모두 토성(土姓) 곧, 토착계로 나와있다. 이런 저런 연후로 봤을때 한국의 유(劉)씨는 대부분이 한국 토착계로 보인다. [4]
버들 류 [편집]
중국의 '류'(柳)씨는 크게 2가지 부류가 있다. 곧, 주(周)나라 제후국이자 주나라 왕족이 세운 노(魯)나라 계열과 초한쟁패기의 서초(西楚) 계열의 류(柳)씨이다. 즉, 노나라 공족(公族)인 유하혜(柳下惠)가 유하에 살면서 류(柳)씨로 창성하였고, 서초 황제 의제(義帝)가 류(柳; 현재의 후난 성) 땅에 거주하여 후손들이 류(柳)씨로 창성하였다.[5] 서초(西楚)는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와는 다르게 오, 월이 기반을 두었던 저장성에서 기원하였다. 이 두 부류 이외에 소수민족의 성씨로서도 존재한다. 곧, 중국 후한(後漢)시기, 운남성에 위치한 애뢰국(哀牢國) 말기의 황제들인 유승(柳承), 유모(柳貌) 부자는 모두 유(柳)씨였다.[6]
한국의 '류'(柳, Ryu, Ryoo, Yoo, Yu)씨는 대한민국 인구 순위 19위, 60만 명이다. 유 혹은 류로 표기되는 성씨 중에는 한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전통사회에서 가장 번성한 성씨다.[7] 한국의 류(柳)씨는 고려 태조 왕건의 경우와 같이 신라말 고려초에 성을 창성한 것이라고 말한다. 즉, 황해도 토착인 "차달"이 본래 성이 없다가 신라-고려 전환기에 류(柳)씨로 창성하였고, 그 본관이 문화 류씨이다. 그러나 오히려 조선 초기 기록인 <世宗實錄地理志 文化縣> 편에는 유(柳)씨는 내성(來姓)이라고 되어 있어, 한반도 다른 지역에서 왔거나 중국에서 건너왔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8] 또한 전주 류씨, 고흥 류씨, 풍산 류씨, 진주 류씨, 서산 류씨는 본래 문화 류씨의 분파 파조와 그렇지 않은 파조가 있는데, 정확한 연원에 대해서는 지금도 이견이 많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는 고흥유(柳)씨를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본관의 유(柳)씨는 모두 대종 문화류(柳)씨에서 분적한 것이라고 전한다.[9]
대답할 유 [편집]
중국에는 '유'(兪, Yu, Liu)씨가 10가지 정도 계통이 있다. 베이징 방언은 'Yu'이나, 'Liu'로 표기하기도 한다. 고대에 류(兪)족이라는 소수민족이 주나라 중엽에 유씨로 창성하였다. 정나라, 위나라, 초나라, 공족이 유(兪)씨로 창성하였고, 그 외 금이, 회, 만족, 토가족, 지금은 사라진 유족이 사용한 성씨다.
한국의 '유'(兪, Yoo, Yu)씨는 대한민국 인구 순위 35위, 17만 명이다. 류씨의 시조는 신라 말기에 6관등 아찬을 지낸 유삼재(兪三宰)이다. 공의 후손 유의신(兪義臣)은 신라가 망하자 고려에 불복하여, 고려 태조 왕건이 기계현(杞溪縣) 호장(戶長)을 삼으니 후손들이 기계(杞溪)를 본관(本貫)으로 칭관(稱貫)하게 되었다. 기계 유씨는 고려 친화적인 다른 유씨들과 정치적으로 차이가 있다. 유는 비교적 간단한 성이므로 한국에서도 토착인을 비롯한 다양한 계통이 존재한다.
곳집 유 [편집]
중국의 '유'(庾)씨는 초나라 관직에서 나온 성씨라고 전한다. 관직에서 나온 성이므로 호족 성씨이며, 저장 성과 장쑤 성 사람들이 사용하는 성씨이다.
한국의 '유'(庾, Yu)씨는 대한민국 인구 순위 103위, 1만 명이다. 시조는 황해도 평산의 호족 유순유(庾荀悠)이다. 후손 유검필(庾黔弼)은 고려 태조 왕건의 휘하 장수로 고려 개국에 공을 세워 '평산'을 식읍으로 받았다.유검필의 5세손 유록숭(庾祿崇)은 고려 숙종 때 평산에서 분파하여 고창을 본관으로 하였다.
주석 [편집]
- ↑ 이-데일리
- ↑ "잃어버린 姓 되찾는다" 환영 일색 - 2007년 연합뉴스 기사
- ↑ 성씨 ‘柳ㆍ羅ㆍ李’→`류ㆍ라ㆍ리'로 쓸 수 있다, 한겨레, 2007-07-29
- ↑ 世宗莊憲大王實錄地理志
- ↑ http://zh.wikipedia.org/wiki/%E6%9F%B3%E5%A7%93
- ↑ http://zh.wikipedia.org/wiki/%E5%93%80%E7%89%A2
- ↑ http://terms.naver.com/entry.nhn?cid=200000000&docId=1089190&mobile&categoryId=200000217: 여기 보면 柳씨의 현재 인구, 고려, 조선시대 문과급제자, 상신, 문형 등의 연혁을 볼 수 있다.
- ↑ 世宗實錄地理志 文化縣
- ↑ http://terms.naver.com/entry.nhn?cid=200000000&docId=1089190&mobile&categoryId=200000217: 대부분의 柳씨는 일반적으로 문화류씨를 대종으로 한 분적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