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몬 그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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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몬 그로소
1966년, 레알 마드리드의 그로소
개인 정보
본명 Ramón Moreno Grosso
출생일 1943년 12월 8일
출생지 스페인 마드리드
사망일 2002년 2월 13일(2002-02-13)(58세)
사망지 스페인 마드리드
1.76m
포지션 은퇴 (과거 공격수)
청소년 구단 기록

1959–1963
산토 도밍고 엘 사비오
레알 마드리드
구단 기록*
연도 구단 출전 (득점)
1963–1964
1964–1976
합계:
플루스 울트라
레알 마드리드
015 0(13)
265 0(54)
280 0(67)
국가대표팀 기록
1963–1964
1964
1967–1970
스페인 아마추어
스페인 B
스페인
009 00(9)
001 00(0)
014 00(1)
지도자 기록
1987
1991
1997
레알 마드리드 B
레알 마드리드 (감독 대행)
레알 마드리드 B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라몬 모레노 그로소(스페인어: Ramón Moreno Grosso; 1943년 12월 8일, 마드리드 주 마드리드 ~ 2002년 2월 13일, 마드리드 주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로, 현역 시절 공격수로 활약하였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 선수로, 라 리가에 12시즌 참가하였고, 366번의 공식 경기에 출전해 96골을 넣고 1965–66 시즌 유러피언컵을 비롯한 11번의 주요 대회 우승을 거두었다.

클럽 경력[편집]

마드리드 출신인 그로소는 15세에 레알 마드리드의 유소년부를 졸업해,[1] 마드리드 선수로 12년을 보내게 되었다.

비록 아만시오 아마로, 프란시스코 헨토, 푸슈카시 페렌츠 등의 쟁쟁한 선수들과 선수단 내에서 경쟁하였지만, 처음 2시즌 동안 구단 내 득점 1위를 기록하였는데, 1964–65 시즌에는 28경기에 출전해 17골을 기록했고, 그 다음 시즌에는 29경기에서 11번 골망을 흔들었다. 그는 1964년 9월 23일에 5-2로 이긴 볼클루벤 1909와의 원정 경기에서 유러피언컵 첫 경기를 치르고 골도 넣었다.[1][2]

그 이후, 그로소는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다른 역할을 맡기도 했는데, 보카 주니어스와의 트로페오 라몬 데 카란사 경기에서는 골키퍼를 맡기도 했다. 그는 "선수단에 헌신하는" 자세로 일꾼(Obrero)이라는 별명을 얻었고,[1] 1976년 6월을 끝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떠난 그로소는 얼마 지나지 않아 32세의 나이로 축구화를 벗었다.

그로소는 이어서 몇 십년 동안 마드리드의 여러 직위를 맡았다: 그는 우선 유소년부의 감독을 맡았는데, 세군다 디비시온에 속한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감독을 두 차례 맡았는데, 한 번은 1986–87 시즌에, 또 한 번은 1996–97 시즌에 도합 24경기를 지휘했는데, 2번째 임기는 강등의 비극으로 끝났다. 이후 1군 감독도 맡았는데,[3] 1991년 3월 24일에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해임되면서 라도미르 안티치가 부임하기 전까지 대행 감독을 한 경기 동안 맡아 오비에도와의 안방 경기에서 1-1로 비겼다.[4]

국가대표팀 경력[편집]

그로소는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 3년을 활약하면서 14경기에 출전하였다. 그의 첫 국가대표팀 경기는 1967년 2월 1일, 알리 사미 옌에서 0-0으로 비긴 터키와의 UEFA 유로 1968 예선전 경기로, 그는 터키와 재회한 경기에서 득점을 올렸는데, 빌바오에서 벌어진 경기는 2-0 승리로 끝났다.[1]

국가대표팀 득점 기록[편집]

# 날짜 경기장 상대 점수 최종결과 대회
1. 1967년 5월 31일 스페인 빌바오 산 마메스 튀르키예 1–0 2–0 UEFA 유로 1968 예선전

최후[편집]

암투병을 오래 이어온 그로소는 2002년 2월 13일에 고향 마드리드에서 향년 58세로 영면에 들었다. 그의 유족은 배우자 암파로와 5명의 자식들로, 장녀 마리아 앙헬라는 레알 마드리드의 프란시스코 요렌테를 남편으로 맞이했었다.[1][5]

수상[편집]

레알 마드리드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