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백과:사랑방 (일반)/2018년 제5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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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의 사이트 노티스 노출[편집]

맨 위의 사이트 노티스가 비어있는 지금 위키프로젝트:2018년 동계 올림픽이나 위키프로젝트:위키백과 토막글을 힘들다면 단 일주일 이라도 사이트 노티스에 올려보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프로젝트가 사이트 노티스에 올라간 사례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없다면 새로운 시도이겠네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j  토론  2018년 1월 29일 (월) 00:14 (KST)

괜찮은 아이디어네요. 찬성합니다.--Leedors (토론) 2018년 1월 29일 (월) 05:14 (KST)
의견 요청과 틀:위키백과 소식 등으로 해당 프로젝트의 노출은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직접 숨기지 않는 한 위키백과의 사실상 모든 페이지에서 모든 사용자에게 노출되는 공지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해당 프로젝트의 중요도가 높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IRTC1015 2018년 2월 1일 (목) 22:21 (KST)

특정 사용자가 기여한 문서 정리 요청[편집]

220.127.212.218님이 기여한 프로레슬링 선수들 문서들 정리가 필요합니다. 대표적으로 브라운 스트로우먼, 알베르토 델 리오를 보신다면 이 내용이 위키백과에 실리는 게 과연 맞는가? 그런 기분을 느끼실 겁니다. -- 183.97.82.39 (토론) 2018년 1월 29일 (월) 21:21 (KST)

토론에 응하지 않고 일부 문서에 잘못된 편집을 강행하는 사용자를 관리자가 제재도 계도도 하지 않는 것[편집]

사용자:All7676님이 틀:대한민국의 정당, 틀:대한민국의 진보정당, 틀:대한민국의 원외정당을 꾸준히 훼손중인데 관리자가 제재를 가하지도 계도를 하지도 않고 있는데

이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이 의견을 2018년 1월 29일 21:33 (KST)에 작성한 사용자는 27.176.107.239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관리자는 적절한 요청에만 제재하여야 하며 계도하는 당사자도 아닙니다. 상대방의 편집이 무조건 잘못된 편집이라고 단정하지 마시고 대화를 먼저 하세요.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그분도 토론에 응했는데 가서 하시지 그래요. --"밥풀떼기" 2018년 1월 30일 (화) 19:19 (KST)

사용자:신비한 관련 사항[편집]

사용자:신비한님은 지금까지 대부분 확인 가능이 불가능하여 그 정확성 문제에서 떨어지는 주장은 물론,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공정성과 정확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지극히 어느 한쪽에 편향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글들을 다수 올리는 문서 훼손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신비한님은 나치나 공산주의, 링컨 대통령 암살, 임진왜란, 유대인 학살 등 역사적으로 부정적인 사건에 항상 바티칸이나 예수회가 있었다는 주장을 하고 계십니다. 또한, 히틀러나 힘러 등 역사적으로 악행으로 유명했던 인물들은 죄다 종교를 천주교 신자라고 주장하며 수정하려 하십니다. 신비한님의 사용자토론을 보면 "사실 세계사를 살펴보면 중요한 사건 사건 마다 바티칸이 음으로 양으로 개입하지 않은 사건이 거의 없습니다."라고 본인이 직접 주장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로 신비한님 주장에 대한 정확한 근거를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만, 신비한님은 자신이 쓴 글이나 자신의 주장의 근거라고 내세운 책 등에 대해서 "기존의 역사적 시각과 완전히 다른 시각의 서술"이라는 점을 밝혀, 스스로 자신의 주장이나 근거로 내세운 것들의 권위가 떨어지고 그 어떠한 정확성도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사실상 자인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이분은 이 세상의 온갖 나쁜 것들은 죄다 가톨릭의 마수라고 주장하시는 분이십니다.

신비한님 본인은 역사 속에 가톨릭에 의해 왜곡되어 오고 은폐되어왔던 역사의 이면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는데, 아마도 신비한님은 반가톨릭 성향의 극단주의 개신교 및 개신교에서 파생한 종파에 속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개인이 어떠한 이념이나 종교관을 갖든 그것은 자유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분이 쓰시는 글의 사실 여부와 객관성, 중립성이 보장되어 있느냐 여부입니다. 그 정보가 과연 믿어도 될 지에 대해 신뢰성을 검증하는 절차인 "교차검증"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하나의 주장을 볼 때 그에 대한 근거가 한 곳 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검증되는 것을 교차검증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신뢰성을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이게 중요한 이유가 필자 마음대로 왜곡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차검증해서 그걸 가지고 신뢰도가 정해지고 이 경우 본래 사료 가치가 없던 것도 사료로 인정받는 경우가 생깁니다. 가령 링컨 암살 배후에 예수회가 있다는 주장은 당시 범죄자들과 수사기관, 언론, 그리고 현재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죄다 동일해야 신뢰도가 높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단순히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이나 독자적 연구를 근거로 내세워서 잘못된 정보를 사실인양 퍼뜨리려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을 갖춘 사람들이 볼 때, 신비한님의 이러한 생각이 참으로 황당무계합니다. 신비한님은 이 문제로 결국 1차례 차단되었는데, 차단기간이 풀리자마자 다시 자신이 했던 행동을 반복하고 계십니다. 지금 신비한님은 한두 개 문서가 아니라 수많은 문서를 이러한 방식으로 훼손하고 지나치게 낮은 질의 문서를 대량으로 양산하고 계시는데, '이걸 언제 다 일일이 하나하나 토론하나', '앞으로 이분과의 씨름을 언제까지 계속하나' 하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즉 신비한님은 자신이 차단된 사유를 결국 이런 식으로 가다간 끝이 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신비한님의 행동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위키백과의 정확성과 공정성 등이 심각하게 훼손되리라 염려됩니다. 위키백과는 검증되지 않은 내용 내지 추측성, 비방성 내용이 아니라 정확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사람들에게 제공해야 하며, 두번 세번 사실을 확인하고 사람들에게 제공해야 할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신비한님은 "자신의 기여를 사랑방이나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올리고 다른 위키 유저들의 의견을 물어 유저들이 자신의 생각이 사실과 다르거나 확인 불가능한 음모론이라 판단한다면 자신을 차단하라. 기꺼이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으셨습니다. 따라서 현재 위키백과에 활동하고 계신 많은 역사학 및 정치학 전문가 분들과 교수분들께서는 종교관이나 이념 문제 등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지 마시고 순전히 역사적, 정치학적 관점에서 신비한님이 하시는 주장이 사실이고, 기존 역사학계의 합의된 의견이나 세간의 인식이 가톨릭과 바티칸에 의해 거짓으로 왜곡된 주장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 여부만 판가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많은 이용자들의 참여 부탁드립니다. --Liturgy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01:52 (KST)

사람 모욕하는 방법도 여러가지군요. 이미 제가 편집한 문서는 문서관리 신청이나 토론, 사용자관리 신청에서 여러 사용자와 관리자들에게 노출 되었고, 관리자 @Ykhwong:님과 충분한 토론을 통해 문제 없는 것으로 판명났는데도 사랑방까지 들고 오시네요. 히틀러나 히믈러, 괴벨스 마르틴 보어만 등 나치 수괴들이 모두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은 세계적인 가톨릭 신학자인 한스 큉의 저서 《가톨릭의 역사》234페이지에 나옵니다. 또 링컨 암살에 예수회가 관련되었다는 것도 《바티칸 암살단》이라는 책이 출처입니다. 설령 이것이 음모론이라 하더라도 소수의견으로 작게라도 실릴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이나 워낙 리터지님이 완고하셔서 되돌리지 않았습니다. 아래에 리터지님이 문제 삼고 되돌리고 있는 문서들을 올려드립니다. 찬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관련 문서 입니다.[[1]] 문화일보,시사저널, 프레시안이 출처입니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 관련 문서입니다 [2] 이화여대 교수 조찬선의 《기독교 죄악사》, 폴 임의 《책속의 책》(우리문학사)출처입니다

교황 비오 9세‎ 관련문서 입니다. [3] 경향신문이 출처입니다

교황 프란치스코‎ 관련문서 입니다. [4] 시사저널,국제신문,조선일보가 출처입니다

세계 교회 협의회관련문서입니다. [5] 곽원철《합동과 통합의 분열과 2013WCC총회에 대한 견해 차이》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석사논문이 출처입니다.

임진왜란관련문서 입니다. [[6]] 윤재필의《16세기 예수회의 일본 선교 연구 : 일본 선교의 부흥과 쇠퇴의 요인 분석을 통한 적절한 일본 선교 전략의 모색》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선교대학원 석사논문, 폴 존슨의 《기독교의 역사》(포이에마)가 출처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위 윤재필의 석사논문이 출처입니다.

교황 비오 12세‎ [7] 경향신문과 미디어펜의 복거일교수의 글이 출처입니다.

모두 출처가 명확한 문서들입니다. 이렇게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있는 글들을 한번의 토론도 없이 제 멋대로 삭제하는 것이 문서훼손 아니면 뭔가요. 백:종교 문서와 중립적 시각에는 이런 규칙이 있습니다.

특정 종교를 옹호하기 위해 비판의 내용의 일부 또는 전체를 삭제하거나 일방적으로 훼손하여서는 안 됩니다. — 백:종교 문서와 중립적 시각

종교 문서의 중립성을 위반하고 위키 지침을 어기고 있는 사용자는 리터지님 아닌가요. 위키에서 문서훼손은 엄격하게 조처합니다. 일부 멋모르는 초보들이 장난삼아 훼손한 문서들도 가차없이 차단을 당합니다. 저는 이런 장난성 반달보다 리터지님의 행위가 훨씬 심각하고 무겁다 생각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주장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마이나스 삭제와 되돌리기로 일관하다면 누가 이 곳 위키에 기여하려 하겠습니까.. --신비한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1:15 (KST)

신비한님, 사랑방에 와서 자신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를 검증해 달라고 먼저 말씀하신 것은 다름아닌 본인이셨습니다. 지금 저는 신비한님이 요청하신대로 해드린 것일 뿐입니다. 제가 신비한님께 참 궁금한 것은 그렇다면 신비한님이 생각하시고 주장하시는 세계사의 전반적인 흐름이 정확히 무엇입니까? 신비한님의 주장은 주류 학계에서는 본 적이 없고, 교차검증도 안 되는 것으로 아는데요. 그런데 지금 신비한님은 그것들이 전부 다 틀렸고 가톨릭 측에서 공작을 펼쳐서 사람들이 잘못 아는 것이라고 주장하시니까 그렇다면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개별적인 사안만 따로따로 놓고 볼게 아니라, "진짜" 세계 역사는 전반적으로 뭐가 어떻게 흘러왔다고 생각하시는지 한 번 본인의 주장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라는 것입니다. 가톨릭이 역사를 미화하고, 왜곡하고, 모든 사건사고의 배후를 조종했다는 식으로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하기 이전에 일단 신비한님 생각의 기본적인 틀과 방향성은 저를 포함해서 여기 계시는 모든 분이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Liturgy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3:06 (KST)
제가 세계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여기서 어떻게 설명합니까. 저는 세계사의 개관을 설명할 능력도 안되거니와 그에 대답할 의무도 없습니다. 이곳은 누구 개인의 사상을 검증하는 자리가 아닙니다.지금 리터지님은 오직 저의 사상과 생각의 문제점을 꼬투리 삼아 차단시키려는데 목적이 있지 않은가요..저는 제 개인 생각이나 주장을 이곳 위키에 남기고자 함이 아닙니다. 제 개인 생각이나 주관이 반영된 독자연구 문단이 있다면 그 대목을 문제 삼아야지 왜 남의 사상과 종교를 문제삼고 있는 것인가요. 임진왜란 같은 경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복욕 때문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일 것입니다.그러나 윤재필의 석사논문《16세기 예수회의 일본 선교 연구 : 일본 선교의 부흥과 쇠퇴의 요인 분석을 통한 적절한 일본 선교 전략의 모색》또 김상근의 《예수회의 초기 일본 선교정책 비교》같은 논문을 보면 예수회가 임진왜란의 발발에 깊이 연관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폴존슨의 《기독교의 역사》에서는 예수회가 중국침략계획을 마련했다고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곳에 예수회가 임진왜란을 일으켰다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판단은 역사학자들 몫이겠지요. 따라서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예수회의 만남과 묵계 등은 중요한 역사적 펙트이며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정확히 기록으로 남겨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무조건 주류 의견이 아니라며 되돌리기하는 것은 명확히 문서훼손이자 역사왜곡이며 위키지침에 어긋난다는 겁니다.. 님이 믿고 있는 가톨릭이나 제가 믿는 종교나 서로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은 무조건 그르고 음모론자라고 배척하는 것은 위키의 협업정신과도 어긋납니다.. 지금부터라도 협업정신을 지켜주실것을 당부드립니다.. 신비한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3:38 (KST)
신비한님, 이 문제는 지금 신비한님이 그 어떤 교과서나 역사 관련 문헌, 참고서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주장을 하고 계시기에 일어난 문제입니다. 지금 신비한님은 지금 자신의 주장이 맞고, 주류 학계의 입장은 가톨릭에 의해 왜곡된 것이라고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신비한님, 신비한님은 자신이 "역사 속에 가톨릭에 의해 왜곡되어 오고 은폐되어왔던 역사의 이면을 밝히는 작업"을 한다고 말씀하셨죠? 그렇다면 그것에 대한 설명을 먼저 하셔야지요. 뭐가 왜곡되고 은폐되었는지를요. 신비한님은 지금 저는 물론 모든 학자들이나 세인들이 잘못 알고 있고, 신비한님이 그들과는 달리 아는 뭔가가 있다는 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은 그것을 설명할 능력이 안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이와 상충되는 것 아닌가요? 이걸 그냥 넘어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회피하시면 안 됩니다. 신비한님은 이에 대답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문제를 종교 문제로 비화할 의도가 없다는 점을 사전에 분명히 말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역사적, 정치학적 문제이고 사실이냐 거짓이냐의 문제입니다. 이건 다름의 차이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신비한님이 무슨 종교를 믿든지간에 그것은 신비한님 개인의 문제이기에 제가 알 바 아니라고 누차 말씀드렸습니다. 이건 신비한님의 사상을 검증하려는 것이 아니라 신비한님의 주장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신비한님 스스로 자신의 주장에 대한 사실 여부를 전문가들의 확인을 바라며, 자신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거나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견해로 판명된다면 심지어 자신이 이곳을 떠나겠다고까지 하셨습니다. 이건 제가 한 말이 아니라 신비한님 자신이 한 말이니 책임을 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Liturgy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3:57 (KST)
참 똑같은 말만 계속 되풀이 하게 하시네요. 저의 기여는 보시다시피 모두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있습니다. 출처를 확인하시고 문제된 부분이나 문장이 있다면 그 부분을 문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 출처를 제가 왜곡 했는지 아닌지 그것도 직접 읽어보시고 판단하면 됩니다.. 제가 가톨릭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리터지님같은 분을 두고 하는 이야기 입니다. 무조건 가톨릭에 비판적인 입장은 기를 쓰고 지우고 되돌리기하고 계시지 않으십니까..그래서 지금 사랑방에 저의 기여가 올라왔는데 이제 여기 많은 위키 전문가들께서 저의 기여가 허위인지 아닌지 판별하실 것이라 봅니다. 저에 대한 얘기는 그만 하십시오.신비한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4:04 (KST)
신비한님, 신비한님의 기여가 모두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고 말하는 분은 지금 신비한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신비한님의 주장에 동조하는 분이 지금 얼마나 계십니까? 일례로 왜 TV나 역사책 등에서는 한 번도 신비한님과 같은 주장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 중 학계에 발표된 건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역사 및 정치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 검증받은 학자 중 신비한님과 같은 주장을 하시는 분이 계시나요? 자신의 주장이 맞다고 주장하시려면 중립적 시각, 독자 연구 금지, 확인 가능, 이 3가지가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신비한님의 주장이 여기에 부합하는지 아닌지 지금 검증을 다시 시작한 상태입니다. 지금 신비한님이 기여로 논란이 된 문서가 한두 개가 아닙니다. 그걸 일일이 다 검증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일단 신비한님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 알아야 그다음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것이 아닙니까? 지금 저나 여기 계신 다른 분들은 한가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다들 학업이나 직장 등으로 바쁜 와중에도 시간이 날 때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시간을 자꾸 이런 공방으로 낭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과 다르다고 하여 그것을 마치 종교적인 대립 구도로 몰고가지 말라고 재차 말씀드립니다. 신비한님의 종교적 열정이 강하신 건 알겠으나 그건 여기서 논외입니다. 그리고 저는 관리자님께 말씀드려서 지금 사랑방에 신비한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비한님도 자신이 검증을 받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당당하시다면 제 요청에 응답해주시기 바랍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대답을 회피하신다면 그건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토론을 거부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Liturgy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9:44 (KST)
리터지님, 제가 출처로 제시한 논문과 신문은 뭔가요..안 읽으셨습니까. 신문과 학위 논문이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아니면 어떤 게 신뢰할 수 잇는 출처인가요. 저의 기여가 제가 소설을 써서 만들어 온 주장인가요. 저의 기여는 개인의 주장도 독자 연구도 아니고 다른 신문에 실린 내용, 논문에 실린 내용일 뿐입니다. 뭘 더 가감했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이곳은 저의 사상을 검증하는 곳이 아닙니다. 저의 기여의 어떤 부분이 잘 못되었는 지 그 점을 논해 주시기 바랍니다..그리고 이렇게 토론장을 개인의 사상 검증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는 불쾌하기 짝이 없군요..저 역시 먹고 살기 바쁜 사람이라 이곳에서 쓸데없이 힘쓰고 싶지 않습니다.. --신비한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20:56 (KST)
오해가 있는 것으로 보여 말씀드립니다. 이 자리는 신비한님의 사상 검증을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더 나은 백과사전을 만들기 위해 여기에 있으며(그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누구의 사상을 검증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침/정책적으로 사상 검증이 필요하다는 언급이 있는지요? 백과사전 문서의 내용에 문제가 있으면 토론하고 합의하고 함께 고치면 되는 일입니다. 지금 누구를 비난하고 서로의 잘잘못을 가릴 게 아니라요. Liturgy님께서 이 토론을 위해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신비한님의 차단인가요, 아니면 더 나은 백과사전을 만드는 것인가요? 현 시점까지는 아래 토론을 보니 출처 및 내용 기술과 관련하여 어느 부분이 문제가 되는지, 어떻게 고치는 것이 좋을지 긍정적으로 토론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종교적인 대립 구도로 몰고가는 문제는 보이지 않습니다. 만일 그러한 모습이 보인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Ykhwong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20:15 (KST)
제가 윗글에도 썼다시피 지금 저는 신비한님의 사상을 검증하려는 것이 아니라(제가 위키백과 운영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기는 그런 곳이 아니며, 저한테도 그럴 자격도 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대략적으로라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를 신비한님 주장의 범위를 알려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비한님 스스로 역사 속에 가톨릭에 의해 왜곡되어 오고 은폐되어왔던 역사의 이면을 밝히는 사람이라고 하셨고, 거기에 따라 지금 문서 작성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렇다면 어떠어떠한 점에서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는 이렇게 하고 있다 라고 설명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마다 서로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가톨릭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말은 바로 당신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당신은 무조건 가톨릭에 비판적인 입장은 기를 쓰고 지우고 되돌리기하고 있다" 식으로 자꾸 종교적 대립 구도로 몰고가니 제가 이분과 대화할 때마다 계속 그런 식으로 몰고가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과 다른 주장으로 저에 대해서 명예훼손을 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Liturgy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21:12 (KST)
@Ykhwong: 관리자님, 저의 사상과 세계관을 밝히라는 리터지님의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에 저는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생각합니다. 제가 기여한 문서의 진실성 여부가 아닌 저의 사상과 세계관에 대한 검증으로 뒤바뀐 이런 토론은 무의미하며 저는 이시간 이후 더이상 대응하지 않겠습니다..리터지님의 이러한 태도는 저에 대한 인신공격과 다름없습니다. 또한 명예훼손 운운하는 것은 심각한 법적 위협입니다..리터지님의 차단을 요구합니다.--신비한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21:36 (KST)
제가 언제 신비한님의 사상과 세계관을 밝히라고 했습니까? 자꾸 제가 하지도 않은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비한님 주장의 진실성 여부를 알기 위해 설명해달라고 요청한 것이 그렇게도 터무니 없는 주장이고, 인신 공격입니까? 그리고 법적 위협을 한 적 없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신비한님이 저에 대해서 뭐라고 하실 때에도 거기에 대해선 아무 말 하지 않고 참았습니다만, 신비한님이 저에 대해 사실과 다른 주장으로 왜곡하시니 그 점에 대해 유감을 나타낸 것입니다. 신비한님이 개인적으로 저를 싫어해서 그러시는지는 모르겠으나 감정적으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겠다고 거부하고 차단부터 요구하지 마십시오. --Liturgy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22:15 (KST)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 알아야"라는 문구가 "사상 검증"과 동의어로 이해되므로 주의를 드립니다. 신비한님도 "당신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라는 발언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어투가 아닙니다. 두 분 모두 예의바르고 신중하게 토론을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Ykhwong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22:18 (KST)


꽤 오랜만에 보는 이슈인것 같습니다. 딱 한가지의 말씀만 드리자면, 하나의 문서는 백:신뢰 가능한 다수의 백:신뢰/출처에 의해 쓰여져야 합니다. - Ellif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1:20 (KST)

신비한님, 사랑방에서 토론하는 것은 제가 토론 장소의 하나로서 제안을 하였습니다. 토론을 개시하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Liturgy님, 제가 분명히 특정 사용자를 비난하지 말아달라고 며칠 동안 적어도 2번 이상 요청드렸습니다. 어떻게 내용이 쓰여야 하는가를 논의해달라고 말씀드렸는데, "신비한님의 이러한 생각이 참으로 황당무계합니다"라는 언급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언제까지 타인을 비난하실 건가요?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간에 문서 내용과 지침/정책에 초점을 맞추어 토론해 주시기 바랍니다. --Ykhwong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1:27 (KST)

구체적으로 어떻게 내용이 바뀌었고 그것이 문제가 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만, 출처와 함께 기술되는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 외에, 기여자에 대한 비난으로 와전되는 것은 보기 좋지 않습니다. 위키백과는 신봉하는 신념/주장의 옹호를 위한 장이 아니라, 신뢰 가능한 출처(개인적으로는, 이슈에 따라 다르나 종교 관련 출처는 논문이라해도 가치관 및 관점에 따라 해석이 바뀔 수 있는 부분이므로 한두어개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에 바탕을 둔 사실 가운데, 백과사전으로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내용을 축적해야 하는 곳입니다. 사랑방을 통해 불합리하다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 환기를 시킨 것은 좋다 보여지고, 이제부터는 각각의 문서의 토론을 통해 구체적으로 토론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공동의 합의에 의해 결정된 지침이나 정책을 명백히 벗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완고함이 필요하겠으나, 생각의 다름에 대한 완고함은 조금 누그러뜨려 주시면 좋겠네요. 그리고 신비한님은 올려주셨던 차이 링크를 지우셨는데 이유가 있으신지요? -- tiens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1:37 (KST)
급하게 올리다 보니 뒤죽 박죽 섞였더라구요..정리할 틈이 없어서요.다시 올렸으니 천천히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신비한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1:41 (KST)


Liturgy님과 신비한님은 같은 기독교인 이신것 같습니다. 그리고 위키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심에 존경을 표합니다. 구교와 신교의 나누어진 상황속에서 서로의 종교적 관점에서 문서를 작성시에 서로 서로 배려하는 관용을 가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타 종교에 대한 비판처럼 문서가 작성되어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또한 다양한 논문이나 외국의 문서들을 가지고 정확한 학계의 근거를 제시하면 좋겠습니다. 혹시 소수의 의견인 경우에는 간단하게 내용을 소개하고 그 내용을 진술시에도 감정적인 표현은 없는지 살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상대쪽의 비판을 무조건 삭제하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하는 것입니다. 위키는 독점도 소유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며 후대에게 올바르게 전수되어야할 소중한 유산입니다. 브리테니카는 전문학자가 독점적으로 만들었지만 위키백과는 협협입니다. 조금씩 양보하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서로의 노력과 열정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고 아름답게 남겨지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칼빈500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2:30 (KST)

자기 종파 혹은 종교에 대한 비판이라고 무턱대고 삭제해산 안되겠으나, 근거가 결핍된 비판을 해놓고는 비판을 삭제하지 말라는 논리가 오남용하는 경우는 없어야 합니다. 이런식으로 쓰면 개신교이든 불교이든 모두 소설로 비판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는 그런 상황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Gabrielus333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4:42 (KST)

물론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는 것이 애매할 수는 있으나, 신비한님의 출처는 상당히 극단적임을 부정할 수 없어보입니다. Gabrielus333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4:44 (KST)

신비한님. 폴 존슨의 저서는 저도 가지고 있으나, 그 어디에도 임진전쟁이 예수회 때문이란 말은 없습니다. 다만 1586년에 예수회 신부 알폰소 산체스가 유럽에서 1-2만, 마닐라 및 일본에서 5-6천을 동원하여 '마닐라에서 출발하여' 마카오와 광저우일대를 치자는 계획을 꾸몄다는 말만 있습니다. 히데요시가 동의를 했다느니 하는 말 없이 냥 해프닝으로만 소개되어 있을 뿐인데, 신비한님은 마치 이 출처가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처럼 말하고 계십니다. Gabrielus333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5:03 (KST) 물론 히틀러가 가톨릭 신자였다던가 하는 것은 적을 수 있으나, 이는 종파에 대한 비판과는 구분해서 조심스럽게 적어야 할 것입니다. 스탈린이 정교회 신자라는 것이 정교회에 대한 비판과는 구분되어야 하며, 이승만이 개신교 신자라는 것이 개신교에 대한 비판과는 구분되어야 하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합당한 반박이 있는 의혹 역시도 서술을 무턱대고 존치해선 안될 것입니다. 예를들어 유명인 A가 나쁜 짓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는데 그것이 합당하게 반박되었다면, 이것을 존치하는게 위키백과에 유익할지는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에는 개신교 신자분들도 상당히 피해를 입고 계실테니, 충분히 이해 가능할 것입니다 Gabrielus333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5:21 (KST)
가브리엘어스님 저의 기여를 자세히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언제 임진전쟁이 예수회 때문이라고 기여했나요.. 다만 폴 존슨의 저서 694P에 기록된 대로 1586년 예수회의 알폰소 산체스 신부가 중국침략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기여했을 뿐입니다. 아시다시피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명가도 즉, 명나라를 치기 위해 길을 빌려달라고 한 것이 임진왜란의 중요한 요인입니다. 그런데 이 중국 침공 계획을 예수회의 신부가 세웠다는 것이 어찌 임진왜란과 무관한 헤프닝인가요..--신비한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5:11 (KST)
마닐라는 나고야가 아니고, 부산은 마카오가 아니며, 히데요시가 이를 받아들여 침략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유럽인도 동원되지 않았고, 가톨릭 신자들만 원정 간 것도 아니며, 심지어 세스페데스는 히데요시가 불허해서 '몰래' 조선에 갔습니다 Gabrielus333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5:25 (KST) 선교사 추방령도 있지요. Gabrielus333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5:28 (KST) 그리고 산체스의 편지는 히데요시가 아니라 마닐라 주교에게 보내진 것이며, 일본 지도자들은 구체적 내용을 몰랐음을 존슨이 언급했습니다.Gabrielus333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5:37 (KST)
폴존슨의 책에는 일본지도자들은 구체적 내용을 모르나 이러한 계획이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예수회의 알폰소 산체스가 중국침공 계획을 세웠고, 히데요시는 중국침략 계획(이것이 본인이 세운 계획인지 알폰소 산체스의 계획인지 불분명)에 따라 조선의 침략과 이에 따른 유럽의 군함을 요청하였고, 예수회 신부 코엘료가 이에 흔쾌히 응하였습니다. 왜 이러한 펙트들이 임진왜란과 관련이 없습니까. 연세대학교 신과대 교수 김상근의 <예수회의 초기 일본 선교정책 비교>(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논문에는 "예수회의 발리나뇨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계획하고 있던 조선과 중국 침공에 적극 협조할 것을 약속하였다."라고 분명히 적었습니다. -- 신비한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5:42 (KST)


<예수회의 초기 일본 선교정책 비교>(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에는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타카야마 우콘 , 통역을 담당했 던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 외 7 명의 예수회 선교사들 , 15 명의 도주쿠 [ 同宿 ], 그리고 6 명의 일본인 신학생 (irm ã os) 들이 참석했다 . 이 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예수회 선교사들과의 면담을 통해 조선과 명나라를 침 공할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고 포르투갈 군함 두 척의 지원을 요청했다 . 일본을 도와 조선과 중국을 정복하고 나면 중국 각지에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선교사에게 협조하겠다는 조건까지 내 걸었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제안에 대해 가스빠르 꼬엘로는 그의 상관인 알레산드로 발리나뇨가 늘 강조하던 “ 일본 내정에의 불간섭 원칙 ” 을 어기고 , 일본의 조선과 명나라 침공 ( 壬辰倭亂 ) 계획을 지지했을 뿐 아니라 ,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규슈 지방의 기독교 다이묘와의 합동 작전을 제안하는 실책을 범한다 . 가스빠르 꼬엘로의 이러한 제안은 오히려 심각한 역효과를 초래했다 . 자신의 뜻에 따라 포르투갈 군대도 동원할 수 있고 , 규슈 지방의 기독교 다이묘 군대도 동원할 수 있다는 부관구장 꼬엘로의 언질은 판단력이 남다르게 빨랐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의심을 불러 일으켰다 . 가스빠르 꼬엘로의 외교적 판단 미숙은 결국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대적인 기독교 박해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는 신비한님의 서술, 곧 예수회의 제안에 의해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의 마음을 먹게 되었다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고 있으며, 코엘로가 상급자 발리나뇨의 불간섭 원칙을 어기고 임진왜란 계획을 지지했다가 역효과를 봤다는 서술만이 있습니다. 이것이 코엘로 개인에 대한 비판이라면 모르겠으나, 마치 예수회라는 하나의 수도희 혹은 '가톨릭 교회'가 임진왜란을 지지했다는 듯한 서술에는 상당한 악의가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발리나뇨가 불간섭 원칙을 가졌다는 것은 쏙 빼놓고 말입니다.

발리냐노는 조선을 중국의 한 지방으로 인식하는지, ‘동쪽’을 의미하는 오리엔탈레스(Orientales)를 대문자로 명기하여 단순한 지방이 아니라 별개의 지방 혹은 나라로 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더욱이 중국과는 상당히 다른 상이한 점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조선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수마리오를 작성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조선에 대한 인식이 그리 깊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발리냐노는 두 번째 일본 방문에서 일본이 조선을 침공하는 것을 보았고, 그것은 모두 히데요시의 야심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것에 대해 발리냐노는 1592년 총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히데요시는 벌써 조선국을 정복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전쟁은 아무런 명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그(히데요시)의 정복욕에 의한 것입니다.”58)고 하였다. (중략) 발리냐노는 히데요시가 조선에 저지른 너무도 부당하고 잔인한 전쟁으로 인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선인들이 조선은 물론 바다와 일본 땅에서 목숨을 잃었고, 수많은 일본인들 역시 육지와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그리고 칼과 질병이 지나간 자리에 12년간의 박해가 또다시 일본교회를 위협했다고 보고했다.61) (중략) 예수회원들이 볼 때 일본의 조선 침략은 중국을 향한 명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희생자를 냈고, 일본 내부에서조차 반발이 컸던 사안이었다. 전쟁은 이후 외국인 선교사 추방령과 일본교회의 박해와도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보았다. 전쟁은 결국 히데요시 개인과 그에게 동조하는 일부 권력자들의 야심을 위해 힘없는 이웃 국가를 친 황당한 전쟁에 지나지 않았기에 그것을 합리화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63) 히데요시의 야심에 수많은 조선 백성들이 무고하게 희생된 것과 그의 변덕에 따라 일본의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은 것이 같은 맥락에 있다는 것이다.

58) Alessandro Valignano, Adiciones(1592) del Sumario de Japon, Adicion 4, IV, 487.

61) Alejandro Valignano S.J., Apologia de la Compania de Jesus de Japon y China (1598), edicion por Jose Luis Alvarez-Taladriz, Osaka, 1998, p. 394.

63) Alejandro Valignano S.I., Adiciones del Sumario de Japon (1592), in Monumenta Nipponica Monographs (No.9), Editados por Jose Luis Alvarez-Taladriz, Tomo I, Sophia University, Tokyo 1954, pp. 487~488.


— 왜란 시기 예수회 선교사들의 일본과 조선 인식 - 순찰사 알렉산드로 발리냐노의 일본 방문을 중심으로 -, 김혜경(대구가톨릭대학교 인성교육원 강의전담교수)
Gabrielus333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6:55 (KST)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예수회 선교사들과의 면담을 통해 조선과 명나라를 침공할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고 포르투갈 군함 두 척의 지원을 요청했다. 일본을 도와 조선과 중국을 정복하고 나면 중국 각지에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선교사에게 협조하겠다는 조건까지 내 걸었다.(중략) 발리나뇨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계획하고 있던 조선과 중국 침공에 적극 협조할 것을 약속함으로써 그의 분노를 무마하고자 했다. 실제로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고니시 유키나가[少西行長]의 일차 공격군은 대부분 규슈의 가톨릭 신도들로 구성되었다.

왜 이 문장은 안보이시나요. 예수회 책임자인 발리냐노는 히데요시의 중국 침공 계획에 적극 협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예수회의 제안에 히데요시가 조선침략의 야욕을 먹었다고 기여하지 않았습니다. 더도 덜도 없이 예수회와 히데요시와의 만남과 그 내용을 서술했을 뿐입니다. 예수회가 임진왜란과 무관하다는 주장은 저의 기여 뒤에 덧붙이면 됩니다. 마이나스 편집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2018년 2월 1일 (목) 17:05 (KST)

해당 위키 문서에는 '예수회의 협조'라는 목차명이 달려있습니다. 그러나 히데요시가 불허하는데 세스페데스가 조선에 몰래 가서 사목한게 '예수회의 협조'라 보기엔 어렵고, 고니시의 군대가 예수회가 보낸 군대도 아니죠. 가토의 군대는 불교 신자가 많았으니, 그 전쟁은 불교의 조선 침략이 되나요? 같은 논리를 쓰면, 신미양요는 개신교의 조선 침략이군요Gabrielus333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7:40 (KST)
소제목의 '협조'가 문제가 된다면 연관, 관련, 이런 다른 용어로 교체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제가 출처로 제시한 논문에 따르면 예수회는 바테렌 추방령으로 약해진 입지를 회복하기 위해 히데요시의 조선침공에 적극 협조하였습니다..그래서 고니시 유키나가[少西行長]같은 가톨릭 영주들이 최전방에 서게 되었다고 논문은 주장하고 있습니다.또 세스페데스가 조선에 몰래 가서 사역하였다고 하시는 데 위 김상근의 논문에 따르면 세스페데스는 종군신부의 자격으로 조선에 출정하였습니다.. 신미양요까지 개신교의 침략이라 억지 쓰실 일은 아니라 봅니다. 그렇게 쓰고 싶으면 가브리엘님이 그렇게 쓰시던지요..-- 신비한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7:50 (KST)
신미양요를 그렇게 주장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주장은 당연히 부당한 결론이고, 병사들이 개신교 신자이고 개신교 선교사가 타고있었다고 한들 개신교 교단이 그 사태를 일으킨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단 인용하신 논문(<예수회의 초기 일본 선교정책 비교>)이 발리냐노의 협조를 주장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저의 오독임을 인정하고, 이 부분은 제가 직접 그 문서에 반박 편집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읽어보지도 않은 서간(단지 자체적 정보력으로 내용을 눈치챘을 뿐인)을 마닐라 주교에게 보냈다는 존슨의 저술이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킬 당시 일본의 중국 공격 계획 역시 예수회 신부에 의해 작성되었다"로 적히는 등의 태도는 상당히 유감스럽습니다. 산체스가 히데요시를 부추긴 것이 아니고, 산체스로부터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의 영감을 받은 것도 아니며, 산체스는 부산이 아니라 마카오 이야기를 했으며, 나고야가 아니라 마닐라를 이야기 했다면, 그건 임진왜란 문서에 쓰일 서술이 아닙니다. 물론 코엘로와 발리냐노의 건은 논문을 읽어보니 충분히 그렇게 읽을수도 있으나(이것은 제가 해당 문서에 직접 반박을 달겠습니다), 산체스의 서간 등까지 무분별하게 임진왜란과 엮인 것은 가톨릭(혹은 예수회)를 비판하겠다는 결론을 먼저 내리고 자료를 인용했다는 시선을 피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임진전쟁에 대한 서술 뿐만이 아니라, Liturgy께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신비한님의 서술 방식을 그대로 사용한다면, 현존하는 모든 주류 종교와 종파를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서술할 수 있습니다.Gabrielus333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8:12 (KST)
이 토론의 논점은 이 것입니다. 저의 주장이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시중의 블로그에 떠도는 음모론의 주장을 퍼온 것인지. 임진왜란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문서들은 마찬가지로 확인 가능한 논문이나 신문을 출처로 밝히고 그 논문이나 신문에서 벗어나지 않는 편집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저의 기여가 음모론이라며 삭제하고, 되돌리고 사용자관리신청하고 이러면 힘들게 기여한 사람은 뭐가 되겠습니까. 저의 주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렇게 가브리엘님처럼 근거를 대시고 토론한다면 얼마든지 수긍하고 문구나 내용을 수정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가브리엘님이 파악하고 계시는 가톨릭적 시각에서 바라본 임진왜란에 대한 기여가 있다면 저의 기여 밑에 덧 붙이던지 하면 되겠고, 저는 절대 이를 되돌리거나 마이나스 편집하지 않겠습니다..-- 신비한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8:22 (KST)

제가 종교적인 지식은 한계인지라 토론내용을 찬찬히 읽어보고 다시 답변 드리겠습니다. Yoyoma88 (토론) 2018년 2월 1일 (목) 18:15 (KST)

신비한님이 근거로 제시한 책들을(원서를 포함하여) 오늘 살펴보았습니다. 위키에 사용하는데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객관적인 출판물이며 연구가 된 출처이기에 위키에 사용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인용시에 상황에 대한 분명한 전후 문맥을 고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부분을 전체적으로 해석시에는 어려운 난관이 있사오니 주관적 심리적 해석의 절제도 필요합니다. 정확한 인용과 객관적인 해석을 통하여 상대방의 의견을 가지신 분들에게 오해와 감정적인 글로 오해를 받으시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여러분들의 논의와 좋은 제안과 참여에 감사를 드립니다. 칼빈500 (토론) 2018년 2월 2일 (금) 05:39 (KST)

객관적인 출판물이며 연구가 된 출처이기에 위키에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할 때는 단순히 그렇다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근거까지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출판물은 사실의 검증과 편집상 감독의 체계가 확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수학자라도 생물학에는 신뢰할만한 출처는 아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논란이 되는 내용은 교차검증을 해서 사실여부를 판가름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신비한님이 제시하신 출처들의 경우 저자의 저명성과 해당 분야에서의 권위, 경력 등에 대해서 증명된 바가 없고, 모 종교와 대립할 수 밖에 없는 특정 종교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해당 종교에 대해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거나 왜곡된 서술을 할 가능성이 있음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바티칸 암살단>의 저자 에릭 펠프스의 경우, 그 사람의 웹사이트에도 들어가봤지만 그 사람의 신상이나 학력, 학위에 대해서는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WASP 근본주의자이자 음모설 주장자이며, Lowvehm라는 회사의 영업 담당 부사장이라는 정보만 겨우 알아냈습니다(이 회사와 관련해서도 의혹이 있습니다). 신비한님의 기여의 문제를 하나 더 보태자면 지금 독자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임진왜란만 하더라도 영어나 일본어 등 다른 언어 위키백과만 하더라도 신비한님과 같은 서술을 한 예가 있는지요? 지금 유독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만 신비한님에 의해 이런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독자 연구는 공개 발표되지 않은 사실, 주장, 개념, 진술 또는 이론은 물론 공개 발표된 자료에 대한 공개 발표되지 않은 분석이나 공개 발표된 자료를 토대로 이를 확대 재생산한 내용도 포함됩니다. 위키백과의 공동 설립자인 지미 웨일스의 말에 따르면, 이는 "소설을 이야기하는 것이나 역사를 해석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앞서 Gabrielus333님도 지적하셨다시피 신비한님의 서술은 이와 같은 내용을 마치 기정사실인양 말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을 심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하고 있습니다. 추가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렇게 주장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던가, 자신의 입장은 확고부동하기에 절대 이를 되돌리거나 편집하지 않겠다던가, 자신의 주장은 옳고 남의 주장은 가톨릭적 시각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하는 태도라던가, 자신의 입장은 확고부동하기에 절대 이를 되돌리거나 편집하지 않겠다거나, 당신이 그렇게 주장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던가 식의 태도는 올바른 대화 자세라고 보기 힘들기에 지향해야 할 것입니다. --Liturgy (토론) 2018년 2월 3일 (토) 18:22 (KST)

어짜피 제가 제시하는 출처는 님이 보기엔 모두 음모론이고 출처 불분명이고 신뢰할 수 없는 출처로 판단하니, 여기서 이럴 필요 없이 다른 위키 유저분들께 의견을 묻도록 하지요. 위키 유저분들이 저의 기여와 제가 제시하는 출처가 음모론이고 독자연구이고, 근거없는 자료인지 판단해 주실 것입니다. 기다려 보시지요.--신비한 (토론) 2018년 2월 4일 (일) 15:03 (KST)

위키백과에 어떤 내용을 넣기 위해서는, 그 내용이 확인 가능해야 하며, 단순히 '진실'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내용을 넣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확인 가능'이라는 말은, 위키백과 문서를 보는 이용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통해 그 문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서를 편집할 때에는 이의가 제기되었거나 제기될 수 있는 내용에 대해서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제시해야 합니다. 또한 서술에 있어서 중립성을 유지해야 하며, 확인할 수 없는 내용으로 특정 종교나 특정 인물, 특정 단체를 근거 없이 비방하여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내용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일단 신비한님이 제시하신 언론매체들 중 현재 위키백과에서 지정하고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해당하는 것은 문화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입니다. 그나마 이것도 논란이 되는 내용, 해외 언론의 번역 기사나 칼럼이나 논평은 사실관계의 정확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교차검증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특히나 살아있는 사람들은 부적절한 정보로 인해 사적인 피해를 겪을 수 있으므로, 문서의 중립적인 시각과 정확한 사실의 유지, 적절한 출처를 바탕으로 문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알아본 결과, 교원과 재학생 중에는 윤재필씨라는 사람이 없습니다. 일단 현재로서는 졸업생인 것으로 보이며, 세계선교대학원 선교학과였다는 점만 제외하면 아무런 정보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폴 존슨에 대해서는 Gabrielus333 님이 이미 문제점을 지적하셨기에 재차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조찬선씨의 경력은 담임 목사와 감리교 신학교 교수였는데, 이분은 역사학과에서 활동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폴 임씨는 알아본 결과 개신교에서 성경학과 응용심리학, 종교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역사학계에서 권위자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곽원철씨는 어떤 경력의 소지자이신지 아직 모르겠고, 그분이 다니셨다는 총신대학교의 경우 예장합동 교단에 소속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쪽은 교회일치운동 등 범기독교계 운동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인 것으로 확인됩니다. 그렇기에 WCC를 비판할 때 그 역시 하나의 종교적 관점이란 점으로 봐줄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사실만을 전달하는 중립적인 문장으로 서술해야 하며 그 발언의 주체와 출처를 구체적으로 표기해야지, 일방적인 주장을 서술해서는 안 됩니다.

아울러 신비한님이 대표적으로 권위 있는 출처라고 주장하시는 분들 중에 대표적인 인사인 <바티칸 암살단>의 저자 에릭 펠프스에 대해서도 재차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분의 신상이나 학력, 학위에 대해서는 그 어디에서도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겨우 알아본 결과, 이분은 WASP 근본주의자이자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음모설의 주장자이며, Lowvehm라는 회사의 영업 담당 부사장이라는 정보만 겨우 알아냈습니다. 이분이 어떠한 권위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으며, 이분이 쓰신 글들은 세간은 물론 주류 역사학계나 정치학계에서도 모르는 엄청난 비밀스러운 내용이 많은데, 이분이 대체 어떠한 경로로 그러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역시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신비한님은 지금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이곳에서 해결해야지, 따로 사랑방 요청을 또 하시는 것에 대해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신비한님의 주장의 논거는 차치하고서라도 계속 다른 사람들에 대해 예의에 어긋나는 태도를 보이시는 것에 대해 계속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Liturgy (토론) 2018년 2월 4일 (일) 16:26 (KST)

님의 의견 잘 알겠고 이제 다른 위키 유저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씀 드리지만 이 곳은 저에 대한 사상 검증의 자리가 아닙니다. 제가 기여한 문서에 대한 신뢰성을 검증하는 자리이니 이제 차분히 다른 유저들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신비한 (토론) 2018년 2월 4일 (일) 17:13 (KST)

반달인가 아닌가[편집]

다음 문서들의 저의 기여들을 Liturgy 님이 음모론이고 신뢰할 수 없는 출처라며 마구 삭제하였습니다. 저는 분명한 문서훼손이라 생각해 사관 신청도 해보았지만 관리자님 누구도 차단하지 않아 위키 유저분들의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자 Liturgy 님의 이런 문서 삭제 행위가 반달행위라 생각하시면 찬성. 반달 아니며 아무 문제 없다 생각하시면 반대 의견 부탁드립니다.

  • 교황 베네딕토 16세관련 문서 입니다.[[8]] 문화일보,시사저널, 프레시안이 출처입니다.
  • 교황 알렉산데르 6세 관련 문서입니다 [9] 이화여대 교수 조찬선의 《기독교 죄악사》, 폴 임의 《책속의 책》(우리문학사)출처입니다
  • 교황 비오 9세‎ 관련문서 입니다. [10] 경향신문이 출처입니다
  • 교황 프란치스코‎ 관련문서 입니다. [11] 시사저널,국제신문,조선일보가 출처입니다
  • 세계 교회 협의회관련문서입니다. [12] 곽원철《합동과 통합의 분열과 2013WCC총회에 대한 견해 차이》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석사논문이 출처입니다.
  • 임진왜란관련문서 입니다. [[13]] 윤재필의《16세기 예수회의 일본 선교 연구 : 일본 선교의 부흥과 쇠퇴의 요인 분석을 통한 적절한 일본 선교 전략의 모색》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선교대학원 석사논문, 폴 존슨의 《기독교의 역사》(포이에마)가 출처입니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위 윤재필의 석사논문이 출처입니다.
  • 교황 비오 12세‎ [14] 경향신문과 미디어펜의 복거일교수의 글이 출처입니다.

--신비한 (토론) 2018년 2월 4일 (일) 13:45 (KST)

문서를 시간들여 만드셨는데 토의없이 삭제가 되신경우가 많았군요. 신비한님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만드신 문서들이 매우 예민한 것임 늘 염두에 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위키는 협협이오니 가급적 충돌보다는 양보와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비판적인 뉴앙스보다는 객관적 사실과 정통적인 문서의 그 내용만 전달하시고 가급적 사적인 해석을 안하시는 것이 모두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여러 자료들이 많이 있지만 위키에서 모두 편집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문서들의 편집분쟁시에는 언제든지 관리자님들께서 도움과 중재을 구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백과사전을 만드시는데 신비한님의 귀한 헌신에 감사를 드립니다. 칼빈500 (토론) 2018년 2월 7일 (수) 02:39 (KST)
참고로 예수회와 임진왜란 관계의 자료 중에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혹시 알고 계신지요?
  • 김혜경(Kim, Hae Kyung), 왜란 시기 예수회 선교사들의 일본과 조선 인식 = Jesuit's missionaries' awareness of Japan and Joseon during the Imjin War - Focusing on Alessandro Valignano's visit to Japan - (敎會史硏究, Vol.49 No.-, [2016])[KCI등재]
  • 김혜경, 〈16~17세기 동아시아 예수회의 선교정책−적응주의의 배경을 중심으로〉, 《신학과 철학》 17, 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 2010.
  • ______, 〈마테오 리치의 적응주의 선교와 서학서 중심의 문서선교의 상관성 왜란 시기 예수회 선교사들의 일본과 조선 인식 51에 관한 고찰〉, 《선교신학》 제27집, 한국선교신학회, 2011.
  • 정하미, 〈예수회 순찰사 발리냐노의 역할과 일본의 기독교 금교령〉, 《비교일본학》 15, 2005. --칼빈500 (토론) 2018년 2월 7일 (수) 02:48 (KST)
칼빈500님 의견 감사합니다. 임진왜란 관련 논문들은 제가 본 것도 있고 못본 것도 있네요. 저는 주로 DBpia나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 수록된 논문들만 보고 있습니다. 거기 없는 논문들은 저도 보지 못합니다. 힘들게 기여한 문서들이 죄다 삭제되고 거기다 음모론자에 이상한 광신자로 까지 몰리고 있어 상당히 맘이 불편합니다. 저 역시 가급적 다른 위키유저들과 협업하려고 하고 있으나 이처럼 무조건 삭제는 위키의 협업정신과 거리가 멀어보입니다.칼빈500님 충고 고맙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신비한 (토론) 2018년 2월 7일 (수) 10:32 (KST)

이상한 조회수 4773[편집]

기초 문서의 17년 11월 27일 조회수가 4773이나 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건지 참 의아하네요.--Gcd822 (토론) 2018년 2월 4일 (일) 14:09 (KST)

문득 이게 생각나네요. --"밥풀떼기" 2018년 2월 4일 (일) 18:50 (KST)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니... ㄷㄷ--Gcd822 (토론) 2018년 2월 4일 (일) 19:05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