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 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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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간섭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제국요동 반도를 점령하자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 프랑스 공화국이 일본 제국의 철수를 요구하여 관철한 사건이다.

배경[편집]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제국청나라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강화 조약을 추진한다.[1]

  • 청은 조선의 "완전 무결한 독립"을 인정한다.[주해 1]
  • 청은 요동 반도, 대만, 팽호 열도를 일본에 할양한다.
  • 청은 배상금 2억량(일본 화폐 3억엔)을 지불한다.
  • 종래에 구미 각국이 갖고 있던 통상특권을 일본에게도 부여한다.

이 조약을 통해 일본은 식민지를 소유한 제국주의 국가가 되고자 하였다.

각국의 입장[편집]

러시아는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주도권을 쥐기 시작한 때 부터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이 팽창정책을 추구하는 것을 경계하였다. 러시아제국이 특히 경계한 것은 일본의 팽창주의로 인해 한반도와 남만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될 경우 청과 일본제국이 연합하여 러시아에 대항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러시아는 청일전쟁의 결과에 대한 특별회의를 열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2]

러시아는 북중국의 현상을 이전의 상황으로 회복시키는 데 노력한다. 일본에게 남만주를 병합할 의도를 단념하도록 제의한다. 일본이 의도를 단념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는 자국의 이해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것이라는 점을 주지시킨다.
 
— 1895년 4월 11일 러시아 각료회의

러시아는 이와 같은 각료회의의 결과에 따라 프랑스독일, 영국에 공동 행동을 요청하였다. 러시아와 동맹 관계에 있던 프랑스는 즉시 러시아를 지지하였고 러시아-프랑스 동맹의 약화를 원하던 독일도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한편, 영국은 러시아의 남진을 막는 데 일본이 유용할 것이란 점과 청일 전쟁 결과 청나라가 개방한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간섭에 반대하였다.[2]

시모노세키 조약[편집]

시모노세키 조약
청일전쟁 이후 청일간 강화조약이다.

청일 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요구한 대로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된 뒤 6일이 지난 1895년 4월 23일 일본에 주재하고 있던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대사들은 일본의 외무차관 다다스를 방문하여 "요동 반도를 일본이 소유하는 것은 청의 수도에 대한 항구적인 위협일 뿐만 아니라 조선의 독립을 유명 무실하게 만드는 것"이라 주장하면서 요동의 반환을 요구하였다.[1] 일본은 혼자 세 나라와 대결할 수 없었으므로 그 요구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3] 이후 이어진 실무 협상 끝에 5월 5일 일본은 3천만냥 추가 배상금을 조건으로 요동 반도를 반환하는 수정 조약을 체결하였다.[4] 5월 5일, 일본 외무성은 요동반도 환부회답서를 일본 주재 삼국 공사에게 전달했다. 일본은 요동반도를 포기하는 대신 청국으로부터 배상금 3천만 량(약 4405만 엔)을 추가로 받기로 했다. [5]

결과[편집]

삼국간섭의 대가로 러시아는 만주 동청철도 부설권을 따내고, 1898년 여순· 대련의 조차권을 얻었다. [6] 일본은 아시아에서 차지하던 지위를 위협받게 되었고, 그만큼 조선에 대한 영향력도 줄어들게 되었다. [3] 조선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도 감소되었고 러시아의 영향력이 증대되었다. 이를 틈타 고종아관파천을 통해 러시아의 힘을 빌어 일본을 떨쳐내고자 하였다. 한때 친일로 기울던 민씨 일파는 태도를 바꾸어 러시아에 접근하였다. 그리하여 일본 침략자의 내정 간섭에 저항하고, 1894년 윤5월(양력 7월)에 박영효를 비롯한 많은 친일파를 몰아냈다. 박영효 등은 다시 일본으로 망명했고, 이노우에는 사태에 책임을 지고 일본으로 소환되었다. [7]

한편 일본 내에서는 열강의 간섭으로 인해 자신들의 전리품을 빼앗겼다는 여론이 팽배하였다. 당시 잡지 《일본인》을 발행하던 미야케 세츠레이는 다음과 같이 토로하였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은 국력의 문제로 귀착된다. 국력이 다른 나라의 간섭을 물리칠 수 있다면 어떠한 굴종도 감수할 필요가 없다. 이제부터 우리는 와신상담하여 하루 속히 국력을 배양하지 않으면 안된다.
 
— 미야케 세츠레이[8]

일본의 이와 같은 인식은 결국 군국주의의 실행으로 이어졌다. 군비 확장에 박차를 가한 일본은 1904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삼국 간섭으로 인해 늦추어졌던 제국주의 정책을 다시 획책하게 되었다.

주해[편집]

  1.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주장한 것은 병자호란이후 전통적인 청-조선 간의 사대 관계를 종식시킴으로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석[편집]

  1. 강창일, 근대 일본의 조선 침략과 대아시아 주의, 역사비평사, 2008, 107 - 108쪽, ISBN 89-7696-702-X
  2. 송금영, 러시아의 동북아 진출과 한반도 정책(1860-1905), 새미, 2006, 195-199쪽, ISBN 89-541-0241-7
  3. 역사학연구소 (2004년). 《함께 보는 한국근현대사》. 서해문집, 60쪽. ISBN 89-7483-208-9
  4. 이영관, 조선과 독일, 국학자료원, 2006, 153쪽, ISBN 89-8206-673-X
  5. 이종각 (2009년). 《명성황후 복수기》, 16쪽. ISBN 978-89-7090-730-7
  6. 강성현 (2005년). 《21세기 한반도와 주변 4강대국》. 가람기획, 257쪽. ISBN 89-8435-224-1
  7. 이은직 (2005년). 《조선명인전》, 정홍준 역, 일빛, 272쪽. ISBN 89-5645-088-9
  8. 한상일, 아시아 연대와 일본제국주의, 오름, 2006, 93쪽, ISBN 89-7778-14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