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흥 민씨
나라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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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 경기도 여주시 |
시조 | 민칭도(閔稱道) |
중시조 | 민영모(閔令謨) |
주요 인물 | 민식, 민종유, 민지, 민적, 민사평, 민변, 민제, 민개, 민여익, 원경왕후, 민무구, 민무질, 민무회, 민무휼, 민신, 민기, 민몽룡, 민광훈, 민점, 민희, 민정중, 민유중, 민주면, 민암, 민진주, 민진장, 민진원, 민진후, 인현왕후, 민응수, 민백상, 민종현, 민기현, 민치구, 민치상, 민치록, 민승호, 민규호, 민겸호, 민상호, 민영규, 명성황후, 민영소, 민영휘, 민영기, 민병석, 민영익, 민영환, 민복기 |
인구(2015년) | 167,124명 |
비고 | 여흥 민씨 대종회 |
여흥 민씨(驪興閔氏)는 경기도 여주시를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고려 인종조에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한 민영모(閔令謨)의 증조부 민칭도(閔稱道)를 시조로 한다.
기원
[편집]시조 민칭도(閔稱道의 증손자인 민영모(閔令謨)가 1138년(고려 인종 16) 문과에 급제하여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판이부사(判吏部事)·태자태사(太子太師)를 역임하였다. 시조 이전에도 후백제 견훤의 신하인 일길찬(一吉粲) 민합(閔郃),[1] 918년(고려 태조 원년) 내군장군(內軍將軍)에 임명된 민강(閔剛), 1031년(덕종 즉위년) 공부상서(工部尙書)에 임명된 민가거(閔可擧),[2] 문종 때의 민창수(閔昌壽), 민창소(閔昌素) 등이 기록되어 있지만 시조 이전의 계보는 알 수 없다. 민영모가 현달하자 그의 증조부인 민칭도(閔稱道)를 시조로 추대하여 족보가 만들어졌다.[3] 여흥(驪興)의 고려시대 지명인 황려 민씨(黃驪閔氏)라고도 불렸다. 민가거의 증손자인 민수(閔脩)와 민영(閔瑛)의 묘지명에 관향(貫郷)이 황려(黄驪)라고 기록되어 있고, 민가거-민창경(閔昌京)-민효후(閔孝侯)-민수·민영의 계보가 밝혀지면서 민칭도 이전에도 여흥 민씨가 있었다는 것이 고증되었다.
백운거사 이규보가 민식(閔湜)에게 올린 시 속의 "세가전벌열(世家傳閥閱) 계출(系出) 비후현(費候賢)"이라는 문장에 근거하여 노(魯)나라의 공자의 제자인 민손(閔損, 기원전 536년 ~ BC 487년 = 민자건(閔子騫))의 후예라는 설이 있다.[4] 또는 경기도 여주 향리에 있는 영월루 민굴(閔窟)에서 나온 것이 시초라는 설도 있다.
역사
[편집]시조 민칭도(閔稱道)는 고려 상의봉어(尙衣奉御)를 지냈다. 2세 민세형(閔世衡), 3세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 민의(閔懿)로 이어오다가 4세손 민영모(閔令謨)가 1138년(고려 인종 16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판이부사(判吏部事)·태자태사(太子太師)에 올랐다.[5] 민영모의 장남 민식(閔湜)이 1167년(의종 21) 과거에 급제하여 형부상서에 이르렀고, 차남 민공규(閔公珪)는 1177년(명종 7) 문과에 급제하여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를 지냈다.[6] 민영모 이후 고위 관료를 지속적으로 배출하면서 고려사 충선왕조에 왕실과 혼인이 가능한 재상지종 가문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민식(閔湜)의 증손 민지(閔漬)가 1266년(원종 7)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1325년(충숙왕 12)에 첨의정승(僉議政丞)에 이르렀고, 1326년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에 봉해졌다.[7]
민공규(閔公珪)의 증손인 민종유(閔宗儒)는 1309년(충선왕 1) 찬성사(贊成事)로 치사하고, 1319년(충숙왕 6) 복흥군(福興君)에 봉해졌다.[8] 민종유의 아들 민적(閔頔)은 충혜왕 때 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에 올랐다. 민적(閔頔)의 후손은 4명의 왕비를 배출하며 조선 왕실의 외척으로서 명문의 위상을 유지했다. 민적(閔頔)의 셋째 아들 민변(閔抃)이 여흥군(驪興君)에 봉해지고, 민변의 아들 민제(閔霽)의 딸이 태종의 왕비 원경왕후(元敬王后)가 되었다. 태종의 왕권강화책으로 외척인 민제의 네 아들이 제거되면서 가문의 위세가 위축되었으나 세종 이후 복권되어 민적의 둘째 아들인 민유(閔愉)의 후손 중에서 왕비를 다수 배출했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42명, 왕비 4명(황후 2명), 상신(相臣) 12명, 종묘배향공신 6명을 배출하였다. 과거 급제자 수는 민식-민지 계열이 민공규-민종유 계열보다 다수를 배출하였으나, 3품 이상의 당상관 배출은 민공규-민종유 계열이 월등히 우세하였는데 이는 조선조 배출된 4명의 민씨 왕비 모두 민공규-민종유 후손이었기에 과거보다는 왕비 배출로 인한 인척 등용이 더 크게 작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민적(閔頔)의 12세손인 민광훈(閔光勳)을 파조로 하는 삼방파(三房派)에서 민광훈의 셋째 아들인 민유중(閔維重)의 딸이 숙종의 왕비 인현왕후(仁顯王后)가 되면서 민유중은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에 봉군되었고, 민유중의 형인 민정중(閔鼎重)이 좌의정에 올랐으며, 민정중의 아들 민진장(閔鎭長)은 우의정에 올랐다. 인현왕후의 오빠인 민진후(閔鎭厚)는 좌참찬(左參贊)에 올랐고, 민진후의 동생인 민진원(閔鎭遠)은 영조 때 노론의 영수로서 좌의정에 이르렀다. 민진후의 현손인 민치록(閔致祿)의 딸이 고종의 비인 명성황후(明成皇后)가 되면서 여흥 민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여은부원군(驪恩府院君) 민태호(閔台鎬)의 딸은 순종의 비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가 되었다.
정재계 저명인
[편집]고려 | 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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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 대한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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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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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편집]고구려의 골내근현(骨內斤縣)이었다. 신라 경덕왕이 황효현(黃驍縣)이라 고쳤다. 고려 초에 황려현(黃驪縣)으로 개칭하고, 1257년(고종 44) 영의현(永義縣)으로 개칭하였으며, 1305년(충렬왕 31)에 여흥군(驪興郡)으로 승격하였다. 조선 태종 때 원경왕후(元敬王后)의 친향이라 여흥부(驪興府)로 승격되었다. 1469년(예종 1)에 여주목(驪州牧)으로 개칭하고, 1896년 경기도 여주군이 되었다. 2013년에 여주시로 승격되었다.
항렬자
[편집]- 대동항렬 (시조로 1세)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46세 | 47세 | 48세 | 49세 | 50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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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百) | 口혁(爀) 口현(顯) |
치(致) | 口용(鏞) 口호(鎬) |
영(泳) | 口식(植) | 병(丙) | 口기(基) 口규(圭) 口배(培) |
경(庚) | 口홍(泓) 口원(源) |
동(東) | 口희(熙) | 형(馨) 재(在) |
口석(錫) | 준(準) | 口권(權) | 용(容) | 口범(範) | 선(善) | 口순(淳) | 상(相) | 口영(榮) | 원(遠) | 口종(鍾) | 태(泰) | 口주(柱) | 양(陽) |
공목공파
[편집]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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口세(世) | 종(種) | 口훈(勳) | 재(載) | 口현(鉉) | 태(泰) | 口근(根) 口동(東) |
경(慶) 병(炳) 형(炯) |
口준(準) | 사(思) | 口구(九) | 회(會) | 口은(殷) | 성(成) | 口범(範) | 강(康) | 口재(宰) |
역암공파
[편집]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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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昌) | 口상(祥) | 경(景) | 口행(行) | 응(應) | 口진(鎭) | 승(承) 시(始) |
口영(榮) | 광(光) | 사(思) | 口구(九) | 회(會) | 口은(殷) | 성(成) | 口범(範) | 강(康) | 口재(宰) |
돈녕군파
[편집]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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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金) | 口건(騫) | 광(光) | 중(重) | 口현(鉉) | 水변(외자) | 口근(根) | 口섭(燮) | 재(在) | 종(鍾) | 口영(永) | 口래(來) | 형(炯) | 성(成) | 口범(範) | 강(康) | 口재(宰) |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
[편집]- 태종비 원경왕후
- 연산군 후궁 숙의 민씨
- 선조 후궁 정빈 민씨(성종 서녀 경숙옹주의 증손녀이기도 하다.)
- 숙종비 인현왕후
- 고종비 명성황후
- 순종비 순명효황후
- 회안대군(태조의 사남) 부인 삼한국대부인 민씨
- 정석군(정종의 서자) 사위 민계정
- 밀성군(세종의 서자) 부인 풍덕군부인 민씨
- 남연군(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부인
- 흥선대원군(고종의 생부) 부인 여흥부대부인
- 서평군(인조 아들 인평대군의 양자) 부인
- 고성옹주(정종의 서녀) 사위 민혜
- 경숙옹주(성종의 서녀) 부마 민자방
인구
[편집]- 1985년 32,858가구 137,317명
- 2000년 43,887가구 142,572명
- 2015년 려흥 민씨 2,199명 + 여흥 민씨 159,522명 + 여주 민씨 5,388명 + 려주 민씨 15명 = 167,124명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외부 링크
[편집]군주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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