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유나이티드 FC: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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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24일 (일) 22:04 판

인천 유나이티드
전체 명칭인천 유나이티드 프로축구단
리그대한민국 K리그
창단2003년
소유주대한민국 송영길 (인천광역시장)
감독대한민국 허정무
경기장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 (2004~2011)
숭의아레나파크 (2012~)
수용 인원50,256명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
20,000명 (숭의아레나파크)
201011위
원정

인천 유나이티드 FC대한민국 K리그 소속의 프로축구단이다. 2003년에 팀이 창단되어 2004시즌부터 리그에 참가했으며,[1] 인천광역시와 인천광역시민이 중심이 되어 창단한 시민구단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맨유'라고 부르는 것처럼 인천 유나이티드의 애칭이자 약칭도 '인유'로 불리고 있다. 홈 경기장은 인천광역시 남구 문학동에 있는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을 사용하고 있으며, 2012년부터 새로 완공된 숭의아레나파크(인천광역시 남구 숭의동)로 홈 경기장을 이전할 계획이다.

역사

창단 논의와 확정, 리그 데뷔

인천광역시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축구단의 창단은 2003년 본격적으로 논의가 구체화가 시작되었다. 구단은 가칭 인천시민프로축구단으로 불렸으며 초기 창단자금으로 150억원을 책정하고 2002 한일 월드컵을 치르고 남은 자금 30억원과 기업 자금 유치, 시민주 공모 등을 통해 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논의는 빠르게 진행되어 K리그 2004 시즌부터 참여하겠다는 발표가 이루어졌으며 9월TSV 1860 뮌헨의 감독으로 유명했던 독일의 축구 감독 베르너 로란트를 영입했다.[2] 또한 10월에 시민 공모를 통해 구단의 명칭을 인천 유나이티드 FC로 최종 확정하였다.[3] 또한 선수 영입에도 박차를 가해 안양 LG 치타스에서 최태욱을 영입하고 터키의 국가대표 알파이 외잘란을 영입하는 등 과감한 투자를 했다.[4]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성적은 저조하여 2004년 K리그 첫 시즌에는 전기리그 13위에 그쳤다. 하지만 후기리그에서는 기세를 올려 4위를 기록했다. 2004시즌 전반기가 종료된 8월에 로란트 감독은 부인의 건강 악화로 인한 개인적인 사정 으로 사임했으며, 장외룡 수석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5]

시민 구단의 역사를 다시 쓴 2005년

인천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크게 기록되는 시즌은 창단 이후 리그에서 2년차를 맞이한 2005년 K리그이다. 팀의 간판 선수로 평가되던 최태욱J리그 시미즈 에스펄스로 이적보내며 얻은 자금 15억원을 구단 운영자금으로 사용하는 등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대규모 구단과는 다르게 가용 자금이 부족했던 인천은 제대로 선수 수급이 안 되어 스쿼드가 얇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전용 연습구장도 없어 훈련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해야 할 정도로 팀 사정이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었는데[6]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장 임중용과 신인 방승환, 외국인 공격수 3인방 아기치, 셀미르, 라돈치치등의 활약을 앞세워 전기리그 7승 3무 2패로 2위, 후기리그 6승 3무 3패로 5위로 통합 성적 13승 6무 5패로 우승을 기록, 리그에 새 바람을 일으키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또한 플레이오프에서 전기 리그 우승 팀 부산 아이파크를 2대 0으로 누르며 K-리그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 통합 우승의 기대를 한껏 높였다. 그러나 인천의 전진은 울산 현대 호랑이에게 통합 스코어 3대 6으로 패하면서 끝났으며, 최종 기록은 리그 준우승으로 되었다. 비록 팀은 '기적같은 행보의 끝', '리그 방식의 희생양' 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최종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시민 구단의 돌풍' 이라는 찬사와 함께 인천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적으로 비춰졌다. 그 해 1월 3일에 감독 대행에서 감독으로 승격되며[7] 시즌 동안 인천을 이끈 장외룡감독은 리더십과 전술 운용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며 인천 돌풍의 지휘자로 명성을 얻었고, 그것은 울산의 김정남 감독을 투표에서 1표차로 제치며 올해의 K-리그 감독상 수상으로 결실을 맺었다.[8] 장 감독의 감독상 수상은 리그 우승 팀이 아닌 감독이 수상을 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기도 했다.[9] 이렇듯 인천이 2005년에 일으킨 돌풍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2006년 12월 14일에 2005시즌의 인천 유나이티드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이 개봉했다.[10]

2006 - 2008 시즌

지난 시즌에서 정규리그 우승, 통합 준우승을 기록하며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던 인천이었으나 2006 시즌에서는 전기리그에서는 2승 8무 3패로 10위, 후기리그에서는 5승 4무 4패로 6위를 기록, 통합 순위 9위에 자리하며 기대와는 다르게 우승권에서 멀어진 성적을 기록했다. 2007 시즌에는 리그가 시작하기 앞서 2007년 1월 25일 선진 축구를 배우고 특히 2군, 유소년 시스템에 대한 연구 및 체득을 위해 K리그구단 최초로 감독을 1년간 영국에 지도자 연수를 보내는 파격적인 투자를 했다.[11] 장 감독이 연수를 가 있는 동안에는 박이천 기술고문이 감독 대행직을 맡아 수행했다. 한편 인천의 서포터들은 2007년 8월 29일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원정 경기가 열리는 날에 인천광역시 구월동 로데오거리에서 K-리그 최초의 길거리 응원을 펼쳤는데,[12]. 이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중 응원 문화로 자리매김한 거리 응원 문화를 국가대표급 경기가 아닌 일반 클럽 경기에 적용시킨 사례로 기록되었다. 한편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구분 없이 치러진 2007시즌에서 인천은 최종 순위 9위를 기록했다.

2008 시즌에는 팀의 김시석 코치를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셀틱 FC로 유학을 보내 장외룡 감독에 이어 두 번째 스태프 유학을 보냈다.[13] 리그에서는 시즌 초반 제주 유나이티드, 전남 드래곤즈, 포항 스틸러스를 상대로 3연승을 거두는 등 상승세를 탔었으나 리그 후반에 승리보다는 무승부와 패배를 더 많이 기록, 전북 현대 모터스경남 FC와 함께 6강 플레이오프의 마지노선인 6위에 들기위해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리그 마지막 라운드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1대 3으로 패하며 7위를 기록, 경남을 홈에서 3대 1로 꺾은 전북에게 6위 자리를 내주며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었다.

4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다

2006년에 9위, 2007년에 9위, 2008년에 7위를 기록한 인천은 번번이 6강 플레이오프의 문턱에서 좌절하며 2005년의 분위기를 되살리는 데에 실패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09시즌에 앞서 인천은 팀의 지주이자 구단 차원에서 크게 투자를 한 장외룡 감독이 J리그오미야 아르디자로 떠나보내게 된다. 인천은 장 감독의 부재를 곧바로 일리야 페트코비치 감독을 영입하면서 메웠다.[14] 페트코비치 감독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축구 국가대표팀2006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은 감독으로써 특히 월드컵 예선 때에는 최소 실점으로 본선에 올라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던 명감독이었다. 또한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고교 시절부터 특급 공격수로 평가받던 홍익대학교유병수를 영입했고, 이외에도 팀에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맹활약하며 인천 서포터들의 큰 지지를 받았던 라돈치치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면서 생긴 외국인 스트라이커의 자리를 마케도니아 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출신의 드라간 챠디코프스키로 채웠다. 그리고 K리그 구단 중 최초로 아시아 쿼터제를 사용하여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출신의 수비수 제이드 노스를 영입하는 등 스쿼드를 강화했다. 시즌 전반기 14경기 6승 5무 3패의 성적을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단계 진출 가능성을 밝게 했던 인천은 그러나 8월 23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승리를 거둔 이후 6경기 연속 무승의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불안함을 노출하기 시작했다. 용병 공격수 챠디의 부진과 시즌 초 활약한 강수일의 침체, 시즌 중반에 영입한 세르비아 출신 용병 미드필더 오그넨 코로만의 부상 등이 부진의 원인으로 지적되던 가운데 인천은 시즌 마지막 4경기에서 3승 1패를 거두며 막판 승점 쌓기에 성공, 정규리그 순위 5위로 플레이오프 단계에 진출하는 데에 성공했다. 비록 6강 플레이오프에서 정규리그 4위팀 성남 일화 천마에 접전끝에 패하여 상위 단계에 진출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4년 만에 플레이오프 축구에 합류하는 성과를 거두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특히 리그 27경기에서 12골 4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왕 후보로 강력하게 거론되었었던 K리그 1년차 신인 유병수의 대활약은 2009 시즌 인천 축구에서의 빼놓을 수 없는 기록이다. 하지만 K리그에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FA컵에서 경희대학교에 일격을 당하며 32강에서 탈락하고 컵대회에서는 FC 서울에 져 8강에서 탈락하는 등 토너먼트 대회에서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2010 시즌

2010 시즌 초에 전남 드래곤즈광주 상무를 꺾고 2연승을 하였으나 이후 성남 일화 천마에게 0대 6 대패를 당한 경기를 포함하여 5연패를 당하였다. 주 득점원이었던 유병수 또한 침묵을 달렸다. 그러나 4월 18일, 감독 교체 이후에 똑같이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포항 스틸러스를 상대로 유병수가 네 골을 쏟아부으며 대승을 거두었다. 그 경기 이후로 인천 유나이티드는 무패 가도를 달렸으나 6월 8일 감독 일리야 페트코비치가 아내의 건강 악화의 이유로 돌연 사퇴하고 말았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서포터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페트코비치와 좋게 헤어졌지만 한 달 후 그가 알 알리의 감독으로 취임하자 그에 대한 비난을 숨기지 않았다. 페트코비치의 공백을 수석 코치였던 김봉길이 메꾸었으나 6강 챔피언십 순위까지 올라섰던 인천 유나이티드는 점점 순위권에서 멀어졌다. 페트코비치의 사임 약 세 달 후인 8월 22일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허정무가 지휘봉을 잡았다.[15] 허정무가 맡은 인천은 2010 시즌을 11위로 마감하였다.

연혁

2003

  • 2003년 6월 인천시민프로축구단 창단 발표(안상수 인천시장)
  • 2003년 8월 ㈜인천시민프로축구단 법인 설립
  • 2003년 9월 인천구단 초대 감독 베르너 로란트 감독 취임
  • 2003년 10월 "인천 유나이티드" 명칭 공모 최우수작 선정
  • 2003년 10월 인천시민프로축구단 1차 시민주 공모 실시
  • 2003년 12월 한국프로축구연맹 창단 승인

2004

2005

  • 2005년 삼성 하우젠 K-리그 준우승
  • 2005년 삼성 하우젠 K-리그 정규리그 통합 1위 (전기 2위, 후기 4위)

2006

2007

2008

2009

2010

시즌 결과

시즌 리그 순위 경기 승점 컵대회 FA컵 기타 감독
2004 K리그 12 24 6 8 10 20 29 26 8위 32강 로란트
2005 K리그 2 24 13 6 5 36 26 45 6위 16강 장외룡
2006 K리그 9 26 7 12 7 24 27 33 14위 4강 장외룡
2007 K리그 9 26 8 9 9 30 32 33 4강 4강 박이천
2008 K리그 7 26 9 9 8 29 30 36 A조6위 32강 장외룡
2009 K리그 6 28 11 10 7 31 29 43 8강 32강 페트코비치
2010 K리그 11 28 8 7 13 42 51 31 C조4위 8강 페트코비치
허정무

역대 기록

주요 경기 기록

주요 골 기록

역대 최다 홈 관중수

2009년 5월 4일 기준[17]

최다 경기 출장 선수

2011년 6월 14일 현재[18]

역대 인천 유나이티드 주장 선수

선수단

현재 선수단

2011년 7월 24일 기준 참고: FIFA 자격 규정에 따라 소속된 국가대표팀 국기를 표시합니다. 선수는 복수의 FIFA 비회원국 국적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번호 포지션 국적 이름
2 DF 김영빈
3 MF 장원석
5 MF 브라질 바이야
6 DF 배효성
7 MF 이재권
8 MF 정혁
9 FW 김명운
13 MF 이종현
14 MF 안재곤
15 FW 김재웅
16 DF 이윤표
17 MF 전재호
18 MF 우즈베키스탄 티무르 카파제
19 MF 김승호
20 DF 정인환
21 FW 유준수
22 MF 신동혁
23 FW 권혁진
25 GK 송유걸
26 DF 주현재
27 FW 한교원
28 DF 전준형
번호 포지션 국적 이름
29 MF 조범석
30 GK 윤진호
31 GK 백선규
32 DF 장경진
34 DF 안태은
33 DF 박태수
35 FW 정선비
36 MF 이호창
37 MF 박경순
40 MF 박호용
41 DF 조광훈
42 MF 주기호
43 DF 최재은
45 MF 지경득
46 DF 이원용
48 DF 임중용
50 MF 서영원
51 FW 박준태
77 GK 권정혁

영구 결번

12번: 시민구단으로 출범한 취지를 살려 축구팬과 서포터스에게 등번호 12번을 헌정하고 영구결번으로 결정했다.[21]

스탭 명단

운영진

코칭스태프

의무진

  • 의무트레이너: 권혁준, 이승재

유소년팀 코칭스태프

  • 유소년 총감독: 김시석
  • U-18 감독: 명진영
  • U-18 코치: 이승환
  • U-15 감독: 김정재
  • U-15 코치: 서기복
  • U-15 피지컬코치: 주니뉴
  • U-12 감독: 박승석
  • U-12 코치: 김선우
  • U-12 골키퍼 코치: 김태수

주요 선수

현재 주요 선수

과거 주요 선수

경기장

인천문학경기장

인천 유나이티드는 리그에 참가하기 시작한 2004년부터 현재까지 인천 월드컵 경기장(인천문학경기장)을 홈 경기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경기장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을 1-0으로 꺾고 16강 진출을 확정한 역사가 있는 경기장이다. 하지만 인천은 홈 경기장을 이전할 계획인데, 인천이 2014년 아시안 게임 유치를 했고, 현재 사용중인 문학 경기장 은 종합 경기장인 이유로 인해 인천광역시 남구 숭의동 옛 인천공설운동장터에 축구전용구장을 건설하는 중이며 2011년 9월을 완공을 목표로 현재 공사중이다.[22] 2011년 1월 13일 현재 공정률은 약 64%이고[23] 공사가 완료되면 K-리그 2012시즌부터는 인천이 이 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팬과 서포터즈

파일:IUFC fans 1.jpg
인천 유나이티드 팬들

인천은 연고지 인천광역시와 그 주변의 서울특별시, 경기도 등의 수도권 지역 거주자를 주로 근거로 한 팬층이 존재한다. 여러 그룹으로 분리돼 있던 인천의 서포터즈는 2009년을 기해 미추홀 보이즈' (MEET YOU HALL! BOYS!)라는 이름으로 통합이 되었으며, 이전부터 존재해오던 포세이돈과 ULTRAS HAWKT.N.T ' 등의 지지자 그룹들은 미추홀 보이즈 내의 소그룹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후원

유소년 정책

인천 유나이티드는 어린이 축구교실인 아이 유나이티드(I-United)와 U-12, U-15, U-18 유소년 팀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U-18팀인 대건고등학교2008년부터 인천과 제휴를 맺었으며 선수 선발 및 관리, 훈련, 대회참가 등 전반적인 운영은 인천 구단이 담당하게 되고 선수들의 학교 공부와 학사관리는 대건고에서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다.[24] 또한 인천은 인천광역시 관내 소재 중학교 학생들이 참가하는 축구대회인 미들스타리그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축구협회에 등록된 선수는 참가할 수 없으며 순수한 아마추어 대회로 인천 유나이티드가 주최하고 관내 사업자가 후원하는 대회이다. 각 학교에서 홈엔어웨이로 예선을 치르고 인천 문학경기장과 보조구장에서 본선을 치른다.

구단 경영

인천은 다양한 스폰서들의 지원과 선수 이적 시에 발생한 금액으로 2006년 5억여 원의 경영 흑자를 달성하여, 시민구단 최초의 흑자구단으로 기록되는 쾌거를 누렸다.[25]. 또한 이러한 흑자경영을 바탕으로 2009년엔 코스닥 상장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26]. 하지만 인천의 흑자경영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적지 않은데, 대기업이 경영하지 않는 시민구단의 한계로 인해 항상 자금이 불충분할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주요 핵심 선수들을 자금의 융통을 위해 타 구단으로 이적시키는 일이 비일비재 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선수가 최태욱(시미즈 에스펄스로 이적), 최효진(포항 스틸러스로 이적), 김치우(전남 드래곤즈로 이적) 등이다. 또한 광고, 상품판매, 입장수입 등의 수입원이 전체 수입의 3분의 1씩 균형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한데 여러 스폰서를 광고해주는 댓가로 받는 자금과 선수 이적료가 주 수입원을 이루는 것이 인천의 흑자 구조이다.[27] 그러나 대부분의 프로 스포츠팀들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인 한국 스포츠의 현실이고, 특히 인천은 3년 연속으로 흑자 경영을 이어가면서 시민구단이 리그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적지 않다는 평가다.[28]

기타

  • 인천 유나이티드의 단가는 가수 부활이 부른 노래 '새벽' 이다. 부활의 리더 겸 기타리스트 김태원이 작사, 작곡을 한 노래로써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특징적인 곡이다.
  • 인천 유나이티드의 상징색은 검정색파란색이며 홈 유니폼도 이 색을 채택한 세로 줄무늬 유니폼이다. 인천과 같은 상징색을 가지고 있는 구단으로는 이탈리아 세리에 A의 명문 구단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일본 J리그감바 오사카등이 있다. 특히 감바 오사카는 인천과 3번의 교류전을 가진 바 있는데 2004년 3월2005년 2월, 그리고 2008년 6월에 경기를 가졌었다. 2004년 경기에서는 인천이 4-0으로 승리했었으나 2005년에는 0-1로 패배했다.[29] 가장 최근에 있었던 2008년의 교류전에서는 1-1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 인천의 구단 캐치프레이즈는 My Pride My United이다. 인천 유나이티드에 자부심을 갖고 최고 구단으로 나아가자는 뜻을 담고 있으며, 2007년부터 사용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30]

주석

  1. “인천 유나이티드 연혁”. 2009년 5월 4일에 확인함. 
  2. “인천 프로축구단 감독, 독일 출신 베르너 로란트 선임”. 2009년 5월 4일에 확인함. 
  3. “[프로축구]인천구단 명칭공모 ‘인천 유나이티드’ 선정”. 2009년 5월 4일에 확인함. 
  4. “터키국가대표, 외잘란 인천 유나이티드 입단”. 2009년 5월 4일에 확인함. 
  5. “<프로축구소식> 인천유나이티드 로란트 감독 사임”. 2009년 5월 4일에 확인함. 
  6. “[울산 우승!] 준우승 인천, ‘아름다운 패자'. 2009년 5월 4일에 확인함. 
  7. “인천 Utd. '장외룡 체제' 본격 출범”. 2009년 5월 4일에 확인함. 
  8. “장외룡 감독 1표차 ‘최고’ 영예”. 2009년 5월 4일에 확인함. 
  9. “박주영, '만장일치' K리그 신인상”. 2009년 5월 4일에 확인함. 
  10. “[리뷰]K리그의 돌풍 인천Utd의 실화 '비상'. 2009년 5월 4일에 확인함. 
  11. “장외룡 감독, 26일 출국···영국으로 1년 축구 유학”. 2009년 5월 4일에 확인함. 
  12. “인천유나이티드‘거리 응원’펼쳐”. 2009년 5월 4일에 확인함. 
  13. “인천 김시석 코치, 1년간 셀틱서 유학”. 2009년 5월 4일에 확인함. 
  14. “페트코비치, 인천의 새 사령탑으로 나선다”. 2009년 5월 4일에 확인함. 
  15. “허정무 감독, 인천 사령탑 취임... 9월 4일 데뷔전”. 스포탈코리아. 
  16. “인천 U-15팀 광성중, 29일 창단”. 2009년 12월 28일에 확인함. 
  17. 인천 유나이티드 공식 매치데이 프로그램《The United》Volume06 Issue05 p.34 인용
  18. 초기 작성시 인천 유나이티드 공식 매치데이 프로그램《The United》Volume08 Issue09 p.25를 인용했음
  19. 이준영의 장기부상으로 인해 실질적인 주장 역할 수행함
  20. “인천, 2011시즌 주장에 배효성 선임”. 2011년 4월 5일에 확인함. 
  21. “인천Utd, 서포터스 번호 12번 영구결번”. 2009년 5월 7일에 확인함. 
  22. “인천 유나이티드 '숙원' 전용구장 건립, 7일 첫 삽”. 2009년 5월 4일에 확인함. 
  23. “인천 유나이티드 공식 홈페이지 응원마당 18907 숭의경기장 건설 현황 글 참조”. 2009년 10월 26일에 확인함. 
  24. “인천UTD 유소년팀 대건고 11일 창단”. 2009년 5월 29일에 확인함. 
  25. “인천, 창단 3년 만에 '5억여원 흑자'. 2009년 5월 4일에 확인함. 
  26. “인천프로축구단 올 코스닥 입성 추진”. 2009년 5월 4일에 확인함. 
  27. “인천 유나이티드, 흑자 맞아?”. 2009년 5월 7일에 확인함. 
  28. “프로축구 시민구단 작년 수익 ‘짭짤’…인천 3년연속 흑자”. 2009년 5월 7일에 확인함. 
  29. “프로축구 인천, 내달 6일 오사카와 친선경기”. 2009년 5월 29일에 확인함. 
  30. “인천 올 캐치프레이즈‘My Pride My United’”. 2009년 5월 4일에 확인함. 

같이 보기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