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주 (193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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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주
朴奉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제12대 총리
임기 2013년 4월 1일~2019년 4월 11일
전임: 최영림 (1930년)(제10대)

신상정보
출생일 1939년 4월 10일(1939-04-10) (80세)
출생지 일제강점기 함경북도
정당 조선로동당
종교 없음 (무신론)

박봉주(朴奉珠,[1] 1939년 4월 ~ )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치가이자 기업인이다. 2003년 9월 3일부터 2007년 4월 11일까지 내각 총리를 지냈고, 다시 2013년 4월 1일부터 2019년 4월까지 내각 총리를 역임했다.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부위원장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을 겸직하고 있다. 기업인으로는 평안북도의 식료품 공장장,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지배인을 지냈다.

1962년평안북도의 식료품 공장장이 되었고, 그 후 1993년부터 조선로동당 경공업부 부부장을 맡았고 1998년부터 화학공업상이 되었다. 당내의 서열은 제6위이다. 2003년 9월 3일 홍성남 후임으로 북한내각 총리에 임명되었으나 2007년 4월 11일 해임되었다. 해임 사유는‘선군정치’ 시대에 군수경제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이며, 2007년 4월 평안남도 순천시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지배인으로 좌천됐다.[2] 박봉주는 유류 사용 문제를 놓고 군부와 갈등을 빚었다고 한다.[3]

하지만 2010년 8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경공업부 제1부부장으로 권력의 중심에 복귀하였고, 2012년 4월 경공업부 부장을 거쳐 2013년 4월 내각 총리에 임명되면서 다시 자기의 위치를 되찾았다. 그리고 2016년 5월 9일 권력의 핵심이라 볼 수 있는 조선로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하였다.[4]

2016년 6월 29일, 새롭게 신설된 국무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내각을 대표해 임명되었다. 2019년 4월 내각 총리에서 물러나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급진 개혁안 실행 실패[편집]

박봉주는 2003년 총리가 된 다음에 급진 개혁안들을 실행을 하기 위하여 내각 상무조를 편성하여 2004년 부터 2005년까지 급진개혁안들을 실행을 하였음을 알수가 있었다.

현물지표를 대폭 축소하고 현금 지표를 확대하는 조치를 취함과 동시에 기업 자체 계획을 전면적으로 확대하는 조치를 취하였음을 알수가 있다는 것이다.

번수입지표를 사용 권한을 확대하고 임금 상한선을 전면 폐지하도록 지시를 내리고 국가 납부금을 정액제로 전환하여 달러로만 내게 하였으며 경제 단위의 현금 보유 한도 확대를 시켰음을 알수가 있다.

북한 최초로 조세를 확대하는 조치를 취하였으며 가격을 시장가격으로의 자율적 결정을 하도록 하였으며 물자 교류 시장에서 현금 거래를 전면적으로 허용을 하였다.

상금과 상여금을 승인 제도를 폐지하였으며 인력운용 권한을 부여하였고 개인 경작지를 30평에서 400평으로 전면적으로 허용하고 국가 납부량을 전면적으로 축소를 하였다.

협동농장의 분조 규모 축소 권한을 부여하였고 6개월 농사를 허용하였으며 종합시장을 개설하는 것을 합의를 하였으며 수입 물자 교류 시장도 개설을 하였다.

시장 가격과 국가 지도 가격 그리고 합의제 가격 등 가격 제정 방식 다양화 하였으나 박남기와의 충돌로 인하여 결국 급진 개혁안이 실패되고 군부와의 갈등으로 인하여 결국 2007년 총리에서 해임되고 특히 순천화학연합기업소로 지배인으로 전출가게 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2012년 12.1 경제개혁조치의 발판이 되었음을 알수가 있었다.[6]

각주[편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화학공업상
1998년 - 2003년 9월 3일
전임
홍성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총리
2003년 9월 3일 - 2007년 4월 11일
후임
김영일
전임
최영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총리
2013년 4월 1일 ~ 2019년 4월 11일
후임
김재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