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성씨)
설(薛, 偰)씨는 한국의 성씨 및 중국의 성씨다.
설 薛
[편집]한국 설(薛)씨의 기원은 신라 건국 설화의 고야촌(明活山 高耶村) 촌장 호진(虎珍)이다. 신라 유리 이사금 9년(32년)에 6촌이 6부로 개칭하고, 명활산 고야촌을 습비부로 고칠 때 성을 설(薛)씨로 하였다.[1]
역사상 유명했던 설씨는 신라 진평왕, 신문왕 대의 고승인 원효대사(元曉大師)이다. 설총은 원효와 태종무열왕의 딸 요석공주(瑤石公主) 사이에서 태어나 국학(國學)을 크게 진흥시키고 이두(吏讀)를 집대성하였다.
설(薛)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 조사에서 42,646명으로 조사되었다. 본관은 경주, 순창 등 10본이 있다.
경주 설씨
[편집]경주 설씨의 시조는 신라의 촌장 설거백(薛居伯)이다. 시조 薛居伯(설거백)으로부터 元曉(원효)-설총(聡)으로 선대를 이어 후손 29세 설경(京)의 큰 아들 설시경(時景)으로 본관의 세계를 이어간다.
중시조는 조선조정의 공식문서 증보문헌비고 등에 홍유후 설총으로 기록되고 있다.
순창 설씨
[편집]순창 설씨(淳昌 薛氏)는 신라 명활산 고야촌 촌장 설거백(薛居伯)의 31세손 인손(仁孫)이 순창설씨의 중시조로 조선씨족통보, 만성대보, 성씨총람 등에 전하고 있으나 일부에서는
고려 인종 무렵 경주 설씨에서 나누어졌으며 36세손 설자승(薛子升)을 중시조라 하기도 한다. 현재 한국의 설씨 중 가장 인구가 많은 성본이다.[2]
개성 설씨
[편집]개성 설씨의 시조는 설귀창(薛貴昌)이다. 경주 설씨의 파조이다.
맑을 설 偰
[편집]중국 설(偰, 병음 Hsueh)씨는 중국 성씨 순위 76위로 3가지 계통이 있다.
설(偰)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2,937명으로 조사되었다. 본관은 경주(慶州) 단본이다.
위구르[回鶻] 사람이 설련하(偰輦河)에서 살았기 때문에 설(偰)로 성씨를 삼았다.
원나라 태부 설극직(偰克直)의 6세손 설문질(偰文質)이 원나라에서 참지정사를 지냈고, 설문질의 손자 설손(偰遜, ? ~ 1360년)은 순제(順帝) 때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해 한림응봉문자(翰林應奉文字)·선정원단사관(宣政院斷事官)을 지내고 홍건적이 대령을 침범하자 1358년(공민왕 7)에 병란을 피하여 고려로 왔다. 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 황태자를 단본당(端本堂)에서 시종하면서 설손과 구면이 있었으므로 그를 크게 후대했다. 집을 하사하고 고창백(高昌伯)으로 봉하였다가 부원후(富原侯)로 다시 봉하고 부원(富原)에 농토를 하사하였다.[3]
설손의 맏아들 설장수(偰長壽)는 서역인(西域人) 출신이기 때문에 왕의 특명으로 1362년 문과에 급제해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와 밀직제학(密直提學)을 역임하고, 완성군(完城君)에 봉해졌으며 추성보리공신(推誠輔理功臣)에 녹권되었다. 1387년(우왕 13)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1389년(창왕 즉위년)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우왕(禑王) 손위(遜位)의 표문(表文)을 가지고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공양왕을 세울 때 모의에 참여, 공이 있었으므로 1390년(공양왕 2) 충의군(忠義君)에 봉해졌고,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로 승진하였다. 이듬해 정난공신(定難功臣)의 호를 받았고, 1392년 판삼사사(判三司事)로서 지공거(知貢擧)를 겸하였다. 이 해 정몽주(鄭夢周)가 살해될 때 일당으로 지목되어 해도(海島)에 유배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뒤 태조(太祖)의 특명으로 1396년(태조 5) 검교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에 복직되고, 계림(鷄林)을 본관으로 받고 연산부원군(燕山府院君)에 봉해졌다.[4] 시호는 문량(文良)이다.
설손의 넷째 아들 설경수(偰慶壽) 1376년(우왕 2) 문과에 급제하였고,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의 글씨를 썼다. 설경수의 아들 설순(偰循)은 1427년 문과에 급제하여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설손의 다섯째 아들 설미수(偰眉壽)는 1407년 참지의정부사로 재직 중 둔전제(屯田制)의 실시를 건의하여 실행하게 하였고, 호조와 공조의 판서를 거쳐, 1410년 예조판서, 이듬해 검교판한성부사(檢校判漢城府事)를 지냈으며, 1414년 다시 예조판서를 거쳐 검교우참찬(檢校右參贊)에 이르렀다. 시호는 공후(恭厚)이다.
설(薛)씨는 한자를 卨(사람이름 설) 또는 楔(문설주 설)을 쓰기도 하는데, 동일 성씨이며 한자만 다르다. 본래는 맑을 설(薛)이었는데 卨 또는 楔 자를 혼용한 경우라고 한다. 특히 偰 자가 한글 완성형코드에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楔 자를 대신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다른 위구르족 성본으로는 덕수 장씨, 임천 이씨가 있다.
중국
[편집]중국 설 (薛)씨는 규성으로 제나라에서 나온 성씨가 있다. 다른 설씨로는 송나라에서도 계출된 성씨도 있다. 또한 550년 북위 효문제가 고, 원, 설씨로 고쳤다. 그리고 설연타 부족이 부족 이름을 따서 설씨가 되었다. 설인귀가 유명한 설씨 가운데 하나이다.
각주
[편집]- ↑ 《삼국사기》(신라본기 제1권, 유리 이사금 條) 九年 春 改六部之名 仍賜姓 楊山部爲梁部 姓李 高墟部爲沙梁部 姓崔 大樹部爲漸梁部 一云牟梁 姓孫 干 珍部爲本彼部 姓鄭 加利部爲漢祇 部 姓裴 明活部爲習比部 姓薛
- ↑ 참고 문헌:계림설씨등관록,궁원록 등
- ↑ 『고려사』 권112, 열전25
- ↑ 『고려사』 권112, 열전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