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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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華僑)
海外华人
인구 5천만 ~명[1]
거점 태국 타이: 9,392,792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6,960,900
미국 미국: 3,794,673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2,832,510
싱가포르 싱가포르: 2,547,300
미얀마 미얀마: 1,637,540
캐나다 캐나다: 1,487,580
필리핀 필리핀: 1,350,000
페루 페루: 1,300,000
베트남 베트남:970,927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 866,200
캄보디아 캄보디아: 782,600
프랑스 프랑스: 700,000
일본 일본: 674,871
영국 영국: 466,000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400,000
남아프리카 공화국 남아프리카공화국: 350,000
이탈리아 이탈리아: 320,794
앙골라 앙골라: 259,000
러시아 러시아: 200,000
라오스 라오스: 190,000
뉴질랜드 뉴질랜드: 180,066
아랍에미리트 아랍에미리트: 180,000
콜롬비아 콜롬비아: 160,000
브라질 브라질: 151,000 외
언어 중국어
종교 주로 불교, 도교, 유교, 기독교, 소수의 이슬람교
관련민족 중국인

화교(華僑, 영어: Overseas Chinese)는 중국에서 태어나서 다른 나라에 정착하여 그 나라에 활동하는 사람을 말한다. 한국, 동남아시아, 미국, 일본,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러시아 등에 거주하고 있으며, 그 수는 약 4천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로 광동, 복건계가 많지만, 최근에는 상하이베이징계 화교도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출신지와 거주 지역의 언어를 사용하며, 최근에는 표준 중국어영어도 널리 쓰이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화교들은 주로 광동, 복건 등의 화남 지방 출신이 많으며, 소수민족이면서도 자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등 현지의 정치, 경제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화교 중에서는 다른 국가에 오래 머물러 혼혈이 많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서구의 화교[편집]

서구의 화교들은 미국, 오스트레일리아등에서 육체 노동자로 근무하면서 뿌리를 내렸는데, 미국 건설노동자, 설탕제조에 필요한 사탕수수 추수 노동자 등으로 근무했다. 유한양행 설립자인 유일한의 부인 호미리도 미국에서 나고 자란 미국계 화교이다.

한국의 화교[편집]

한국에 화교 사회가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이며 조선이 개항하면서 인천 등에서 노동자로 근무했다. 20세기 초반부터 요식업에 종사하는 화교가 늘어났다. 대부분 중국 대륙에서 건너 왔지만, 도중에 성립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인해, 국적은 종전의 중화민국으로 되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화교가 경제적인 실권을 쥐는 것을 지속적으로 견제해 왔는데 1961년 외국인토지소유금지법으로 화교들의 부동산 소유를 제한했고 1963년 화폐개혁 등으로 돈을 끌어냈다. 우리나라의 화교의 기원은 1882년 임오군란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다. 그 당시 중국인 오장경(吳長慶)이 임오군란을 수습하기 위해 청국 군사 4000명을 데리고 우리나라에 들어왔는데 이들의 군수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따라 들어온 청나라 상인들로부터 화교의 정착이 시작되었다. [2] 이어 1884년 인천 제물포항 주변에 청국조계지가 설정되면서 본격적으로 화교가 들어와 전국적으로 확산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3] 그러나 화교 사회는 우리 정부의 각종 제도적 제한과 차별 대우 아래 위축되어 갔다. [4][5] 그 이후 1998년 외국인에게 호의적인 정책이 시행되면서 2001년도에는 22,917명으로 점차 안정적이 되었다. [6] 현재(2013년)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화교는 약2만이다.

동남아시아의 화교[편집]

동남아시아의 화교는 다른 지역과 달리 수백년전부터 이민을 오고 그들만의 정체성을 지켜온 경우가 많다. 동남아시아 몇몇 국가의 경제 주도권을 잡고 있다.

화교의 연대별 구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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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한 개념은 공간적 구분으로 연대별로 구분이 필요하다고 본다. 진·한(秦·漢) 시기에는 육로 ‘비단길’로 통해 중국에서 서역까지 교류되고, 해로 일본까지도 교류되었다. 이 시기부터 화교 현상이 나타났다. 당(唐) 시대에 들어가서 많은 중국사람이 해외로 나가 정주했다. 화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 당(唐) - 송(宋) (618년 - 1270년)

한반도 경우를 보자면 송나라 해상 무역 상인들은 송나라의 건국 초기인 10세기 중기부터 고려사회를 드나들기 시작하여, 무역물품의 교역이라는 경제적인 영역 이외, 정치·사회·문화적 교섭 등의 영역에서도 중요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편 그들 가운데 일부는 고려의 관리로 임명되는 등 고려 국내 정치에도 참여하였다.[7]

  • 원(元) - 청(清) 중엽 (1271년 - 1840년)
  • 아편전쟁(鴉片戰爭) - 해방 직전 (1841년 - 1949년)

한반도로 보면 20세기 전반 지역적으로 원산에 주목함으로써 조선화교사의 연구범위를 확장하였다. 그러나 1931년 배화폭동(排華暴動) 이후 원산화교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화교직물도매상이 거의 몰락하고 남은 직물잡화상의 규모 역시 크게 축소되었다. 또한 화교농민이 늘어나 1934년 말에는 화교상인과 비슷한 규모가 되었다.[8]

  • 건국 이후 - 현대 (1949년 - )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2012년 조사. (영어) [1], Reforms urged to attract overseas Chinese, 2013
  2. http://www.d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5107
  3. http://news.donga.com/3/03/20141208/68426101/1
  4. http://www.ichinatown.or.kr/introduction/overseas_chinese/drift.asp
  5.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729365
  6. http://news.mk.co.kr/newsRead.php?no=990922&year=2014
  7. 최영호, 2010, 고려시대 송나라 해상 무역 상인의 활동 시기와 양상, 인간과 문화 연구, 231-260(30쪽)
  8. 이은상, 2016, 중일전쟁(中日戰爭) 이전 시기(1912~1936) 조선의 원산화교(元山華僑), 人文科學, 103-147(45쪽)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