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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카이 해곡 거대지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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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헤이 지진]](고안 지진)'''이 발생했다. 《[[태평기]]》의 기록에 따르면 난카이도 해역의 거대지진으로 추정된다. 셋쓰의 [[시텐노지]]에 있는 금당이 붕괴되어 5명이 압사했다. 그 밖에도 기나이의 여러 사찰에 큰 피해가 발생했다. 셋쓰, [[아와국 (난카이도)|아와]], 도사에서는 쓰나미 피해가 있었고<ref>[[#Tsuji (2012)|都司(2012), p35-37.]]</ref> 특히 아와국의 유키에서 1,700가구가 유실되고 60여명이 사망했다. [[유노미네 온천]]의 용출이 멈췄다는 보고가 있다. 같은 달 [[이세 신궁]]의 피해 기록도 있다.<ref>奥野真行、奥野香里(2011):「{{PDFlink|[http://www2.jpgu.org/meeting/2011/yokou/SSS035-11.pdf 伊勢神宮外宮の被害と1361年康安地震]}}」 日本地球惑星科学連合2011年大会予稿集, SSS035-11.</ref> 2003년 우사미 교수는 진원지를 난카이와 도난카이 양 지역으로 보고 있으며<ref name="j1305-b" /><ref name="ssjdb" /> 지질 발굴조사를 통해 같은 시기 도난카이 지진이 있음이 밝혀졌다.<ref name="Sangawa2" /> 쇼헤이 지진 전후로 다수의 지진 기록이 남아 있으며 6월 16~24일 사이에 약 10회 정도의 지진이 발생했다. 1998년 이시바시와 사타케 교수는 이 중 7월 24일(8월 1일) 지진이 도카이도 해역에서 발생한 지진이라고 주장한다.<ref name="Ishibashi98" />
| '''[[쇼헤이 지진]](고안 지진)'''이 발생했다. 《[[태평기]]》의 기록에 따르면 난카이도 해역의 거대지진으로 추정된다. 셋쓰의 [[시텐노지]]에 있는 금당이 붕괴되어 5명이 압사했다. 그 밖에도 기나이의 여러 사찰에 큰 피해가 발생했다. 셋쓰, [[아와국 (난카이도)|아와]], 도사에서는 쓰나미 피해가 있었고<ref>[[#Tsuji (2012)|都司(2012), p35-37.]]</ref> 특히 아와국의 유키에서 1,700가구가 유실되고 60여명이 사망했다. [[유노미네 온천]]의 용출이 멈췄다는 보고가 있다. 같은 달 [[이세 신궁]]의 피해 기록도 있다.<ref>奥野真行、奥野香里(2011):「{{PDFlink|[http://www2.jpgu.org/meeting/2011/yokou/SSS035-11.pdf 伊勢神宮外宮の被害と1361年康安地震]}}」 日本地球惑星科学連合2011年大会予稿集, SSS035-11.</ref> 2003년 우사미 교수는 진원지를 난카이와 도난카이 양 지역으로 보고 있으며<ref name="j1305-b" /><ref name="ssjdb" /> 지질 발굴조사를 통해 같은 시기 도난카이 지진이 있음이 밝혀졌다.<ref name="Sangawa2" /> 쇼헤이 지진 전후로 다수의 지진 기록이 남아 있으며 6월 16~24일 사이에 약 10회 정도의 지진이 발생했다. 1998년 이시바시와 사타케 교수는 이 중 7월 24일(8월 1일) 지진이 도카이도 해역에서 발생한 지진이라고 주장한다.<ref name="Ishibashi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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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137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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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5년]] 9월 3일(9월 12일, [[메이오]] 4년 8월 15일) - 《[[가마쿠라 대일기]]》에 나오는 [[가마쿠라]]의 대지진과 쓰나미가 [[사가미 해곡 거대지진]]의 일종으로 보고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과 연동해 일어났다고 보는 가설도 있다.<ref name="Kaneko2012">金子浩之(2012):宇佐美遺跡検出の津波堆積物と明応四年地震・津波の再評価, 伊東市史研究, 10号, 伊東の今・昔, 102-124.</ref>
* [[1498년]] 6월 30일(7월 9일, 메이오 7년 6월 11일) - [[1498년 휴가나다 지진]]이 발생했다. 규슈에서 가옥 피해와 산사태가, 이요 지방에서 땅의 갈라짐이 기록되어 있다. 기나이의 지진 피해와 기이반도, 도카이 지방의 쓰나미 기록도 남아 있으며 [[상하이]]의 쓰나미와 [[양쯔강]]의 범람 기록도 남아 있어 난카이도 해역에서 발생한 지진이라는 설도 있다.<ref>[[#Tsuji (2012)|都司(2012), p37-48.]]</ref><ref name="Utsu0">宇津『[[#Utsu0|地震の事典]]』p581.</ref><ref name="ssjdb" /> 하지만 사료의 무리한 해석이 추가되었기 때문에 《규슈군기》의 내용을 반만 믿는다면 규슈 인근에서 발생한 슬래브 내 지진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ref>[[#Ishabashi (2014)|石橋(2014), p68.]]</ref> 또한 규슈군기가 후대의 창작일 가능성이 높아 이 사료를 통한 휴가나다 지진의 존재 가능성도 부정하는 주장도 있다.<ref>{{Cite web|date=2016-03-31 |url=http://wwweic.eri.u-tokyo.ac.jp/ZISINKATSUDO/ |title=東京大学地震研究所 地震活動セミナー 第79回「明応七年六月十一日(ユリウス暦1498年6月30日)の日向灘地震は実在したか?」|author=原田智也 |publisher=東京大学地震研究所 |accessdate=2017-08-21}}</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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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8년 9월 11일(9월 20일), 메이오 7년 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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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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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color:#e31100" | 8.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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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오 지진]]'''이 발생했다. 1997년 사무카와와<ref name="Sangawa2" /> 2013년 지진조사위원회는 도카이도 해역의 거대지진으로 보고 전후 가까운 시기에 난카이도 해역의 지진이 별도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으나 2003년 우사미 교수는 난카이도 해역의 지진은 동시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ref name="j1305-c">[[#j1305|地震調査委員会]]、2013年5月、説明文26頁および説明文別紙</ref> 기이에서 보소 사이 해안과 분지에서 흔들림이 컸고 [[구마노혼구우타이샤]]의 신전 붕괴도 기록되어 있지만 흔들림으로 인한 피해는 비교적 경미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반면 쓰나미 피해는 커 이세, 시마에서 사망자 1만명이, 스루가현 시다군의 《린소인기록》에 따르면 사망자 26,000명(260명이라는 설,<ref>宇佐美『最新版 [[#usami1|日本被害地震総覧]]』p46.</ref> 지진의 전체 사망자가 26,000명이라는 설도 있음<ref>[[#Tsuji (2011)|都司(2011), p23-24.]]</ref>) 등 기이에서 보소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쓰나미 피해가 일어났다. 유노미네 온천은 한달 반 동안 용출이 멈췄다는 기록이 있다. 교토에서는 여진이 2개월 가까이 지속되었다.<ref name="j1305-b" /><ref name="ssjdb" /> 이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 때문에 [[하마나호]]가 바다랑 이어졌다. 간토 지방에서는 호에이 지진보다 쓰나미 피해가 더 컸지만 시코쿠와 규슈에서는 쓰나미 기록이 없어 불분명하다. 고치현 [[시만토시]]의 아조노 유적에서는 분출된 모래가 나온 흔적이 나온 직후부터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게 되었다. 유적 조사 결과 격렬하게 흔들린 흔적이 발견되었고 도쿠시마현에서도 같은 시기 지진 흔적이 발견되었다.<ref>寒川旭「災害列島と地震考古学の課題」/ 保立道久・成田龍一監修」、北島糸子他著『津波、噴火、、、日本列島地震の2000年史』朝日新聞出版 2013年 42ページ</ref> 1976년 하토리 교수,<ref name="Hatori1976">{{Cite journal|author=羽鳥徳太郎 |title=明応7年・慶長9年の房総および東海南海道大津波の波源 |journal=東京大学地震研究所彙報 |ISSN=00408972 |publisher=東京大学地震研究所 |year=1976-01 |volume=50 |issue=2 |pages=171-185 |naid=120000871397 |doi=10.15083/0000033244 |url=https://doi.org/10.15083/0000033244 |ref=harv}}</ref> 1981년 아이다 교수<ref name="Aida1981a">相田勇(1981):「[https://hdl.handle.net/2261/12810 東海道沖に起こった歴史津波の数値実験]」 『東京大學地震研究所彙報』 1981年 56号 p.367-390, {{hdl|2261/12810}}</ref> 난카이 해곡보다 더 앞바다에 있는 [[제니스 해령]] 부근일 진원으로 하는 [[아우터라이즈 지진]]일 가능성을 주장했다.<ref name="j1305-c" /><ref name="Nakata2013">中田高, 徳山英一, 隈元崇, 渡辺満久, [[鈴木康弘 (地質学者)|鈴木康弘]], 後藤秀昭, 西澤あずさ, 松浦律子(2013): {{PDFlink|[http://www2.jpgu.org/meeting/2013/session/PDF/S-SS35/SSS35-03.pdf 南海トラフ南方の銭洲断層と1498年明応地震]}}, 日本地球惑星科学連合2013年大会予稿集, SSS35-03.</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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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19일 (월) 16:02 판

과거 역사상 발생한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의 목록.
2013년 지진조사연구추진본부 지진조사위원회가 검토한 Mw9.1 최대규모의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의 상정 진원역.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일본어: 南海トラフ巨大地震 난카이토라후쿄다이지신[*], 영어: Nankai megathrust earthquakes)은 필리핀해판아무르판[a] 사이 판 경계의 섭입 지대인 난카이 해곡에서 일어날 것으로 추정하는 거대지진을 일컫는 말이다.[1][2] 때로는 규모 Mw9.0이 넘는 초거대지진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3][4] 자세하게는 난카이 해곡을 따라 발생하는 거대지진(일본어: 南海トラフ沿いの巨大地震 난카이토라후조이노쿄다이지신[*])이라고 부른다.[5][6][7]

난카이 해곡은 예로부터 도카이 지진, 도난카이 지진, 난카이 지진 3가지 대지진이 주기적으로 발생했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이 세 지진이 연동해서 발생하는 연동형지진(도카이·도난카이·난카이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고 가정했다. 하지만 2011년 발생한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이 발생하며 이전까지 상상했던 규모를 훨씬 넘는 지진이 난카이 해곡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부각되었고 규모 M9급을 상정한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이라는 모델이 등장한다. 또한 난카이 지진의 서쪽, 난카이 해곡의 서남쪽 끄트머리인 휴가나다에서는 휴가나다 지진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데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은 3연동지진 외에도 휴가나다 지진도 예상 진원역에 포함해 같이 발표하고 있다.

2011년 8월 일본 내각부에 설치된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 모델 검토회"(南海トラフの巨大地震モデル検討会)가 검토한, 난카이 해곡을 따라가는 지역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최대규모의 지진도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이라고 부르거나 짧게 난카이 해곡 지진(南海トラフ地震)이라 부르며[8][9] 이 문서에서도 위의 정의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지진의 특징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으로 발생할 피해는 초광역에 걸칠 막대한 쓰나미와 강한 흔들림에 따라 서일본을 중심으로 동일본 대지진을 뛰어넘는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가 발생해 우리나라 전체의 국민 생활, 경제 활동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칠, 그야말로 국난이라고도 할 수 있는 거대 재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 일본 중앙방재회의, 2012년[10]
684년 하쿠코 난카이 지진부터 1946년 쇼와 난카이 지진까지의 지진 발생 및 연동 분석 그림

난카이 해곡의 지진은 약 90년~150년(중세 이전에는 200년 이상)의 간격으로 발생하는 도카이 지진, 도난카이 지진, 난카이 지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세 지진은 어느 하나가 일어나면 몇 시간에서 몇 년의 간격을 두고, 또는 시간 간격 없이 바로 연동해 발생한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어졌다. 1605년 일어난 게이초 지진의 경우에는 난카이 해곡에서 일어난 지진이 아니라는 설이 유력해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은 대략 200년을 간격으로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의견도 존재한다.[11] 가장 최근의 쇼와 시대의 지진들은 지진계에 의한 관측기록이 존재하고, 그보다 오래된 지진들은 지질조사 및 문헌자료를 통해 지진을 분석한다. 분석 결과 앞으로도 같은 간격으로 계속 발생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 지진들은 모두 규모가 8 이상인 거대한 지진으로, 지진 자체의 흔들림과 지진해일으로 큰 피해를 내왔다.

이후 연구에 따르면 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진원이 조금씩 다르다고 밝혀졌다. 예를 들어 같은 난카이도 해역의 지진이라고 하더라도 1854년 안세이 난카이 지진은 난카이도 해역 전역을 진원으로 발생했지만 1946년 쇼와 난카이 지진은 난카이도 서쪽 1/4 지역은 진원지에서 빠졌다.[12] 한편 도쿄 대학 지진 연구소세노 데쓰조 교수는 도카이-도난카이-난카이 3개 지진 분류 체계를 바꿀 필요성을 언급하며 난카이 해곡 동쪽 끝의 진원지(도난카이 일부와 도카이 전체)와 연동해 시즈오카현 부근까지 단층 파괴가 일어나는 "안세이형 지진"과 이 진원지와는 연동하지 않아 시즈오카현 부근까지는 단층 파괴가 일어나지 않는 "호에이형 지진" 두 종류의 지진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2]

1498년 메이오 지진 이후부터는 문헌 자료도 풍부하고 발생 간격도 약 100여년 전후로 일정하다고 여겨졌다(아래의 난카이 해곡 지진의 발생 영역의 '종래설' 참조). 하지만 이 이전에는 도카이도 해역의 지진 발생 기록이 거의 없는데다 1361년 쇼헤이 지진 이전의 지진 발생 간격은 문헌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13세기 전반 시기 발생했다고 추정되는 쓰나미와 토양액상화의 흔적을 여러 곳에 발견해 문헌 기록을 겨우 보완하는 수준이고, 1096년 에이초 지진 이전은 확실한 증거도 거의 발견되지 않아 쓰나미 퇴적물 연구를 토대로 100년과 200년 주기가 번갈아 반복해서 일어난다는 가설도 있다.[13] 액상화 흔적 연구의 경우에는 내륙의 단층지진일 가능성이나 추정 연대의 오차범위 문제도 있어 더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14] 판의 상대적 운동과 판 경계의 마찰 특성을 이용한 지진 연동 발생을 시뮬레이션하러는 시도도 있고 연동성은 재연하였으나 지진 발생 간격이 역사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 점도 있다.[15][16]

난카이 해곡 전역에서 거의 동시에 단층파괴를 일으킨 지진은 규모가 매우 컸으며 1707년 호에이 지진은 일본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지진으로 꼽힌다. 1854년 안세이 지진이 쇼와 지진보다 규모가 더 크며[17] 1707년 호에이 지진이 1854년 안세이 지진보다 규모가 더 크다. 예를 들어 스사키(현 고치현 스사키시)에서는 안세이 지진 당시 5~6 m의 쓰나미가 닥쳤지만 호에이 지진 당시에는 해발 11 m 지점까지, 일부 지점에서는 최대 18 m가 넘는 쓰나미가 닥쳤다.[18] 도사번의 피해 보고에 따르면 안세이 지진으로 주택 3,082채가 붕괴, 3,202채가 유실, 2,481채가 소실되었으나 호에이 지진에는 5,608채가 붕괴, 11,167채가 유실되었다고 집계되었다.[19] 안세이의 쓰나미로 파괴되어 버려진 마을은 도사번에서 총 4개 마을이었으나 《곡릉기》에 따르면 호에이 지진 당시 버려진 마을은 총 81곳에 달했다.[20] 21세기 들어서면서 고치현 도사시 가니치에서 호에이 지진으로 만들어진 초대형 쓰나미 퇴적물이 발견되었는데 호에이 지진과 마찬가지로 쓰나미 퇴적물을 남기는 지진 흔적은 300~600년 간격으로 발견된다고 밝혀졌다. 또한 호에이 지진보다 약 2천년 전으로 추정되는 시기 남은 지층에 두꺼운 쓰나미 퇴적물이 발견되어 호에이 지진의 쓰나미보다 더 높은 쓰나미가 과거에 있었을 가능성이 같이 지적되었다.[7][21][22]

쇼와 난카이 지진은 단순한 판 경계간 지진이 아닌 분기단층(주 단층대에서 분리되어 뻗어있는 미세한 여러 소단층)에서의 단층 미끄러짐을 동반했을 가능성이 추정되는데 난카이 해곡을 따라서 과거에 발생했다고 추정되는 여러 스프레이 분기단층이 다수 확인되었다.[23] 한편 진원지가 넓으면 그에 따라 매우 큰 장주기 지진동 발생도 예상되어 진원에 가까운 평야 지역 대도시인 오사카, 나고야를 비롯한 지역에서 여러 고층 건물이나 오일탱크 등에 여러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24] 이와 관련해 고문헌에서는 종종 반 시간이 넘게 장시간 강한 진동이 이어졌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러 지진 기록이 보이는데 이는 대지진에 대한 공포감이 과장된 표현을 낳았다고 보는 주장과 반대로 연동형지진처럼 진원이 매우 넓어지면 단층 파괴가 전달되는 시간이 더 길어져 거기서 또 다른 단층파괴가 계속 이어지는 등 파괴 시간이 매우 긴 다중지진이 되어 본진 후 빈발하는 여진과 합쳐져 실제로 느껴지는 지진의 흔들림이 매우 길어진 것을 표현했다는 주장으로 나눠진다.[25][26]

위와 같이 난카이 해곡에서 발생하는 해구형지진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재귀성'과 여러 고유지진의 진원지에서 동시에 발생하는 '연동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난카이 해곡은 약 2천만년 된 젊은 판이 가라앉아 있고 얉으며 온도가 낮아 낮은 각도로 섭입해 판 경계간의 애스패리티도 형성되기 쉬우며 진원도 육지와 가까워 피해가 커지기 쉽다.[27] 난카이 해곡에서 필리핀해판과 유라시아판(아무르판)과의 판 사이 결합력은 100%에 가깝게 거의 완벽히 서로 고착되어 1년에 약 6.5 cm씩 일본 열도를 밀어내는 판의 에너지가 거의 대부분 지진 에너지로만 방출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기이반도 끝부분 시오노곶 해역 부근에 고착력이 약하고 미끄러지기 쉬운 영역이 있으며 1944년 쇼와 도난카이 지진과 1946년 쇼와 난카이 지진은 모두 이 부근을 진원으로 단층파괴가 각각 동, 서 방향으로 퍼져나간 것과 관련이 깊다고 알려졌다.[28] 교토대학 인간환경학연구과 가마타 히로키 교수는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이 사가미 해곡 거대지진을 유발한다고 가정하고 이 두 거대지진의 연동형지진을 "슈퍼 난카이 지진"이라고 부르고 있다.[29]

이 지진으로 인해 발생할 재해를 동일본 대진재를 따서 "서일본 대진재"(西日本大震災)라고 호칭하는 경우가 있다.[30] 2011년 3월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발생 이후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에 대한 우려가 부각됨에 따라 일본 정부는 중앙방재회의에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 대책검토워킹그룹"을 설치해 대책검토를 진행했다. 워킹그룸이 2012년 7월 정리한 중간보고서에서는 난카이 해곡에서 예상되는 최대급의 거대지진이 동일본 대지진 이상의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발생시킬, 국난이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재앙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31][32][10]

2018년 6월 7일 일본토목학회는 지진 발생 후 20년간 피해액이 최대 1,140조엔에 달한다는 추정 연구결과를 발표했다.[33]

지진 발생 확률

시간 예측 모델을 사용할 경우

일본 고치현 무로토시 무로츠항의 모습.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융기 현상이 일어나 배가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해발고도가 올라가져 굴착 공사를 반복하며 항구 수심이 매우 깊어졌다.[17] 구보노 가문에 남아 있는 무로츠항의 수심 기록은 시간 예측 모델에서 지각변동량에 사용하고 있다.
시간 예측 모델에 따른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의 발생 에측과 무로츠항의 융기량 비교. 호에이 지진 당시에는 1.8 m(추정), 안세이 지진 당시 1.2 m, 쇼와 지진 당시 1.15 m이다.
BPT 분포에 따른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의 발생 예측. 아래는 2019년 기준 30년 이내 지진 발생 확률의 계산이다.

시간 예측 모델(time predictable model)은 지진으로 발생한 변위량과 다음 지진까지의 회복 시간이 비례한다는 가정으로 세운 모델로 이에 반해 슬립 예측 모델(slip predictable model)은 이전 지진부터 쌓인 변형 축적 시간과 지진으로 발생하는 변위량이 비례한다는 가정으로 세운 모델이다. 하지만 두 모델 모두 불완전하여 완벽히 예측하진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34]

많은 단층은 약하지만 시간 예측 모델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기에 1977년 시마자키 구니히코도 난카이 해곡을 따라 발생하는 지진도 시간 예측 모델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제안했다.[35][36]

다음에 발생할 수 있는 지진은 기존에 발생했던 지진보다 폭넓게 규모 M8~9급으로 가정한다. 고치형 무로츠항의 역대 난카이 지진(호에이, 안세이, 쇼와)의 융기량과 발생 간격을 기반으로 한 시간 예측 모델을 적용해 예측한 다음 M8급 지진은 쇼와 난카이 지진으로부터 약 88.2년 후로 추정되며, 이를 통해 계산한 지진 발생 확률은 아래와 같다.[35][36][37]

지진 발생 확률(일본 지진조사위원회 기준)
구역 지진 종류 2024년 1월 1일 기준
규모(M) 30년 내 발생 확률
난카이 해곡 판 경계간 지진 M8-9 규모 70% - 80%[38]

2024년 1월 15일 일본 지진조사연구회가 발표한 자료에서는, 난카이 해곡의 지진 발생 확률은 10년 내에 약 30%, 20년 내 약 60%, 30년 내에 약 70-80%, 50년 내 발생 확률은 90% 이상이라고 발표했다.[38]

무로츠항의 쇼와 난카이 지진 당시 융기량은 조위 변화로 계산시 115 cm이며[39] 안세이 난카이 지진 당시에는 무로츠항을 관리하던 항만 관리인 구보노 가문의 기록에 따르면 약 4척(1.2 m)이고[40] 호에이 지진 당시에는 구보노 가문의 기록에서 지진 전과 지진 52년 후의 수심 차이인 5척(1.5m)[40]를 52년간의 변동으로 보정하면 약 1.8 m로 추정된다.[35]

시간 예측 모델로 추정된 88.2년을 평균 활동 간격에 적용하고, 쇼헤이에서 쇼와까지 이르는 지진 활동 간격의 편차로부터 최대가능도 방법으로 구한 변동 계수(표준편차) α의 값은 0.20으로 데이터가 적은 점을 감안해 0.20~0.24로 α를 설정했다. 확률 밀도 함수로 BPT(Brownian Passage Time) 분포를 이용해 30년 이내 발생 확률을 계산했다.[37] 그 다음으로 최대 규모(M9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 발생 빈도는 100~200년 간격으로 발생하는 지진에 비해 확률이 "한 자릿수 이상 낮다"고 발표했다.[41]

시간 예측 모델의 적용에 대해 아래와 같은 여러 문제점이 지적된다.[42]

  • 난카이 해곡을 따라 발생하는 거대지진은 진원이 매우 다양한데도 불구하고 무로츠항의 융기만으로 한번에 평가할 수 있는가?
  • 융기량이 이를 회복하는 시간에 비례한다면 평상시 무로츠항의 침강 속도는 1년에 약 13 mm가 되어야 하지만, 수준 측량에 따른 실제 평상시 침강 속도는 1년에 5~7 mm로 매우 다르다.
  • 시마자키 구니히코가 시간 예측 모델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 지진은 쇼와 난카이 지진 외 호에이와 안세이 두 지진뿐이다. 하쿠호 지진서부터 모델을 적용해본다면 시간 예측 모델은 전혀 맞지 않는다는 연구도 있다.[43]

또한 어떤 지진(이 경우 난카이 해곡 지진)이 다른 지진의 유발지진으로 발생되는 경우가 있다면 발생 시기는 외부 요인인 '유발'에 구속되기 때문에 시간 예측 모델이 성립하지 않는다.[44] 그리고 지각 변동량에 사용된 무로츠항의 수심 변화가 오차가 고려되지 않았고 지진 전 수심 측정일이 불분명한 등 구보노 가문의 기록을 이용한 변동량 자체에 문제가 있어 많은 문제점이 지적됨에도 마치 과학적 판단만으로 지진 발생 시기를 예측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있다.[45]

발생 간격만으로 평가할 경우

다른 판 경계간 지진과 마찬가지로 발생 간격만을 이용하여 지진을 평가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역시 여러 이견이 있는 1605년 게이초 지진을 난카이 해곡 지진으로 포함할 것인지, 684년 하쿠호 지진 이후 모든 지진의 연대를 사용할 것인지, 1361년 쇼헤이 지진 이후인지,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는 1707년 호에이 지진 이후를 사용할지 등에 따라 평균 발생 간격이 크게 달라진다. 여기서는 안세이와 쇼와처럼 동서로 나눠서 발생한 경우 둘을 합쳐 1사이클로 취급했다.[46]

2013년 기준 30년 내 발생 확률 (시간 예측 모델을 사용하지 않은 경우)
사례 평균 발생 간격 30년 내 발생 확률 (최대가능도 방법)
하쿠호 이후 전부 157.6년 10% 정도 (α=0.40)
게이초 제외 하쿠호 이후 180.1년 6% (α=0.37)
쇼헤이 이후 전부 116.9년 20% 정도 (α=0.20)
게이초 제외 쇼헤이 이후 146.1년 10% 정도 (α=0.35)
호에이 이후 119.1년 30% 정도 (α=0.34)

역사

난카이(A, B), 도난카이(C, D), 도카이(E) 지진의 진원지

역사 기록상 난카이 해곡의 동쪽 절반과 서쪽 절반의 진원들이 시간차를 두고, 또는 거의 동시에 연동하여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 지진들 중 기기관측기록이 존재하는 것은 쇼와 시대의 지진 뿐이며,[47][48] 전체적인 사료가 남아 있어 진원지를 특정할 수 있는 것은 에도 시대의 안세이 지진 및 호에이 지진까지다. 그 이전의 지진들은 사료가 부족하여 진원지에 관해 여러 설이 난립하고 있다.[49] 또 게이초 지진은 난카이 해곡 지진이 아예 아닐 가능성을 의심하는 의견도 있다. 후루무라(古村, 2015)는 도카이 쪽에서는 평균 180년 간격, 난카이 쪽에서는 평균 252년 간격이라고 지진 발생 주기를 추정했다.[50]

종래에는 진원지가 난카이, 도난카이, 도카이 또는 A(도사 해분), B(무로토 해분), C(구마 해분), D(엔슈 해분), E(스루가만)의 세그먼트로 구분되었다.[51][b] 이 중 A, B가 난카이 지진, C, D가 도난카이 지진, E가 도카이 지진에 해당한다. 하지만 호에이 지진은 도사 해분 남서쪽의 휴가 해분에서 일어나는 휴가나다 지진도 연동되었을 가능성이 지적되고,[52] 아예 난카이 3연동지진과는 별개의 거대지진이라는 설도 등장하고 있다.[53] 1498년의 메이오 지진은 난카이 지진과 휴가나다 지진이 연동되었을 가능성이 지적된다.

난카이 해곡 지진 발생영역 (종래설)[54]
지진조사위원회(2013년)의 구분 (휴가나다) 난카이 도난카이 도카이 연동시 간격
Z
휴가 해분
A
도사 해분
B
무로토 해분
C
구마 해분
D
엔슈 해분
E
스루가만
이시바시(石橋, 2002)에 따른
발생영역
: 확실
: 확실시
: 가능성 있음
: 설이 있음
: 해일 지진
684년 하쿠호 지진 동시기[55]
887년 닌나 지진 동시기[55]
1096년 에이초 지진
1099년 고와 지진
2년 2개월[55] 또는 동시[56][57]
1361년 쇼헤이 지진 동시기[55][58] 또는 2일[59]
1498년 메이오 지진 동시 또는 가까운 간격[60]
1605년 게이초 지진 불명[55][61]
1707년 호에이 지진 동시[62]
1854년 안세이 도카이 지진
1854년 안세이 난카이 지진
32시간[63]
1944년 쇼와 도난카이 지진
1946년 쇼와 난카이 지진
2년[64]
난카이 해곡 지진 발생영역 (재검토)[50][c]
Z
휴가 해분
A
도사 해분
B
무로토 해분
C
구마 해분
D
엔슈 해분
E
스루가만
이전 지진과의 발생 간격
난카이도 해역 도카이도 해역
후루무라(古村, 2015) 연구의
발생영역
:확실
:가능성 있음
684년 하쿠코 지진 -
887년 닌나 지진 203년 203년
1096년 에이초 지진 474년 209년
1361년 쇼헤이 지진 265년
1498년 메이오 지진 346년 137년
1707년 호에이 지진 209년
1854년 안세이 지진 147년 147년
1944/1946년 쇼와 지진 92년 90년

연표

아래 연표는 2013년 지진조사위원회가 거대지진의 진원지로 분류한 난카이 해곡이 진원인 지진 중 도카이 지진, 도난카이 지진, 난카이 지진의 진원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 9사이클의 거대지진 목록이다.[65] 참고를 위해 지진 전후에 발생한 서남일본 내륙의 대지진과 화산 폭발, 인근 지역의 판 경계간 거대지진, 종종 지진 전후로 발생하는 후지산이즈 제도의 화산 폭발도 같이 기록했다.

  • 출처: 날짜, 진원, 규모, 진도 등 피해 이외의 요소는 1922년 일본지진학회 자료,[66] 1923년 일본 기상청 자료[67]를 따름. 피해는 문장마다 각주를 달았으나 주로 일본지진학회[66]와 2013년 지진조사위원회 자료[55]를 참고해 다른 출처에서 추가했다.
  • 지진 발생 날짜는 게이초 지진을 기준으로 이후는 그레고리력, 메이오 지진 이전은 율리우스력(괄호 안은 그레고리력)이다.
지진 발생 날짜 혹은 발생 간격 진앙지 북위
(°N)[d]
동경
(°E)[d]
진원 깊이
(km)
규모
(M)
최대
진도
개요
  • 기원(서력) 1년 무렵(야요이 시대) - 규모 M9급의 초거대지진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의심된다. 일본 고치현 도사시 우사 해안에서 약 200 m 떨어진 가니치 연못(蟹ヶ池)에서 쓰나미로 만들어진 퇴적물이 호에이 지진의 50 cm 정도의 두께를 넘는 매우 두꺼운 퇴적물이 발견되었다.[7][22][69]
  • 인교 천황 시기(5세기 전반) - 시즈오카현 사카지리 유적과 오사카부 규호지 유적의 토양액상화 흔적, 나라현 덴리시 아카도산 고분에서 산사태 흔적이 발견되어 이 시기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이 발생했다는 가설이 있다.[70]
  • 684년 11월 26일(11월 29일, 덴무 13년 10월 14일) - 하쿠호 지진 당일 이즈 제도에서 화산 분화가 일어나 섬이 생겼다고 해석할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다.[71]
684년 11월 26일(11월 29일), 덴무 13년 10월 14일 814
Mw 8~9[72]
하쿠호 지진 (덴무 지진)이 발생했다. 《일본서기》에 남아 있는 이요 온천의 분출 정지, 도사 지역의 여러 기록은 난카이도 해역에 거대지진이 발생했음을 암시하며[71] 지질 조사를 통해 같은 시기에 도카이도 해역에서도 거대지진이 발생했다고 추정되며 난카이 해곡 거의 전체가 진원인 호에이형 지진일 가능성이 있다.[73][74] 일본 각지에서 산사태, 가옥, 신사, 사찰의 붕괴 피해가 발생했다. 쓰나미도 덮쳐 도사국에서 선박이 다수 침몰했고 논밭 약 12 km2이 바다 속으로 침강해 완전히 바다가 되었다고 기록되었다.[75] 지진 전후로 이요 온천기이 무로온천의 샘물이 멈췄다는 기록이 있다.[55][66]
약 203년간
887년 8월 22일(8월 26일), 닌나 3년 7월 30일 33.0 135.0 8.0~8.5 닌나 지진이 발생했다. 《일본삼대실록》에서 난카이도 해역에 거대지진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지질 조사를 통해 같은 시기 도카이도 해역에서도 거대지진이 발생했다고 추정된다.[26][58] 오기칠도 전역과 교토에서 주택과 관사의 붕괴로 인한 압사자가 다수 발생했다. 특히 셋쓰국의 피해가 가장 컸다. 약 1달간 여진이 기록되었다.[55][66]
약209~212년간
1096년 12월 11일(12월 17일), 가호 3년 11월 24일 8.0~8.5 에이초 지진이 발생했다. 도카이도 해역에서 일어난 거대지진으로 추정된다.[74] 고쿄대극전이 피해를 입었고 도다이지의 대종이 바닥으로 떨어졌으며[55][66] 오미국세타노토교가 붕괴되었다.[58] 쓰나미로 스루가국에서 민가와 사찰 400곳이 유실되었다. 이세국의 아노쓰에서도 쓰나미 피해가 있었다.[55][66] 2년 2개월 후 일어난 고와 지진과 시차를 두고 일어난 연동형지진이라는 주장도 있어[55] 둘을 합쳐 에이초·고와 지진이라고도 부른다.
1099년 2월 16일(2월 22일), 조토쿠 3년 1월 24일 6.4~8.3 고와 지진이 발생했다. 난카이도 해역에서 일어난 거대지진으로 추정된다.[74] 야마토국에 있는 고후쿠지의 문과 회랑에 피해가 있었고 셋쓰국의 덴노지에서도 피해가 있었다. 쓰나미 자체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고와 2년 1월 4일 도사에서 농경지 약 10 km2가 침수되었다는 기록[80]을 고와 원년의 오기로 보고 야마토·셋쓰국의 지진 기록과 동시기라고 보면 이 농지 수몰이 쓰나미일 가능성이 있다.[55][66] 2년 2개월 전 일어난 에이초 지진과 시간을 두고 일어난 연동형지진이라고 보면[55] 둘을 합쳐 에이초·고와 지진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2016년 이시바시 교수는 고와 지진이 난카이도 해역의 지진이 아닌 기나이의 지진이며 도사의 기록은 고와 원년뿐만이 아닌 도카이도 해역 지진에 더해 난카이도 해역까지 포함한 연동형지진일 가능성도 주장했다.[81]
약262~265년간
  • 1112년(에이쇼 8년) - 이즈 제도에서 화산 분화가 있었다고 추정된다.[82]
  • 1200년경(전후 수십년) - 시즈오카현 아게쓰치 유적, 오사카부 사카이시 이와쓰카 신사 유적, 와카야마현 아리다가와정의 후지나미 유적 및 나치카쓰우라정 가와세키 유적에 남은 지진 흔적에서 이 시기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이 있었다는 가설을 주장하는 측이 있다.[83] 1185년 긴키 지역을 강타한 분지 지진이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이라는 주장도 있지만[84][85] 비라 단층의 활동으로 발생한 내륙 지진이라는 주장도 크다.[86]아즈마카가미》 등 가마쿠라나 교토의 지진 기록을 통해 이 시기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의 발생 날짜를 연구하는 시도도 있다.[87]
  • 1360년 11월 13일·14일(11월 21일·22일, 쇼헤이 15년, 엔분 5년 10월 4일·5일) - 규모 M7.5~8.0의 기이-셋쓰 지진이 4일과 5일 두 차례 일어났다.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고 오와와 효고에 산사태가 여럿 일어났다.[66] 이를 도카이도 방면의 지진이라 보는 설이 있다.[88] 하지만 신뢰도가 떨어지는 사료에서만 등장하는 기록으로 지진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가지는 주장이 크다.[89][59]
1361년 7월 26일(8월 3일), 쇼헤이 16년, 고안 원년 6월 24일 33.0 135.0 814~8.5 쇼헤이 지진(고안 지진)이 발생했다. 《태평기》의 기록에 따르면 난카이도 해역의 거대지진으로 추정된다. 셋쓰의 시텐노지에 있는 금당이 붕괴되어 5명이 압사했다. 그 밖에도 기나이의 여러 사찰에 큰 피해가 발생했다. 셋쓰, 아와, 도사에서는 쓰나미 피해가 있었고[90] 특히 아와국의 유키에서 1,700가구가 유실되고 60여명이 사망했다. 유노미네 온천의 용출이 멈췄다는 보고가 있다. 같은 달 이세 신궁의 피해 기록도 있다.[91] 2003년 우사미 교수는 진원지를 난카이와 도난카이 양 지역으로 보고 있으며[55][66] 지질 발굴조사를 통해 같은 시기 도난카이 지진이 있음이 밝혀졌다.[58] 쇼헤이 지진 전후로 다수의 지진 기록이 남아 있으며 6월 16~24일 사이에 약 10회 정도의 지진이 발생했다. 1998년 이시바시와 사타케 교수는 이 중 7월 24일(8월 1일) 지진이 도카이도 해역에서 발생한 지진이라고 주장한다.[59]
약 137년간
  • 1495년 9월 3일(9월 12일, 메이오 4년 8월 15일) - 《가마쿠라 대일기》에 나오는 가마쿠라의 대지진과 쓰나미가 사가미 해곡 거대지진의 일종으로 보고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과 연동해 일어났다고 보는 가설도 있다.[92]
  • 1498년 6월 30일(7월 9일, 메이오 7년 6월 11일) - 1498년 휴가나다 지진이 발생했다. 규슈에서 가옥 피해와 산사태가, 이요 지방에서 땅의 갈라짐이 기록되어 있다. 기나이의 지진 피해와 기이반도, 도카이 지방의 쓰나미 기록도 남아 있으며 상하이의 쓰나미와 양쯔강의 범람 기록도 남아 있어 난카이도 해역에서 발생한 지진이라는 설도 있다.[93][94][66] 하지만 사료의 무리한 해석이 추가되었기 때문에 《규슈군기》의 내용을 반만 믿는다면 규슈 인근에서 발생한 슬래브 내 지진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95] 또한 규슈군기가 후대의 창작일 가능성이 높아 이 사료를 통한 휴가나다 지진의 존재 가능성도 부정하는 주장도 있다.[96]
1498년 9월 11일(9월 20일), 메이오 7년 8월 25일 34.0 138.0 8.2~8.4 메이오 지진이 발생했다. 1997년 사무카와와[58] 2013년 지진조사위원회는 도카이도 해역의 거대지진으로 보고 전후 가까운 시기에 난카이도 해역의 지진이 별도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으나 2003년 우사미 교수는 난카이도 해역의 지진은 동시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60] 기이에서 보소 사이 해안과 분지에서 흔들림이 컸고 구마노혼구우타이샤의 신전 붕괴도 기록되어 있지만 흔들림으로 인한 피해는 비교적 경미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반면 쓰나미 피해는 커 이세, 시마에서 사망자 1만명이, 스루가현 시다군의 《린소인기록》에 따르면 사망자 26,000명(260명이라는 설,[97] 지진의 전체 사망자가 26,000명이라는 설도 있음[98]) 등 기이에서 보소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쓰나미 피해가 일어났다. 유노미네 온천은 한달 반 동안 용출이 멈췄다는 기록이 있다. 교토에서는 여진이 2개월 가까이 지속되었다.[55][66] 이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 때문에 하마나호가 바다랑 이어졌다. 간토 지방에서는 호에이 지진보다 쓰나미 피해가 더 컸지만 시코쿠와 규슈에서는 쓰나미 기록이 없어 불분명하다. 고치현 시만토시의 아조노 유적에서는 분출된 모래가 나온 흔적이 나온 직후부터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게 되었다. 유적 조사 결과 격렬하게 흔들린 흔적이 발견되었고 도쿠시마현에서도 같은 시기 지진 흔적이 발견되었다.[99] 1976년 하토리 교수,[100] 1981년 아이다 교수[101] 난카이 해곡보다 더 앞바다에 있는 제니스 해령 부근일 진원으로 하는 아우터라이즈 지진일 가능성을 주장했다.[60][102]

같이 보기

각주

참고주
  1. 일반적으로는 유라시아판수렴 경계라고 부르지만 2014년 이시바시 교수는 난카이 해곡 지진에서는 아무르판이 만드는 동북일본의 동진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고 있다.(출처: 石橋(2014), p103-107, p152-158.)
  2. 일부 연구는 휴가나다를 Z 세그먼트로 따로 구분한다.[51]
  3. 1605년 게이초 지진은 오가사와라 근해의 원거리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판단해 검토 후 표에서 제외되었다.[50]
  4. 지진계 관측 기록이 있는 쇼와 지진을 제외한 역사지진의 진앙 위치는 피해 기록을 바탕으로 만든 진도분포지도를 통해 추정한 위치로, 단층 파괴 시작점인 원래의 진원을 기준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진원이 매우 넓은 거대지진의 진앙은 지진계가 없으면 확실하게 찾을 수 없으며, 오래된 지진의 경우 진앙은 매우 무의미할 뿐 아니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68]
출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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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内閣府 防災 「南海トラフ巨大地震 その時、何が起こるのか」【動画】
  9. 内閣府 防災 「南海トラフ地震 どうする?どうなる?」【動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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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平原和朗, 坂本登史文: 「次の南海トラフ巨大地震は?東海、東南海、南海地震連動評価研究」 (PDF) 京都大学理学研究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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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地震調査委員会、2013年5月、説明文25-26頁
  62. 地震調査委員会、2013年5月、説明文25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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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