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베니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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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베니테스
Shahter-Reak M 2015 (2).jpg
2015년, 레알 마드리드의 베니테스
개인 정보
전체 이름 Rafael Benítez Maudes[1]
출생일 1960년 4월 16일(1960-04-16) (58세)[1]
출생지 스페인 마드리드[1]
1.75m[2]
포지션 은퇴 (과거 수비수)
클럽 정보
현 소속팀 뉴캐슬 유나이티드 (감독)
청소년 클럽 기록
1973–1978 레알 마드리드
클럽 기록*
연도 클럽 출전 ()
1978–1979
1979–1981
1981
1981–1985
1985–1986
합계
레알 마드리드 C
레알 마드리드 B
팔라 (임대)
팔라
리나레스



124 00(8)
034 00(7)
1580(17)
국가대표팀 기록
1979-1981 스페인 대학 XI 005 00(0)
지도자 기록
1993-1995
1995-1996
1996
1997-1999
2000-2001
2001-2004
2004-2010
2010
2012-2013
2013-2015
2015-2016
2016-
레알 마드리드 B
레알 바야돌리드
오사수나
에스트레마두라
테네리페
발렌시아
리버풀
인테르나치오날레
첼시 (임시)
나폴리
레알 마드리드
뉴캐슬 유나이티드
* 클럽의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센다.

라파엘 베니테스 마우데스 (스페인어: Rafael Benítez Maudes rafaˈel ˈrafa βeˈniteθ ˈmauðes[*],[a] 1960년 4월 16일, 마드리드 지방, 마드리드 ~) 는 스페인의 축구 감독으로 현재 프리미어리그뉴캐슬 유나이티드 감독이다. 그는 UEFA 유로파리그, UEFA 슈퍼컵, UEFA 챔피언스리그, 그리고 FIFA 클럽 월드컵을 모두 석권한 적이 있는 유일한 감독이다.[3]

베니테스는 26세의 나이에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진으로 참여해 U-19부와 2군의 감독과 1군 수석 코치를 맡았다. 베니테스는 1995년에 레알 마드리드를 떠난 후 레알 바야돌리드오사수나에 감독으로 잠시 몸을 담았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베니테스는 세군다 디비시온에스트레마두라를 맡아 첫 해인 1997년에 선수단이 1부 리그로 복귀하는데 힘을 보탰지만, 이듬해에 강등을 당했다. 그는 에스트레마두라를 떠나 2000년에 테네리페의 지휘봉을 잡아 처음이자 마지막 시즌에 1부 리그 승격을 이룩했다.

베니테스는 2001-02 시즌발렌시아 감독으로 취임해 라리가 우승을 달성했다. 베니테스의 발렌시아는 2004년에, 또다시 라리가 정상에 올랐고, 발렌시아를 두 시즌 연속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으로 이끈 엑토르 쿠페르가 남기고 간 유산을 가지고 UEFA컵 우승을 추가했다. 쿠페르는 2000년레알 마드리드를, 2001년에는 바이에른 뮌헨을 결승에서 상대했다.

발렌시아를 떠난, 베니테스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리버풀에 입단해 2005년에 선수단의 UEFA 챔피언스리그 정상 등극에 기여했다. 2년차에 그는 UEFA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그는 2006년FA컵 우승을 달성했고, 2007년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거두었지만, 프리미어리그 우승에는 실패했고, 리버풀이 베니테스 휘하에 거둔 최고 성적은 2008-09 시즌의 준우승이었다.

2010년 6월에 리버풀을 떠난 베니테스는 전 시즌에 3관왕을 달성한 인테르나치오날레였다. 그의 인테르나치오날레 임기는 짧은 시일 내에 끝났는데, 그는 2010-11 시즌 중반에 선수단을 수페르코파 이탈리나FIFA 클럽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후 그만두었다. 2012년 11월, 그는 첼시의 임시 감독으로 시즌 잔여 기간 동안 임명되었고, 2013 UEFA 유로파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베니테스는 나폴리 지휘봉을 잡아 이탈리아로 복귀했고, 코파 이탈리아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베니테스는 나폴리를 떠나 2015년 6월에 레알 마드리드와 3년 계약을 맺고 사령탑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 지위도 오래가지 못하고 2016년 1월 4일, 전 소속 구단인 발렌시아와 2-2로 비긴 후 해임되었다.

2016년 3월 11일, 베니테스는 뉴캐슬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취임해 구단을 강등에서 구제할 특명을 받았다. 베니테스는 강등을 피하지 못했지만, 이듬해에 챔피언십을 우승해 프리미어리그에 1시즌 만에 복귀했다.

선수 경력[편집]

베니테스는 테르세라 디비시온레알 마드리드 아피시오나도스세군다 디비시온카스티야 선수 신분을 거쳤다. 그는 마드리드 공과대학교의 체육학과에 INEF 학생으로 진학해 1982년에 체육학 학위를 획득했다.

1979년, 베니테스는 멕시코 시에 열린 유니버시아드에 스페인 U-19 대표로 참가해 쿠바와의 첫 경기에서 페널티킥으로 득점을 기록해 10-0 승리에 일조했다. 이어지는 0-0으로 비긴 캐나다전에서 거친 태클을 당해 부상을 당했다. 그는 이 부상으로 재활하는 데 1년이 걸렸고, 결국 선수로 대성할 수 있는 기회를 사실상 날려버렸다. 1981년, 베니테스는 테르세라 디비시온팔라로 이적했다. 그는 본래 팔라에 임대로 합류했지만, 이후 완전히 이적했고, 소속 구단의 세군다 디비시온 B 승격에 기여했다. 그는 스페인 대학 대표로 3경기를 더 출전했다. 1985년, 그는 세군다 디비시온 B의 리나레스에 입단해 엔리케 마테오스 휘하의 선수이자 그를 보좌할 코치를 맡았다. 계속된 부상 문제로 그는 1985-86 시즌 대부분을 결장했고, 결국 그는 현역에서 은퇴했다.[4]

감독 경력[편집]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부 감독직[편집]

1986년, 26세에 은퇴한 베니테스는 레알 마드리드에 복귀해 구단의 감독진에 합류했다. 1986-87 시즌을 앞두고, 그는 카스티야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카스티야 소속으로 1987년과 1989년에 두 차례 리그 우승을 거두었다. 그는 1990년에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부 B를 이끌고 3번째 리그 우승을 거두었다. 1990-91 시즌 중에 그는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의 바통을 이어받아 레알 마드리드 U-19 부서 감독이 되었다. U-19 부서로 1991년과 1993년에 바르셀로나와 치른 두 번의 결승전에서 모두 승리하여 코파 델 레이 후베닐 우승을 달성했다. 1993년 선수단은 U-19 전국 리그도 우승해 2관왕을 달성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동하면서, 베니테스는 1989년에 감독 면허를 땄고, 1990년 여름에는 캘리포니아 주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의 축구 캠프에서 축구를 가르치기도 했다.

1992-93 시즌, 베니테스는 레알 마드리드 B의 마리아노 가르시아 레몬 감독의 수석 코치로 보좌하기도 했다. U-19 부서에서 큰 성과를 낸 베니테스는 1993-94 시즌을 앞두고 가르시아 레몬의 후임이 되었다. 레알 마드리드 B는 당시 세군다 디비시온 소속이었는데, 1993년 9월 4일, 그는 에르쿨레스와의 경기에서 세군다 디비시온 구단의 감독으로 첫 경기를 치렀다. 1994년 3월, 그는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의 1군 수석 코치로 보좌했다가 1994-95 시즌에 레알 마드리드 B의 감독으로 복귀했다.[4]

경력 초기[편집]

베니테스는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처음으로 1군 감독을 맡았는데, 그리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는 1995-96 시즌레알 바야돌리드 감독이 되었지만, 23경기에서 2승만을 거두는 부진한 성적으로 1부 리그 최하위에 쳐진 후 경질당했다. 1996-97 시즌, 베니테스는 세군다 디비시온오사수나 감독을 맡았지만, 9전 1승을 기록하는데 그쳐서 해임당했다. 그러나, 그는 체력 코치 파코 아예스테란을 오사수나에서 조우해, 이어지는 10년 동안 동행하게 되었다. 1997년, 그는 또다른 세군다 디비시온 구단인 에스트레마두라 감독을 맡았는데, 이번에는 42전 23승으로 데포르티보 알라베스에 이어 최종 순위에서 준우승을 차지해 승격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에스트레마두라는 1부 리그에서 1시즌도 버티지 못했고, 1999년에 리그를 17위로 마치고 라요 바예카노와의 플레이오프전에서 패해 강등당했다.

베니테스는 이후 에스트레마두라 감독직을 그만 두고 1년 동안 잉글랜드와 이탈리아에서 축구를 공부하기 위해 감독직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는 유로스포츠, 마르카, 엘 문도, 그리고 지역 마드리드 TV에서 해설자 겸 분석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0년, 그는 세군다 디비시온의 테네리페 감독이 되어 미스타, 쿠로 토레스, 루이스 가르시아 등의 선수들이 포진한 선수단을 지휘하게 되었고, 세비야베티스에 이어 리그 3위를 차지한 테네리페는 라리가 구단으로 승격되었다.

발렌시아[편집]

2001년, 베니테스는 엑토르 쿠페르의 뒤를 이어 발렌시아의 감독이 되었다. 구단은 앞서 하비에르 이루에타, 마네, 그리고 루이스 아라고네스를 만나 협상을 시도했지만, 셋 모두 제의를 거절했다. 그러나, 하비에르 수비라츠 단장은 베니테스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그의 선임을 추천했다.

베니테스는 전임 감독인 쿠페르보다 훨씬 공격적인 전술을 선보이며 발렌시아 지지자들의 마음을 샀다. 그는 전 소속 구단에서 미스타를 데려오고 프란시스코 루페테말라가에서 영입했는데, 미스타는 19골로 2003-04 시즌 발렌시아의 득점 1위를 차지했다. 2002년, 베니테스는 그의 전술로 발렌시아를 31년 만의 첫 라리가 우승으로 이끌었는데, 같은 시즌 준우승을 거둔 데포르티보와의 격차는 승점 7점이었다.

그러나, 2002-03 시즌은 실망적이었는데, 구단은 정상 방어에 실패했고, 우승을 거둔 레알 마드리드와 18점차로 라리가를 5위로 마감했다. 같은 시즌, 베니테스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 첫 발을 디뎌 8강까지 올랐지만, 인테르나치오날레에 밀려 더 나아가지 못하였다.

2003-04 시즌, 발렌시아는 리그 3경기를 남기고 라리가 우승을 확정지었고, UEFA컵 결승전에서 마르세유를 2-0으로 이기고 두 개의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큰 성과를 거두고도, 베니테스는 헤수스 가르시아 피타르치 단장과 영입할 선수에 대한 의견고 선수단 보강을 위해 그가 원하는 선수를 영입하지 못해 마찰을 빚었다. 그는 "저는 소파[수비수]를 원했지만, 저들은 램프(파비안 카노비오)를 가져왔습니다"라고 그가 보강하고 싶어하는 영역을 빗대어 말한 것으로 회자된다.[5] 이러한 의견차로 베니테스는 2004년 6월 1일에 발렌시아 지휘봉을 내려놓았다.[6]

리버풀[편집]

2004년 6월 16일, 베니테스는 리버풀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스페인 출신으로는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구단 감독을 맡게 되었다.[7]

2004–2006: 초기에 거둔 성공[편집]

2005년 리버풀의 베니테스

베니테스가 리버풀 감독으로 취임해 처음으로 할 일은 구단의 주장 스티븐 제라드가 같은 리그의 경쟁 구단인 첼시로 이적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8] 그러나, 그는 마이클 오언의 연장 계약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그는 이후 레알 마드리드에 매각되었다. 여름 이적 시장 말, 베니테스는 라리라에서 몇 명의 선수를 영입했는데, 그들 중에는 바르셀로나루이스 가르시아레알 소시에다드샤비 알론소가 있었고, 둘 다 입단한지 얼마 되지 않아 코파이트의 지지를 받았다. 베니테스는 기존의 리버풀 선수들에게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기도 했는데, 다목적 선수였던 제이미 캐러거사미 휘피애와 한 쌍을 이루어 유럽 최고의 중앙 수비수들 중 한 명으로 변화시켰다.[9]

베니테스는 1년차에 리버풀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맹활약하지 못했다. 주요 선수들이 시즌의 중요한 순간에 부상으로 빠지게 되었고, 리버풀은 첼시와 아스널이 경합하는 리그 우승 경쟁에 끼지 못하고 5위로 마감했다. 그러나, 그러나, 베니테스는 잉글랜드 국내 컵대회 결승전에 올랐는데, 밀레니엄 경기장에서 열린 리그컵 결승전에서 첼시를 상대해 연장전 끝에 2-3으로 패했다.

이에 불구하고 리버풀은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초반 부진한 시작에도 불구하고, 선전하였다. 리버풀은 예선에서 그라처에 합계 2-1로 아슬아슬하게 이기면서 시작했고, 조별 리그에서는 최종전 몇 분을 남겨놓고 탈락 위기까지 갔었다. 그러나, 올림피아코스와의 경기에서 87분에 스티븐 제라드의 골이 터지면서 3-1 승리를 거두고, 리버풀은 승자승 원칙에 따라 16강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베니테스는 대담한 선수단 조합을 통해 레버쿠젠유벤투스를 넘었고, 리버풀은 첼시와 4강에서 격돌했다. 루이스 가르시아가 2차전 초반에 논란의 골을 기록하면서 합계 1-0으로 이겨 밀란과의 결승전에 안착하게 되었다.

두고두고 회자되는 결승전에서, 리버풀은 전반을 0-3으로 크게 밀리는 와중에 마쳤고, 6분 간격으로 3골을 넣어 승부를 3-3 원점으로 돌린 후, 승부차기에서 예지 두데크 수문장의 선방에 힘입어 3-2로 이겼다. 베니테스가 후반 시작 전에 건낸 차분하고 설교적인 한마디는 선수들에게 뒤집기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했고, 결국 리버풀은 통산 5번째 유러피언컵을 들어올렸다.[10] 그에 따라, 베니테스는 밥 페이즐리조제 모리뉴에 이어 UEFA컵과 UEFA 챔피언스리그를 연달아 우승한 3번째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고, 조 페이건에 이어 임기 1년차에 유러피언컵을 들어올린 2번째 리버풀 감독이 되었다. 베니테스의 전술은 리버풀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선수진을 구축하고도 결승에 올라 대회를 석권하는데 큰 원동력이 되었다.[11][12]

놀랍게도 두덱은 결승전에서 큰 공을 세우고도 주전 골키퍼 직위를 잃게 되었는데, 페페 레이나비야레알에서 이적하여 2005-06 시즌에 주전으로 골문을 지켰다. 베니테스는 뜻밖의 공신들이었던 블라디미르 슈미체르이고르 비슈찬도 유러피언컵 우승의 주역이었지만 베니테스의 장기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기에 재빨리 내쳤다. 베니테스는 잉글랜드 축구에 첫 발을 디디면서 데려온 호세미안토니오 누녜스도 적응하지 못했기에 내쳤고, 선수단을 보강하기 위해 피터 크라우치, 모하메드 시소코, 다닐 아게르는 물론이고 전 리버풀 선수이자 지지자들이 밀어주는 로비 파울러를 영입했다.

베니테스의 신입생들은 선수단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더 나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게 해주었다. 리버풀은 2위와 승점 1점 차로 리그에서 3위를 차지했다. 같은 시즌에 리버풀은 FA컵을 우승했는데, 결승에 올라가는 와중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를 모두 꺾었고, 3라운드에서 루턴 타운을 명승부 끝에 5-3으로 제압하였으며,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결승전에서 상대했다. 결승전에서 같은 시나리오가 반복되었는데, 연장전까지 혈전을 벌여 3-3으로 비기고 승부차기 끝에 이겨 우승을 거두었다. 리버풀은 0-2로 미리기도 했고, 추가 시간에 2-3으로 밀리고 있을 때 스티븐 제라드가 극적인 막판 동점골을 넣었다. 이번에는 페페 레이나가 승부차기 주자 3명을 막아세워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FA컵 우승으로 베니테스는 리버풀 역사상 최초로 1년차와 2년차에 모두 주요 대회 우승을 거둔 감독이 되었다.

2006–2008: 신임 구단주와의 충돌[편집]

베니테스가 임기 초에 성공을 거두면서, 잉글랜드 언론들은 베니테스가 이적 시장에 예상되는 약점들을 짚을 때 리버풀이 첼시의 프리미어리그 2006-07 대항마가 될 것으로 거론했고, 그의 선수단이 커뮤니티 실드에서 첼시를 2-1로 이기면서 이 예상에 확신을 주었다. 그러나, 시즌 중도에 우승 경쟁에서 떨어져 나갔는데, 리버풀이 안필드가 아닌 원정 경기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그의 요원이 베니테스가 이탈리아 무대 이적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면서, 베니테스의 리버풀 임기가 빨리 끝날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13] 베니테스는 구단의 웹사이트에 성명문을 붙여 리버풀에 장기간 머물 의사를 재확인시켰다.[14] 1월, 베니테스의 선수단은 4일 간격으로 국내 컵 대회에서 아스널에 두 번 패했는데, 리그컵에서 3-6으로 패하면서 리버풀은 1913년 이래 최악의 안방 패배를 당했다. 국내 무대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 리버풀이었으나, 여전히 지지자들은 베니테스 편이었다.

지지자들과 감독진은 선수단 영입과 구장 신축에 재정적으로 보태줄 새 구단주로 들어온 조지 질레트톰 힉스를 맞이했다. 질레트는 감독이 원하는 바에 투자할 것에 기쁨을 표의했는데, 베니테스가 국내 무대에서 고전한 끝에 리버풀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올려놓은 데에 있었다. 리버풀은 또다시 첼시를 준결승전에서 이겼는데, 이번에는 승부차기까지 갔고, 질레트는 "라파는 훌륭했습니다 ... 우리는 그를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가 감독으로서 말고도 얼마나 잘하는 지를 몰랐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훌륭한 감독이기도 했지만, 예리하고, 효율적인 사업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고 어떻게 쟁취하는지 압니다. 우리는 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보았고, 우리는 더욱 감격했습니다"라고 감탄했다.[15] 베니테스는 리버풀의 선수단을 보강하기 위해 새 구단주의 칭찬에 화답하지 않고, 밀란과의 결승전에서 1-2로 패한 후 이적 시장에서 구단주더러 지지를 부탁했다.[16] 베니테스는 구단이 확산되는 소문을 일축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새 구단주로부터 전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불만을 터뜨린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러한 베니테스의 생각은 리버풀이 이적 시장 초반에 활동이 뜸한 데에 있었다.[17]

결국 베니테스의 지출액은 크게 증가했는데, 스페인의 공격수 페르난도 토레스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리버풀 역대 최고 이적료로 영입했고, 라이안 바벌, 요시 베나윤, 루카스 레이바, 그리고 안드리 보로닌을 영입했다. 이들을 영입하면서, 베니테스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오르기 위해 리버풀이 캄 노우에서 바르셀로나를 꺾은 날에 앞서 욘 아르네 리세와의 다툼 이후 1군에서 지위를 서서히 잃어가던 크레이그 벨러미를 방출했다.[18]

리버풀은 2007-08 시즌을 인상적으로 시작했는데, 더비 카운티를 6-0으로 격파하면서 베니테스 임기에는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선두에 올랐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의 부진한 행보와 향후 영입을 놓고 내홍을 겪고 이것이 공개적으로 구단주와 관계가 틀어졌고, 11월 말에 언론에 이 사실이 공개되었다. 이를 통해 베니테스의 지위가 큰 위기에 봉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의 결과는 지지자들이 베니테스를 밀어주는 것이었는데, 포르투와의 중요한 UEFA 챔피언스리그 안방 경기를 앞두고 지지자들이 행진했고, 경기는 4-1 승리로 끝났다.[19] 위르겐 클린스만바이에른 뮌헨 감독직을 수락하기 전에 베니테스의 후임이 될 제의를 받은 것이 밝혀졌다. 이 폭로로 베니테스가 미국인과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었고, 베니테스가 스페인 무대에 복귀해 레알 마드리드 지휘봉을 잡을 것이라는 추측 보도가 계속 나왔다.[20] 그러나, 베니테스는 자신은 향후에도 리버풀과 함께할 것이며, 신임 수석 코치 새미 리와의 장기간 협동을 선언했다.[21] 그를 오랜 기간 보좌했던 파코 아예스타란은 불화로 자신에 "상처를 입혔다"는 것은 물론 리버풀의 우승 기회를 날려버린 것으로 인해 불화가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22]

베니테스의 리버풀은 겨울 기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며 국내 무대를 빈손으로 마쳤는데, 이 과정에서 반슬리와의 FA컵 안방 경기에서 충격적인 패배로 탈락했고,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도 첼시에 패해 떨어졌다. 한 대회도 우승하지 못했지만, 논점은 경기장 밖에서 나왔는데, 베니테스는 리버풀 간부들과의 세력 싸움 중심에 섰다.[23]

2008–09: 리그 준우승[편집]

리버풀 감독과 간부 간 관계가 심하게 뒤틀리면서, 베니테스는 리버풀 간부에 애스턴 빌라로부터 개러스 배리을 영입하자는 요청이 묵살되면서 2008년 여름에 리버풀을 떠나기 직전까지 갔다.[24] 베니테스는 배리를 영입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샤비 알론소를 방출하려 한 것으로도 알려졌지만, 리버풀의 릭 패리 단장이 배리보다 로비 킨의 영입을 더 중요시 한 것으로 밝혀졌고, 배리가 입단하지 못하면서 마찰이 발생했다.[25] 공격수 킨은 1월 이적 시장에서 토트넘 홋스퍼로 돌아갔고, 몇몇 분석가들은 킨이 베니테스와 구단 간부들 간의 "권력 투쟁에 쓰인 말"이었다고 짚었다.[26]

장외 투쟁과 대조되게 리버풀은 2008-09 시즌의 프리미어리그를 인상적으로 시작했는데, 9월 13일에 안필드에서 처음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리그전에서 승리했고, 첼시의 스탬퍼드 브리지 86경기 무패행진에 종지부를 찍었다. 리버풀은 1996년 이래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 선두로 한 해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리버풀은 2009년으로 넘어가 부진한 성적을 내면서 조병이 베니테스에 더욱 집중되었는데, 그는 12월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둘 당시 신장결석 제거 수술로 빠졌었다. 언론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 집중포화를 했는데, 이는 몇 분석가들과 적대적 지지자들이 베니테스가 우승을 앞두고 "무너져 내린다"고 물타기하기에 이르렀다. 베니테스는 리버풀 간부들과 여전히 사이가 나쁜 것으로 보였고, 공개적으로 연장 계약을 거절했으며, 선수 영입을 놓고 더 많은 권한을 원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때, 베니테스가 리버풀 지휘봉을 내려놓거나 직위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져 노름꾼들은 해당 문제를 놓고 내기하는 것을 그만두기도 했다.[27]

그러나, 2009년 3월 18일, 짧은 기간 동안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4-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4-1 대승을 잇달아 거두면서, 베니테스는 구단과 5년 계약 연장에 동의했다. 베니테스는 "제 마음은 리버풀과 함께하며, 새로 계약을 갱신한 것이 기쁘고, 구단, 지지자, 그리고 도시를 사랑하며, 구단과 지지자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으며, 여기 더 머무는 것을 거절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28] 남은 11번의 경기 중 10번을 이긴 리버풀은 베니테스 임기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는데, 우승을 거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4점 차로 2004년 이래 처음으로 리그 준우승을 거두었고, 리버풀은 겨울 기간 동안의 시련과 대조되게 눈길을 끄는 공격 축구를 펼쳤다.[29]

2009–10: 추락과 임기의 끝[편집]

2009년, 리버풀 아시아 투어의 베니테스

지지자들은 베니테스가 장기간 연장 계약을 맺으면서 2009-10 시즌에 대도약을 통해 20년 만의 첫 리그 우승을 기대하게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다음 시즌에 리버풀은 7위의 성적을 거두었고, 베니테스는 상호 계약 해지로 구단을 떠나게 되었다.

베니테스의 리버풀 마지막 시즌을 앞두고, 선수단의 주요 선수로 활약했던 샤비 알론소가 장기간의 협상 끝에 £30M의 이적료로 레알 마드리드에 둥지를 옮겼다.[30] 알론소는 전년에 베니테스가 자신을 방출하려 시도한 것이 자신을 이적하는데 결정적이었다고 밝혔다.[31] 알론소를 대신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미드필더 알베르토 아킬라니가 장기간 부상으로 재활하는 와중에 로마에서 £17M으로 입단했다. 또한 잉글랜드 수비수 글렌 존슨이 £17.5M에 입단했다. 구단주는 늘어나는 부채를 줄이기 위해 "영입을 위한 방출" 정책을 시행했는데, 알론소의 이적이 겹치면서 다수의 구단 지지자들이 베니테스가 이적 시장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한다며 큰 불만을 표출하는 것으로 이어졌다.[32] 베니테스가 알론소를 방출하고 그를 루카스 레이바로 대신하고, 아퀼라니를 부상당한 채 합류시킨 것에 더불어 처음 3경기에서 2패를 당한 것은 리버풀이 우승 경쟁에 뛰어들 수 있는가에 의문을 제기했다.[33] 베니테스는 리버풀의 초반 부진이 스티븐 제라드 등의 주요 선수들이 평소보다 활약이 뜸한 것이라며,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했다.[34]

리버풀은 22년 만에 최악의 성적을 거둔 것 외에도[35]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조별 리그에 일찍 탈락해 리버풀 지지자들로부터 처음으로 말로써 비난을 당했다.[36] 리버풀은 베니테스 특유의 단단한 수비[37]가 없다는 점이 지적되었는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만이 리버풀보다 골을 덜 허용했지만, 제라드나 토레스 같은 주축 선수의 부상에 대응할 방법이 부족했으며, 베니테스의 결정에 의문이 제기되었다.[38] 구단은 UEFA 유로파리그에서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밀려 떨어지면서, 2009-10 시즌에 우승할 수 있는 대회가 남지 않게 되었다.

2010년 6월 3일, 베니테스는 "상호 계약 해지"로 구단을 떠났고,[39] 위약금은 £6M 정도인 것으로 보고되었다.[40] 언론은 베니테스가 리버풀을 떠난 것이 프리미어리그에서 7위를 차지하고,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 기회를 날리고, 위건 애슬레틱에 패한 것을 포함해 부진한 성적을 거둔 것이 요인인 것으로 추측했다. 안필드를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베니테스는 힐스브러 유가족 지지 단체에 £96,000을 기부했다.[41]

인테르나치오날레[편집]

베니테스는 리버풀에서 사임한지 일주일만에 챔피언스리그의 디펜딩 챔피언 인테르나치오날레의 감독을 맡게 된다[42]. 부임 초기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기분 좋은 출발을 했으나 선수 기용과 전술이 문제가 되면서 극심한 부진에 빠지게 된 인테르는 7위까지 내려가게 되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좋지 못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이후 FIFA 클럽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한숨을 돌렸으나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선수 영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인테르의 회장은 이를 부인했고 얼마 가지 않아 베니테즈의 경질이 발표되었다. 결국 그는 25경기 12승 6무 7패라는 다소 초라한 성적으로 6개월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된다[43].

첼시[편집]

첼시 시절 베니테스

2012년 11월 22일 첼시와 시즌이 끝날 때까지 단기 계약을 맺으며 2년만에 감독직에 복귀한다[44]. 그러나 인테르에서의 실패와 리버풀 시절 첼시를 비난하는 인터뷰를 하는 등 많은 대립을 해왔기 때문에 팬들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 경기 마다 'RAFA OUT' 이라는 플래카드를 걸어 그가 감독이 된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고, 야유가 쏟아졌다. 또한 부임 직후 들쭉날쭉한 경기 내용으로 인해 비난은 더 심해져만 갔다. 그러나 시즌 후반부에 경기력이 회복되며 리그 3위를 기록, 안정적으로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했고, FA컵 4강, UEFA 유로파리그에서 극적인 우승까지 더해져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첼시를 떠난다[45].

나폴리[편집]

2013년 5월 28일, 인테르나치오날레로 옮긴 발테르 마차리 감독의 후임으로 나폴리의 신임 감독이 되었다[46]. 첫 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 그룹에서 도르트문트, 아스널과 함께 4승 2패로 동률을 이루었으나 골득실에 밀려 간발의 차이로 탈락하지만 리그 3위와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차지하며 매우 좋은 모습을 보였다[47]. 2014-15 시즌은 리그 5위에 머물며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획득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유로파리그에서는 준결승까지 진출하며 2011-12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 이후 유럽대항전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48]. 2015년 나폴리와 계약이 만료되어 구단측에서 재계약을 제시 했으나 베니테스는 거절했고 시즌 종료후 나폴리를 떠난다[49][50].

레알 마드리드[편집]

2015년 6월 3일, 레알 마드리드와 3년 계약을 맺었다[51]. 그는 취임식에서 꿈이 이뤄졌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리그 초반 10경기에서 무패행진을 달리며 바르셀로나와 선두권 경쟁을 했으나 11라운드 세비야전에서 3:2 패배 이후 바르셀로나와의 엘클라시코에서 끔찍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4:0으로 대패해 많은 팬들의 비난을 받게 된다. 이후 부진한 경기력이 계속되었고 선수 부정 출전으로 인한 코파 델 레이에서의 실격, 선수들과의 불화까지 겹치며 6개월 만에 경질에 이르고 만다[52][53].

뉴캐슬 유나이티드[편집]

2016년 3월 11일, 리그에서 강등 위기에 처한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부임한다[54]. 빠르게 팀을 재정비하여 경기력을 향상 시켰으나 중요한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강등을 막지 못했다[55]. 그러나 팀의 강등이 확정된 상태에서 치룬 토트넘 홋스퍼 전에서 5-1 대승을 거두며 찬사를 받았다. 뉴캐슬 팬들은 그의 잔류를 요청하는 청원을 내며 지지를 보냈고 구단 내에서도 재계약을 제시하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그 또한 뉴캐슬 생활에 만족하며 잔류의사를 내비췄고 2016년 5월 26일, 뉴캐슬과 3년 재계약을 체결했다[56]. 이후 EFL 챔피언십에서 뉴캐슬을 우승으로 이끌며 1년 만에 프리미어리그로 복귀시키는데 성공했다[57].

수상 경력[편집]

선수[편집]

AD 파를라

감독[편집]

발렌시아
리버풀
인테르나치오날레
첼시
SSC 나폴리
뉴캐슬 유나이티드
개인

참고[편집]

  1. 베니테스는 따로 스페인어: beˈniteθ로 발음한다

각주[편집]

  1. “Benítez: Rafael Benítez Maudes: Manager”. BDFutbol. 2018년 5월 3일에 확인함. 
  2. “Rafael Benítez: Biography”. IMDb. 2018년 5월 3일에 확인함. 
  3. McCourt, Ian (2015년 5월 7일). “Napoli's Rafa Benítez has his eyes on another final in Europa League”. 《The Guardian》. 2015년 9월 21일에 확인함. 
  4. Rafa Benítez: Paco Lloret (2005)
  5. “Todo empezó con el sofá y la lámpara” [모든 것은 소파와 램프 문제로 시작되었습니다]. 《Las Provincias》 (스페인어). 2007년 6월 4일. 
  6. “Benitez quits Valencia”. BBC Sport. 2004년 6월 1일. 2017년 4월 1일에 확인함. 
  7. “Liverpool appoint Benitez”. BBC Sport. 2004년 6월 16일. 
  8. Dominic Fifield (2004년 6월 29일). “Benítez boost as Gerrard stays at Liverpool”. 《The Guardian》 (London). 2010년 4월 26일에 확인함. 
  9. Rob Smyth (2007년 3월 7일). “Is Jamie Carragher England's best defender?”. 《The Guardian》 (London). 2010년 4월 26일에 확인함. 
  10. Lipton, Martin (2005년 11월 9일). “Benitez Uncovered: Inside The Dressing Room On That Amazing Night In Istanbul”. 《Daily Mirror》. 2010년 4월 26일에 확인함. 
  11. “This team is my best ever, says Liverpool boss Benitez”. 《Daily Mail》 (London). 2008년 4월 22일. 2010년 4월 26일에 확인함. 
  12. “LFC v Milan 2005: A text commentary”. Liverpool F.C. 2015년 5월 25일. 2015년 5월 26일에 확인함. 
  13. “Liverpool dismiss Benitez report”. BBC Sport. 2006년 11월 9일. 2008년 11월 7일에 확인함. 
  14. “Rafa: My agent was misquoted”. Liverpool F.C. 2006년 11월 11일. 2007년 12월 1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11월 7일에 확인함. 
  15. “Gillett Blown Away By Rafa Brilliance”. Liverpool F.C. 2015년 4월 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6. “We must spend big, says Benitez”. BBC Sport. 2007년 5월 24일. 2008년 11월 7일에 확인함. 
  17. “Parry plays down Benitez reports”. BBC Sport. 2007년 5월 27일. 2008년 11월 7일에 확인함. 
  18. Taylor, Louise (2007년 2월 19일). “Bellamy faces uncertain future as Liverpool reel from golf club attack”. 《The Guardian》 (London). 2007년 2월 22일에 확인함. 
  19. Kay, Oliver (2007년 11월 28일). “Rafael Bentez calls temporary truce as fans plan show of solidarity”. 《The Times》 (London). 2011년 6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5월 22일에 확인함. 
  20. “ESPNFC: Soccer The long goodbye for Rafa?”. ESPN FC. 
  21. “Sammy Lee back as Liverpool assistant coach”. 《The Daily Telegraph》 (London). 2008년 5월 16일. 2010년 4월 26일에 확인함. 
  22. “Pako betrayed me and it still hurts – Benitez lifts the lid on his assistant's Anfield exit”. 《Daily Mail》 (London). 2008년 3월 31일. 2010년 4월 26일에 확인함. 
  23. “Benitez urges his squad to focus”. BBC Sport. 2008년 4월 12일. 2010년 4월 26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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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Smith, Rory (2009년 2월 23일). “Liverpool have six games to save their season”. 《The Daily Telegraph》 (London). 2014년 8월 1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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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나폴리 베니테즈 감독 재계약 안할 것". 연합뉴스. 2015년 4월 7일. 2016년 11월 4일에 확인함. 
  50. “나폴리 회장, “베니테즈 5년 더 남기고 싶어””. 인터풋볼. 2015년 4월 30일. 2016년 11월 4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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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해외축구] '협박-불화-몰수패' 레알 앞에 놓인 3가지 난제”. 뉴시스. 2015년 12월 4일. 2016년 11월 4일에 확인함. 
  53. “레알 마드리드, 베니테즈 감독 경질... 후임은 지단”. 일간스포츠. 2016년 1월 5일. 2016년 11월 4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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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선덜랜드 승리, 빌라-노리치-뉴캐슬 강등 확정”. 스포츠조선. 2016년 5월 12일. 2016년 11월 4일에 확인함. 
  56. “[오피셜] 베니테즈, 뉴캐슬과 3년 재계약… 2019년까지 팀 지휘”. 인터풋볼. 2016년 5월 26일. 2016년 11월 4일에 확인함. 
  57. '베니테스 마법' 뉴캐슬, 1시즌만에 EPL 복귀”. OSEN. 2017년 5월 8일. 2017년 5월 29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