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두막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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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막루, 한국의 옛 나라[편집]

두막루는 북부여의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건국한 한국의 옛 나라가 맞습니다. 당나라 초기에 나라가 망한 뒤 일부는 거란흑수말갈에 점령되었다가 나중에 거란과 여진족으로 흡수되었으나 나머지는 발해에 흡수되었으므로, 만주 지역에 존재했던 한국의 옛 나라 중 하나로 보아야 합니다. 국회 전자도서관이나 다른 문서를 찾아보면 '두막루'에 대해서 한국사의 일부로 서술하는 학계의 정식 논문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의 분류에 한국의 옛 나라를 추가하였습니다. Silver Bullet 님이 분류에 있었던 한국의 옛 나라를 삭제했는데, 삭제한 정당한 이유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지금처럼 한국의 옛 나라 분류에 소속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사달 (토론) 2012년 5월 4일 (금) 10:48 (KST)

제 사용자 토론에 답변 남겼습니다. 그리고 국회전자도서관이나 다른 문서를 찾아보면 학계의 정식 논문이 있다 이런 거에 대해선 단순히 말씀만 하실 게 아니라 그 정보를 직접 제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또한 이런 것은 자국 역사 학계의 관점에서만 판단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국제적인 연구 자료가 필요해 보입니다. 국제적인 연구 자료 또한 제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두막루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이 되었다면 중국어나 러시아어로 된 연구 자료도 많이 있을텐데, 인터넷 검색 상에선 한국어로 된 이미지나 글 투성이더군요. 등재되어야 할 정당한 이유를 제시해야 할 분은 Cnsuh님입니다. --Şiļvèŗ ßúӀӀěţ (토론) 2012년 5월 4일 (금) 11:38 (KST)
S.Bullet. 님의 요청을 받아서 국회 전자도서관 등 학계의 각종 논문과 출처를 찾아서 자세히 기록하였습니다. 아사달 (토론) 2012년 5월 5일 (토) 16:36 (KST)

부여가 세운 나라이다?[편집]

정말 부여가 세웠다는 증거 자료(유적 유물?)가 있긴 있는지 궁금합니다.--18호 (토론) 2012년 5월 5일 (토) 09:04 (KST)

탐라 같은 경우엔 최근에 흔적이 조금씩 발견되고 있지만, 두막루 같은 경우엔 그런 것이 전혀 없습니다. 또한 두막루가 지금의 러시아 하바롭스크 쪽에 있었다는데,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면 러시아어나 중국어로 된 논문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것이 없고 지금 문서에 있는 내용들만 계속 인터넷에서 떠돈다는 건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런 해석을 누가 했는가에 대한 출처도 전혀 없습니다. --Şiļvèŗ ßúӀӀěţ (토론) 2012년 5월 5일 (토) 09:11 (KST)
제주도에서 증거 자료가 계속해서 추가 발굴 되고 있다는 뉴스를 조금씩 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막루에 관한 발굴 같은 것은 소식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모든 자료가 추측성 뿐이니..--18호 (토론) 2012년 5월 5일 (토) 09:18 (KST)

두막루의 문서를 보면 가장 오래된 것으로 1735년 ~ 1796년에 만주원류고 만 증거 하고 있을 뿐..--18호 (토론) 2012년 5월 5일 (토) 09:20 (KST)

그렇지 않습니다. 두막루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 것은 중국 측 사서인 《위서》(魏書) 물길전, 《책부원귀》(冊府元龜) 외신부 조공조, 《신당서》(新唐書) 유귀전 등에 나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원문 내용까지 전부 주석에 달아놓았습니다.
  • 486년 : 두막루가 북위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을 바쳤다. -《위서》(魏書) 물길전
  • 567년 : 3년 10월에 돌궐, 대막루(→두막루), 실위, 백제말갈 등의 나라들이 각기 사신을 보내어 조공했다. -《책부원귀》(冊府元龜) 외신부 조공조
  • 569년 : 5년 2월에 대막루국이 사신을 보내어 조공했다. -《책부원귀》(冊府元龜) 외신부 조공조
  • 723년 : 당나라 현종 개원 11년에 달말루(→두막루)의 구 2군(郡) 수령이 조공했다. -《신당서》(新唐書) 유귀전
  • 724년 : 당나라 현종 개원 12년에 달말루의 대수령 낙개제(諾皆諸)가 와서 조공했다. -《책부원귀》(冊府元龜) 외신부 조공조

아사달 (토론) 2012년 5월 5일 (토) 16:36 (KST)

《신당서》(新唐書)의 내용입니다.

개원(開元) 11년(→서기 723년)에 달말루(→두막루) 구 2군(郡) 수령이 조공했다. 달말루는 스스로를 북부여의 후예라고 말한다. 고려(→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那河)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북부여의 후예가 맞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내용이 아니라 역사학계 논문에 실린 내용입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은 전혀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냥 역사학계의 논문을 정리해서 올린 것뿐입니다. 아사달 (토론) 2012년 5월 5일 (토) 16:39 (KST)

불과 며칠 전에 18호님은 북부여의 후예가 맞다고 본인도 인정해 놓고서, 왜 지금 다시 부여의 후예가 아니라고 주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음은 제 토론 항목에 있었던 글입니다.
  • 舊北扶餘也。 부분의 의 뜻[1]어떤 명사(名詞)의 어간(語幹)에 붙어서 '옛날의' '묵은' '낡은' 따위의 뜻을 나타내는 말 라고 되어 있네요. Cnsuh님 결론은 옛(舊)북부여(北扶餘)이다(也) 일까요?--18호 (토론) 2012년 4월 17일 (화) 12:19 (KST)
  • 구북부여야(舊北扶餘也) = 옛 북부여이다. 당연히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혹시 다른 해석도 가능한가요? 아사달 (토론) 2012년 4월 18일 (수) 02:14 (KST)
  • 완료 다른 해석으로는 불가능할듯하네요--18호 (토론) 2012년 4월 18일 (수) 12:15 (KST)

이렇게 쓰신 분이 18호 님 본인 맞으신가요? "구 북부여" = 옛 북부여이다. "다른 해석으로는 불가능할 듯 하네요." 이렇게 18호 님이 직접 쓴 기록이 남아 있는데, 전혀 다른 말을 하니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혹시 18호 님 아이디로 다른 사람이 로그인한 건가요? 게다가 위서의 원문도 본인이 올린 것으로 아는데, 왜 엉뚱하게도 만주원류고 이야기를 꺼내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사달 (토론) 2012년 5월 5일 (토) 17:05 (KST)

본인이 맞지만 Cnsuh님의 토론에서 Cnsuh님 의견에 두막루에 대해 동의 한다는 뜻은 아니며 분류와 한자해석에 대한 궁금증일 뿐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18호 (토론) 2012년 5월 6일 (일) 11:05 (KST)

개인적 의견, 아니면 역사학계의 학설?[편집]

두막루에 대해서 쓴 글은 제 개인적 의견이 아니라 역사학계의 논문을 정리하여 올린 것에 불과합니다. 두막루에 대한 제 글에 대해서 자꾸 되돌리기를 하는데요, 아마도 제가 개인적으로 추측, 창작(?)한 글이라고 오해한 듯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명백한 오해입니다. 모두 제가 출처로 밝혔던 역사학계의 논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논문이라서 인터넷으로 보기가 쉽지는 않은데, 다음과 같이 해 보세요.
  • 우선, 국회 전자도서관 사이트에 접속해 주세요. http://dl.nanet.go.kr/
  • 좀 번거롭더라도 회원가입을 해 주세요.
  • 검색창에서 자료구분 항목에 "전체"를 체크하고, 검색어 "두막루"를 입력해 주세요.
  • 검색 결과가 몇 편 나올 겁니다. 유료 회원만 볼 수 있는 논문도 있지만, 무료 회원도 볼 수 있는 논문이 있으니 참조해 주세요.

아사달 (토론) 2012년 5월 5일 (토) 16:47 (KST)

출처는 역사학계의 논문과 중국측 사서[편집]

두막루에 대한 짧은 글에 다음과 같이 많은 출처를 자세히 달아놓았습니다. 심지어 페이지 수까지 달아놓았습니다. 왜 출처가 없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 1.↑ 유태용, 〈두막루국 흥망사 연구 시론〉, 《백산학보》 제70호, 2004년 12월, 146쪽.
  • 2.↑ 김정배, 〈두막루국 연구: 부여사의 연결과 관련하여〉, 《국사관논총》 제29집, 1991년 12월.
  • 3.↑ 《위서》(魏書) 두막루조의 원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豆莫婁國,在勿吉國北千里,去洛六千里,舊北扶餘也。在失韋之東,東至於海,方二千里。其人土著,有宮室倉庫。多山陵廣澤,於東夷之域最爲平敞。地宜五穀,不生五果。其人長大,性強勇,謹厚,不寇抄。其君長皆以六畜名官,邑落有豪帥。飲食亦用俎豆。有麻布衣,制類高麗而幅大,其國大人,以金銀飾之。用刑嚴急,殺人者死,沒其家人爲奴婢。俗淫,尤惡妒婦,妒者殺之,屍其國南山上至腐。女家欲得,輸牛馬乃與之。或言本穢貊之地也。http://zh.wikisource.org/zh-hant/%E9%AD%8F%E6%9B%B8/%E5%8D%B7100#.E8.B1.86.E8.8E.AB.E5.A9.81
  • 4.↑ 장진근 역주, 《만주원류고》, 파워북, 2008년, 81쪽.
  • 5.↑ 溤家昇, 〈豆莫婁國考〉, 《禹貢》半月刊 7卷 1,2,3 合刊, 1937.
  • 6.↑ 張博泉, 〈魏書豆莫婁傳中的幾個問題〉, 《黑龍江文物叢刊》 第2期, 1982.
  • 7.↑ 孫進己 저, 임동석 역, 《동북민족원류》, 1992.
  • 8.↑ 干志耿, 〈古代槀離硏究〉, 《民族硏究》 第2期, 1984.
  • 9.↑ 유태용, 〈두막루국 흥망사 연구 시론〉, 《백산학보》 제70호, 2004년 12월, 147쪽.
  • 10.↑ 유태용, 〈논형(論衡) 길험간에 보이는 고리국의 연구〉, 《백산학보》 제57호, 2000년.
  • 11.↑ 유태용, 〈두막루국 흥망사 연구 시론〉, 《백산학보》 제70호, 2004년 12월, 151~152쪽.
  • 12.↑ 傳朗云, 楊楊, 《東北民族史略》, 吉林人民出版社, 1933.
  • 13.↑ 유태용, 〈두막루국 흥망사 연구 시론〉, 《백산학보》 제70호, 2004년 12월, 153쪽.
  • 14.↑ 유태용, 〈두막루국 흥망사 연구 시론〉, 《백산학보》 제70호, 2004년 12월, 156쪽.

아사달 (토론) 2012년 5월 5일 (토) 16:51 (KST)

지금 초점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시는 듯 한데, 두막루의 존재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어째서 두막루가 한국사 범주에 들어가는 것인가 그걸 묻고 있는 것입니다. 두막루의 존재에 대해서 부정한다고 표명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어째서 초점이 두막루의 존재 여부로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Cnsuh님이 학설을 마치 국제적으로 증명된 사실인양 묘사하시는데, 그렇게 주장하는 학설들도 두막루가 한국사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을 전혀 증명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부여의 후손이라는 서술도 단순한 학설에 불과한 거 아닙니까? 몇몇 학자들의 학설을 올려놓으셨는데, 그게 한국 학계에서도 인정이 되는 학설입니까? 한국 학계 안에서 인정 받았다는 근거도 없고, 해외 학계에서도 인정 받았다는 근거는 더더욱 없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관련 논문까지 냈다는데, 그게 학계에서 총의를 통해서 인정이 되었다면 교과서에도 실려야 정상이 아닙니까? 문화가 고구려, 부여와 비슷하다 해서 그게 과연 한국사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까? 왜 한국사 범주에 들어가는지 제대로 된 근거를 제시하시길 바랍니다. 애초에 흔적 조차 제대로 발견되지 않았는데, 한국사 범주에 넣는 것 자체가 큰 오류입니다. 중국하나라 역시 두막루처럼 기록상으로만 신화인양 전해지다가 얼마 전에서야 막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흔적도 발견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떻게 두막루가 어떤 나라인지 확정 짓고, 한국사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인지 전혀 납득이 안됩니다. --Şiļvèŗ ßúӀӀěţ (토론) 2012년 5월 5일 (토) 16:56 (KST)

토론의 초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두막루가 부여를 계승한 나라이냐, 아니면 만주 지역에 있었던 거란, 말갈, 몽골 등 다른 민족이 세운 나라이냐가 중요합니다. 역사학계의 의견은 두막루가 부여를 계승한 나라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두막루가 부여를 계승한 나라라는 사실은 다음 역사학계의 논문에 나오는 내용이지, 제가 창작한 내용이 아닙니다.

  • 1.↑ 유태용, 〈두막루국 흥망사 연구 시론〉, 《백산학보》 제70호, 2004년 12월, 146쪽.
  • 2.↑ 김정배, 〈두막루국 연구: 부여사의 연결과 관련하여〉, 《국사관논총》 제29집, 1991년 12월.
두막루의 건국 주체는 부여의 유민으로서 예맥족이다. 예맥족은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등을 구성한 민족으로서 현대 한민족의 근간이 되는 민족이다. 역사학계에서는 두막루를 만주 지역에 존재한 한국의 옛 나라 중 하나로서 부여를 계승한 나라로 파악하고 있다.
두막루의 문화는 부여의 문화와 동일했다.
중국 《신당서》(新唐書)의 유귀전(流鬼傳)에 다음 기록이 있다.

개원(開元) 11년(→서기 723년)에 달말루(→두막루) 구 2군(郡) 수령이 조공했다. 달말루는 스스로를 북부여의 후예라고 말한다. 고려(→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那河)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혹은 타루하(他漏河)라고도 하는데, 동북쪽으로 흘러 흑수(黑水, 흑룡강)로 들어간다.

스스로 북부여의 후예라고 했다고 되어 있고, 풍속은 부여와 동일하고, 중국 측 각종 기록에 부여의 후계라고 나와 있고, 당시 국제정세를 볼 때도 설명이 잘 들어맞습니다. 혹시 님은 부여가 한국사가 아니라고 보시는지요? 그렇다면 부여를 계승한 두막루도 한국사가 아니라고 봐야겠죠. 하지만 부여를 한국사라고 본다면, 부여를 계승한 두막루를 한국사로 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제가 창작한 의견이 아니라, 역사학계의 각종 논문에도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아사달 (토론) 2012년 5월 5일 (토) 17:16 (KST)

현재 위키백과의 부여 글을 읽어보니, 거기에도 두막루가 부여의 유민들이 세운 나라라고 적혀 있네요. 누가 쓴 글인지 모르겠지만, "북부여의 유민들이 외세에 유린되는 부여를 탈출해 두막루를 세웠으나 오래 존속되지는 못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내용이 있군요. 아사달 (토론) 2012년 5월 5일 (토) 17:20 (KST)

윗 글은 위키백과의 부여 항목에도 두막루에 대한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뿐이지, 제가 이 위키백과의 글을 순환 참조하여 제 글을 작성한 것은 아닙니다. 제 글은 절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글이나 위키백과에 누가 썼는지도 모르는 글을 참고로 하지 않습니다. 제 글은 100% 역사학계의 논문이나 중국 측 (혹은 한국 측) 사서의 내용을 근거로, 정확한 출처까지 밝히면서 작성하였습니다. 아사달 (토론) 2012년 5월 5일 (토) 23:17 (KST)

중국 학자들의 논문[편집]

두막루의 건국 시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학설이 있다. 종래 중국의 동북사 연구자들인 마가승(溤家昇)과 장박천(張博泉)은 부여가 고구려의 문자명왕에게 멸망 당한 서기 494년 이후 부여의 유민들이 두막루를 건국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하지만 현대 중국의 학자인 손진기(孫進己)와 간지경(干志耿)은 두막루가 건국된 시기는 그보다 이전인 서기 410년 동부여가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에게 점령된 시점 이후로 이해하였다. 《위서》의 기록을 근거로 볼 때, 두막루가 건국된 것은 늦어도 서기 486년 이전이므로, 후자의 학설이 설득력이 있다. 따라서 두막루의 건국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략 서기 410년 이후부터 486년 이전의 어느 시점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중국의 전랑운(傳朗云)과 양양(楊楊)은 두막루의 언어가 예맥어와 동호어의 혼합이라고 하였는데, 두막루의 언어가 초기에는 부여어와 동일했으나 후기에는 거란어가 많이 유입되어 혼합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溤家昇, 〈豆莫婁國考〉, 《禹貢》半月刊 7卷 1,2,3 合刊, 1937.
  • 張博泉, 〈魏書豆莫婁傳中的幾個問題〉, 《黑龍江文物叢刊》 第2期, 1982.
  • 孫進己 저, 임동석 역, 《동북민족원류》, 1992.
  • 干志耿, 〈古代槀離硏究〉, 《民族硏究》 第2期, 1984.
  • 傳朗云, 楊楊, 《東北民族史略》, 吉林人民出版社, 1933.

- 아사달

후계라고 자처한다고 정말로 그게 한 뿌리에서 나오고, 계승한 나라가 되는 겁니까? 그 서술 하나로 정말 그게 한 뿌리라고 장담이 가능한 지 의문입니다. 흔적 조차 발견되지 않았는데 장담할 수 있는 차원인 겁니까? 두막루가 정말로 부여의 후계국인가는 실제 현장 연구를 통해서 흔적이 드러났을 때에야 귀하의 주장에 타당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또 이전의 편집을 봤을 때 부여의 문화와 유사하다와 동일하다를 계속 혼동해서 쓰시는데, 유사하다와 동일하다는 엄밀하게 차이가 있습니다. 부여 역시 좀 더 검증이 필요한 주제입니다. 부여에 대해서는 각가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을 확실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두막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전 개인이 창작한 글이라고 오해한 것이 아닙니다. 역사 학계의 일부 학자가 그렇게 주장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귀하가 드는 근거가 인터넷에서 몇번씩 되풀이되어서 떠돌아 다니는 공신력 없는 근거라는 겁니다. 추가로, 위키백과는 누구나 서술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저런 서술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하는 주장을 다 믿어야 합니까? 껍데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알맹이가 중요한 것입니다. 누가 썼는 지도 모르는 주장을 신빙성 있는 주장인양 추가로 내세우는 것은 부적절한 행위입니다. 위에 제시한 학설들은 두막루가 부여가 정말로 부여의 후계 국가라는 명제가 증명되어야 그 때서야 할 수 있는 논의입니다. 애초에 기본적인 명제도 참, 거짓인지 모르는데, 알맹이 조차 확실하지 않은 학설을 어떻게 인정합니까? 그리고 결론적으로 건국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는데, 어째서 대략이라는 가정이 나오는 겁니까? 정확히 알 수 없으면 정확히 알 수 없는 거지, 대략 몇 년도 근거가 없습니다. --Şiļvèŗ ßúӀӀěţ (토론) 2012년 5월 5일 (토) 17:49 (KST)

두막루가 부여 계통의 국가인 이유[편집]

1. 두막루가 스스로 부여의 후계를 자처했습니다. 물론 후계를 자처했다는 점 하나만을 근거로 두막루가 북부여를 계승한 나라라고 무조건 우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외에도 다양한 종합적 근거가 있기 때문에 부여를 계승한 국가라고 말한 것입니다. 중국측 사서에 따르면 두막루가 스스로 북부여의 후예라고 자처했다고 되어 있고, 풍속은 부여와 동일하고, 지리적 위치도 비슷하고, 중국 측 각종 기록에 부여의 후계라고 나와 있고, 당시 국제정세를 볼 때도 설명이 잘 들어맞습니다. 역사학자들도 두막루를 북부여의 후예라고 인정한 논문을 학술지에 여러 차례 발표한 근거도 제시했습니다. 이런 종합적 근거가 있는데, S.Bullet 님이 도대체 무슨 근거로 두막루가 북부여를 계승한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2. 실제 현장 연구를 하기 전에는 인정할 수 없다는 말도 있는데요. 물론 유적과 유물이 있으면 좋겠지만, 부여의 경우에도 유적과 유물이 없지만 한국의 고대 국가 중 하나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럼 마한, 진한, 변한의 유적과 유물은 있나요? 옥저와 동예의 유물은 있나요? 더 나아가 목지국, 사로국 등 유적과 유물이 있나요? 물론 유물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고 하여, 정식 사서에 명확히 기록된 국가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물론 사서에 기록되어 있으나 역사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중국 하나라인데요. 이것은 중국 측 기록 자체가 허무맹랑한 신화와 전설로 가득차 있고, 시기적으로도 신석기 시대에 중앙집권적 국가가 존재했다고 하니, 상식에 맞지 않아서 실증주의적 관점으로 비판하는 것이지, 단지 유물이 없기 때문에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막루가 무슨 선사 시대 국가도 아니고, 신석기 시대나 청동기 시대의 국가도 아니고, 철기 시대 이후, 그것도 서기 5세기에서 8세기까지 존재한 국가인데, 중국 전설에 나오는 하나라에 비유한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3. 님께서 제가 쓴 글을 폄훼하고 있는데, 사실이 아닐뿐만 아니라 상당히 듣기에 거북합니다. "다만 귀하가 드는 근거가 인터넷에서 몇번씩 되풀이되어서 떠돌아 다니는 공신력 없는 근거라는 겁니다." --> 이렇게 썼는데요. 도대체 제가 쓴 글 어디에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공신력 없는 글을 올린 게 있나요? 역사학계에서 발행하는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근거로 제시했고, 님께서 그 논문을 구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국회 전자도서관 사용법까지 안내해 드렸는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제가 인터넷에 떠도는 신빙성 없는 글을 바탕으로 제 글을 작성했다고 하신건가요? 이건 사실이 아닐뿐만 아니라, 매우 모욕적인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올린 모든 글에 출처가 명확히 나와 있고, 심지어 연구 논문의 페이지 숫자까지 다 적어 두었는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참조해서 썼다는 식으로 몰아부치는지 그 의도가 의심스럽습니다. 자기 주장을 펼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하여 상대방이 하지도 않은 말이나 행위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호도하는 행위는 바람직한 토론 태도가 아닙니다.

4. 또한 이런 심한 내용도 있군요. "누가 썼는 지도 모르는 주장을 신빙성 있는 주장인양 추가로 내세우는 것은 부적절한 행위입니다." ---> 사실이 아닙니다. 제 글에는 해당 문장을 누가 썼는지 다 밝혀두었습니다. 누가 썼는지도 모르는 주장을 제 글에 쓴 적이 없습니다. 한국 학계 사람들 성명, 중국 측 학자들 성명, 전부 다 밝혀져 있는데, 무슨 근거로 "누가 썼는지도 모르는 주장"이라고 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토론 내용 중에 위키백과 부여 항목에 그런 글이 올라가 있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걸 지적하는 말일 수도 있겠는데요. 그건 제가 위키백과에 쓴 글의 내용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쓴 글은 100% 역사학계의 논문과 중국측 사서의 자료 등을 인용, 참조, 정리하여서 작성한 글이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글, 심지어 누가 썼는지도 모르는 내용을 참조하여 쓴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5. 마지막으로, 두막루의 건국 연도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몇 년도에서 몇 년도 사이에 건국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표현이 왜 문제가 되나요? 이런 표현은 역사학계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상당히 많이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정확히 몇 년인지는 모르겠으나, 몇 년도 이후에서 몇 년도 이전의 어느 시기에 일어난 사건이다라고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광개토대왕의 경우 사망연도를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대략 서기 412년에서 413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광개토왕릉비의 기록에는 412년에 사망한 것으로 나오고, 《삼국사기》에는 413년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장수왕이 414년에 능비를 세우고 유언에 따라 수묘인을 두어 왕릉을 관리하게 하였다고 하니까, 정확한 사망연도는 알 수 없으나, 서기 412년에서 413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두막루도 5세기 중엽에 건국된 것이 확실한데, 아무리 빨리도 서기 410년 이후부터 아무리 늦어도 서기 486년 이전의 어느 시점에 건국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러한 추정은 제가 한 개인적인 추정이 아니라 역사학계의 논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아사달 (토론) 2012년 5월 5일 (토) 23:08 (KST)

부여는 한국사의 일부인가?[편집]

부여는 한국사의 일부가 맞습니다. 따라서 부여를 계승한 두막루도 한국사의 일부가 맞습니다. 혹시 님은 부여가 한국사가 아니라고 보시는지요? 그렇다면 부여를 계승한 두막루도 한국사가 아니라고 봐야겠죠. 하지만 부여를 한국사라고 본다면, 부여를 계승한 두막루를 한국사로 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S.BULLET. 님은 다음과 같은 글을 썼군요.

  • 부여 역시 좀 더 검증이 필요한 주제입니다. 부여에 대해서는 각가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을 확실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두막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님이 쓴 이 문장은 아주 당황스러운 문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자꾸 제 글을 되돌리기하는지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부여를 한국사의 일부로 단정지을 수 없기 때문에 두막루 역시 마찬가지라고 보아서 제 글을 되돌리기를 한 것 같은데요. 그럼 제가 묻겠습니다. 부여 출신의 주몽이 설립한 고구려는 한국사의 일부가 맞나요? 또한 부여 출신의 온조가 건국한 백제는 한국사의 일부가 맞나요? 오직 신라만이 한국사의 뿌리이고, 부여 계통인 고구려와 백제는 한국사의 일부가 아니라는 말인가요? 설마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당연히 님께서도 고구려와 백제를 한국사의 일부로 인정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구려와 백제의 뿌리인 부여도 한국사의 일부가 맞습니다. 따라서 부여의 유민들이 건국한 두막루도 한국사의 일부가 맞는 것입니다. 아사달 (토론) 2012년 5월 5일 (토) 23:48 (KST)

중국의 학자 손진기(孫進己)와 간지경(干志耿)[편집]

추가 마가승(溤家昇)과 장박천(張博泉) 이 네사람은 아주 저명한 분들인지 궁금하군요? 혹시 대한민국의 재야학자와 비슷한 분들이 아닌지..--18호 (토론) 2012년 5월 6일 (일) 15:25 (KST)

자꾸 근거 없는 추측을 하지 마시고, 역사학계의 공인된 학술지에 실린 논문이니까 제발 좀 믿어주세요. 중국 학자 4명은 제가 마음대로(?)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 한국 역사학자들이 쓴 논문에서 재인용한 사람일 뿐입니다. 제가 쓴 글의 내용은 《백산학보》에 실린 논문을 바탕으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정리한 것인데요. 백산학보는 이 분야에서 권위 있는 학회지입니다. 발행처는 백산학회이고, 40년도 넘은 오래된 학회입니다. 서울대학교 교수 등 역사학계의 쟁쟁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권위 있는 학회입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도 나오는 유명한 학회입니다. 그 학회에서 발간하는 권위 있는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바탕으로 작성한 글이니까, 함부로 되돌리기를 하지 말아주세요. 아사달 (토론) 2012년 5월 6일 (일) 16:06 (KST)

위키백과:사랑방 토론에서 두막루 관련된 토론 내용[편집]

=== 관리자의 권력과 전문성의 대립 ===

제가 주로 겪었던 경험은 관리자의 권력과 전문성의 대립으로 인한 것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어떤 특정 분야에 대해 상당히 많은 지식과 경험과 인맥과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저는 당연히 전문성을 바탕으로 위키백과에 해당 주제어를 등록하려고 시도할 것이고, 일반인들은 그 주제어에 대해 사회적 평균 수준의 지식 정도밖에 없으므로 반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관리자 역시 다양한 분야에 대해 모두 전문적 지식을 가지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사회적 평균 수준의 지식만 가지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적 의견이 위키백과에 올라오면 관리자가 나서서 반대, 수정, 삭제하게 됩니다. 전문가 입장에서는 정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인격적 모멸감까지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이해가 잘 안 될 수 있으니까 실제 사례를 하나 들겠습니다. 동명왕이라는 왕이 있습니다. 누구인가요? 고구려의 건국 시조 동명성왕 주몽(=추모)가 맞나요? 일반인들은 대개 이렇게 생각합니다. 관리자도 이렇게 착각하고는 삭제와 되돌리기를 한두 번 반복했습니다. 역사학계 전문가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 주세요. 동명왕은 《논형(論衡)》의 기록에 따라 부여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 사람으로서, 부여의 초대왕으로 인정되는 사람입니다. 관련 논문만 수십 개 이상이 있습니다. 적어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소수 의견은 전혀 없습니다. 그냥 이미 다 끝난 합의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일반인과 전문가의 인식상 괴리가 큰 경우에 해당 내용을 위키백과에 실으려고 하면, 전문가적 식견이 부족한 다수의 사용자들이 이의 제기하고 반대하고 삭제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뒤늦게 관리자가 개입하여 "총의"를 살펴보면, 당연히 비전문가의 의견이 대다수이고, 그게 마치 총의인 것처럼 이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관리자는 상당히 민주적으로 총의에 따라서 해당 분야 전문가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해 버리는 역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런 황당한 일을 몇 번 겪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이 위키백과에 전문가로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두막루라는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학계에 부여를 계승한 한국계 국가로 인정되고 있으나, 여전히 일반인들은 전혀 모르는 국가입니다. 그래서 해당 문서도 여러 번 삭제, 되돌리기를 당했습니다. 관련 연구논문과 교수들 글까지 다 인용하고 출처를 밝히고 심지어 페이지 수까지 다 찾아서 올려놓았지만, 그래도 되돌리기를 당했습니다. 일반인의 상식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었나 봅니다. 제 말의 요지는 결코 다수결이 진실이 아니며, 전문가 1명의 의견이라도 그게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있으면 그게 진실인 경우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중세 시대에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마녀사냥을 당할 뻔했던 갈릴레이, 아인쉬타인의 이론을 정면 반박한 양자역학 내용 등 수도 없는 사례가 있습니다. 비전문가인 사용자들과 관리자들이 주로 독자 연구 금지 잣대를 들이대는데, 무슨 연구 논문이라도 읽어보고서 그런 잣대를 들이대야지, 학계의 일반적 의견인데도 불구하고, 독자 연구라고 오해를 받아 정말 토론할 수준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무슨 죄인이 된 모양으로 땀 뻘뻘 흘리며 해명해야 합니다. 이런 일 몇 번 당하고 나면, 다시는 위키백과에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안 듭니다. 전문가는 사라지고, 민주주의와 다수결과 총의에 따른 관리자만 가득찬 상황입니다. 따라서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2차 출처에 의해 뒷받침될 경우" 위키백과에 등재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관리자로서 다수의 사용자들에 의해 형성된 총의를 따라서 결정했다가, 뒤늦게 전문가들의 의견을 알고 자신의 무지를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사달 (토론) 2012년 5월 10일 (목) 13:46 (KST)

그 전문성이라는 것이 위키백과에는 결핍된 것이라 아쉽긴 하지만, 전문성에 기대는 것도 위키백과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위키백과는 많은 전문 지식을 원하고 필요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키백과 기본 신념과 정책, 지침까지 저버리면서 전문성을 띄고자 하진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세상은 전문가보단 비전문가가 많습니다. 게다가 위키백과는 온라인 백과사전으로서 오프라인에서 보지 않는 이상 상대방이 전문가인지 비전문가인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 백:확인할 수 있는 출처가 필요한 것이구요. 소위 전문가들은 자신이 아는 지식으로만 편집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설령 그것이 정말 좋은 지식이라 한들 위키백과 정신과는 완벽히 위배됩니다. 독자연구는 아니라 하더라도 백:확인 가능 등 기본 지침을 어긴 편집은 전문성을 띈다 해도 허용되서는 안됩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비전문가들 입장에서는 전문가들이 구구절절 옳을 소리를 한들 그걸 구분해낼 능력이 떨어집니다. 그렇다면 옳고 그름을 판단을 누구한테 맡겨야 할까요? 또다른 전문가? 제 3자? 결국 위키백과 공동체가 결정할 수 밖에 없는게 위키백과 시스템이고 그게 기본 원칙입니다. 그 원칙 때문에 아사달님께서 말씀하신 손해가 적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원칙을 저버리는 위키백과는 더더욱 안됩니다. 위키백과 커뮤니티도 전문가들의 기여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좀 더 고민을 해봐야 하겠지만, 현재 상황이 그렇게 부정적이진 않습니다. 아무리 전문가라도 비전문가가 입증하지 못할 지식으로만 채워 넣는다면 저는 그게 아인슈타인이나 갈릴레오라 한 들 되돌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NuvieK 2012년 5월 10일 (목) 14:11 (KST)
저는 관리자의 권력 얘기가 아니라 위키백과 내 일부 사용자들이 지니고 있는 지나친 고집에 대해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위키백과 밖에서도 위키백과 사람들이 툭하면 삭제 토론에 올리고, 저명성이나 객관성을 아무리 설명해도 믿어주지 않는다며 위키백과를 때려쳤다는 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사달 님이 말씀하신 두막루토론 문서를 보니 이의를 제기하신 분들이 솔직히 도가 지나치신 것 같아요. 제가 역사 전공은 아니어서(다만 인접 학문인 한문학이 제 전공[학부생 수준]입니다) 잘은 모르지만 인용해 오신 자료가 충분히 한국사로 볼 수 있음에도 자꾸 태클을 거시네요. 아사달 님은 도무지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으시는 저 분들을 이해시키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아사달 님은 위키백과의 규칙을 준수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음에도 자꾸 태클을 받으신 겁니다. 적어도 두막루 건에 있어서는 상황이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입니다. 제 눈에는 아사달 님이 제시하신 자료로는 두막루가 한국사에 속하는 것을 충분히 입증했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나아갔습니다. 제가 봐도 학계에서 권위가 있는 학자들의 권위 있는 논문이라고 생각됩니다만(해당 학회명도 여러 번 들어봤고...) 왜 믿지를 못하시는지들 납득이 안 갑니다. 이런 식으로 몇몇 위키백과 사용자 분들은 검증 자료를 충분히 들이댔는데도 믿지 못하고 반대하시는 것 같아요. 저 정도 근거를 댔으면 수긍을 하는 게 옳은 거 아닌가요? 저도 토론:두막루를 읽어보니 상당히 당혹스럽습니다. 열심히 작성하신 분 입장에서는 맥이 빠지고 화가 안 날 수가 없죠.
위키백과 특성상 많은 사용자들이 비전문가라서 잘 모르는 것도 감안해야겠지만, 비전문가인 사용자들도 자신들이 잘 모르는 분야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어느 정도 자료가 충분하면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사료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아사달 님은 그 설명 과정을 소홀히 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입증에 필요한 자료를 필요한 양 이상으로 제시하셨고(너무도 안 믿으시니까) 그것도 자료를 해석하는 방법을 거의 일일이 떠먹여주다시피 설명하셨습니다. 이건 너무한 것 같네요. 경찰서에서 용의자 추궁하는 것도 아니고... --Yes0song (토론) 2012년 5월 10일 (목) 15:22 (KST)
저도 방금 두막루 토론을 봤는데, 뭔가 익숙하지 않다고 계속 증명 요구하는건 좀 아닌거 같습니다. 그정도 자료면 충분히 입증도 한 것이구요. --거북이 (토론) 2012년 5월 10일 (목) 16:25 (KST)
예, 두막루의 경우에는 분명 부정적인 경우입니다. 저는 이런 경우와는 다른 경우, 전문가가 "자신을 왜 안믿느냐!"라는 막무가내를 방지하고 싶을 따름입니다.--NuvieK 2012년 5월 10일 (목) 22:35 (KST)
의견 솔직히 말해서 관리자들 전문성이 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은 고사하고, 위키백과 정책도 잘 모르는 분들도 있어서요. 가령 문서가 '단출하다'는 이유만으로 지운다든지.... 관리자 투표할 때 그냥 수나 느리고 보자는 식으로 뽑을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중점적으로 할 것인지 등을 물어보고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Reiro (토론) 2012년 5월 10일 (목) 23:31 (KST)

위키백과의 편집과 출처의 관계[편집]

토론은 출처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있군요. 백:면책이 밝히는 바와 같이 위키백과는 확인가능한 출처를 근거로 작성되면, 그것의 진위 여부는 출처에 일임하는 것입니다. 물론 폭 넓은 출처의 확인을 거쳐 되도록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한 서술을 해야겠지만, 여러 출처를 제시하여 쓰인 글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을 때에는 "확증할 수 없음"을 문제삼기 보다는 "반대 출처"를 제시하는 것이 보다 좋은 토론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제시된 출처를 근거로 두막루가 부여계 유민이 세운 한국사의 일부라는 설명에 대해 어찌 한국사의 일부인지 확증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것 보다는 반대되는 출처를 제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그 내용을 어떻게 문서에 반영할 것인지를 토론할 수 있겠지요. -- Jjw (토론) 2012년 6월 2일 (토) 17:42 (KST)

토론 내용 요약[편집]

위 토론 내용이 너무 길어서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제가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두막루는 부여를 계승한 나라로서 한국의 옛 나라의 하나이며 한국사의 일부분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이것이 위 길고 긴 토론의 결론입니다. 이 결론에 대해 현재 반대 의견이 없는 상황입니다. 참고하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9일 (월) 23:20 (KST)

틀토론:한국사에서 관련 논의가 있었으며, 저를 포함한 다수의 사용자가 두막루의 부여 계승설은 아직 한국 역사 학계 일반에서 인정되지 않는 새로운 가설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 Jjw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13:02 (KST)

틀토론:한국사#두막루의 부여 계승 여부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Jjw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13:05 (KST)

Jjw 님, "역사학계 일반"이라는 표현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인용하신 글을 보더라도, "종래 역사학계"의 의견과 "새롭게 제시된 학계 의견"으로 나누어야지, 역사학계 "일반"이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또한 "역사 학계 일반에서 인정되지 않는 새로운 가설"이라는 말도 없습니다. 새로운 학설에 대해서 인정한 사람도 많지 않지만, 인정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냥 많은 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혹은 귀추가 주목된다고 해야 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13:58 (KST)

2012년 7월 11일 내용 일부 수정[편집]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두막루의 부여 계승설에 대해, 단정적으로 서술한 부분은 그것이 새롭게 제시된 주장임을 분명히 하고, 역사학계 일반의 견해에 대해서는 출처를 분명히 하여 보충하였습니다. -- Jjw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13:22 (KST)

온라인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2003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한국사》 4권, 201쪽.에 대해서는 돌아오는 토요일 국립중앙도서관에 가서 확인한 뒤 반영하겠습니다. -- Jjw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13:25 (KST)

예, 알겠습니다. Jjw 님이 쓴 내용 중 일부 내용은 제가 표현을 조금 다듬었습니다. 참고하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13:34 (KST)
아사달 님께서 ‘기존 학계의 두막루에 대한 반응’의 근거로 제시하신 2권의 책 중 《고조선·단군·부여》를 방금 확인해 보았습니다. 해당 책은 동북아역사재단의 전신인 고구려연구재단에서 펴낸 것으로 두막루 부분의 내용은 위에 Jjw 님께서 틀토론:한국사에서 인용하신 것과 거의 같습니다. Jjw 님께서 이야기한국고대사에 대해 조법종 교수를 대표 저자로 내세웠는데, 지금 제가 살펴본 책의 해당 파트의 내용이 놀라울 정도로 흡사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해당 파트의 저자는 조법종 교수가 아니라 제가 본 책과 같을 것으로 보입니다. 해당 파트의 저자는 이 책에서는 박경철 교수로 나타나 있습니다. 사실상 거의 비슷한 내용이긴 합니다만 일부 인상적인 부분을 인용하겠습니다.
그러나 종래 우리 국사학계에서는 부여사의 전개와 두막루의 존재를 직접 연계시켜 이해하는데에 상당히 유보적인 입장을 견지해 온 바 있다. 즉, 두막루-(북)부여의 후예라는 인식에 회의적인 입장은 고구려가 길림 지방을 장악하고, 부여국의 경계였던 약수(동류 송화강) 유역에까지 그 세력을 뻗침에 따라 두막루인들이 어떤 과정으로든 고구려를 인식하게 되고, 그러던 중 고구려인이 옛 부여국 지역을 북부여라 하니 두막루인도 그렇게 칭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략) 그런데 최근 부여사의 전개와 두막루를 직접 연관시켜 이해하고자 하는 새로운 견해가 제시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기원후 410년 부여가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침공을 받아 심대한 타격을 입자, 부여의 완전 소멸 이전에 부여인들이 나하, 곧 눈강 하류와 제1송화강을 건너 호눈 평원 또는 송눈 평원 일원, 즉 구북부여의 고지에 두막루를 건국하였다고 파악하고 있다. (중략) 우리 학계가 두막루와 부여사의 연관성 여부를 에워싸고 벌이고 있는 논의는 그것이 우리 고대사 인식의 시·공간적 영역의 확장 가능성과 결부된 문제인만큼 그 귀추가 주목된다.
보시다시피, 두막루에 대한 학계 일반의 부여계가 아니다라는 주장이 여과 없이 그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인 최근의 시각도 제시되고 있긴 하지만, 명백하게 결론부에서 논의 중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아사달 님께서 지금까지 설파하신 것이 모조리 다 무용지물임이 분명한 증거라 하기에 충분하겠습니다. 의견을 주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13:38 (KST)
무슨 '무용지물'을 말하는건가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13:47 (KST)
한국사의 일부이다라던가 반론이 없으니 맞다 같은 말씀 말입니다. 학계 일반의 부정적 시각도 명백하고 아직 논란의 대상일 뿐 확정된 것은 없다는 것은 명백합니다만.--Xakyntos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14:00 (KST)
그렇다면, "한국사의 일부이다" ---> "한국사의 일부라는 주장이 있다."로 고치겠습니다. "그것에 대한 반론은 아직 없다."고 했지, "반론이 없으니 맞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게다가 제가 "지금까지 설파하신 것이 모조리 다 무용지물임이 분명한 증거"는 아니군요. "모조리 다 무용지물"은 아닐테니까요. 예나 지금이나 표현을 너무 거칠게 쓰시네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14:05 (KST)
Xakyntos 님, 한 가지 더 지적하겠습니다. 종래의 견해는 사서의 기록도 없고 단지 '추정'에 불과하군요. 정말 하나의 학설인지 아니면 단순히 추정을 바탕으로 한 '견해'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종래의 견해에도 "부여계가 아니다"라고 명시적으로 쓴 말은 없습니다. 종래의 견해는 그냥 '추정'입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20:39 (KST)

Jjw 님이 쓴 문장 중에 "백산학회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는 유태용의 논문에..."라는 부분이 맞는 내용인가요? 백산학회에서 발행한 학술지에 실린 유태용의 논문에... 라고 해야 하지 않나요? 백산학회 소속인지 아닌지를 확인한 게 맞으신가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13:44 (KST)

하나 더 질문 드립니다. "역사학계 일반"이라는 용어는 중립적이지 않은 듯 합니다. 위에 Xakyntos 님이 인용한 글을 보더라도, "역사학계 일반"이라는 말 대신 "종래 우리 국사학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종래 학설'과 '새롭게 제시된 학설'로 나눌 수는 있겠지만, 역사학계 일반과 나머지 소수설로 나누는 것은 맞지 않는 듯 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13:54 (KST)
유태용은 백산학회의 간사입니다.(간도개척의 민족사적 성격 (학술대회) 참조) 제가 보기에 "종래 우리 국사 학계" = "역사 학계의 일반적 견해"입니다. 역사 학계 일반이란 용어가 인적 요소를 포함할 수 있다고 오해할 수 있으므로 역사 학계의 일반적 견해로 용어를 정정하겠습니다. -- Jjw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14:02 (KST)
저는 그런 용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원문에 나온대로 "종래" 역사학계와 "새롭게 제기된 학설" 정도가 좋겠습니다. 게다가 새롭게 제기된 학설에 대해서 "주목을 끌고 있다" 혹은 "귀추가 주목된다"고 적혀 있는데요. 이걸 "역사학계의 일반적 견해"와 "소수 견해"로 나누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14:08 (KST)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만, "주목을 끌고 있다"는 표현은 지지를 받는 다는 의미도 아니고 인정받는 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말 그대로 논쟁 거리가 될 만한 새로운 주제가 등장하였다는 것일 뿐입니다. 종래 국사 학회 이하의 표현은 마치 새로운 이론의 등장 이후 역사학계의 인식이 달라졌다는 뉘앙스를 전달하여 사실관계에 오해를 불러 올 수 있습니다. -- Jjw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14:14 (KST)
지지를 받는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여 새 학설에 대해 거부한다거나 혹은 무슨 환단고기 류의 주장이라거나 혹은 극우 민족주의 단체의 일개 주장에 불과할 뿐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소수설이 아니라 말 그대로 새로운 학설이고, 주목을 받고 있고 귀추가 주목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14:33 (KST)
귀추(歸趨)는 일이 되어 나가는 형편이나 상황을 뜻합니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 대사전) 따라서, 귀추가 주목받고 있다는 말은 일이 되어 나가는 형편이나 상황이 어찌 될 것인지 관심을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말 어디에도 기존 학계의 인식이 변화되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최소한 과거형으로 설명되어 있는 기존 학계의 일반적 견해는 현재형으로 바꾸어 둡니다. -- Jjw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14:45 (KST)
"종래... 보이고 있다"는 문법적으로도 안 맞는 말입니다. "종래... 보인 바 있다."로 고칩니다. 아시겠지만, "보인 바 있다"는 말은 제가 쓴 말이 아니고, 위에 인용한 글 원래 그대로 쓴 것입니다. 현재에도 그런 유보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증거는 아직 아무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 인용문은 단지 "종래에 ...유보적 입장을 보인 바 있다"고 쓰고, "새로운 견해가 제시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고 쓰고 있습니다. 즉, 현재 역사학계의 입장이 바뀌었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여 종래의 입장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없습니다. 매우 민감한 부분이므로, 저 인용문 출처에 나오는 문구 그대로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16:13 (KST)

아사달님은 두막루가 부여계라는 반론이 없으니 이는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두막루가 한국사의 일부분이란 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한다고 하셨습니다. 일단 이야기 한국 고대사같은 곳에서도 두막루가 몽골계로 알려졌다가 이제서야 부여계라는 주장이 나왔으니 (일러봐야 90년대이고 여기서 진전된 연구는 별로 없고 말이죠) 아직 갈 길은 멉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11일 (수) 16:08 (KST)

위 인용문을 보시면, 종래 학계의 의견은 이러저러 했으나, 새로운 학설이 제기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앞으로 "귀추가 주목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현재 역사학계에서도 예전처럼 종래 의견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표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한 가지 해명을 하자면, 제가 두막루의 부여 계승설에 대해서 "학계에서 반대 의견이 없다"고 말했던 것이지 학계에서도 "암묵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물론 새로운 학설에 대해 동의한다거나 지지한다는 말도 없고, 또한 새로운 학설에 대해 틀렸다거나 어떤 반론이 있다는 말도 없고, 단지 두막루의 부여 계승설이 "주목을 끌고" 있고 또한 "귀추가 주목된다"고 썼습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의견이 이 정도이니, 우리도 그냥 이 정도 선에서 위키백과에 서술하는게 좋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16:19 (KST)
얼척 없는 말씀 마십시오. 박상철 교수가 귀추가 주목된다라고 언급한 것은 부여계라는 주장이 아니라, 논의 그 자체를 두고 말한 것입니다. 해당 문장을 제대로 보시기 바랍니다. 논의의 향배가 주목된다는 것이지, 어떤 특별한 견해가 흥미롭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명백한 오류이며, 매우 비중립적인 판단입니다. 주의해 주시지요.--Xakyntos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18:38 (KST)
Xakyntos 님, 종래 의견만 남기고 새로운 학설 부분을 통째로 삭제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새로운 학설도 소개하여야 균형 잡힌 서술이 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쟁점이 있으니,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말고, 저 책에 나온 문장을 100% 그대로 싣도록 하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19:52 (KST)
또한 종래 학설종래 견해라는 것은 어떤 사서의 기록도 없고 단지 "추정"에 불과합니다. 위 책에도 "추정"이라고 되어 있군요. 하지만, 새롭게 제시된 학설은 각종 사서의 "기록"이 뒷받침이 되고 있습니다. 적어도 5종의 중국 측 사서에서 두막루는 부여를 계승한 국가라고 직접적으로 명시하거나 혹은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종래 학설은 '통설'이 아니며, 단지 그런 '추정'이 있었다고만 써야 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20:32 (KST)
아사달님, 마치 종래의 학설이 기록의 존재를 몰라서 그런 추정을 한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설명이군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위서와 동이전의 존재, 두막루의 존재는 이미 오래전에 알려져 있던 것입니다. 새로운 학설은 그것을 새롭게 "해석"한 것이고요. 새로운 학설도 유물 등의 실질적인 근거 제시는 없기 때문에 그 역시 "추정"으로 보아야 합니다. 새 학설이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믿을 수는 없습니다. -- Jjw (토론) 2012년 7월 12일 (목) 08:09 (KST)
이 글은 Jjw 님의 '추정'인 것 같습니다. "종래의 견해는 이러저러한 추정이고, 새로운 학설은 이러저러해서 주목을 끌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평가인 것 같습니다. 종래의 견해가 '학설'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두막루의 부예 계승설을 부정하고 몽골 계통이라고 주장한 '학설'이 있었는지, 아니면 그냥 두막루라는 나라는 몽골계라고 추정을 한 '견해'가 있었던 것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새로 나온 것은 연구논문이 몇 편 있으니까, '학설'이 맞습니다. 예전 견해가 학설인지, 아닌지, 만약 학설이라면 어느 연구자가 어느 논문에서 그런 학설을 제시했는지 확인 가능한 출처를 제시해 주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2일 (목) 10:26 (KST)

──────────────────────────────────────────────────────────────────────────────────────────────────── 그렇지 않아도 이 번 주말에 참고문헌들을 확인하는 김에 여러 가지 것을 살펴볼 생각이긴 합니다. 하지만, 지금 아사달님이 마치 종래의 견해는 학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듯한 말씀은 유감입니다. 아사달님이 두막루가 부여를 계승한 것이라고 제시하였던 두 개의 출처가 모두 그것을 새로운 학설의 등장이라 소개할 뿐 지지하지 않는 상황에서 종래의 견해는 견해일 뿐이고 새로운 것은 학설이니 등위가 다르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습니다. 이 번 의견은 아사달님이 조금 과도하신 것 같습니다. 지금 토론에서 매우 공격적인 발언들이 오고 가고 있는 상황인 점은 저도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온라인상에서의 토론은 오프라인의 것과는 달리 상대방에게 의견을 전달하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쉽게 오해를 사기도 하기 때문에 서로 보다 사실에 입각한 말씀들을 하였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제가 보기에 지금까지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이 합의할 수 있는 것은 두막루가 부여를 계승하였다는 "새로운 학설"이 고구려재단과 백산학회 등에서 재기되었고 기존의 역사학계(최소한 두 출처의 대표저자인 조법종 교수와 박경철 교수를 포함한 저자의 다수)는 관심을 갖고는 있지만 어떠한 지지도 보내고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두막루 부여 계승설에 대한 찬성 또는 반대의 학설에 대한 보강은 차차 해 나갔으면 합니다. 저도 좀 더 관심을 기울여 보겠습니다. -- Jjw (토론) 2012년 7월 12일 (목) 11:11 (KST)

예, 온라인이라서 좀 그런 점이 있습니다. 양해해 주세요. 그런데, 저도 사실 두막루에 대해서 무슨 확신을 갖고 혹은 무슨 사명감을 갖고 이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저도 한국 사람이고, 학교 다닐 때 국사 시간에 '두막루'에 대해서 사실 단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었고, 시험에도 안 나오고,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부여'와 '발해' 관련 역사 글을 편집하다가 정말로 '우연히' 위키백과에 적힌 '두막루'라는 글을 처음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내용은 좀 충격적이었죠. 제가 쓴 글이 아니라 원래 그 이전부터 위키에 있던 '두막루' 글을 읽어보고서,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혹시 독자연구?)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자꾸 찾아보면 볼수록 종래의 제 생각과 다른 연구논문들이 나오더군요. 백산학회가 어떤 단체인지, 유태용이라는 학자가 누군지도 전혀 모르고, 그냥 학계의 연구논문이니까 닥치는 대로 구해서 읽었습니다. 그걸 잘 정리해서 그냥 위키백과에 올린 것뿐입니다. 올려놓고 나서 저도 너무 한쪽 의견만 올린 건 아닐까 생각해서 반대 의견을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회사 업무도 많고, 온라인으로는 거의 찾기가 힘들더군요. 서점에 가서도 뒤적여 봤는데 두막루와 관련된 책 자체를 찾기가 쉽지 않더군요. 그래서 반대 의견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 여러 사람들이 두막루 토론에 참여해서 '종래의 견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Jjw 님이나 Xakyntos 님이나 누구든지 좋으니, 반대 의견 혹은 종래의 견해 등을 좀 잘 정리해서 같이 이 문서에 반영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확인할 수 있는 출처도 없이, 그냥 막연한 추측을 바탕으로 이 문서를 편집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이게 솔직한 제 심정입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2일 (목) 11:25 (KST)

의견 앞으로 위키백과에 등록할 수 내용과 문서는 한국사일 경우 정확하게 교과서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뿐일 것같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부분적인 내용도 다수가 이해가 안되면 과연 어느 분의 승인을 받아야 용납될 수 있는지 그게 더 의문입니다. 숫자가 보여주는 참여와 찬반의 문제가 아니고 역사를 보는 사관이 달라 생기는 근본적인 문제인 것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반복적으로 발생하게 될 것으로 보여지는데 각자 사관이 다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토론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의 실마리일 것같습니다. Lexus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16:54 (KST)

교과서가 어느 교과서를 말하는건가요?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를 말하는건 아니시겠죠? 위키백과사전은 말 그대로 "백/과/사/전"입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 수준에 나오는 내용만 백과사전에 실을 수 있다는 뜻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습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교과서'라는 말은 '국사편찬위원회'라든지 '동북아역사재단'처럼 대한민국 정부에서 설립한 학술단체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즉, 교과서라는 말을 실제 '교과서'를 말하는게 아니라, '학계의 정설'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설령 '학계의 정설'을 의미하기 위해 '교과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치더라도, 위키백과에 꼭 학계의 정설만 실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다수설이 있고 소수설도 있다면, 주로 다수설을 설명하되 일부 공간을 할애하여 소수설을 조그마하게 서술해 줄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 안 나오니까 삭제한다든지, 혹은 학계의 정설이 아닌 소수설이니까 삭제한다든지 하는 것은 위키백과의 편집 정책이나 지침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번 토론인 두막루의 경우에는 국사편찬위원회 등 권위 있는 기관에서 발행한 단행본 서적에도 "두먁루는 부여를 계승한 나라"라는 학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학설을 '인정'하고 '지지'한다는 뜻이 아니라, '소개'가 되고 있다는 뜻이고, 이 새로운 학설에 대해서 '주목을 끌고 있다' 혹은 논의의 귀추가 주목된다고 쓰고 있습니다. 오해가 없으시기 바랍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2일 (목) 13:18 (KST)
덧붙여서 '사관'이 다른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위키백과는 특정 사관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시각이 모두 허용되어야 합니다. 반대 의견, 소수 의견 등이 모두 위키백과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정설, 통설, 다수설 등은 비중 있게 다뤄야 하고, 소수설은 비중이 작게 다루어져야 '균형'있는 서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점만 주의한다면, 소수설이나 반대 의견도 얼마든지 위키백과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덧붙여, 현재 두막루의 부여 계승설은 소수설이 아닙니다. 두막루에 대한 종래의 견해나 추측과는 다른 새로운 학설이지, 소수설은 아닙니다. 또한 종래의 견해라는 것이 정말 하나의 '학설'인지 아니면 단순한 추측성 견해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설령 종래의 견해가 하나의 학설이라고 할지라도 정설이나 통설이었는지, 지금도 그게 정설이거나 통설이라는 확인 가능한 출처가 제시된 적이 없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2일 (목) 13:23 (KST)
교과서에 나온 것만을 다룰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은 아사달님의 의견에 적극 동감입니다. 다만, 한국 역사 학계 다수의 교수가 필진으로 있는 두 개의 출처에서 "한국 역사 학계 일반의 종래 견해는 유보적"이라고 표현하였다면 최소한 이것이 통설이라는 점은 인정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학설을 인지하여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도 지지하지 않는 것은, 아직 새 학설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새롭게 재기되었으나 학계 일반의 지지를 획득하지 못한 학설은 그 자체로 소수설입니다. 과거 코페르니쿠스천동설, 대륙이동설, 진화론 등은 모두 한 때 소수설이었습니다. 따라서, 소수설이라는 것이 곧바로 잘못된 학설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현재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 분명하다는 뜻입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소수설에 대한 견해는 쿤의 패러다임의 변화,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다윈 이후》외 다수의 저서, 기타 각종 이론 정립에 대한 서적에 기제되어 있는 사항입니다. 원하신다면 시간을 내어 제가 갖고 있는 모든 출처 목록을 밑에 적어드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두막루 부여 계승설 역시 현재로서는 소수설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언제 다수설이 될런지는 학계의 연구 성과에 달린 문제이지요. -- Jjw (토론) 2012년 7월 12일 (목) 15:06 (KST)
두막루의 부여 계승설은 '새로운 학설'입니다. 이 학설에 대해 '소수설'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는 확인 가능한 출처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새로운 학설이 나와서 논의의 귀추가 주목되는 정도"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새로운 학설이면 무조건 자동으로 '소수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참고로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책은 제가 대학원 다닐 때 첫 학기 교재라서 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새로운 학설에 대해서 반대 의견이 나오고, 다수의 학자들이 반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학자들이 고집을 버리지 않고 새 학설을 주장하는 경우, 그 새로운 학설은 말 그대로 '소수설'이 됩니다. 하지만 두막루는 그런 경우는 아닙니다. 두막루의 경우 새로운 학설이 나왔는데, 다수가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고 이후 논의의 귀추에 주목하는 상황이라면, 그건 다수가 반대하는 상황이라고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다수가 반대한다는 아무런 확인 가능한 출처가 제시된 적이 없습니다. 또한 "주목을 끌고 있다" = "지지하지 않고 있다" = "반대한다"라는 식으로 논리의 비약이 있습니다. "주목을 끌고 있다"가 정확한 상황입니다. "주목을 끌고 있으니까" = "지지한 적이 없고" 그러니까 = "지지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지지하지 않으니까" = "반대한다"고 "해석"할 수 있고, "반대하니까" = "소수설"이다라고 "해석"하신 듯 합니다. "주목을 끌고 있다" = "소수설"이라고 논리의 비약이 일어난 셈입니다.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는 확인 가능한 출처를 제시해 주지 않은 한, 이런 해석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2일 (목) 15:45 (KST)
논리 비약은 제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현재 학계 일반에서 지지를 받지 못한 새로운 학설은 소수설의 지위를 갖는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어디에 그러니까 학계 일반이 이 내용에 반대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까? 학계 일반의 입장은 유보적(〈명사〉일이나 안건 따위를 일단 뒤로 미루거나 연기하는 것, 표준국어대사전)입니다. 즉, 그 내용의 진위에 대한 판단을 보다 연구가 진행된 뒤에 하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아사달님은 "주목을 끌고 있다"라는 표현을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넘어 자꾸 "지지한다"거나 "인정한다"는 쪽으로 해석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게 저는 오히려 이상합니다. 원문 그대로의 의미에서 멈추었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살핀 바로는 현재 학계의 일반적 입장은 "관심을 갖고 있으나 그 진위 판단에 대해서는 유보적"입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일반적 견해가 아니다고 할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기에 일반적 견해로서 인정되지 않는 학설은 소수설입니다. 그것이 설사 앞으로 진실로서 판명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 Jjw (토론) 2012년 7월 12일 (목) 16:06 (KST)
  • 아사달(Asadal) (토론)님의 생각에 많은 내용을 공감하는 사용자중에 한사람입니다. 다만 아직은 '두막루' 혹은 '고두막'에 대한 학설들이 인터넷에 올려져 있는 여러 백과에서 생소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더구나 용어자체에도 '두막루'인지 '고두막'인지 정리가 안된 상황에서 위키백과에서만 게재된 학설이라면 편집자들이 어떻게 처리를 해야할지 부담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논하는 '두막루'는 부여의 후예들인 '두막루'에 대한 얘기이고 또한 학문적인 내용들이 여러가지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정설이라고 평가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보다는 아직도 단군신화,고조선,배달,한국사,상고사 등등 많은 문서에서 존재하는 다른 사관에 의한 편집에 대해서 어떻게 정립해야할 것이지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현재 존재하는 여러 백과사전, 이를테면 네이버, 네이트, 다음 같은 포털사이트 백과사전과도 상고사 부분에선 상이한 내용이 많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어린이 백과','지식백과' 등도 함께 내용을 비교해보면 각기 다른 편집자에 의해 수정, 삭제를 거쳐 더욱 부족하게 편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아침에 많은 부분을 수정하거나 보완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편집자의 한사람으로 아사달(Asadal) (토론)님처럼 신선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분들이 많이 참여하여 위키백과가 좋은 백과가 되도록 한국사에도 많은 변화가 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Lexus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08:13 (KST)

두막루는 실위와 같은 민족인가?[편집]

  • 조법종, 《이야기 한국고대사》, 청아출판사, 2007년

위 책에 나오는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니 두막루에 대해서 총 3가지 견해가 있는 듯 합니다. 종래의 견해 두 가지와 새로운 학설 한 가지입니다. 종래의 견해 중 첫번째 것은 막연한 추정에 불과하여 따로 논의할 가치가 없는 듯 합니다. 즉, 고구려가 옛 부여 지역을 북부여라고 부르니까 두막루도 자신들을 북부여라고 했을 것이라는 '추정'에 불과합니다. 제 주장이 아니라, 위 책에 보면 '추정'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사실 하나의 '학설'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듯 합니다.

두번째 견해가 좀 흥미롭군요. 즉, 두막루를 실위와 같은 몽골계 종족으로 해석했다는 점입니다. 아시다시피 실위의 후예 중 하나가 바로 나중에 칭기즈칸이 나온 몽골 부족입니다. 이 견해는 아마도 《위서》(魏書) 실위전에 실린 문구를 바탕으로 한 것 같습니다. 위서에 따르면 실위(失韋)의 "언어는 고막해, 거란, 두막루와 같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위의 언어가 두막루와 같았으니까, 두막루는 실위와 같은 민족이라고 해석한 듯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종래의 연구는 이미 한국뿐 아니라 중국 측 학자들에 의해서도 동의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중국의 전랑운(傳朗云)과 양양(楊楊)은 이미 1933년에 발행한 책에서 두막루의 언어가 예맥어(즉, 부여어)와 동호어(즉, 거란어)의 혼합이라고 하였고, 한국의 유태용 등은 두막루의 언어가 초기에는 부여어와 동일했으나 후기에는 거란어가 많이 유입되어 혼합된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즉, 두막루와 실위가 서로 다른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유사성이 나타나는 것에 대한 한국과 중국 측 학계에서 해명이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아시겠지만, 몽골, 거란, 말갈, 부여, 삼국(고구려/백제/신라), 일본 등은 넓은 의미로 '우랄 알타이어'에 속하기 때문에 언어의 유사성이 많습니다. 실위는 몽골 부족인데 거란과 같은 언어라고 쓴 저 위서의 기록을 믿을 수 있는지 모르겠으나, 설령 그대로 믿더라도 이러한 언어의 유사성을 제외하면, 실위와 두막루는 도저히 같은 민족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두막루 주변에 있었던 민족인 물길실위가 유목, 수렵, 어로에 종사했던 것과 달리, 두막루 사람들은 넓은 평원에서 농경 생활을 하면서 오곡(五穀)을 기르고 집과 창고를 지었다고 합니다. 즉, 실위는 유목 민족이고 두막루는 농경 민족인 것입니다. 게다가 두막루의 풍속이 부여와 거의 동일합니다. 또한 두막루의 군장(君長)은 여섯 가축의 이름으로 관직명을 삼는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임금 아래에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대사자, 사자 등 가축의 이름을 딴 관직명을 사용했던 부여의 풍습과 일치합니다. 이런 점에서 몽골족 계통인 실위와 부여 계통인 두막루를 같은 민족으로 보기가 어렵습니다. 즉, 종래 학계의 견해 중 두번째는 지지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상의 점을 고려해 볼 때 최근에 제시된 새로운 학설이 주목을 끌만하군요. 유태용 등의 논문에 나오듯이 두막루를 부여를 계승한 나라로 보는 학설입니다. 이 학설을 지지하는 중국 측 사서는 상대적으로 많은 편입니다. 《위서》(魏書) 두막루조에서 말하기를, "두막루국은 ... 옛날의 북부여이다. 실위의 동쪽에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신당서》(新唐書)의 유귀전에서 말하기를 "달말루(=두막루)는 스스로를 북부여의 후계라고 말한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스스로 실위(몽골족)라고 자처하지 않고 북부여라고 자처했군요. 또한 고구려가 부여를 멸하자 그 유민, 즉 부여의 유민들이 건국했군요. 즉, 서기 410년 부여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침공을 받자, 부여의 유민들이 나하를 건너가 건국한 나라라고 합니다. 이런 기록을 볼 때, 두막루는 실위 계통이 아니라 부여 계통으로 보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 역사학계에서도 이러한 새로운 학설에 대해서 "주목을 끌고 있다"고 썼고, 또한 앞으로 두막루와 부여의 연관성에 대한 논의의 "귀추가 주목된다"고 쓴 것 같습니다.

두막루와 관련하여 실위가 계속 나오는데, 한국어 위키백과에는 해당 문서가 없군요. 나중에 제가 시간이 생긴다면, 이 실위에 대해서 조사를 해 보고 싶군요. 실위는 훗날 칭기즈칸을 배출한 몽골 부족의 선조인 것 같은데, 위키백과에 아무 내용이 없다는 것이 참 아쉽군요. 네이버 백과사전과 네이버 지식사전 등에는 실위에 대해서 내용이 꽤 나오는군요. 어쨌든 참고하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00:20 (KST)

그건 어디까지나 아사달 님의 추측일 뿐입니다. 해당 내용에 대해 저나 Jjw님은 아사달 님과 반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논문이나 어떤 저서에서 주목된다라던가 중요하다라고 써 있다고 해서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학자라는 양반들도 사람이고 서로 예의를 갖추고 체면을 차리는 분들입니다. 학술 발표회 같은 곳에 참여해 보시면 아시게 될텐데, 아무리 얼토당토 않는 헛소리라고 해도 면전에서, 지면 상에서 대놓고 까지 않습니다. 적당히 체면을 살려주면서 비판할 것은 비판할 뿐이죠.
위에 Jjw 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주목된다는 말은 그저 괜찮은 주제다.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라는 의미 이상으로 해석하면 오히려 잘못된 해석이 됩니다. 심지어 저는 논문의 핵심 주제가 A라는 논문의 주제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본문 상에서는 A라는 논문에 대해 주목된다는 수준을 넘어서는 찬사(?)를 하고 있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주목된다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학자들 사이에 의레 하는 외교적 수사일 뿐입니다.--Xakyntos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00:29 (KST)
예, 오셨군요. Xakyntos 님이 오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여기는 토론란이니까 제 의견을 올린 것이고, 두막루 문서에는 제 개인 의견은 올린 게 없고, 그냥 확인 가능한 출처에 나오는 말만 편집하여 올렸습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목된다'는 말에 대해서는 절대 '지지한다' 또는 '동의한다'는 말로 잘못 알고 있지 않습니다. 그 점은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00:34 (KST)
아니오. 말씀은 이렇게 하시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위의 글도 그렇고, 두막루의 현재 문서도 그렇고 주목된다는 표현을 지극히 편협하게 사용하고 계십니다. 엄연히 중립성 위반입니다.--Xakyntos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00:39 (KST)
거친 말 솜씨는 여전하군요. "주목을 끌고 있다"는 표현은 제가 쓴 말이 아니고 그냥 조법종 단행본 책에 있는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니까 저에게 따지지 말고, 그 책을 쓴 사람에게 항의해 주세요. 중립성 위반은 아니죠.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00:46 (KST)

다른 예를 먼저 들어 봅니다. 현대 물리학의 표준모형기본입자질량이 부여되는 메커니즘에 히그스 보손이 관여한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제야 가설로 설정되었던 히그스 보손과 동일한 특징을 보이는 물질을 발견한 것 같다고 "추정"되고 있으니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설입니다. 그러나, 물리학계에서 이렇게 추정하여 가설을 세우는 것은 당연히 학계 내에서 여러 근거를 "검토한 결과"이겠지요.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지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학계에서 "추정된다"라고 표현하면, 여러 가지 근거를 검토하여 그럴 것이라 예상하나 아직 명확한 근거를 확보하지는 못하였다라는 의미입니다. 이제 두막루의 경우를 보죠. 두막루를 세운 세력은 스스로 부여를 계승하였다고 하나 그 실재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백산학회 등이 주장하는 새로운 학설도 학계에서는 유보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논의는 오히려 한국계가 아닐 수 있다고 "추정"합니다. 이제 양쪽을 공평히 본다면, 한 쪽은 추정일 뿐이라 폄홰하고 한쪽은 논문이 발표되었으니 "신뢰할만한 학설"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몇 번을 다시 보아도 분명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제 이 토론은 서로 할 말씀은 다 나온 것 같으니 이쯤하였으면 하는데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려 토론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은 현재 백산학회와 동북아재단 등이 재기한 두막루의 부여 계승설은 학계의 넓은 지지를 받지 못한 상태이므로 기존의 추정된 내용과 새로운 학설은 최소한 둘 다 가설일 뿐입니다. 다시 한 번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학계가 진위의 판정을 위해 연구 결과를 좀 더 쌓아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으니, 위키백과도 학계의 연구 성과가 나오면 그 때 그 내용을 반영하면 됩니다. 지금으로써는 새로운 학설이 보다 믿을 만한 것이라 서술할 수 없습니다. 같은 말씀을 여러 번 드리려니 좀 지치네요. -- Jjw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02:01 (KST)

저도 Jjw 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학술 논문, 그리고 학자라는 사람들은 그렇게 허투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학술적인 글에서 어떠한 연구 주제가 정말로 주목된다면 결코 두루뭉술하게 어떠한 언급도 없이 주목되고 있다라고만 쓰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저 흥미롭다는 반응일 뿐입니다. 정말 주목할만한 주제면 해당 주제가 누구에게 주목되고 있고 어떻게 연구되고 있으며 어떠한 주장이 있는지를 서술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것이 바로 연구사 검토라고 하는 것입니다. 학술 논문을 작성하는데 있어서 연구사 검토는 기초 중에 기초입니다. 그냥 특정 주제의 논문과 저서를 그냥 저자-제목-출처만 잔뜩 모아 놓은 책이 발간될 정도입니다. 하다못해 도서관에 가서 연구논저목록이라는 책을 찾아 보십시오.
이런 것을 알고 나면 아사달 님의 편집은 명백하게 진의를 왜곡하여 서술한 위험천만한 물건으로 판단될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주목된다는 말을 과대해석하고 있으니까요. 이것을 중립성 위반이라고 하지 않으면 대체 어떤 것이 중립성 위반입니까?--Xakyntos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15:40 (KST)
추가합니다. 위키백과는 저작권에 민감한 매채입니다. 아사달 님께서는 해당 책의 문장을 그대로 옮김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실지 모르겠으나, 이는 명백한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 사항으로 용납될 수 없습니다. 해당 책의 저자가 허락한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인용의 형태를 띄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형태의 편집은 불가합니다. 그러므로 위 사항의 요소를 첨가하여 가능한 중립적으로 내용을 편집·요약하여 서술하도록 하겠습니다. 해당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일단 먼저 여기서 토론을 거쳐주십시오. 적어도 저작권 위반된 문장이 노출되는 것보다는 백배 나을테니 말입니다.--Xakyntos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15:45 (KST)

두막루와 한-몽 국가연합[편집]

혹시 '한-몽 국가연합'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노무현 정부 때 나온 국가 전략 중 하나인 것 같은데, 한국과 몽골이 서로 국가연합을 통해 윈윈하자는 전략으로 알고 있습니다. 몽골의 광대한 영토와 지하자원 + 한국의 우수한 자본과 기술 = "한-몽 국가연합"으로 요약할 수 있겠는데요. 실제로 국가를 합치자는 뜻은 아닌 것 같고, 동남아국가연합처럼 서로 긴밀히 교류하자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 때 한국 측과 몽골 측이 서로 만나서 두막루에 대해서 토론하면 재미 있을 것 같습니다. 두막루가 실위 계통이라고 보면, 몽골 사람들이 자기 나라라고 주장할테고, 두막루가 부여 계통이라고 보면, 한국 사람들이 자기 나라라고 주장할테니, 한국과 몽골의 역사학자들이 만나서 서로 토론하기에 딱 좋은 주제인 것 같습니다. 물론 중국학자들은 속지주의에 따라서 두막루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겠지만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00:49 (KST)

학계에서야 어찌 추진될런지 모르겠습니다만, 본 문서의 토론과는 관련이 없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현재 주어진 출처만을 가지고 토론할 수 밖에요. -- Jjw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01:49 (KST)

중국어 위키백과에 나오는 두막루[편집]

중국어 위키백과에 나오는 두막루 관련 내용입니다.

  • 豆莫婁,6至8世纪生活在嫩江与烏裕尔河的扶餘遗民。豆莫婁操扶余语系。

---> 두막루는 6세기~8세기경 부여 유민이 세운 나라이고, 언어는 부여어계에 속한다.

  • 歴史 : 高句丽滅扶余后一部分北扶余人来到这里生活,渤海国时置铁利府,在金代后不再有人提及他们。

---> 역사 : 고구려가 부여를 멸한 후에 일부 북부여인들이 세웠고, 발해 때 철리부에 속했다.

  • 習俗 : 大致上保留了扶余遗俗。

---> 습속은 대체로 부여와 비슷했다.

  • 参考资料 : 傳朗云, 楊楊, 《東北民族史略》, 吉林人民出版社, 1933.

---> 참고자료 : 전랑운, 양양, 《동북민족사략》, 길림인민출판사, 1933.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도 두막루를 부여를 계승한 나라로 파악하고 있군요. 실위(=몽골) 계통으로는 보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언어판 위키백과가 신뢰할 수 있는 2차 출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언어판에서 인용한 역사학계의 책(즉, 전랑운/양양, 동북민족사략, 1933년 책)에서는 두막루를 부여를 계승한 나라로 본 것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참고하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02:16 (KST)

중국어 위키백과에 나왔다고 갑자기 공신력이 높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13일 (금) 03:27 (KST)
위키백과는 3차 자료이므로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 위키백과가 인용한 중국 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주목된다는 말입니다. 1933년에 이미 중국 학자들이 두막루실위가 아니라 부여계 국가로 보고 연구를 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10:19 (KST)
이미 말씀드렸던 것과 비슷하겠습니다만, 해당 책들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부합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론적으로 중국이 두막루 같은 국가들마저 예맥 계통으로 보는 이유를 순진하게 믿는 것보다 먼저 의심해 보아야 한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적어도 대다수의 한국사학계에서는 해당 책을 크게 신뢰하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위험한 행동입니다.--Xakyntos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16:05 (KST)
1993년에 발간된 중국책에서 두막루를 부여계 국가로 본 것을 동북공정과 연결시키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습니다. 이 때는 청나라 말기 또는 만주국이 있던 시대였고, 중국의 동북공정은 현대 중국에서 시작한 것인데 그 때 연구서적을 무슨 동북공정으로 연결시키려는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동북공정에 연결시키려면, 두막루는 만주계 국가라고 해야 할텐데, 오히려 부여계 국가라고 해서 한국 측에 유리한 해석을 해 줄 필요가 없을텐데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16:40 (KST)
1930년대에 출간되었다면 그 주장을 현대의 역사 연구에 그대로 활용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요. 그리고, 《동북민족사략》은 1933년이 아닌 1983년에 출간된 듯합니다. jtm71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18:48 (KST)

Xakyntos 님 편집의 문제점[편집]

Xakyntos 님이 제가 써 둔 마지막 상태에서 상당히 많은 편집을 했더군요. Xakyntos 님의 편집의 문제점은 많지만, 크게 두 가지 점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지는 않고 삭제만 한다는 점이고, 둘째는 자신의 주관적 생각을 바탕으로 중립적이지 않은 해설을 붙인다는 점입니다.

1. 내용 추가는 없고 삭제만 한다는 점

두막루 문서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원래 15,165바이트이던 문서를 12,269바이트로 줄여 놓았습다. 7월 13일 오후 4시를 전후하여 총 5번을 편집했는데, 5번 모두 새로 추가된 내용은 없고 전부 기존 문서 내용을 삭제한 것들뿐입니다. 새롭게 추가된 내용이 없는 이유는 본인이 이 문서에 대해 새로운 연구나 조사를 한 적이 없고 새로운 출처를 발견하거나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냥 다른 사람이 제시한 자료, 출처, 내용을 읽어보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만 삭제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은 편집이고 문서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편집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Xakyntos 님의 해박한 역사 지식에 기대를 걸고 있었으나, 제가 제시한 출처와 자료 이상으로 새롭게 제시한 자료가 전혀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예전과 달리 이번에는 저를 실망시키는군요. 게다가 원래 제시되어 있던, 조법종 단행본 책과 만주원류고 책은 아예 주석에서 삭제해 버렸더군요. 두막루에 대한 자료 자체가 희귀한데, 굳이 두 자료를 삭제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마도 다른 책과 중복된 내용이라고 판단하여 삭제한 듯한데, 두막루 문서처럼 자료 자체가 매우 희귀한 경우에는 비록 비슷한 내용이라고 할지라도 여러 책에서 연구, 인용되었다는 사실 자체도 중요할 수 있기 때문에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2. 중립적이지 않은 주관적 해설을 붙인다는 점

그나마 본인이 조금 추가한 내용 중에서 객관적 사실로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고, 대부분 자신의 주관적 판단과 해석을 자기 나름대로 써 둔 것에 불과합니다. 제가 원래 써 두었던 글은 출처에 있는 내용 그대로 인용하거나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한 것들인데, Xakyntos 님이 쓴 글은 너무 주관적이고 사실과 다르게 해석한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그런 주관적 해석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는 비록 토론 시에는 제 나름대로 주관적인 용어나 해석을 많이 섞어서 표현하지만, 실제 문서에 글을 쓸 때는 절대 그렇게 쓰지 않습니다. 저는 말 그대로 토론에 쓰는 글과 위키백과의 문서에 쓰는 글의 문체가 많이 다릅니다. 그런데 Xakyntos 님은 지금 토론에서 쓰는 글인지, 아니면 객관적 문서에 쓰는 글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부정확한 내용을 많이 섞어 두었습니다. 이런 서술은 매우 곤란합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종래 한국 역사 학계의 견해는 두막루가 몽골과 같은 북방민족 계통의 국가라고 추정하였으나, 최근 두막루가 부여계 국가라는 새로운 학설이 제기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사학계에서는 두막루가 몽골과 같은 북방민족 계통의 국가라고 추정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두막루가 부여계 국가라는 새로운 학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위 두 문장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줍니다. 첫번째 문장은 제가 조범종 책에 있는 문장을 그대로 뽑아와서 쓴 것이고, 두번째 문장은 Xakyntos 님이 별다른 출처 없이 자기 마음대로 편집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사학계에서는..." ---> 이 문장은 출처가 없습니다. "최근에는...제기되기도 했다." --> 마치 소수설인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 주관적으로 서술할 것 같으면, 저는 제 주관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썼을 것입니다.

종래 한국 역사 학계의 일부 견해는 두막루가 몽골과 같은 북방민족 계통의 국가가 아닐까 하고 막연한 추정을 하였으나, 최근 두막루가 부여계 국가라는 체계적인 연구결과가 제시되어 기존 주장의 잘못이 입증되었다.

위 글이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 주관적 해석이 들어간 문장입니다. 제 마음 같아서는 위와 같이 적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과 달리 위키백과는 중립적이어야 하고, 확인 가능한 출처가 있어야 하므로, 저런 주관적 표현을 위키백과 문서에는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대신 조법종 단행본 책에 나온 표현과 문장 그대로 요약하여 서술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객관적 표현을 Xakyntos 님이 아무런 증명도, 출처도 제시하지 못한 채, 개인의 입맛에 맛도록 수정하여, 전혀 다른 느낌이 나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게 과연 중립적인 편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건국 주체 부분도 아주 주관적으로 수정되어 버렸습니다. 조법종 책을 보면, 종래의 견해는 상대적으로 몇 줄 안 되고, 새롭게 제시된 유태용 등의 연구결과는 여러 줄이 나옵니다. 즉, 총 3가지 견해 중에서 종래 견해 2개는 묶어서 간략하게 서술했고, 새롭게 제시된 부여 계승설에 대해서는 그 내용까지 매우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Xakyntos 님이 편집한 것은 종래 견해는(제가 보기에 잘못된 견해인데) 분량을 늘려서 많이 서술하고, 새로운 견해는 분량을 대폭 줄여서 매우 축소되었습니다. 사실 종래의 견해라는게 연구자 성명도 없고, 연구한 사람 논문 제목도 없는데 반해, 새로운 학설은 성명도 있고 논문 제목과 심지어 페이지 수까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종래의 견해가 틀렸다고 생각하고 있고, 새로운 학설에 의해 '논파'당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제 개인 생각이 맞는지 안 맞는지 확실하지 않으니까, 그런 서술을 해 달라는 뜻은 아니지만, 적어도 조법종 책에 나온 정도의 '비중'은 유지해야 합니다. 솔직히 새로운 학설이 체계적인 연구 논문의 형태로 제시되면, 기존 견해(그것도 막연한 추측에 불과한 견해)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됩니다. 중국 측에서도 두막루를 부여계 국가로 보는 연구결과가 제시되어 있는데, 왜 유독 한국에서 Xakyntos 님이 종래 견해를 주장하는 연구자 성명과 논문 제목도 제시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종래의 견해를 이처럼 비중있게 다루는지 모르겠습니다. 구시대의 잘못된 사고 방식에 젖어서 새로운 학설에 눈을 감고 있는 어리석은 행위가 아닌지 심히 우려가 됩니다.

다른 사례도 하나 더 들겠습니다. 두막루의 언어 부분에 서술한 것은 명백히 근거 없는 주관적 해석입니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기록을 토대로 두막루가 선비족 계통의 민족으로 보기도 한다." --> 이 문장에 대한 출처라도 있나요? 이렇게 주장한 연구자 이름이나 연구 논문 제목이라도 제시할 수 있나요? 사실 이 문장은 제가 토론란에서 했던 말과 비슷합니다. 두막루를 실위 계통으로 보는 근거는 전혀 없으며, 만약 실위 계통으로 굳이 보려고 한다면, 아마도 이 언어의 유사성 때문이 아닐까 하는 순전히 제 개인의 추측이었습니다. 출처가 없는 개인의 추측이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그런 말은 제가 토론란에서만 내뱉었지, 실제 문서에는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Xakyntos 님은 그러한 제 추측성 토론 내용을 바탕으로 마치 그것이 실제 사실인양 해당 '문서'에 써 버리는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 추측은 제가 한 건데, 저는 그 추측에 대해서 근거를 제시할 수 없으니, 제 추측을 믿지 말고, Xakyntos 님이 확인 가능한 출처를 제시해 주세요. 그런 주장을 한 학자 이름과 논문/책 제목을 제시해 주세요. 만약 확인 가능한 출처를 제시할 수 없다면, 해당 문장을 삭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타 자잘하게 더 지적할 것이 있으나, 문서 분량이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요지는 두 가지입니다. Xakyntos 님이 전혀 새로운 출처는 제시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어보다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아무런 근거나 출처도 없이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문서를 자기 마음대로 바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22:04 (KST)

덧붙이는 말 : 써 놓고 보니 좀 세게(!) 썼군요. 제 말의 취지는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사소한 지적 한 가지 하겠습니다. 두막루 문서의 "문화와 언어" 중 마지막 문장에 위키 주석 태그 부분에 오류가 있습니다. "<ref>유태용"이라고 써야 하는데, 괄호 하나 없이 그냥 "ref>유태용"으로 써서 오류가 생기고 페이지가 깨어졌습니다. 직접 수정해 주세요. 그리고, 감사 드릴 것도 하나 있군요. jtm71 님이 전랑운/양양 책은 1933인지 아니면 1983인지 문제 제기를 해 주셨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런 지적은 매우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기여라고 봅니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22:15 (KST)
참고로 제가 내일 아침에 아이들을 데리고 베이징으로 여름 휴가를 갑니다. 며칠 동안 답변이 없더라도 양해해 주세요. 다녀와서 바로 이 글 읽어보고 의견 제시하겠습니다. --아사달(Asadal)
1. 삭제한 부분에 대하여
1-1. 문서의 첫머리 부분은 말 그대로 개요입니다. 간단하게 핵심만 적는 공간입니다. 해당 공간에 이미 하단에 상세하게 서술될 내용을 쓸데없이 길게 쓸 이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애초에 본문을 보면 알겠지만 410년이라는 연도 자체도 확실하지 않은, 일부에서만 추정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물론 부여가 건너가서 건국되었다는 것도 현재로써는 일부 의견일 뿐입니다. 대체 문서의 개요에 최소한 3가지의 다른 사실 가운데 하나만 올려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개요는 해당 문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사항만 최대한 간결하게 적는 공간입니다. 그러므로 애초부터 아사달 님의 편집은 적합하지도 않은 상태였습니다.
1-2. 두막루 문서에서 예맥족이 무엇인지 서술할 이유가 없습니다. 해당 내용은 두막루를 이해하는데 어떠한 가치도 없는 내용입니다. 게다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다시피, 예맥족이라는 것 자체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실입니다. 확정되지도 않은 사실을 부연설명하기 위해 문서의 분량을 늘려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1-3. 만주원류고의 내용은 위서의 내용을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 한 내용입니다. 학문의 세계에서 출처라는 것은 최초의 출처하나만 제기하면 끝입니다. 애초에 다른 부분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똑같은 내용이 나오는 출처를 두 개씩 서술할 이유는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학술 논문에서 출처를 다루는 기초입니다. 이야기한국고대사를 출처에서 삭제한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해당 내용은 명백하게 앞서 발간된 책인 《고조선 단군 부여》의 해당 챕터를 거의 복사 붙여넣기 한 수준의 물건입니다. 저자도 같습니다. 같은 내용의 출처를 두 개씩 적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 앞에서 말했듯이 두 개를 적어서는 안됩니다. 최초의 출처 하나만 적으면 끝나는 일입니다.
1-4. 연구사 검토는 기본적으로 연구가 진행된 순서에 따라 서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선행한 연구인 부여계통 부정설을 먼저 싣는 것이 기본입니다. 애초에 아사달 님의 편집은 본인이 선호하는 것을 더 위에, 더 상세하게 적는 명백한 비중립적인 내용이었습니다. 귀하의 비중립성은 눈에 보이지 않으신가 봅니다.
1-5. 이미 위에서 말했던 것이지만, 해당 책의 원문을 인용의 형식이 아닌 본문으로 적는 것은 저작권 위반입니다. 그러므로 편집은 불가피합니다.
2. 중립성에 대하여
2-1. 이미 앞서의 토론에서 Jjw 님이나 여타 다른 토론자들께서는 종래 한국 역사 학계라는 표현이 일반적인 한국사학계라는 것임에 동의한 바 있습니다. 이것이 출처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사달 님 혼자 뿐입니다. ‘종래 - 이전부터 지금까지 (표준국어대사전)’이전부터 지금까지 쭉 한국 역사 학계에서 그렇게 생각한 것이 일반적인 사학계의 의견이 아니면 대체 무엇인 사학계의 의견입니까?
2-2. 이미 앞선 토론에서도 여러 토론자들께서 동의한 사항입니다만, 부여계통 설은 소수설이 맞습니다. 최근에야 비로소 제기된 소수설입니다. 소수설을 소수설의 형태로 서술하는 것이 대체 왜 문제가 됩니까? 소수설이 아님을 증명하시지 않는 한 제 편집이 문제가 될 이유는 없습니다. 아사달 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소수설과 환단고기류의 유사역사는 다른 개념입니다. 그런데 아사달 님은 아무리 보아도 소수설을 유사역사와 같이 취급되는 것이라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유사역사는 심지어 위키백과 내부에서도 이러이러한 주장이 있지만 한국사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서술하여 소수설과 분명한 차등을 두고 있습니다. 소수설은 단지 현재 논란의 대상이고 그 중에서도 최근 제기되었거나 동의하는 학자가 적은 주장일 뿐, 인정되지 않는 주장이 아닙니다. 아사달 님께서 이런 구분을 본인께서 제대로 인식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2-3. 건국 주체에 대한 부분 및 언어에 대한 부분에서 아사달 님께서는 감히 출처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우행을 범하셨습니다. 박경철의 해당 논고(조법종의 논고가 아님)를 다시 제대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위서의 두막루조를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까놓고 말해서 해당 부분의 내용의 분량만 따져보아도 두 가지 주장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또한 언어에 대한 주장 역시 위서 실위전에 실린 기록을 분명한 출처로 제시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도 명백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대체 어디에 출처가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솔직히 말씀해 보십시오. 박경철의 해당 논고를 읽기는 하셨습니까? 그냥 토론 중에 제기된 부분 발췌만 보신 것 아니십니까? 해당 논고에는 언어 부분에 대한 근거가 분명히 제시되어 있는데 말이죠. 논고조차 제대로 읽지 않고서 감히 출처를 논하십니까?
3. 총평
안그래도 이 문제 때문에 박경철 교수의 부여사 논고까지 찾아보던 참이었습니다. 이야기한국고대사나 고조선단군부여의 두 책의 내용과 거의 같고, 오히려 좀 더 보충된 사실이 실려 있는 박경철의 논고를 찾았으니 그것을 토대로 좀 더 상세하게 서술할 것입니다. 물론 해당 논고는 기본적으로 한국사학계의 일반적인 입장에 대해서 충분히 상술되고 있으니 더 이상의 왈가왈부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12년 7월 14일 (토) 15:39 (KST)
참고로 해당 박경철의 논고는 앞서 말한 두 책의 내용과 거의 흡사하며, 오히려 훨씬 보강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해당 논고에서 새로운 주장으로 소개되는 김정배의 논고는 분량 상으로 7줄(1/3페이지 정도), 기존의 학설에 대한 정리 및 소개는 한페이지 반에 해당하는 분량입니다. 애초에 분량 면에서도, 중요도 면에서도 명백하게 차등을 두어 서술하고 있습니다.--Xakyntos (토론) 2012년 7월 14일 (토) 15:46 (KST)
박경철의 논고는 1992년 논문을 말씀하시는게 맞죠? 그 논문은 이미 20년 전 예전 논문이고 그 때 정리한 3명(노태돈, 박경철, 김정배)의 견해는 더 이상 유용하지 않습니다. 그 이후 연구(즉, 2004년 유태용 논문)에 의해 20년 전 학계 의견은 철저히 논파를 당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1일 (토) 16:59 (KST)

두분이서 일기토를 벌이시는데 끼어들어 뭣하지만... 왠지 Xakyntos님은 아사달 님이 편집했다는 이유만으로 흥분하여 공격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Xakyntos님이 싫어하신다고 자기소개란에 적어두신 환빠를 아사달님으로 비정하고 물어뜯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말이 좀 쎈 것 같은데 Xakyntos님의 언행으로 보아 이정도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넘기시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 발해는 멸망후 오랜 세월동안 고려,조선에서 명확히 계승성을 표방하지 않았었다가 유득공이 화제를 던진후에야 서서히 한민족사로서의 계승을 인식. 더욱이 요 몇년 사이 중국의 동북공정 덕분에 한국인들에게 당연한 한국사로서 자리잡게 되었지요. 두막루도 그런 경우일 확률이 높은게 아닐까 싶은게 여기를 살펴본 제 소견입니다. 블루베리 (토론) 2012년 7월 15일 (일) 18:38 (KST)

의견 위키백과 일반 문서의 토론란에서는 '편집된 내용을 비평하더라도 그 편집을 한 사람은 비평하지 않'습니다. (애매한 부분도 있고 지키기도 쉽지 않겠지만, 서로 간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언급하였습니다.) 위키백과:인신 공격을 참조하세요. jtm71 (토론) 2012년 7월 15일 (일) 20:25 (KST)

일단 제 말투가 좀 격한 점은 인정합니다. 비꼬기 같은 것도 토론의 기술의 하나로 공부(?)하다시피 한지라 그 버릇을 고치기가 쉽지가 않네요. 다만, Jtm71님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저는 아사달 님의 편집 행위의 문제점을 비평하는 것이지 아사달 님 자체를 비평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행위를 놓고 하는 비판이죠. 애초에 행위 자체가 없었다면 비판할 이유도 없으니까요. 물론 말투가 이모양이라 그렇게 느끼실 수 있는 것 같아서 참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_-;; 그리고 아사달 님을 소위 환빠와 같은 부류라고 여기고 있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아사달 님께서 자칫 잘못하여 그런 방향으로 빠져들지나 않을지 노심초사 걱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ㅡ,.ㅡ;;;;;;;
제 말투와 토론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시는 점은 당연한 일이며 제가 고쳐야 할 점입니다. 하지만 같은 측면에서 아사달 님의 편집 형태에 대한 지적도 함께 공반되어야 옳지 않을까 하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 아사달 님께서 많은 관심을 가지시고 다양한 부분에 대해서 위키백과에 풍성하게 기여하시는 점은 누구나 환영할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관심이 특정한 방향에만 지나치게 치우쳐서 중립성을 해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니 문제겠지요. 가끔은 좀 날선 반응도 나오긴 하지만, 어쨌든 그와 같은 중립성 관련 지적에 대한 아사달 님의 과민한 반응도 분명 문제입니다. 금번 토론만 해도 그렇지요. 수많은 출처와 합리적인 의견에도 아사달 님께서는 계속 했던 말씀만 반복하시면서 요지부동이셨죠. 이에 대한 지적도 함게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휴가에서 돌아오실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서 아사달 님의 성찰도 함께 있었으면 좋겠네요.--Xakyntos (토론) 2012년 7월 16일 (월) 00:19 (KST)

국립중앙도서관에서[편집]

국립중앙도서관에 위키백과:함께 편집하기 행사를 갖기 위해 간 김에 앞서 말씀드렸던 2003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한국사》 4권, 201쪽를 확인하고자 하였으나, 조금 황당한 사건으로 그럴 수 없었습니다. 해당 출처는 정부간행물실에 소장되어 외부 반입이 불가한 책인데, 총 52권의 《한국사》가운데 해당부분인 딱 4권만 행방이 묘연하더라구요. 혹시 누군가 읽고서 잘못 꽂아두었을까 싶어 사서와 함께 3시간을 서고 전체를 뒤졌는데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걸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한다죠.(그저 농담입니다) 다른 도서관의 비치 현황을 파악하여 빠른 시일 내에 내용을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실재 서적을 확인하여보니 발간년도가 2003년도가 아니라 1998년이기에 이점은 지금 말씀드립니다. -- Jjw (토론) 2012년 7월 16일 (월) 14:38 (KST)

한편 5세기 말 동만주 삼림지대에 거주하던 靺鞨의 전신인 勿吉이 흥기하여 고구려와 상쟁을 벌이고, 동류 송화강을 거슬러 그 세력을 뻗쳐나갔다. 이에 따라 부여는 그 침략을 받게 되고, 부여 왕실은 고구려 내지로 옮겨지게 되었다. 드디어 부여는 494년에 국왕과 그 일족이 고구려에 망명·항복해 옴으로써 그 여맥마저 완전히 꺼져 버리고 말았다.[1] 이때 멸망한 부여는 고구려의 보호 아래에 있던 吉林市 일대의 原부여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된다. 고구려와 魏·晋시기에 크게 성장한 선비 모용씨의 침입을 받아 동쪽으로 이동하였던 부여족의 일파가 건국한 부여만이 고구려의 보호 아래 5세기까지 존속하였다. 그러나 494년에 이르러 물길의 흥기로 그 왕족이 고구려에 투항함으로써 만주지역의 부여는 소멸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부여의 주민집단이 고구려에 통합되는 과정에서 일단의 잔류세력이 서북쪽으로 옮겨가 豆莫婁國을 형성하였다.[2][3][4] 《위서》 열전 豆莫婁傳은 두막루가 舊부여임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위서》 두막루전은 “두막루국은 물길 북쪽 천 리에 있는데… 옛날 북부여이다”라는 내용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삼국지》 부여조의 기사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그런데 《신당서》 권 220, 열전 145 流鬼傳에는 “達末婁는… 북부여의 후예이다. 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그 유민이 那河를 건너 그 곳에 살았다”고 하여 달말루, 즉 두막루국에 관하여 아주 간결하게 서술되어 있다. 여기서 나하는 대다수의 학자들이 오늘의 눈강과 제1송화강 합류점 일원으로 비정하여, 이 강을 건넌 부여인들이 호눈평원 또는 송눈평원 일대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5][6][7]
  1. 《三國史記》 권 19, 高句麗本紀 7, 文咨明王 3년 2월.
  2. 金貞培, 〈豆莫婁國 硏究〉(《國史館論叢》 29, 1992), 71 ~ 80쪽.
  3. 魏國忠, 〈豆莫婁國考〉(《學習與探索》 3期, 1982), 137쪽.
  4. 張博泉, 〈魏書豆莫婁傳中的機個問題〉(《黑龍江文物叢刊》 2期, 1982).
  5. 李健才, 《東北史地考略》(吉林文史出版社, 1986), 38쪽.
  6. 董萬侖, 《東北史綱要》(黑龍江人民出版社, 1987), 108쪽.
  7. 한편 두막루인들은 점점 주변의 실위나 물길 등의 영향을 받아 8세기경에 이르러 그 이름을 잃어 버리고 부여국의 존재 또한 이 때서야 사라진다고 보기도 한다(金貞培, 위의 글, 79 ~ 80쪽).

- 宋鎬晸, 〈부여의 성장과 대외관계〉(《한국사》 4, 2003), 201쪽.

--천리주단기 2012년 7월 17일 (화) 13:57 (KST)

천리주단기 님은 결정적 순간에 나타나서 결정적 발언을 하는군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한국사 책에 두막루가 언급되어 있고, 부여인들이 나하를 건너가서 세운 나라라고 명백하게 적혀 있군요. 두막루를 한국사의 일부로 보니까 '한국사' 책에 서술했을 것이고, 두막루를 부여를 계승한 나라로 보니까 '부여편'에 서술했을 것입니다. 앞으로 더 이상 제 주장, 제 편집에 대해서 "삼국사기에도 안 나오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거나 혹은 "환단고기 류의 주장"이라거나 "국사 책에도 안 나오는 주장"이라거나 "독자 연구"라거나 하는 비판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졌군요. 두막루가 삼국사기에는 안 나와도 중국 위서와 신당서에는 나오고, 환단고기와는 원래부터 아무런 상관이 없었고, 또한 비록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안 나와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한국사 책에는 두막루가 나오는군요. 두막루를 부여계 국가로 보는 견해가 학계의 소수설이라고 Xakyntos 님과 Jjw 님이 말씀하였으나, 위 한국사 책 내용만 보고 판단할 경우에는, 두막루가 부여를 계승한 국가라는 제 주장(=사실은 유태용, 김정배의 주장)이 오히려 정설(!)이 되는게 아닐까요? 게다가 저 부분을 쓴 '송호정' 교수는 학계에서 정통(?)으로 인정받는 사람인데, 심지어 송호정 교수에 대해서는 일각에서 이병도 등 식민사학자의 정통(?) 후계자라고 비판을 받기도 하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쓴 글에서조차 두막루가 부여를 계승한 나라라고 썼으니, 앞으로 더 이상 이 문제로 논란이 없기를 바랍니다. 비록 두막루가 한국사 틀에 포함될만큼 비중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두막루에 대해서 부여를 계승한 국가이고 따라서 한국사의 일부분이라고 보는 주장에 대해서는 더 이상 "유사 역사학"이라거나 "독자 연구"라거나 혹은 "소수설"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9일 (목) 23:18 (KST)
그 인물이 그러하게 주장한 것이지, 그것이 학계의 공통된 의견은 아니므로, 다른 것은 몰라도 두막루가 부여를 계승했다, 라고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주장이니까요. --가람 (논의) 2012년 7월 20일 (금) 19:33 (KST)
가람 님, "그 인물 = 송호정" 교수에 대해서 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송호정 교수는 소위 식민사학의 태두인 1세대(이병도)-2세대(노태돈)-3세대(송호정)으로 이어진다고 일각에서 심하게 비판을 받는 사람입니다. 이런 교수가 쓴 글에서도 두막루를 부여 계통으로 보고 있고, 대한민국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하는 <한국사> 책에 그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학계에서의 논의는 이미 끝난 겁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가 여러 갈래가 있겠으나, 크게 식민사관을 계승한 강단 사학(=정통 사학?)과 윤내현 교수 등 비주류(=소수?) 사학으로 나뉘어 있는 것은 가람 님도 익히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저 식민사관 혹은 반도사관의 마지막 버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송호정 교수마저 두막루를 부여계 국가로 보게 됨으로써, 기존 노태돈 교수 등의 반도사관은 완전히 무너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1일 (토) 16:50 (KST)
아사달 님께서 아주 충격적이고 위험천만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소위 식민사관인지 반도사관인지 하는 말씀 자체가 아사달 님께서도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고 있는 유사역사학 계열의 주장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정신나간 학자라고 해도 식민사학을 계승하는 미친 짓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에게 입이 거칠다 말씀하셨습니다만, 아사달 님께서 위의 글처럼 특정한 학자들을 식민사학이라 부르는 것이 훨씬 더 거칠고 무시무시한 말씀이십니다. 누군가에게 입이 거칠다 말씀하시기 전에 본인의 편견과 편견에서 비롯된 폭언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덧붙여, 소위 반도사관이 무엇인지는 해당 항목이라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식으로 반도사관을 입에 올린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열등감의 소치입니다. 아사달 님께서 이러한 유사역사학의 비정상적인 열등감 수준에까지 전락한 것은 아니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아사달 님께서 모르고 사용하시는 그런 용어 하나하나에 바로 제가 일전에 말씀드린 파시즘의 씨앗이 살아 숨쉬는 것입니다.--Xakyntos (토론) 2012년 7월 21일 (토) 17:13 (KST)

두막루에 관한 몇 가지 질문[편집]

Xakyntos 님에게 질문을 드립니다.

1. 박경철 교수의 논문을 다시 찾아서 읽어보았는데, 어느 부분에 두막루의 언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69~71쪽이라고 되어 있으나, 그 부분을 아무리 읽어봐도 "두막루의 언어가 고막해, 거란, 실위와 같았다"는 '위서'의 기록만 나올 뿐이지, 다음 문장의 근거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기록을 토대로 두막루가 선비족 계통의 민족으로 보기도 한다.

위 문장은 Xakyntos 님이 쓴 문장인데, 대체 학계 어느 논문에서 두막루를 선비족 계통의 민족으로 보고 있나요? 박경철 논문 69~71쪽에는 두막루에 대한 위서의 기록은 인용하고 있으나, 두막루의 언어를 근거로 두막루를 선비족 계통으로 보는 문장은 나오지 않습니다.

2. 비단 언어뿐 아니라 여러 설명에서 두막루를 선비족과 연관시키는 표현이 많은데, 어떤 근거로 두막루를 선비족 계통으로 보나요? 제가 읽은 논문에서는 두막루를 선비족으로 직접적으로 명확하게 묘사한 문장을 찾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두막루를 몽골계 민족으로 보는 노태돈 교수의 논문을 소개하는 문장은 있으나, 두막루를 선비족 계통으로 명시적으로 서술한 문장은 찾지 못했습니다. 실위=선비족인가요? 실위는 몽골족의 조상 아닌가요? 두막루=실위=선비족으로 서술한 해당 논문(또는 단행본)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9일 (목) 23:42 (KST)

3. 연로하신 노태돈 교수가 20여 년 전에 두막루에 대해서 아주 짤막하게 언급한 내용을 근거로 두막루를 몽골계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따르지 않나요? 그 후 박경철 교수가 노태돈 교수와 다른 견해를 내 놓았죠. 그리고 김정배 교수가 "두막루는 부여를 계승한 나라"라고 독자적인 논문을 썼습니다. 그래서 박경철 교수가 이상 3명(노태돈, 박경철, 김정배)의 견해를 정리하여, 마치 3가지 다른 견해가 있는 것처럼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노태돈 교수와 박경철 교수의 글은 두막루에 대한 논문이 아니라 다른 주제의 글에서 두막루를 함께 간단히 다룬 정도에 불과합니다. 두막루 자체만을 주제로 단일 논문을 쓴 최초의 연구는 김정배 논문인 것 같군요. 그리고 사람들이 이 김정배 논문에 대해서 "주목을 끌고 있다" 혹은 "귀추가 주목된다"라고 평가한 것이구요. 이 상태로 각종 단행본 서적과 한국사 책 등에 두막루에 대한 글이 실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2004년(비교적 최근이죠)에 유태용 논문이 나왔습니다. 말 그대로 오직 '두막루' 하나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쓴 논문입니다. 그 주된 내용은 김정배 논문과 같고(즉, 두막루는 부여를 계승한 한국계 국가), 세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김정배 논문보다 훨씬 더 자세히 두막루를 파헤쳤습니다. 이게 최근까지의 상황입니다. 따라서 기존 연로하신 노태돈 교수님과 그 후 박경철 교수 글은 이미 "예전 연구"로 전락한 것 같고 (더 이상 인용도 안 되더군요), 새로운 시각에서 쓴 김정배, 유태용 논문이 두막루에 대한 '최신 학설'이자 '정설'(?)이 된 게 아닐까요? 예전에 Xakyntos 님이 저와 동이족에 대해서 토론할 때, 기억하시나요? 과거에는 중국 상나라를 동이족으로 묘사했으나, 그런 논문이 아무리 많아도 다 소용없고, 새로운 최신 학설에 의해 전부 논파 당했으므로, 최신 학설만 실어야 한다면서, 상나라를 동이족으로 본 문장을 삭제했었죠? 그 논리를 따르자면, 두막루를 몽골계로 보든 실위계로 보든 다 20년도 넘은 예전 이론에 불과하고, 젊은 연구자들이 발표한 최신 학설에 의해서 철저하게 논파(!)되었으므로, 예전 이론은 다 삭제하고, 최신 학설만을 실어야 하지 않을까요? 혹은 예전 이론은 짧게 소개하고, 최신 학설 위주로 실어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사 책을 보니, 이 최신 학설이 '소수설'이 아니라 오히려 학계의 '정설'인 것 같군요...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9일 (목) 23:56 (KST)

덧붙여 Jjw 님, '백산학회'에 대해 너무 편향적인 시각은 갖지 말아주세요. 두막루를 부여계로 보는 입장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 박경철 교수의 1992년 논문도 사실은 '백산학회'가 발행한 '백산학보'에 실린 글입니다. 게다가 중국 학자들은 두막루를 부여계로 보는 게 정설입니다. 또한 두막루를 부여계로 본 최초의 독자적인 논문인 '김정배'의 1991년 논문은 백산학회가 아니라 '국사관논총'에 실린 논문입니다. 유태용 논문은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2004년에 나왔구요. 학계의 연구 동향에 대해 좀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0일 (금) 00:06 (KST)
1.
*또 이 견해는 두막루의 언어가 고막해·거란·실위와 같다는 점에 주목, 북부여와의 관계에 대한 그들의 주장이 그대로 사실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고막해·거란·실위 등과 그 언어를 같이하는(사료C-6 참조) 몽고계종족인 두막루가 틈입하였을 가능성
보시다시피 위서 실위전을 근거로 몽고계 종족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첫 문장에서도 해당 언어 관련 기록을 토대로 북부여와의 관계를 부정하고 있죠. 다만 선비계라는 언급은 저도 지금 어디서 나온 건지 잘 모르겠네요. 이 부분은 지금 좀 당황스러운 상태입니다. 선비계와 몽골계를 제가 혼동하여 계속 서술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긴 합니다만 확인을 해봐야 겠습니다. 어쨌든 선비계라고 서술한 것은 잘못이 맞습니다. 적어도 제가 제시한 출처에서는 언급되지 않는 것이니까요.
2. 위에서 실수를 인정한 부분을 제외하고, 두막루를 선비 계통이라 서술하는 문장은 적어도 현재 두막루 문서 본문에는 없습니다. 이 부분은 아사달 님께서 착각하셨거나 토론에서 나온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그러므로 이 부분에서 직접적으로 해명해야 할 부분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참고로 해당 논문은 박경철의 논문에서 주석을 통해 모두 제시되고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3. 3번으로 지적하신 것과 위에 한국사의 내용과 연관지어서 몇말씀 드립니다. 《한국사》라는 책이 한국사의 중심을 잡는 중요한 저작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국사가 만능은 아니죠. 적어도 제가 해석하기에, 박경철의 논문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한 내용의 비중이 더 크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박경철은 직접적으로 종래의 국사학계가... 유보적인 입장을 견지해 온 바 있다라고 서술하고 있으니까요. 한국사의 언급은 한국 역사의 서술이라는 측면에서 두막루를 바라보고 서술한 것이며, 그 중에서도 김정배와 중국 학자들의 논고를 참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경철은 김정배나 중국의 논문뿐 아니라 부여사 전반에 걸친 논문을 정리하여 재인식의 시론으로 서술된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사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이 아니죠. 한국사는 학계의 동향을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단순히 내용을 서술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에 비하면 학계의 동향을 직접 언급하고 있는 논고가 더 가치가 있습니다.
뭔가 설명하기가 좀 복잡한데, 쉽게 말해서 유보적인 견해가 종래의 학계 의견이라고 직접적인 출처를 제시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위키백과에서 요구하는 출처 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출처라는 거죠. 극단적으로 말해서 《한국사》에 이렇게 써 있다는 편집은 학계의 의견과 등치할 수 없지만, 박경철의 논고는 학계의 의견과 등치할 수 있는 요건을 충족합니다. 어떤 책에 A라고 써 있다는 것은 A이다라는 표현의 근거 밖에 못되지만, 어떤 책에 ‘A가 학계의 일반적인 의견이다’라고 써 있으면 그 자체로 충분히 근거가 됩니다.
4. 그러므로 《한국사》를 근거로 두막루=옛부여라는 주장이 학계의 정설이라는 해석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극단적으로 말해서 《한국사》라는 책의 서술일 뿐, 학계의 정설임을 입증하는 근거가 아닙니다. 적어도 직접적으로 종래의 국사학계의 입장이라 서술된 것보다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습니다.
5. 덧붙이자면, 상나라 동이족설과 관련된 토론을 언급하셨는데, 이 경우는 그것과 격이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박경철의 해당 견해는 2004년, 즉 유태용의 논문이 나온 것과 비슷한 시기에 나온 《고조선·단군·부여》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유태용의 논문보다 훨씬 뒤인 2007년의 《이야기 한국 고대사》에서도 그대로 고수되고 있습니다. 논고의 시기만 놓고 보자면 2007년의 책이 훨씬 최근입니다. 적어도 김정배, 유태용의 견해가 철저하게 논파했다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엄밀히 말해 더 이상의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결론이 가능한 최선일 것 같군요.--Xakyntos (토론) 2012년 7월 20일 (금) 19:30 (KST)

두막루를 선비족으로 보는 것은 착각[편집]

두막루를 선비족 계통으로 보는 학계의 의견은 없었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Xakyntos 님이 마치 두막루가 선비족 계통인 것처럼 쓴 것은 잘못입니다. 이 점은 본인도 인정하셨듯이, Xakyntos 님의 착각(!)이 맞는 것 같습니다. 본인이 실수라고 인정하셨으니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더 큰 착각(?)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군요. "두막루를 선비 계통이라 서술하는 문장은 적어도 현재 두막루 문서 본문에는 없습니다. 이 부분은 아사달 님께서 착각하셨거나 토론에서 나온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라고 쓰셨는데, 이건 사실과 다릅니다.

1. 현재 두막루 문서에 아직도 두막루를 선비족 계통이라고 잘못 쓴 내용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두막루의 언어는 선비 계통인 실위(失韋)와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위서》 실위전에 따르면, 의 "언어는 고막해, 거란, 두막루와 같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기록을 토대로 두막루가 선비족 계통의 민족으로 보기도 한다. (주석: 박경철, 〈부여사 전개에 관한 재인식 시론〉, 《백산학보》 제40호, 백산학회, 1992년, 69~71쪽)

두막루 문서 본문에 아직도 Xakyntos 님이 잘못 쓰신 저 문장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선비 계통인 실위" ---> "이 부분이 잘못 되었습니다." 실위를 선비족 계통으로 보는 학계 논문은 제시된 적이 없습니다. 실위는 훗날 칭기즈칸의 몽골족의 조상이니까요. 또한 "학계에서는 두막루가 선비족 계통의 민족으로 보기도 한다"라고 쓴 부분도 잘못입니다. Xakyntos 님이 제시한 출처, 즉 박경철 논문의 69~71쪽에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이 점은 위에서 본인도 실수라고 인정을 했습니다. 박경철 논문에는 두막루를 선비족으로 본다는 어떤 문장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박경철 논문에 그런 주장이 있는 것처럼 두막루 문서에 버젓이 해당 글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삭제할 수도 있겠으나, 기왕이면 Xakyntos 님이 실수를 인정하셨으니 직접 삭제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 두막루 본문에 선비족 계통이라는 서술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착각하였다고 쓴 부분은 사실과 다릅니다.

위에 서술하였듯이, 현재 두막루 본문에 두막루를 선비족이라고 잘못 쓴 부분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Xakyntos 님이 착각하여 실수한 부분의 문장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제가 착각한 것이 아닙니다. 오해가 없으시기 바랍니다.

3. 학계의 연구동향을 파악하는 Xakyntos 님의 추측은 상당히 무리한 추측입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에서 두막루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국사편찬위원에서 발행한 <한국사> 책에도 두막루를 부여를 계승한 나라라고 적혀 있는데, 그걸 부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 점은 Xakyntos 님이 상당히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겁니다. 게다가 해당 부분을 작성한 사람은 서울대학교 송호정 교수인데, 이 분은 소위 식민사학의 태두인 1세대(이병도)-2세대(노태돈)-3세대(송호정)으로 이어진다고 일각에서 심하게 비판을 받는 사람입니다. 이런 교수가 쓴 글에서도 두막루를 부여 계통으로 보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하는 <한국사> 책에 그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개 위키백과 편집자인 저나 Xakyntos 님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한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박경철 논문을 자꾸 언급하고 있으나, 그것은 1992년에 백산학회에서 발행한 <백산학보>에 실린 글이고, 그 이후 연구에 의해 이미 논파를 당한 내용으로 보입니다. 특히 최근 2004년 유태용 논문에 의해 철처히 논파를 당했다고 보입니다. 비록 <이야기 한국 고대사>라든지 기타 서적에서 종래 견해와 새로운 견해를 모두 소개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정말로 일반인을 위한 교양서 정도에 불과한 책입니다. 학계의 연구논문을 우선으로 봐야 합니다. 논문을 우선으로 볼 경우, 당연히 2004년 유태용 논문에 의해 기존의 노태돈-박경철 등의 견해가 모두 부인되고, 김정배의 견해(즉, 부여 계승설)가 지지를 받게 되었으며, 그것이 새로운 학설로 굳혀진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현재 다른 반대 의견이 없는 것은 노태돈-박경철-김정배의 3파전에서 유태용 논문이 최근에 나와 김정배 견해가 승리(?)한 것으로 볼 충분한 근거가 됩니다. 또한 한국 역사학계뿐 아니라 중국 역사학계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두막루를 부여를 계승한 한국계 국가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두막루의 부여 계승성을 부정하는 노태돈-박경철 등 종래의 연구 논문(사실은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 추측에 불과하였고, 본인들도 막연히 몽골계로 추정된다고 썼을 뿐임)은 김정배 논문에 의해 도전을 받았고, 최근 유태용 논문에 의해 K.O. 패를 당한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이상 제 의견이었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1일 (토) 14:25 (KST)

1. 제가 제외하고라고 말한 부분 자체가 방금 아사달 님께서 말씀하신 그 부분입니다. 아사달 님께서 언어 항목이라고 한정지으면서 직접 인용까지 해 가면서 언급하셨잖습니까. 그런데 바로 다음 2번 항목에서는 “비단 언어뿐 아니라 여러 설명에서 두막루를 선비족과 연관시키는 표현이 많은데”라고 쓰셨습니다. 저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 선비계로 언급된 것은 언어 항목의 1회뿐이라고 말씀드린 것 뿐입니다.
3. 개설서라 할지라도 그것을 쓴 사람은 학계의 인물입니다. 하다못해 저자가 비전문가인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명백하게 유태용의 논문보다도 더 늦은 시기에 학계의 인물에 의해 아직 논쟁 중이다라고 하는 서적이 저술되고 공개되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유태용 등이 학계의 견해를 과점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직접적으로 기존 학계에서는 부정적이고, 현재 논의를 지켜보아야 한다라고 쓰고 있는 이상 아사달 님의 말씀은 무용합니다. 유태용은 본인이 맞다라고 주장했지, 본인의 주장이 학계의 대세이다라고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박경철의 3차례나 반복된 저술은 학계의 대세를 직접 서술하고 있습니다. 출처로서의 격이 다릅니다.--Xakyntos (토론) 2012년 7월 21일 (토) 17:07 (KST)
알겠습니다. 그럼 선비족이라고 잘못 쓴 부분은 Xakyntos 님 본인이 직접 수정해 주세요. 또한 두막루의 부여 계승설이 '정설', '통설', '다수설'이 확실한 것 같은데, Xakyntos 님이 동의하지 않으니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군요. 다만 두막루의 부여 계승설이 Jjw 님이 추측하셨듯이 '소수설' 혹은 '유사 역사학'이 아닌 것은 명백하군요. 박경철 본인의 논문에서도 자기 생각과는 다른 김정배, 유태용의 부여 계승설을 훨씬 더 자세히 '비중' 있게 다루고 있으니까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2일 (일) 12:40 (KST)

아사달님, 별다른 새로운 출처의 제시 없이 기존의 주장이 공전하는 토론이라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하여야 하겠군요. 제가 언제 두막루를 "유사 역사학"이라고 하였죠? 제가 주장한 것은 현재 학계에서 유보적이므로 학계일반의 견해라 할 수 없고, "따라서 현재로서는 소수의 견해이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정하시려면, 최소한 보다 다양한 출처를 확보하시고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1차 자료, 2차 자료의 구분과 일반적 학설과 소수설의 구분은 좀 지겨울 정도로 저도 반복하여 말씀드렸기 때문에 생략합니다. 같은 출처를 가지고 와서 계속 동어 반복만 하는 토론은 비생산적입니다. 백과사전이 새로운 연구를 직접 수행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학계의 의견이 모아질 때까지는 현재의 상황만을 기술하면 됩니다. 이것을 학계의 모든 검토가 끝난 기정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생산적이지 못한 이 토론은 이쯤에서 정리하고 학계의 새로운 의견을 기다려 보기를 권유합니다. -- Jjw (토론) 2012년 7월 22일 (일) 18:01 (KST)

유사 역사학으로 묘사한 부분은 없군요. 사과를 드립니다. Jjw 님이 '소수설'이라고 "추측"하셨는데, 그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Xakyntos 님 역시 '소수설'이라는 근거나 출처를 전혀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한국사> 책에 두막루의 부여 계승설 한 가지만 서술되어 있으므로, 제가 말한 학설이 '정설/통설/다수설'이라고 볼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Jjw 님이 백산학회를 과도하게 편향적인 단체로 몰아가려고 하고, 백산학회에서 발행한 학술지에 실린 유태용 논문을 편향적인 논문으로 몰아가려고 해서, 제가 반대 논리를 펴다가 '유사 역사학'으로 본 것으로 헷갈린 것 같습니다. 오해한 점은 거듭 사과를 드립니다. 하지만, 지금 Jjw 님이 근거로 삼고 있는 학설은 사실상 '박경철' 논문인데, 이 논문 역시 백산학회에서 발행한 학술지에 실린 글입니다. 반대로 박경철 주장과 달리 부여 계승설을 처음 주장한 김정배 논문은 백산학회가 아니라 <국사관논총>에 실린 논문입니다. 즉, Jjw 님이 백산학회를 편향적인 단체라고 말하면 오히려 자신의 근거를 부정하는 셈이 된다는 말입니다. 만약 백산학회가 편향적인 단체이고 거기에 실린 유태용 논문이 신뢰할 수 없다면, 마찬가지로 거기에 실린 박경철 논문도 신뢰할 수 없게 되므로, Jjw 님이나 Xakyntos 님 주장의 근거가 사라지게 되는 셈입니다. 즉, 백산학회에서 발행한 학술지에 실렸다고 하여 그 연구를 신뢰하지 않으면 Jjw 님과 Xakyntos 님 두 분은 스스로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3일 (월) 21:12 (KST)

박경철 2005년 논문[편집]

박경철 교수가 2005년에 쓴 논문이 있더군요. 찾아서 읽어보았습니다. 이 논문에는 기존 부여사 및 두막루국 연구의 여러 동향을 소개하고 정리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본인 입장은 비슷하지만, 그 '비중'은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즉, 종래 견해였던 노태돈, 박경철 교수의 연구는 매우 축소하여 정리하고 있고, 새로 제기된 김정배, 유태용 학설(부여 계승설)을 상당히 비중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두막루 연구에 대해서 총4가지 연구가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대표적인 연구입니다.

  • 노태돈, 1989년 논문 - 연로하신 노태돈 서울대교수의 글은 아무리 읽어봐도 두막루를 한국계가 아니라고 표현한 부분이 없군요. "두막루가 어느 민족/종족인지는 모르겠으나 고구려와 접촉하면서 북부여 후예임을 자임하게 된 것 같다"는 것이 노태돈 교수의 논문 핵심 내용입니다. 따라서 노태돈 교수의 견해를 마치 두막루의 북부여 계승설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 박경철, 1992년 논문 - 두막루의 언어가 '실위'와 같았다는 <위서>의 기록을 근거로 하여, 두막루를 몽골족의 선조에 해당하는 '실위' 계통으로 본 것 같습니다. 두막루의 부여 계승설을 부정하는 유일한 1명의 교수인 듯 합니다. 하지만 본인의 견해를 고집하지 않고, 이후 김정배, 유태용 등 부여 계승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견해도 비중 있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 김정배, 1991년 논문 - 두막루를 부여를 계승한 국가로 보는 최초의 논문입니다. 기존 노태돈, 박경철 교수의 논문은 두막루에 관한 논문이 아니라 '부여'에 관한 논문입니다. 그 논문의 한쪽 부분에 조그마하게 '두막루'에 대해 언급한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두막루' 그 자체에 대해서 독자적인 논문을 쓴 것은 김정배 교수가 최초인 듯 합니다. 당연히 기존 노태돈, 박경철 교수 주장을 부인하고, 두막루를 부여계 국가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 박경철 교수가 노태돈, 박경철 주장을 학계의 종래 의견으로 묘사하고, 새롭게 제기된 김정배 논문에 대해 소개하면서 "주목을 끌고 있다" 혹은 "논의의 귀추가 주목된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즉, 자기 생각과는 다르지만, 새로운 학설에 대해서 본인이 매우 흥미를 갖고 지켜보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이 됩니다. 한편 한국교원대 송호정 교수는 자기 지도교수인 노태돈 교수의 글은 전혀 인용하지도 않고, 오히려 김정배 논문을 인용하여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한국사> 책에 두막루를 부여를 계승한 한국계 국가로 보았습니다.

  • 유태용, 2004년 논문 - 위 3명의 연구는 말 그대로 20년 전 예전 연구논문입니다. 유태용 논문이 가장 최신 논문입니다. 유태용은 2004년 논문에서 기존 노태돈, 박경철 교수의 연구를 모두 부인하고, 김정배 논문(부여 계승설)을 지지했습니다. 또한 두막루를 부여의 후계국가로 보는 중국 측 연구를 많이 인용했습니다. 또한 김정배 논문이 두막루에 대해서 밝히지 못했던 많은 새로운 사항들을 자세하게 밝혀 두었습니다. 두막루에 대한 단일 논문으로서는 가장 자세하고 연구의 깊이가 있습니다. 김정배 논문과 주장의 내용은 동일하지만, 그 연구의 깊이가 매우 깊어졌습니다. 한 단계 발전된 연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이후 박경철 교수가 다시 2005년에 쓴 논문에서 기존 연구에 대한 검토 의견을 붙였더군요. 유태용 논문도 이 때 처음 소개가 되었습니다. 기존 견해인 노태돈, 박경철 교수의 주장은 매우 작게 축소하였습니다. 노태돈 교수의 견해는 겨우 3줄 반으로 줄여버렸고, 박경철 본인의 주장도 5줄 정도로 간략히 소개를 줄였습니다. 하지만 부여 계승설을 주장한 김정배와 유태용 논문에 대해서는 12줄로 상당히 길게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박경철, 〈새로운 扶餘史像 定立을 위한 몇 가지 課題〉, 《先史와 古代》, 통권 제23호, 韓國古代學會, 2005년 12월.

이상 학계의 논의의 흐름을 살펴볼 때, 두막루라는 국가에 대해서는 종래 대한민국 학계에서는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했으나 1991년 김정배 논문에 의하여 처음으로 부여 계승설이 제기되었고, 이후 2004년 유태용 논문에 의해 확정(!)되었으며, 이것에 대해 박경철 논고에서 종래 견해는 매우 작게 서술하고, 새롭게 제기된 김정배, 유태용 논문에 대해서 매우 비중있게 소개하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송호정 교수 역시 새로운 학설 내용으로 <한국사> 책을 집필하였습니다. 이런 점을 볼 때, 김정배, 유태용 논문에서 주장한 "두막루의 부여 계승설"은 학계의 정설, 통설, 다수설로 보아야 하며, 반면 20년도 넘은 기존의 연구였던 노태돈, 박경철 견해는 과거 견해, 소수설, 논파 당한 의견 정도로 보아야 할 듯 합니다. 이상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두막루 논의에 대한 제 해석이었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1일 (토) 18:06 (KST)

말씀하신 논문을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거기서도 김정배·유태용의 주장이 학계의 대세를 결정지었다고 직접 서술한 곳은 없군요.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박경철의 논문은 직접적으로 현재 논란이 진행중이라고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논파당했다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사달 님의 추측일 뿐입니다. 위키백과는 공인된 출처가 없는 개인의 해석을 근거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직접적으로 명시된 근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까지 우리가 찾아낸 최신의 논고는 논의가 진행중이다라는 결론 외에 다른 것이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Xakyntos (토론) 2012년 7월 22일 (일) 09:26 (KST)
예전의 잘못된 학설은 이미 "논파 당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보는 것은 Xakyntos 님의 개인적 해석입니다. 직접적으로 그런 표현이 없습니다. 심지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한국사> 책에 두막루의 부여 계승설 한 가지만 서술하고 있습니다. 송호정 교수가 <한국사> 책에 쓴 글을 보면, 10여 개의 출처가 있으나, 그 중 박경철 논문의 내용은 전혀 인용도 안 하고 있습니다. 즉 논의가 끝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Xakyntos 님이 개인적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어쨌든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말 자체도 Xakyntos 님의 개인적 해석일 뿐입니다. 조법종 책에 나오는 말대로 "주목을 끌고 있다" 혹은 "논의의 귀추가 주목된다" 정도로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2일 (일) 12:44 (KST)
위에 의견을 달았으니 여기서는 한 가지만 지적합니다. "논파당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아사달님의 주관적 견해입니다. 그것이 백과사전 서술의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 Jjw (토론) 2012년 7월 22일 (일) 18:03 (KST)
의견 아사달님과 Xakyntos님의 토론이 더 이상 진전되기엔 평행선인듯 합니다만, 총의라도 해야하지 않을까요? 두막루가 부여계냐 실위계냐 혹은 어느것이 다수설인가 에 대해서요. 블루베리 (토론) 2012년 7월 22일 (일) 22:16 (KST)
위키백과의 사용자들이 특정 학설의 진위 여부나 다수설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해당 전문 학계의 역할이고 우리는 학계의 논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사실 학계에서는 몇 차례의 논문 이후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 같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비치된 역사학회보와 상고사학회보를 모두 살펴보았는데 새로운 논문은 없더군요. 그러면, 학회의 논의 진전이 있기까지는 현재의 상태(기존의 학계에서는 두막루가 한국계 국가라는 평가에 유보적이며 일부 논문에서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대로만 설명하면 된다고 봅니다. 이것은 사용자들의 논쟁을 거쳐 어느 한 쪽 견해를 채택하거나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 Jjw (토론) 2012년 7월 23일 (월) 00:17 (KST)
두막루를 언급하는 논문/서적/사료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어 소수설과 다수설로 나눌 정도로 표본이 충분치 않은 듯 하고, 종래의 설이란 표현을 쓸만큼 뿌리에 관하여 단순 주장이 아닌 오고가는 논의가 없었기에 종래라는 어법이 개인적으로 웃기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누구도 부정못할 최고 권위의)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한국사 라는 책에 두막루가 실위계란 기술이 없고 부여계 란 기술만이 실려있다 따라서 이것을 다수설 혹은 정설로 생각한다 라는 아사달님 의견이 제가 생각하기에 좀 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두막루를 실위계로 본 박경철 교수의 논문이 실재하고 있는 만큼, 소수설/다수설 구분 짓기보단 아예 두막루 문서에 두막루를 언급한 몇 안되는 자료들을 일단 다 적는게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블루베리 (토론) 2012년 7월 23일 (월) 02:54 (KST)
종래의 견해라는 것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시는 것 아닌가 여겨집니다만, 출처의 표기와 서술은 결과적으로 같은 제 의견과 말씀이기에 그쯤에서 정리했으면 합니다. 현재의 논의에 대해 출처를 분명히하고 그에 담긴 논지를 전하면 그 뿐입니다. -- Jjw (토론) 2012년 7월 23일 (월) 03:33 (KST)
Jjw 님, 두막루에 대한 '종래의 견해'라는 것은 사실상 어떤 '실체'가 없습니다. 그냥 서울대 노태돈 교수가 부여에 관한 글을 쓰면서, 두막루가 북부여의 후계를 자처했다는 <위서>의 기록에 대해서, "왜 그렇게 자처했는지 모르겠으나, 혹시 고구려와 접촉하면서 북부여를 알게 되고, 그래서 두막루가 북부여를 자처하게 된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한 게 전부입니다. 노태돈 교수는 두막루 자체에 대한 무슨 독자적인 연구논문을 쓴 적이 없습니다. 두번째 종래의 견해에 해당하는 박경철 논문의 경우 <위서>의 기록에 따르면, "실위의 언어가 두막루와 같다고 하니까, 두막루도 몽골족의 선조인 실위 계통이 아닐까?"라고 막연히 추측한 정도입니다. 마찬가지로 박경철 교수도 부여에 관한 논문 중 일부 내용으로 두막루를 잠깐 언급한 정도이며, 두막루에 관한 단독 논문을 쓴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1991년 김정배가 <위서>의 기록을 사실로 믿고(<위서>는 중국 정사인 24사 중 하나입니다), 두막루를 부여계로 해석하는 단독 논문을 썼습니다. 그러자 박경철 교수가 "그것 참 재미 있네. 앞으로 주목을 끌겠네. 논의의 귀추가 주목되네.."라고 쓴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박경철 교수는 자기 자신의 추측(즉, 두막루는 실위 계통)은 더 이상 주장하지 않고, 그냥 김정배 논문에 대해서 흥미를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때 한국교원대 송호정 교수(젊은 교수입니다.)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한국사> 책을 쓰면서, 자신의 지도 교수인 노태돈 교수나 박경철 교수의 글은 전혀 소개하지 않고, 10개의 출처 모두 두막루는 부여계 국가라는 중국 측 연구 논문과 한국 김정배 교수의 논문만 인용하여, 두막루는 부여계 국가라고 <한국사> 책에 썼습니다. 이로써 사실상 두막루의 부여계승설이 정설/통설/다수설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 뒤 2004년에 유태용 논문이 나와서, 기존의 모든 논의를 잠재워 버리고, 두막루의 뿌리, 생활, 언어, 풍습, 민족, 대외관계, 국가명의 뜻까지 다 해석해 버린 "결정적 논문"이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걸로 그냥 학계 논의는 끝난 듯 합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 "논파" 당했다고 쓴 것이고, 심지어 종래 학설이 K.O. 패를 당했다고 쓴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아무리 더 오랜 세월을 기다린다고 하더라도, 과거 노태돈 교수처럼 "잘 모르겠다"(유보적 입장) 혹은 박경철 교수처럼 "혹시 실위계 아닐까"라는 추측을 지지하는 논문은 안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히려 앞으로 학계에서 두막루를 연구한 논문이 또 나온다면, 그것은 김정배 혹은 유태용 논문을 계승하여 더 자세히 연구하는 논문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이상 제 의견 및 해석이었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3일 (월) 10:30 (KST)

의견 관점에 따른 논쟁이 예상되는 내용은 '있는 그대로' 적는 것이 무난합니다. 또한, 논문의 수나 그 내용으로 볼 때, 어떤 주장이 다수이고 소수이냐는 위키백과에서 판단할 수준의 것이 아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jtm71 (토론) 2012년 7월 23일 (월) 07:35 (KST)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한국사> 책에 두막루의 부여 계승설 한 가지만 서술하고 있습니다. 중국 학계에서도 두막루는 부여를 계승한 국가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시중에서 판매 중인 <이야기 고대 한국사> 등 일반인을 위한 교양 서적에는 종래의 견해(사실은 추측)도 소개를 하고는 있으나, 비중이 매우 작고, 새로운 학설(부여 계승설 - 김정배, 유태용 논문)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나온 <한국사> 책을 기준으로 위키백과를 편집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요? 종래의 견해라는 것은 노태돈, 박경철 교수를 말하는 것인데 사실상 두막루에 관한 단독 논문도 아닌 추측에 불과한 내용인데, 굳이 하나의 학설로 인정을 해 줘야 할까요? 국사편찬위원회에 <한국사> 책 이상 권위 있는 책이 또 있을까요? 게다가 중국 등 다른 나라의 연구 결과와도 일치하구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3일 (월) 10:41 (KST)

아사달님 - 저는 이 토론을 이쯤에서 마칩니다. 더 이상 새로운 의견을 내세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 입장이 변했다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새롭게 토론할 새로운 팩트가 없습니다. 따라서, 다시 한 번 토론에 참여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내용 - 출처에서 말한 바를 출처의 의도 그대로 설명한다 - 에서 토론을 멈추어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아사달님의 토론 태도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물론 아사달님의 의견에 반대하시는 분 가운데에서도 발언이 조금 과격했던 경우가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하지만, 아사달님의 토론 태도 역시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대표적인 경우 두 가지만을 꼭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 첫째,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견해를 달리 해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아사달님의 견해에 대해 "유사 역사학"이라고 평한 바 없건만, 아사달님은 이미 제가 그리 평하고 있다고 단정하고 그에 대해 정확히 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렸으나, 답변은 없이 계속하여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논점을 교묘히 뒤바꾸고 결국 가서는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도 보기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그런적 없다고 기분나빠 하시기 전에 지금 이 토론 페이지에서 일어났던 토론들을 다시 한 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제 생각엔, 상대편이 점점 더 자극적이고 공격적이 되어 아사달님을 반대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 부분(상대의 의견을 교묘히 비트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 둘째, 자의적인 해석으로 다른 사람의 견해와 그 견해를 뒷받침하는 출처를 선별하는 점도 문제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주장하는 바만을 관철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의 견해 가운데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무시하고 지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매우 잘못된 토론 태도입니다. 보다 객관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돌아보는 태도를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단적인 예로, 천리주단기님이 제시한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해당 인용구 이후로 아사달님은 다른 출처를 과도하게 평가절하 하고 있습니다. 천리주단기님이 그것을 제시하기 이전에 아사달님이 처해있었던 빈약한 출처라는 상황을 벗어나기에는 이보다 좋은 것이 없겠지만, 냉정히 말하면 저 것 역시 "국사편찬위원회 공저"의 이름이 아닌 개인 연구자 송호정 교수를 저자로 하는 논문일 뿐임을 주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저 논문만을 가지고 다른 모든 반대 견해의 출처를 무시하지 마세요.

결론 - 저는 아사달님과 계속 다투고자 하는 의사도 없고 아사달님의 활동에 대해 달리 어찌 나쁘게 보는 바도 없습니다. 오프 때 보아서 아시겠지만, 저는 위키백과 공동체 안에 여러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루어 지고 있는 이 토론은 점점 이상한 양상으로 과열되기만 할 뿐 어떠한 생산적 결과도 도출하지 못하고 있기에 이렇게 장문의 글을 드리는 것입니다. 아사달님 역시 제게 불편한 점이 있었다면 이 글 뒤에 의견을 쓰셔도 됩니다. 이 기회에 저도 제 토론을 되돌아 볼 필요는 있겠지요. 저 역시 사람이라, 제 자신의 결점은 스스로 잘 보지 못합니다. 다만, 간곡히 부탁드리니 새로운 학계의 성과가 있기 전에는 이 토론은 이쯤만 하시지요. -- Jjw (토론) 2012년 7월 23일 (월) 16:33 (KST)

유사 역사학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위에서 사과를 드렸습니다. Jjw 님이 두막루의 부여 계승설을 '유사 역사학'이라고 매도한 적이 없다는 본인의 해명에 동의하며, 오해한 점은 거듭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다만 제가 워낙 참신한(?) 학계 이론을 위키백과에 서술하려다 보니, 아무런 근거도 없이 환단고기 추종자(=환빠?)로 몰리거나 유사 역사학 추종자로 매도를 당하는데, 솔직히 그런 일 몇 번 당하고 나면, 저도 사람이다 보니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정식 논문을 읽고 요약하여 위키백과에 올렸고, 게다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한국사> 책에도 두막루를 부여계 국가로 서술하고 있는데, 그걸 인용한 제가 왜 유사 역사학 추종자로 매도를 당해야 할까요? 오히려 식민사관, 반도사관에 물든 사람들이 상대방을 공격하려고 근거 없는 색깔 공세를 펴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게다가 Jjw 님이 '백산학회'라는 단체에서 발행한 학술지에 실렸다는 이유만으로 '유태용' 논문을 폄하하는 발언을 보면서, 이건 좀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Jjw 님이나 Xakyntos 님이 주장하는 유일한 근거는 사실상 박경철 교수의 추정(즉, 두막루는 '실위'계라는 추정 - 본인도 '추정'이라고 표현하고 있음)인데, 그 '박경철' 논문도 '백산학회'에 실렸기 때문입니다. Jjw 님께서 다양성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시는 분이라고 하셨는데, 그 점은 저와 생각이 같고, 그래서 너무 기쁩니다. 그렇다면 백산학회에 실린 논문도 학계의 정식 논문이지, 유사 역사학자들의 글은 아니지 않습니까? 앞으로 유태용 논문 등이 백산학회에서 발행한 학술지에 실렸다고 하여, 폄하하는 듯한 발언은 하지 말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3일 (월) 21:35 (KST)
의견 토론 상대에 대한 '○○○ 추종자', '○○○에 물든 사람'과 같은 발언은 위키백과에서 금지된 인신 공격에 해당될 수 있으니 상호간에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해 주셨으면 합니다. jtm71 (토론) 2012년 7월 23일 (월) 22:12 (KST)
백산학회는, '옛 땅(古土)'에 관련된 연구를 창립 취지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국사찾기협의회를 중심으로 벌인 국사 교과서 논쟁 때에 '국사 되찾기 운동'에 대한 경고 성명문 발표에도 참여했던 만큼,(「國史되찾기운동」 歷史觀誤導하고있다, 《동아일보》, 1978.11.24 참고) 소위 '재야사학'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jtm71 (토론) 2012년 7월 24일 (화) 01:18 (KST)
백산학회에 관한 좋은 정보에 감사 드립니다. 사실 저는 '부여의 역대 국왕' 편을 정리하다가(<삼국사기> 등을 참고로 하였음), '두막루'라는 나라를 처음 발견하고, 흥미(?)가 생겨서, 국회 전자도서관에서 서비스 중인 유태용 논문을 다운로드 받아서(무료니까요) 읽어보았습니다. 너무 생소한 내용이 많아서 한 동안 좀 당황스러웠는데, 몇 번씩 읽어볼수록, 유태용 학설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백산학회'에 실린 글인지, '백산학회'가 뭐하는 단체인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다만 학계의 정식 논문이니까, 어느 정도 신뢰감을 가지고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역사학자도 아니고,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래도 관련된 다른 글도 몇 편 찾아보았는데, 대체로 두막루에 대해서 부여를 계승한 나라라고 분명히 적혀 있더군요. 그래서 이게 학계의 정설/통설/다수설이라고 믿고서 그 내용을 잘 정리하여 위키백과에 올린 것입니다. 참고로 이 글을 쓰면서 유사 역사학 계열의 서적은 전혀 참조하지 않았으며 인터넷 사이트에 떠도는 글도 전혀 참조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여러 사람들이 두막루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여, 토론이 심화되면서, 저도 몰랐던 많은 새로운 출처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야기 한국 고대사>라든지 여러 단행본 서적에도 두막루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사실 매우 기뻤고, 결정적으로는 '천리주단기' 님이 알려주신 <한국사> 책에 실린 송호정 교수의 글을 보고, 유태용 논문이 맞겠다는 생각을 더 굳히게 되었습니다. Xakyntos 님이 나타나셔서 (사실 제가 본 가장 전문성 있는 역사 전문가이시니까요) 순간적으로 긴장(?)을 좀 했는데, 다행히 다수설/소수설 논쟁만 했지, 두막루 자체를 유사 역사학으로 보지는 않으시더군요. 좀 안도를 했습니다. 어쨌든 논의는 이 정도에서 정리를 하고, 이제 '두막루' 본 문서를 어떻게 고칠 것인지를 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격려 및 비판 덕분에 그동안 잘 몰랐던 두막루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에 대해서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4일 (화) 10:27 (KST)

굳이 박경철 교수 논문상의 종래의 학계에서는 땡땡땡 이 한 문장만 적기보다는,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에는 부여계승설만 실렸다는 글귀와 박경철 교수의 논문 상에서의 실위계설, 부여계승설의 소개 등을 전부 간추려 적어두면 될것 같습니다. 보는 사람이 뭐가 정설인지 알아서 판단할수 있게 말이지요. 블루베리 (토론) 2012년 7월 23일 (월) 23:35 (KST)

오랜만에 보니 이젠 식민사학, 반도사학이라고 하시는데 이런 말씀하는 것이 바로 유사역사학의 시작입니다. 귀하가 식민사학, 반도사학이라 하시는 강단사학이 현재 두막루를 정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이 나라 자체는 아시다시피 고대사를 연구한 사람들만 아는 나라로 역사학도인 저 자신도 이 토론하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해서 무조건 두막루를 우리 역사, 우리 문화로 인정하는 것은 매우 성급하다고 몇번이나 말하였습니다. 증거는 증거대로 현재 새로운 증거도 없이 논문에 쓰여져있고 역사서에도 일부분 나타나니 실존한 나라, 네 그건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문화적인 실증적인 증거같은 게 발굴되지 않았는데 바로 한국사에 포함시키는 것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일단은 잠재적인 한국사 정도로는 포함시켜야겠지만 더 많은 연구와 발굴 작업같은 뚜렷한 과정이 보여야지 저나 jjw님, xakyntos님같은 분들도 인정을 할것입니다. 귀하의 언행을 보며 우려되는 것은 식민사학, 반도사학이라는 폐쇄적인 용어는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용어 자체가 환단고기 신봉자들, 즉 환빠라 불리는 사람들이 현재 사관을 매도하기 위해 쓰는 비칭으로서 상당히 좋지 않은 뜻에서 쓰는 말이며 최소한 현재 역사학계에서는 유사역사학이니 대륙역사학보다는 그 식민사학, 반도사학이 훨씬 공신력있고 신빙성있는 역사관입니다. 만약 귀하가 반도사관에 대해 반감을 가지신다면 결국 대륙백제설, 대륙신라설 같은 가설을 신뢰한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여질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듭 말씀드리지만 귀하가 올리는 그 역사학계의 관점은 한국의 모든 역사학계의 관점이라고 볼수 없습니다. 백산학회 이외에도 한국에는 수많은 역사학자가 있고 수많은 학회가 있습니다. 그들이 이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고 두막루란 나라를 한국사에 포함시켰다고 암묵적인 동의를 했다 하는 것은 그야말로 물타기입니다. 성급한 일반화는 부디 삼가해주십시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4일 (화) 10:54 (KST)

윤성현 님, 이곳에서 글을 남기실 때는 좀 근거를 제시하면서 논의해 주세요. 국사편찬위원회가 발행하고 송호정 교수가 집필한 <한국사> 책에 두막루를 부여 계통이라고 썼는데, 왜 '백산학회' 이야기만 하시나요? 그리고 박경철 2005년 논문은 말 그대로 '논고'입니다. 논고가 무언지는 아시지 않나요? 여러 가지 학설을 체계적으로 살펴보고 분석하고 고찰한 글입니다. 그 논고에서 4명의 대표적 연구를 소개하고 평가한 글입니다. 그 글에서 두막루의 부여 계승설을 가장 비중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강단사학이 현재 두막루를 정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라고 썼는데, 대한민국 강단사학자의 대표적 교수인 한국교원대학교의 송호정 교수가 직접 두막루의 부여 계승설 1가지만 <한국사> 책에 집필했습니다. 정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평가할 수 있는 어떠한 근거나 출처도 없습니다. 그리고 유적이나 유물 이야기를 하셨는데, 작년에 '낙사계'라는 인물의 묘지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두막루 대수령 낙개제와 같은 '낙'씨이군요. 묘지를 분석한 학자들이 낙삭계를 부여계 발해인으로 보더군요. 두막루가 발해로 계승된 유력한 증거가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계속 유물은 발굴될 겁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4일 (화) 12:09 (KST)
근거요? 귀하가 이전 토론에서는 전부 백산학회 등에서 수집해온 자료로만 수집을 하였고 저는 해외에 살아서 누가 강단사학의 대표주자인지 이런거 모릅니다. 송호정 교수가 누구인지 제가 그 사람 학생이 아닌데 알아야할 필요도 없지요. 작년에 낙사계라는 인물의 묘지가 발굴되었다면 그걸 다룬 신문기사나 있던가요? 발견되었다고 합니다라는 식의 이야기식 뉘앙스는 삼가하십시오. 이곳은 출처로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지 그런 식으로 낙씨다, 부여계 발해인이다, 그럼 두막루인이다라는 식의 넘겨짚기도 상당히 잘못되었군요. 낙씨가 두막루에서만 있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4일 (화) 12:20 (KST)
그리고 한국사 틀에서 깨지는 틀에 대해 참고 사진 올렸습니다. 이에 대해 답이 없으시면 틀에 대한 편집을 강행하겠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4일 (화) 12:20 (KST)
이미 처음부터 백산학회 논문 외에 10개가 넘는 출처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사실 이번 토론이 시작되기 전부터 제가 10여 개가 넘는 출처를 두막루 문서에 제시하여 두었습니다. 제가 처음 두막루 글을 쓸 때부터 이미 <위서>, <신당서>, <만주원류고> 등 1차 자료와 <국사관논총>, <백산학보> 등 한국 측 논문과 마가승, 장박천, 쑨진지, 간즈겅 등 중국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소개해 두었습니다. 백산학회 논문은 그 여러 출처 중 1개일 뿐이었습니다. 왜 자꾸 백산학회 1개 논문만 문제 삼는지 모르겠으나, 반대 이론을 제시한 박경철 교수 논문도 백산학회 학술지에 실린 글입니다. 오히려 부여 계승설을 주장한 김정배 논문은 <국사관논총>에 실린 논문입니다. 어쨌든, 그 뒤 토론이 진행되면서 추가로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이야기 한국 고대사> (학계 교수들 공동 집필), <고조선 단군 부여> (동북아역사재단) 등의 책이 소개된 것입니다. 저는 주로 학계 여러 연구 논문들을 참고한 것인데, 나중에 일반인을 위한 단행본 서적이 추가로 출처로 제시된 정도입니다. 출처에 대해서 오해가 없으시기 바랍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4일 (화) 13:20 (KST)
논지를 흐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말한 출처 요구는 낙사계라는 인물이 부여계 발해인이지, 두막루가 발해를 계승한 증거가 되는지, 이 사람이 두막루의 후예인지 하는 증거말입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4일 (화) 13:26 (KST)
의견 윤성현님, 토론에 참여한 이상 상대방이 근거로 제시한 글의 저자 송호정 교수가 누군지 파악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런식의 말씀대로 토론이 진행된다면 토론이 아니라 비난이 되버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강단사학,식민사학이란 용어는 소위 환단고기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이 쓰는 용어인지라 저도 꺼림칙하긴 한데,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에서 동무라는 말을 많이 쓴다고 대한민국 사람이 동무라는 말을 썻을시 북측의 간첩으로 확정판명 되는것이 아닌것 처럼, 다들 환빠를 너무 경계한 나머지 강단사학과 식민사학이란 말의 본뜻을 놓쳐버리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두막루가 본격적으로 한국사로 인식된다면, 한국사의 공간적 영역은 과거 알려진것보다 훨씬 더 북상하게 됩니다. 아마 이런걸 제일 좋아하는 부류가 환빠다보니 반작용으로 섣불리 뻗어대는걸 경계하여 다들 (제가 보기엔 충분히 합리적인) 근거 제시를 일축하는 느낌이 있는데, 이에 아사달님이 격해지셔서 논란이 있을수 있는 용어를 쓰셨다고 봅니다. 블루베리 (토론) 2012년 7월 24일 (화) 16:59 (KST)
그리고 틀:한국사에서 끝난 총의를 여기서 거론하여 죄송합니다만, 정안/탐라 그리고 두막루가 족적이 없다는 이유로 틀:한국사에서 논란이 된것은 굉장히 유감입니다. 옥저와 동예도 그런 논리라면 틀에서 빼야 할텐데... 블루베리 (토론) 2012년 7월 24일 (화) 17:12 (KST)
정안국은 틀에서 멀쩡합니다. 뺀 것은 총 3개로, 두막루, 동란국, 후발해가 전부입니다. 두막루는 총의로 잘 아실거고요. 그리고 제가 송호정 교수란 사람을 조사하면서까지 토론을 할 시간은 없습니다. 그사람을 왜 알아야하죠? 어차피 토론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글쓴 사람까지 알 필요는 없는것 같은데요. 식민사학, 반도사학이라는 말 자체가 좋은 뜻은 아니고 특히 반도사학은 중국과 일본에 치여서 한국이 반도에 안주하지 못했다는 지나치게 패배적인 사상입니다. 이병도같은 사람도 이런 식의 주장은 전혀하지 않았는데 대륙역사학 신봉자들이 이렇게 만들어낸것이죠. 허나, 두막루가 한국사라는 결정적인 증거나 또한 학계에서의 완벽한 총의가 있지 않는한 두막루라는 나라를 완전히 인정하기엔 시기상조라는 것엔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충분한 논리라고 하셨는데 충분히 합리적이라 하기엔 밝혀진 내용이 상당히 부족합니다. 무엇보다도 위키백과라는 곳은 학문을 연구하는 기관이 아니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하여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두막루를 인정했다고 하는 것 역시 비약 아닐까요? 논리적이라 하기엔 여러모로 모순이 있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4일 (화) 17:42 (KST)
족적이 없다는 일로 논란이 되었다는 사실자체가 저에겐 그냥 좀 서글플 뿐입니다. 정안이든 탐라든 두막루든... 그리고 윤성현 님께서 "귀하가 식민사학, 반도사학이라 하시는 강단사학이 현재 두막루를 정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이렇게 말씀하셨기에, 아사달님이 인용한 송호정 교수가 강단사학이라 비난받기도 하는 인물임이 중요한 사실이라 봅니다. 또 저 역시 식민사학,반도사학,강단사학 이런 용어를 듣는것을 넘어 제 손으로 쓰기까지 하는 상황이 싫긴 합니다. 좀 과한 용어선정이라고도 보는데, 그 동안 두막루와 관련하여 혼자서 많은 분들을 상대했던 아사달 님이기에 많이 예민해지신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아사달 님의 근거와 주장이 (특히 두막루 부여계설이 정설인가 여부) 합리적이라는건 제 의견일뿐이라 쳐도, 박경철 교수 논문을 포함하여 백산학회와 그 외의 출처의 제시 자체가 각하 되는게 비합리적이라는건 사실이라 봅니다. 끝으로 위의 천리주단기 님이 제시하신 한국사 내의 두막루 거론부분을 읽어봤을때 저로서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부여계설을 인정한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물론 말씀하셨듯, 독자연구나 감상을 적어둘수는 당연히 없는 노릇이고 해당내용을 요약하여 어떻게 언급을 했나 정도로 두막루 문서에 적어놓아 읽는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형태가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블루베리 (토론) 2012년 7월 25일 (수) 05:44 (KST)
논란이 될수밖에 없습니다. 이 토론이 맨 처음 시작되었을때만 해도 아사달님이 한국사 틀에다 두막루를 포함시킬때, 그때 당시 두막루 토론란에서 아사달님이 많은 양의 부연설명을 하긴 했으나 토론에 참가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비중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던 나라인만큼 사람들이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아사달님이 이를 오해를 해서 "두막루를 포함시키는데 아무런 이의가 없다" 여기고 추가를 강행한 것입니다. 만약 제대로 된 토론을 원했다면 대다수 사람들이 모르는 그 나라의 문서보다는 자신이 추가를 원하는 틀의 그 토론란에서 먼저 합리적인 토론이 이뤄졌다면 이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겠죠.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5일 (수) 06:10 (KST)
그런 말씀이라면, 먼저 토론을 했어도 윤성현님 생각과 반대되었을수 있기에 논란이 윤성현님에 의해 결국 일어났을거라 봅니다. 저는 논란 자체를 슬퍼할뿐 논란이 일어나는게 좋다 나쁘다 라고 말하고 싶은게 아닙니다. 블루베리 (토론) 2012년 7월 27일 (금) 19:25 (KST)
상당히 희한한 말을 하시네요. 제가 이 논란을 시작했나요? 왜 슬퍼하죠? 의심가는 발언은 삼가해주십시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8월 6일 (월) 11:01 (KST)
예, 틀:한국사 에서 두막루 의 삭제 여부 총의를 시작하셨고 그게 여기까지 왔으니 윤성현 님이 시작하신 거지요. (물론 그게 나쁘다는건 아닙니다) 게다가 Xakynyos 님 사용자 문서에 가서 도움까지 요청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뭘 의심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희한한 말이라는 표현까지 쓰셨으니 좀 직설적인 표현을 쓰자면, 개인적으로 윤성현 님은 오기만 남은것처럼 보입니다. 블루베리 (토론) 2012년 8월 24일 (금) 17:10 (KST)
처음 봤네요. 역시 유사역사학을 신봉하는 분 같습니다그려. 수고하십시오. -- S.H.Yoon · 기여 · F.A. 2014년 4월 3일 (목) 15:01 (KST)

두막루의 대수령 '낙개제'와 발해 부여부의 대수령 '낙사계'[편집]

두막루의 대수령 '낙개제'(諾皆諸)라는 사람이 서기 724년 당나라 현종 개원 12년에 두막루(=달말루)의 사신 자격으로 당나라에 와서 조공을 했다는 기록이 중국 측 문헌인 《책부원귀》(冊府元龜) 외신부 조공조에 나옵니다. 즉, '낙' 씨는 두막루의 왕족이었거나 혹은 적어도 귀족의 성씨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서기 725년 당나라에 조공했던 발해 수령 '낙개몽'(諾箇蒙)이라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 자세한 내용은 앞으로 좀 찾아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얼마전 부여부 대수령 '낙사계'(諾思計)라는 사람의 묘지가 발견되었는데, 이 사람의 묘지를 발굴한 결과 "부여계 발해인"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이런 점을 볼 때, '낙' 씨가 두막루(혹은 그 이전 부여) 시절부터 존재해 오다가, 두막루가 발해 영토로 편입되면서 '발해'의 귀족으로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확정은 아니고 추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세한 사항은 관련 기사와 논문 등을 좀 조사를 해 보아야겠습니다. 어쨌든 윤성현 님이 '낙사계' 관련 기사가 있는지 물어보시니까, '낙사계' 대수령과 관련된 신문 기사를 링크해 드립니다.

참고하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4일 (화) 13:39 (KST)

귀하께서 지금 이 토론에서 분명히 '추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추정이니 낙사계라는 사람은 두막루의 후예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귀하의 주장이 가끔가다 단지 추정되는 주장이라도 학계에서 확정된 마냥 일반적인 사실로 자주 주장하는 일이 빈번한데 지금 이 기사로 봤을때 낙사계라는 사람에 관한 신상정보는 부여계 발해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므로 지나친 주장은 이제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4일 (화) 16:18 (KST)
근데 낙사계가 두막루계 발해인 -> 발해계 당唐인 이었을 것이다 라는건 어디까지나 추정이다 보니... 학계에 발표되고 인용하는 것이면 모를까 아직 낙사계,낙개몽을 섣불리 두막루계라고 위키에 적는건 무리가 아닐까요? 물론 백제계로 알려졌던 낙사계가 발해계로 뒤집힌것도 부여부 대수령 이란걸 발해로 끼워맞춰서 이해한 것이긴 하지만 말이죠. 윤성현님 추측방식이라면 백제나 신라에도 부여부 가 존재할수 있고 대수령직과 낙 씨가 존재할수 있는데... 물론 김영관 청계천문화관장도 발해인으로 기록된 낙개몽의 성과 같아서 발해인 출신으로 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라 두막루계 일 가능성이 있다고만 알려드렸었는데, 낙사계가 두막루계 발해인 이었다면 두막루가 예맥계가 아닌 거란/해/실위 와 같은 동호계가 될 확률이 조금 더 커질수도 있습니다. 기사에도 나와있듯 북송시대에 제작된 당나라 시대글을 엮은 책 문원영화에서 거란의 수장으로 낙사계가 등장한다고 하니... 북부여의 후예를 자처한 만큼 고구려에 동화된 말갈계(로 추정되는) 대조영처럼 부여에 동화된 동호계 일수도 있고, 부여인의 혈통이나 거란/해/실위와 말이 통할 정도로 동호계에 동화되었을수도 있고 아니면 요나라가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한 것처럼 부여를 실제로 계승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결론은 아직 낙사계를 두막루계로 비정하기엔 어떤 목적에서든 애매합니다. (저 자신은 두막루계 라고 생각하고 있긴 합니다만) 블루베리 (토론) 2012년 7월 24일 (화) 16:21 (KST)
그리고 한가지 더, 이곳에서는 두막루 부여계설이 늦게 나왔고 (기존 연구 내용의 양이 부족한 상태에 중국측에서도 부여계로 보는지라 인정하기 곤란하지만) 종래의 학설이 두막루 실위계 설이라는 이유로 실위계로 적어야 한다라는 주장을 하시는 분이 많았는데, 같은 논리라면 낙사계(노정빈)는 백제계 여야만 합니다. 기존의 통설이 백제계 였으니깐요. 굉장히 실례되는 표현이라 정말로 죄송합니다만 개인적으로 낙사계나 두막루나 존재조차 모르시던 분들이 근거를 제시해도 내가 몰랐었던거니 못믿겠다 는 식으로 부정하는 느낌도 듭니다. 낙사계에 관련해서는 윗분들과 같은 논리상에서 반론을 제기하는걸 보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네이버에 두막루 쳐보면 환단고기 책 검색되어서 다들 반응이 예민하신건가 싶기도 하고... 블루베리 (토론) 2012년 7월 24일 (화) 16:41 (KST)
일반화하지 마십시오. 추정은 추정입니다. 사서나 묘비에 출신이 두막루라는 명백한 증거가 없는한 두막루계라고 하는 것은 무리인게 아닌가요? 그리고 두막루 자체를 알아보니 고대사 중에서도 부여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 잘 알던 나라라 하니 어쩝니까. 저 역시도 이 토론으로 처음 알았고 잠재적인 한국사로 인정합니다. 허나 부여계가 세웠다는 조그마한 사실로, 그것도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은 사실로 한국사로 성급하게 일반화하고 그 범주내에 포함시키는 것은 학계의 논지와도 어긋나며 결국엔 우리와 비슷한 혈맥이니 얘들도 우리민족이라는 식의 주장인 환단고기의 주장과 거의 다를바가 없게 됩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4일 (화) 17:47 (KST)
윤성현 님, "학계의 논지와도 어긋나며..."---> 이 부분은 아무런 근거나 출처가 없는 틀린 말입니다. 밑에도 적었지만, 두막루의 "부여 계승설"을 최초로 주장한 김정배 교수는 고려대학교 총장, 이사장을 지낸 분이고, 한국고대사학회 회장 등을 지낸 학계의 정통 연구자입니다. 학계의 논지와 어긋난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함부로 하지 말아주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4일 (화) 20:48 (KST)
"낙사계나 두막루나 존재조차 모르시던 분들이" 이 말은 답답함의 표현을 넘어 제가 비아냥을 한 셈입니다.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한가지 더, 부여계 혈통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한국사라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두막루 스스로 어떤 정체성을 표방했는지, 다른 세력에서는 어떻게 인식했는지 두가지를 살펴보고 생각을 정립할 뿐입니다. 전자는 신당서 유귀전에 북부여의 후예라 나오고, 후자는 낙사계를 (백제계에서 발해계로 정정되었던 이유중 하나인) 낙씨, 부여부 대수령직, 대문예의 망명 시기 등등을 종합해 두막루계(혈통)일 가능성이 크다고 가정, 북송시대의 문원영화에 바로 그 낙사계(노정빈)가 거란의 수장으로 묘사되는걸로 확인 가능하다고 추정합니다. 물론 저만의 독자적인 추정일 뿐입니다만, 두막루에 관련된 기록이 원채 부실한 마당이니 이러저러서 끌어들일만한 것들을 생각해보고 나서 판단하고 있습니다. 건전한 민족주의 성향의 사람으로서 발해와 같이 숨겨진 한국사가 드러났으면 하는 소망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무작정 혈통만으로 한국사라 우길 생각이 없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 는 한국사의 범주에 속하였으며 동호사(거란,해,실위)로'도' 혼혈,교류,대 물길 동맹 등의 다양한 이유로 인해 동화되어 편입된 경우라고 판단합니다. 블루베리 (토론) 2012년 7월 25일 (수) 06:12 (KST)
그러니까 자신만의 상상을 여기다가 왜 갖다붙이냐는 말입니다. 한국사의 범주에 속할수도 있다는 것은 맞지만 성이 두막루의 성씨 중 하나랑 같다고 두막루라고 넘겨짚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8월 6일 (월) 11:03 (KST)
문단을 처음부터 잘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저는 추정했을뿐이지 단정한게 아닙니다. 오히려 아사달님이 단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여 지적한 편인데, 자꾸 상황을 이상하게 몰아가시네요. 블루베리 (토론) 2012년 8월 24일 (금) 17:04 (KST)

두막루를 부여계로 본 김정배 교수는 누구인가?[편집]

두막루를 부여계로 본 최초의 단일 논문은 1991년 김정배 교수의 연구논문이었습니다. <국사관논총>에 실린 글이죠. 2004년 '백산학회'에서 발행한 유태용 논문은 단지 '김정배' 논문을 지지하고 발전시킨 논문이고,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은 김정배 교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김정배라는 학자는 누구일까요? 과연 이 사람은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소수설을 주장하는 일개 학자에 불과할까요? 제가 궁금해서 좀 찾아보았습니다.

  • 성명 : 김정배
  • 1940년 8월 1일 출생 (나이 만 71세), 남성
  • 학력 :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 고려대학교 한국고대사 박사 / 연세대학교 명예박사 / 일본 와세다대학교 명예박사
  • 경력(학교)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 미국 하버드 옌칭 연구소 객원 교수 / 고려대학교 부총장 / 제14대 고려대학교 총장 / 고려대학교 이사장
  • 경력(학술) :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한국고대사학회 회장, 한국사연구회 회장, 고구려연구재단 이사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눈에 띄는 것은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이고, 제14대 고려대 총장을 지냈으며, 올해 5월까지 고려대학교 이사장으로 있던 사람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이고, 한국고대사학회 회장이고,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분이십니다. 김정배 교수의 경력만 보더라도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지, 무슨 일개 '소수설'을 주장하는 이름도 없는 일개 학자는 아닌 것입니다. 이 김정배 교수가 바로 최초로 "두막루는 부여를 계승한 국가"라고 단독 논문을 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근거나 출처도 제시하지 못한 채, 계속하여 두막루에 대한 학설을 '소수설' 혹은 '유사 역사학'으로 폄하하는 것은 올바른 토론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4일 (화) 20:24 (KST)

위 주장은 논리학 기초에서 말하는 권위에 의한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설사 단재 선생이 《조선상고사》에서 주장한 것이라 할 지라도 다른 여러 후학들이 아닌 것 같다고 하면 아닌 겁니다. 지금 우리는 논의가 있다는 것과 학계의 일치된 견해가 없다는 것 이상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학설이 일반적 지지를 받는 다는 것은 새로운 학설을 지지하는 쪽에서 입증하여야 할 문제입니다. 반론이 없으면 모두 지지하는 것으로 추정하는 건 도대체 어떤 토론에서 통하는 규칙입니까? 자꾸 이런 식으로 토론하시면 저 정말 화낼겁니다. -- Jjw (토론) 2012년 7월 24일 (화) 20:48 (KST)
덧붙여, 자꾸 아니라고 하시지만 백산학회는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한 상고사 연구 단체가 맞습니다. 민족주의 사관 역시 여러 사관 가운데 하나이므로 그것이 좋다 나쁘다를 여기서 논할 것은 못되지만, 백산학회의 논문들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객관적으로 분명히 하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Jjw (토론) 2012년 7월 24일 (화) 20:48 (KST)
그럼 박경철 교수의 1992년 논문(두막루가 몽골족의 선조인 실위 계통이 아닐까?)도 '백산학회'에서 발행한 학술지에 실렸는데, 그건 어떻게 설명하실건가요? 또한 김정배 교수의 1991년 논문은 <국사관논총>에 실린 글이고, 송호정 교수가 쓴 <한국사> 책은 또 어떻게 해명하실 건가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4일 (화) 20:53 (KST)

Xakyntos 님의 잘못된 비유로 인한 논의의 왜곡[편집]

틀토론:한국사 페이지에서 Xakyntos 님이 100명이 있는데, 그 중에서 2-3명이 떠든다고 하여, 그걸 정설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글을 썼는데, 그게 잘못된 비유임이 드러났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부여 연구자는 학계에서 10명 정도가 전부입니다. 그 중에서 부여를 계승한 두막루에 대해서 연구한 사람은 노태돈, 박경철, 김정배, 유태용 이상 4명입니다. 기타 송호정 교수, 조갑종 교수 등의 글은 독자적인 연구라기보다 위 4명의 연구를 재해석하여 일반인들이 알기 쉽도록 단행본 책을 쓴 사람으로 봐야 합니다. 어쨌든 다 쳐도 6명입니다. 이 6명의 학자들 중에서 살펴보면, 두막루의 부여 계승설이 '다수설'이 맞습니다. 더 이상 아무런 반론도 없구요. 그리고 송호정 교수는 <한국사> 책에 두막루에 대해 부여를 계승한 국가라고 명백히 적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Xakyntos 님의 예전 비유는 아무런 근거나 출처도 없이 상대방의 주장을 '소수설'로 몰아가기 위한 잘못된 비유라고 봅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4일 (화) 21:01 (KST)

토론의 잠정 중단 제안[편집]

아사달님이 쓰신 글에 감정이 살짝 상하여 좀 격한 반응을 보였습니다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리 흥분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여 아예 새로운 단락을 만들고 의견을 표합니다.

  • 아사달님께 - 아무리 이것 저것을 말씀하셔도, 결정적으로 더 이상 논문이나 서적 또는 발표문 등의 새로운 출처가 없습니다. 현재의 출처만으로는 학게의 통일된 의견이 없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이를 자꾸 어떤 출처는 권위있고 믿을 만한 것이고, 다른 출처는 그저 의견의 표현이며 논박당한 것이라는 주관적 해석으로 결론을 유도하지 마세요. 그리고, 백산학회의 성향에 대해서는 발표된 논문 가운데 한 두 개가 다른 의견도 있다고 하여 전체의 성격을 바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민족주의 사관"이라고 평가하면 아사달님은 자꾸 그것을 마치 "유사 역사학"이라고 오독(誤讀)하고 계시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동북아 지역, 특히 현재 중국의 동북삼성(東北三省)에 해당하는 지역을 고토(古土)로 표방하며 상고사를 주된 연구 분야로 삼고, 그 연구 결과가 대부분 한국의 상고사 영역을 확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회를 달리 무어라 불러야 하겠습니까? 질문의 형식으로 썼지만 따로 답변을 듣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서로를 충분히 알만큼 토론이 길었기에 이자리에서는 토론의 잠정 중단 만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 토론에 참여하신 다른 사용자분들께 - 토론이 길어지다보니 중언부언도 심하고 새로운 출처의 발굴없이 감정만 상해가는 토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비생산적인 토론을 계속 지속하여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보다 냉정히 판단하시고 제가 제안하는 토론 잠정 중단을 고려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제안 -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 현재의 출처에서는 두막루가 부여계일 것이라는 설과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설이 혼재되어 있으며, 학계 대부분이 인정하는 일관적인 견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 현재의 출처 가운데 어떤 것은 보다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거나 선택하고 다른 것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배제할 수 있는 권한이 위키백과의 사용자에게 없다는 것은 백:독자에 명시된 것과 같이 주지의 사실입니다.
  • 따라서, 현재로서는 학계의 연구가 보다 진전되고 유보적인 입장을 갖는 학자들이 새로운 의견을 보일 때까지 두막루의 부여 계승설은 그것을 주장하는 측과 그렇지 않다고 하는 측의 견해를 모두 출처를 밝혀 표기하고 토론 자체는 잠정 중단하기를 희망합니다.

아울러 저는 이 논의에 더 이상 관여할 의사가 없음도 다시 한 번 밝힙니다.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수 많은 문서들이 기다리는데 여기에 신경이 쓰여 진도가 안나가고 있거든요. 다른 분들도 객관적인 출처만을 근거로 판단하시고, 감정적인 논쟁을 가급적 줄이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Jjw (토론) 2012년 7월 25일 (수) 00:57 (KST)

Xakyntos 님, 선비족이라고 잘못 쓴 부분은 수정해 주세요.[편집]

Xakyntos 님, 두막루를 선비족 계열이라고 쓴 부분은 본인도 인정하셨듯이 학계 어디에서도 그런 주장을 하는 곳이 없습니다. Xakyntos 님 본인의 단순한 착각(!)이라고 해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두막루 문서 본문에는 그런 잘못된 서술이 남아 있습니다. Xakyntos 님 본인이 쓰신 글이니, 본인이 책임지고 수정해 주세요. 위에서도 말을 했으나, 바쁘신지 답이 없군요. 좀 더 기다려 보고, 여전히 답이 없으면, 제가 직접 수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5일 (수) 08:58 (KST)

출처를 참조하여 고쳤습니다. jtm71 (토론) 2012년 7월 25일 (수) 11:57 (KST)
jtm71 님이 대신 수정해 주셨군요. 그런데 여전히 두 개 중 한 개만 고치고 다른 한 개는 남아 있군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5일 (수) 23:55 (KST)
고쳐지지 않고 '남아 있는' 부분이 어디인가요? jtm71 (토론) 2012년 7월 26일 (목) 00:41 (KST)
"문화와 언어" 문단에서 "두막루의 언어는 선비 계통인 실위(失韋)와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부분입니다. 실위는 선비 계통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실위는 훗날 칭기즈칸의 몽골 민족의 뿌리가 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6일 (목) 10:49 (KST)
문제가 되는 부분을 확인, 삭제했습니다. jtm71 (토론) 2012년 7월 26일 (목) 12:00 (KST)
합의를 통해 문제가 해결된 부분은 굳이 토론으로 지적해서 남기기 보단 아사달님께서 직접 수정해주시는게 더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비엠미니 2012년 7월 26일 (목) 12:38 (KST)

두막루 문서 내용 추가 예정[편집]

기나긴 토론이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 합니다. 이번 토론을 통하여 저 역시 많은 새로운 출처와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때로는 격한 토론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는 이견이 많이 좁혀진 논의가 되었습니다. 이번 토론에서 새롭게 제시된 많은 출처의 내용을 참고하여, 현재의 두막루 문서를 대폭 수정하고자 합니다. 학계 동향에 대해 많이 추가하고, 토론 때와 달리 가급적 주관적 표현이나 생각을 배제하고, 출처에 나온 내용 위주로 객관적으로 서술하고자 합니다. 이번 주말이나 다음주 정도까지 이것저것 출처를 정리한 뒤, 부족한 역사 지식이지만, 제가 한 번 두막루 관련 내용을 총정리해서 올려보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따끔한 지적 및 비판을 기대하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6일 (목) 21:08 (KST)

공공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정리[편집]

정보 교육과학기술부 산하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찾아본 자료를 정리한 결과입니다. (저자에 대한 경칭은 생략합니다.) jtm71 (토론) 2012년 7월 27일 (금) 07:57 (KST)

국사편찬위원회
  • 김정배, 《국사관논총》 ‘豆莫婁연구 / 부여사의 연결과 관련하여’, 1991년 발표
기존의 부여사를 재조명, 두막루국을 한국사에 포함시켜야 하며, 두막루국은 부여인의 일부가 나라를 세워 410년 직후 ~ 724년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 ("「夫餘」계승「豆莫婁國」있었다", 《동아일보》, 1991.12.25 기사 참조)
  • 김정배, 최몽룡, 송호정, 이현혜 공저, 《한국사》 권4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1997년 발간
김정배가 ‘개요’에서 두막루에 대해 언급. 송호정이 부여에 대한 서술에서 두막루에 대해 언급.
  • 《한국사》 권1 ‘총설’, 2002년 발간
《한국사》 전체의 요약이자 ‘개요’격으로, ‘두막루’에 대해 언급하지 않음. 두막루와 관련된 내용은 중·고교의 국사 교과서에 반영되지 않음.
한국학중앙연구원
  • 노태돈, 김선주 집필, ‘부여’, 《한국민족문화대사전》
부여를 계승했다는 ‘두막루’에 대한 언급은 없음. ‘동부여’, ‘남부여’도 별도 문서가 있지만, ‘두막루’는 사전 전체에서 언급되지 않음.
동북아역사재단
  • 노태돈, 서영대, 박경철, 이청규, 조법종, 송호정, 오강원, 박준형, 박선미 집필, 김정배 발행, 《고조선 단군 부여》, 2004년 발간
일러두기에서 ‘가급적이면 개인의 견해를 억제하고, 학계에서 최소한의 합의를 본 사항을 중심으로 균형 있게 서술하고자 노력하였다. 단, 집필자의 의지가 강한 경우 일정한 선을 넘어도 그대로 실었다’고 밝힘.
김정배는 발간사에서 ‘부여의 후신’으로서의 두막루를 언급.
  • 윤용구, 김기섭, 이성제, 임기환, 정재윤, 김성숙 공저, 《부여사와 그 주변》, 2008년 발간
김기섭은 ‘부여족의 분산과 이동’에서, ‘두막루’는 부여 유민의 일부가 새로 정착하여 부여의 국가전통을 이어가려 한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 일부 의견으로 410년부터 8세기까지 존속했다는 견해 언급. 또한, 자세히 검토하지 못했다고 언급.
윤용구는 ‘책머리에’에서 전체 내용을 요약하면서 ‘두막루’ 부분을 다시 간단하게 언급하고, 마찬가지로 자세히 검토하지 못했음을 언급.

이런 좋은 정보를 주시다니... jtm71 님, 감사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7일 (금) 09:01 (KST)

두막루 관련 출처 목록[편집]

두막루 관련한 토론이 이곳에서도 활발히 진행되었으나, 사실 그 이전에 틀토론:한국사 페이지에서도 활발히 진행된 바 있습니다. 토론에서 나왔던 여러 가지 출처들과 새롭게 제시된 출처들을 한 곳에 모두 모아서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이곳에 출처 목록을 만듭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9일 (일) 18:51 (KST)

  1. 두막루에 대한 고대 사서
    1. 《위서(魏書)》 두막루조, 서기 554년 - 동북아역사재단 저, 《위서 외국전 역주》, 동북아역사재단, 2010년 3월 23일.
    2. 《위서(魏書)》 물길전, 서기 554년 - 동북아역사재단 저, 《위서 외국전 역주》, 동북아역사재단, 2010년 3월 23일.
    3. 《북사(北史)》 두막루전, 서기 643~659년 - 동북아역사재단 저, 《북사 외국전 역주》, 동북아역사재단, 2010년 3월 30일.
    4. 《책부원귀(冊府元龜)》 외신부 조공조, 서기 1013년.
    5. 《신당서(新唐書)》의 유귀전(流鬼傳), 서기 1044~1060년 - 동북아역사재단 저, 《신당서 외국전 역주(중)》, 동북아역사재단, 2011년 5월 30일.
    6.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의 권1 부여 편, 서기 1778년 - 아계 외 저, 장진근 역주, 《만주원류고》, 파워북, 2008년 10월 25일, 50~58쪽.
  2. 중국 측 학자들의 연구
    1. 溤家昇, 〈豆莫婁國考〉, 《禹貢》半月刊 7卷 1,2,3 合刊, 1937年.
    2. 張博泉, 《東北歷代疆域史》, 1981年.
    3. 張博泉, 〈魏書豆莫婁傳中的幾個問題〉, 《黑龍江文物叢刊》 第2期, 1982年.
    4. 魏國忠, 〈豆莫婁國考〉, 《學習與探索》 3期, 1982年, 137쪽.
    5. 傳朗云, 楊楊, 《東北民族史略》, 吉林人民出版社, 1983年.
    6. 干志耿, 〈古代槀離硏究〉, 《民族硏究》 第2期, 1984年.
    7. 孫正甲, 〈夫餘源流辨析〉, 《學習與探索》, 1984年, 第6期, 139~143쪽.
    8. 李健才, 《東北史地考略》, 吉林文史出版社, 1986年, 38쪽.
    9. 董萬侖, 《東北史綱要》, 黑龍江人民出版社, 1987年, 108쪽.
    10. 손진기(孫進己) 저, 임동석 역, 《동북민족원류》, 동문선, 1992년 7월 1일.
  3.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논문
    1. 노태돈, 〈부여국의 강역과 그 변천〉, 《국사관논총》 4, 국사편찬위원회, 1989년, 33~52쪽.
    2. 김정배, 〈두막루국 연구: 부여사의 연결과 관련하여〉, 《국사관논총》 제29집, 1991년 12월, 71~80쪽.
    3. 박경철, 〈부여사 전개에 관한 재인식 시론〉, 《백산학보》 제40호, 백산학회, 1992년, 23~73쪽.
    4. 유태용, 〈논형(論衡) 길험편에 보이는 고리국의 연구〉, 《백산학보》 제57호, 2000년.
    5. 유태용, 〈두막루국 흥망사 연구 시론〉, 《백산학보》 제70호, 2004년 12월, 141~159쪽.
    6. 박경철, 〈새로운 부여사상(扶餘史像) 정립을 위한 몇 가지 과제〉, 《선사(先史)와 고대(古代)》 통권 제23호, 한국고대학회, 2005년 12월, 173~190쪽.
    7. 김영관, 〈발해인 낙사계(諾思計) 묘지명에 대한 고찰〉, 《목간과문자》 제7호, 2011년 6월, 149~167쪽.
  4. 북한 역사학계의 논문
    1. 권승안, 〈두막루국에 대하여〉, 《력사과학》 2004년 1호 (루계 188호),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04년 1월 11일, 41~43쪽.
  5. 역사 단행본 서적
    1. 김정배 저, 〈두막루국 연구: 부여사의 연결과 관련하여〉, 《한국고대사와 고고학》, 신서원, 2000년 8월 29일, 397~412쪽.
    2. 송호정, 〈부여의 성장과 대외관계〉, 《한국사》 4권, 국사편찬위원회, 2003년, 201쪽.
    3. 조법종 저, 《이야기 한국고대사》, 청아출판사, 2007년 1월 25일, 85~86쪽.
    4. 동북아역사재단 저, 《고조선 단군 부여》, 동북아역사재단, 2007년 11월 30일.
    5. 김기섭 저, 〈부여족의 분산과 이동〉, 《부여사와 그 주변》, 동북아역사재단, 2008년 4월 4일.
    6.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저, 《지명의 지리학》, 푸른길, 2008년 5월 28일, 41쪽.
    7. 최진열 저, 《대륙에 서다》, 미지북스, 2010년 3월 5일, 12쪽.
  6. 언론보도
    1. 정인보, 〈고조선의 대간(7)〉, 《동아일보》, 1935년 2월 5일.
    2. 정인보, 〈제7정신의 정적인 부여 천자(4)〉, 《동아일보》, 1935년 4월 3일.
    3. 김차수, 〈부여 계승 두막루국 있었다〉, 《동아일보》, 1991년 12월 25일.
    4. 이용인 기자, 〈우리말글의 잘못된 족보〉, 《한겨레21》, 1998년 5월 7일.
    5. 김태식 기자, 〈당에 투항한 발해 장군 묘지명 공개〉, 《연합뉴스》, 2011년 1월 5일.
    6. 최영창 기자, 〈“‘ 낙사계’는 발해사람이 맞다”: 묘지명 판독… 唐·백제·발해인 논란 종결〉, 《문화일보》, 2011년 1월 6일.
    7. 박선혜 기자, 〈발해인 묘지명 최초 발견〉, 《천지일보》, 2011년 1월 12일.
  7. 인터넷 사이트
    1.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운영하는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사이트(http://db.history.go.kr) 중 "두막루" 부분

두막루 관련 자료 확보[편집]

이번 토론을 계기로 제가 이전에 두막루와 관련하여 알지 못했던, 혹은 가지고 있지 않았던, 많은 출처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중 고려대학교 총장 및 한국고대사학회의 회장을 지내신 '김정배' 교수의 다음 단행본 서적에 '두막루' 관련 내용이 상당히 풍부하게 나오고 있더군요. 책 구매를 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읽어보았습니다. 이 내용도 최대한 반영하여 현재의 두막루 문서에 보충하고자 합니다. 참고하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8월 12일 (일) 18:19 (KST)

김정배 저, 《한국고대사와 고고학》, 신서원, 2000년 8월 29일.

사용자:블루베리 님이 알려주신 다음 북한 역사학계의 논문 1편을 위 참고문헌 목록에 추가합니다.

페이지가 겨우 3쪽에 불과하여 별다른 내용이 있을 것 같지는 않으나, 다만 북한에서도 두막루에 관한 역사학계의 논문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같아서, 위 참고문헌 목록에 추가하였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0월 14일 (일) 19:24 (KST)

낙 (성씨) 문서를 만들었습니다.[편집]

조금 시간이 지난 것 같지만, 지금이라도 알리는 것이 좋을 듯 하여, 여기에 남깁니다. 두막루의 대수령 낙개제에 관해 조사하던 중, 한국에 여러 명의 '낙씨' 인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관련 출처를 바탕으로, 낙 (성씨) 문서를 만들었으니, 참고하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1월 14일 (수) 11:53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