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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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혼(近親婚, 영어: consanguineous marriage)은 혼인의 상대가 근친(近親) 혈족이거나, 재혼의 상대가 전(前) 배우자의 근친인 혼인을 말한다. 보통 근친혼은 집안의 재산, 지위 등이 분산되거나, 다른 집안 출신의 사위나 며느리 등에게 분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제도적으로 시행되거나, 암암리에 묵인되어 왔다.

한국에서는 유교가 도입된 성종대 이후 혹은 현종대 이후 또는 몽골에 의해 왕실과 귀족에게 강제로 근친혼을 금지시킨 이후부터 근친혼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몽골 간섭기 이후에도, 형제간 같은 가문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다던가, 형수나 제수의 친척과 결혼하거나, 삼촌과 조카가 같은 집안의 딸이나 자매, 혹은 숙모나 조카며느리의 친척과 결혼하는 등의 근친혼은 암암리에 묵인되어왔다.

가령 한명회의 두 딸이 조선 세조의 차남 예종과 결혼하여 장순왕후가 되었는데, 다시 세조의 손자이자 장남 의경세자의 차남 성종과 결혼하여 공혜왕후가 된다. 이때 한명회의 두 사위 예종과 성종은 삼촌, 조카간이며 장순왕후와 공혜왕후는 언니, 여동생간이지만 시가에서는 숙모와 조카며느리가 된다. 신숙주의 서녀가 세조의 후궁 숙원 신씨가 되었지만 다시 신숙주의 아들 신주는 한명회의 딸과 결혼한다. 신숙주의 서녀 숙원 신씨는 장순왕후의 시서모, 공혜왕후의 시서조모가 되지만, 그들의 자매인 한씨에게는 시누이가 된다. 그밖에 경상북도경상남도 등 집성촌이 많은 곳에서는 동성동본과 결혼할 수 없으므로, 한 집안으로 같이 시집을 보내거나, 혹은 자신의 가문과 사돈이 된 가문의 다른 딸을 데려오는 식으로 근친혼을 하기도 했다. 이를 가리켜 겹사돈이라 부르기도 했다.

근친혼의 목적[편집]

  • 집안의 재산, 지위 등의 분산 방지
  • 상속자로 인한 다른 집안 출신의 사위나 며느리 등에게 분산 방지
  • 권력 기반 강화

근친혼의 사례[편집]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근친혼[편집]

결혼을 통해 아라곤과 카스티야가 합쳐진 스페인 왕국의 계승권 및 혼인으로 각지의 계승권을 확보했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도리어 자신들의 계승권이 분산되지 않게 하기 위해 정략혼 목적으로 삼촌-조카, 외삼촌-외조카, 사촌 남매간의 근친혼을 정책적으로 추진해나갔다.

영국의 근친혼[편집]

장미전쟁 당시 요크 왕가의 근친혼[편집]

플랜타지넷 왕가에드워드 3세의 아들 중 흑태자 에드워드의 맏아들 리처드 2세에드워드 3세의 셋째 아들 존 오브 곤트의 아들 헨리 4세에게 폐위당하고, 에드워드 흑태자의 다른 자손들과 함께 살해되었다. 둘째 아들 라이오넬 앤트워프는 딸 필리파만 두고 38세의 나이로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다. 살아남은 자손은 셋째 존과 넷째 에드먼드의 후손들이었다.

한편 요크 공작가문을 형성한 에드워드 3세의 넷째 아들 랭글리의 에드먼드의 손자 리처드가 왕위 계승권을 주장했다. 존 오브 곤트는 에드워드 3세의 셋째 아들이었고, 랭글리의 에드먼드는 넷째 아들로 존 오브 곤트의 후손들에게 왕위 계승권이 우선적이었다. 그러나 랭글리의 에드먼드의 둘째 아들인 코니스버프의 리처드는 본부인 모드 크리포드(Maud Clifford)가 죽자 앤 모티머와 결혼했다. 앤 모티머는 마치 백작 로저 4세의 딸이었는데, 마치 백작 로저 4세는 에드워드 3세의 둘째아들 라이오넬 앤트워프의 유일한 무남독녀 딸 필리파와 에드먼드 모티머의 아들이었다. 로저 4세의 아들로 할아버지와 동명이인인 에드먼드 모티머가 자식이 없이 사망하자, 상속권은 에드먼드 모티머의 누이 앤 모티머에게로 넘어갔다.

코니스버프의 리처드는 자신의 사촌누나 필리파의 친손녀딸과 결혼했고, 앤 모티머에게는 친할머니의 사촌 남동생이 된다. 요크 공작 리처드는 자신이 에드워드 3세의 둘째 아들 라이오넬 앤트워프의 외증손녀의 아들임을 들어 에드워드 3세의 셋째 아들 존 오브 곤트의 후손인 헨리 5세를 상대로 왕위를 요구했다.

랭커스터 가문의 또다른 정통성 주장[편집]

랭커스터 왕가의 창시자이자 헨리 5세의 아버지 헨리 4세에드워드 3세의 셋째 아들 존 오브 곤트의 아들이다. 하지만 헨리 4세의 모계로는 헨리 3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헨리 5세는 자신이 에드워드 3세의 증손인 것 외에 랭커스터공작가문을 창시한 곱사등이 에드먼드를 언급한다. 곱사등이 에드먼드헨리 3세의 아들로 랭커스터 백작 작위를 넘겨받았다. 에드먼드의 큰아들 토마스와 둘째 아들 헨리, 핸리의 아들이자 백작에서 공작으로 승진한 헨리 글로스몬트로 작위가 계승되었고, 헨리 그로스몬트의 딸이 랭커스터의 블랑슈였다. 존 오브 곤트와 랭커스터의 블랑슈는 8촌 남매간인데, 존은 헨리 3세의 아들 에드워드 1세의 증손자로, 에드워드 1세-에드워드 2세-에드워드 3세-존으로 이어졌으며, 블랑슈는 헨리 3세의 다른 아들 곱사등이 에드먼드의 증손녀로 헨리 3세-곱사등이 에드먼드-헨리-헨리 그로스몬트-블랑슈로 이어졌다. 헨리 5세는 자신의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모계로도 선왕의 후손임을 내세웠다.

랭커스터 공작 존과 요크 공작 에드먼드의 결혼관계[편집]

랭커스터 공작 존은 캐서린 스윈포드에게서 자녀를 두었는데 정식 결혼을 할 수 없어서 캐서린의 자녀들에게 뷰포트 백작령을 따로 신설해서 자녀들에게 물려주었다. 딸 조앤 뷰포트의 딸 시실리 네빌이 다시 요크 공작 리처드와 결혼한다. 요크 공작 리처드는 에드워드 3세-랭글리의 에드먼드-코니스버리의 리처드-리처드로 이어졌고, 시실리 네빌은 에드워드 3세-존 오브 곤트-딸 조앤 뷰포트-시실리 네빌로 이어졌다. 리처드와 시실리 네빌은 6촌오빠와 6촌여동생간으로 손아래 종조부의 손자이자 손위 종조부의 손녀가 된다.

요크 공작 리처드는 모계로는 에드워드 3세-라이오넬 앤트워프-필리파-로저 4세 모티머-앤 모티머-리처드 3세로, 시실리 네빌의 외할아버지 존 오브 곤트는 라이오넬 앤트워프의 동생이 된다. 모계로는 리처드와 시실리 네빌은 외외고조부의 동생의 손녀이자 손위 종조부의 외외4대손이 된다. 시어머니가 되는 앤 모티머가 오히려 20년 연상이지만, 시실리 네빌에게 조카딸이 된다. 리처드와 시실리 네빌은 6촌 오빠이자 종조부의 외외4대손이며, 6촌 여동생이면서 동시에 할머니뻘 되는 친척이 된다.

앤 네빌[편집]

에드워드 3세의 셋째 아들 랭커스터 공작 존 오브 곤트는 캐서린 스윈포드라는 내연녀가 있었고, 존 오브 곤트는 그에게서 얻은 자녀들에게 뷰포트 백작 작위를 신설해서 물려주었다. 존 오브 곤트의 딸 조앤 뷰포트는 웨스트모럴란드의 백작 랄프 네빌에게 시집갔는데, 그의 아들 솔즈베리 백작 리처드 네빌의 손녀이자 워른위크 백작 리처드 네빌 2세의 딸이 앤 네빌이다. 앤 네빌은 에드워드 드 웨스트민스터와 결혼했다. 에드워드 웨스트민스터는 존 오브 곤트-헨리 4세-헨리 5세-헨리 6세-에드워드 웨스트민스터로 이어졌고, 앤 네빌은 존 오브 곤트-딸 조앤 뷰포트-리처드 네빌-리처드 네빌 2세-앤 네빌로, 서로 증대고모의 증손녀딸이자 증외종증조부의 증손자로서 서로 8촌간이 된다. 그러나 에드워드 웨스트민스터는 요크 가문의 에드워드 4세와 싸우다가 전사한다.

앤 네빌은 다시 리처드 3세와 재혼한다. 앤 네빌의 어머니 뷰챔프의 앤은 이사벨 디스펜서의 딸로, 요크 공작 랭글리의 에드먼드의 외손녀딸이 된다. 리처드 3세랭글리의 에드먼드-코니스버프의 리처드-요크 공작 리처드-리처드 3세로 이어졌고, 앤 네빌은 랭글리의 에드먼드-딸 콘스탄스-딸 이사벨 디스펜서-뷰챔프의 앤-앤 네빌로서, 리처드 3세에게는 대고모의 외외증손녀딸이 되고, 앤 네빌에게는 증외종증조부의 손자가 되며 서로 9촌 아저씨와 9촌 조카딸 간이 된다.

앤 네빌과 리처드 3세는 다시 리처드 3세의 어머니 시실리 네빌이 랄프 네빌과 조앤 뷰포트의 딸로, 랭커스터 공작 존 오브 곤트는 외할머니의 친정아버지, 외외증조부가 된다. 리처드 3세는 어머니 쪽으로 존 오브 곤트-딸 조앤 뷰포트-딸 시실리 네빌-리처드 3세로 이어졌고, 앤 네빌은 존 오브 곤트-딸 조앤 뷰포트-리처드 네빌-리처드 네빌 2세-앤 네빌로, 앤 네빌의 할아버지 리처드 네빌과 리처드 3세의 어머니 시실리 네빌은 친오빠와 여동생이었다. 리처드 3세와 앤 네빌은 외삼촌의 친손녀딸이자 대고모의 아들이 된다. 리처드 3세에게 앤 네빌은 외삼촌 리처드 네빌의 친손녀딸이자 대고모 콘스탄스의 외외증손녀이며, 앤 네빌에게 리처드 3세는 증외종조부 코니스버프의 리처드의 손자이자 대고모 시실리 네빌의 아들이 된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 후손간의 근친혼[편집]

독일 호엔촐레른 왕가의 근친혼[편집]

호엔촐레른 왕가는 합스부르크 왕가와 달리 친삼촌-조카, 외삼촌-조카간의 결혼은 되도록 피하고 한 세대나 두 세대 걸러서 근친혼을 하였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유럽 각국과 결혼을 통해 결혼동맹을 형성함과 동시에 상속권을 획득하자, 유산 분할을 두려워한 호엔촐레른 가문 역시 근친혼을 시도한다.

프로이센 공작령[편집]

호엔촐레른 왕가의 뉘른베르크 변경백 계열은 1415년 프리드리히 6세가 브란덴부르크백작선제후의 직위를 받았다. 프리드리히 6세의 손자이자 프리드리히 2세의 아들 알브레히트 3세 아킬레스의 아들 프리드리히 안스바흐는 바이에른 내의 호엔촐레른 가의 영지인 안스바흐 백작령과 작위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안스바흐의 가계는 그의 아들 카슈미르의 아들 알브레히트 2세 알키비아데스와 게오르크의 아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의 대에 단절된다.

프리드리히 안스바흐의 아들 중 유일하게 영지를 받지 못하고 가톨릭 수도사가 되었던 알브레히트 프로이센튜튼 기사단의 단장이었지만 외삼촌 폴란드의 군주 카지미에시 4세로부터 폴란드 서부 지역의 영토를 일부 분봉받고, 자신이 다스리던 튜튼 기사단의 영지를 세속 공작령으로 바꾸고 초대 프로이센 공국의 공작에 오른다. 그러나 본처 사후 알브레히트 프로이센은 자신의 사촌형의 손녀 딸과 재혼한다. 안나 마리아는 알브레히트의 5촌 조카 엘리자베스의 딸이자 6년 연상인 친사촌형 요아힘 1세 네스토르의 손녀딸이었다. 안나 마리아의 부모 역시 근친혼이었는데, 안나 마리아의 친정아버지 브룬스위크-르네부르크의 에릭 1세는 알브레히트의 증조부 선제후 프리드리히 1세의 딸이자 대고모인 세실의 친손자였다. 장인 에릭은 알브레히트에게는 6촌 형이 된다.[1]

에릭은 브란덴부르크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한다. 에릭은 자기 친할머니 세실의 남동생인 외종조부 알브레히트 3세 아킬레스의 아들 요한 키케로의 손녀이자, 요아힘 1세 네스토르의 딸과 결혼한다. 세실의 손자인 에릭과 세실의 남동생 알브레히트 3세 아킬레스의 증손녀인 엘리자베스는 7촌 숙질간이 된다.[2] 장모가 되는 엘리자베스는 알브레히트의 4촌 형 요아힘 1세 네스토르의 딸로 알브레히트보다 20살 연하인 5촌 조카딸이 된이다.

여러 자녀들이 일찍 죽어서 아들 후계자가 없던 알브레히트 프로이센은 자신의 사촌 형의 손녀이자 6촌 형의 딸과 재혼하여 아들 알베르트 프리드리히를 얻었다. 알브레히트 프로이센의 장인 장모 역시 근친혼으로, 장인인 에릭은 알브레히트의 6촌 형이 되고 장모 엘리자베스는 5촌 조카딸이 되며, 사촌형인 요아힘 1세 네스토르는 처외조부가 된다.[3]

프로이센 공작령[편집]

알브레히트 3세 아킬레스에게서 브란덴부르크백작선제후직을 상속받은 요한 키케로의 계열 외에 안스바흐 변경백작직을 물려받은 이복동생 프리드리히 안스바흐의 가계가 창설된다. 프리드리히 안스바흐의 아들 카슈미르의 가계는 일찍 단절되는데, 그 결과 콜룸바흐 영지는 알브레히트 3세 알키비아데스의 사촌동생이자 게오르크의 아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에게로 넘어간다.

알브레히트 프로이센의 아들 알베르트 프리드리히는 아들 둘은 일찍 요절했고, 딸만 다섯 명이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다.

알브레히트 프로이센은 큰딸 안나 프로이센요한 지기스문트,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에게 시집보냈다. 안나는 알브레히트 3세 아킬레스의 아들 프리드리히의 손자로 알브레히트 3세 아킬레스-프리드리히-알브레히트 프로이센-알브레히트 프리드리히-안나로 이어졌고, 맏사위 요한 지기스문트알브레히트 3세 아킬레스-요한 키케로-요하힘 1세 네스토르-요하힘 2세 헥토르-요한 게오르크-요아힘 3세 프리드리히-요한 지기스문트로, 요한 지기스문트의 할아버지 요한 게오르크가 안나에게 8촌 오빠뻘이 된다.

알베르트 프리드리히의 둘째 딸 마리아는 호엔촐레른-바이로이트의 후작 크리스티안 폰 호엔촐레른-바이로이트와 결혼했다. 크리스티안 폰 호엔촐레른-바이로이트요한 게오르크의 아들이자 요아힘 3세 프리드리히의 동생이다. 장녀 안나의 남편 요한 지기스문트는 둘째 사위 크리스티안 폰 호엔촐레른-바이로이트의 조카가 된다. 조카가 손윗 동서가 된다. 둘째 사위 크리스티안 폰 호엔촐레른-바이로이트의 아버지 요한 게오르크가 마리아에게 8촌 오빠뻘이 되므로, 크리스티안은 마리아에게 부계로 9촌 조카가 된다.

다섯째 딸 엘리노어는 요아힘 프리드리히의 후처가 되었는데, 다섯째 딸 엘리노어는 큰딸 안나의 시아버지의 후처이자 둘째 딸 마리아의 손윗 시동서가 된다. 안나와 엘리노어는 친정 언니-동생이자 며느리-시 계모가 된다.

기타 안스바흐 분가[편집]

프랑스 카페 왕가의 근친혼[편집]

프랑스카페 왕조는 후반부로 갈 수록 딸의 생존율은 높아졌으나 남자 후계자가 드물어졌다. 따라서 상속권 분할을 막고자 근친혼이 시도되었다.

필리프 3세 드 나바르필리프 3세의 아들 루이 10세 드 에브뢰의 아들로, 필리프 3세 드 나바르의 왕비 잔느 2세 드 나바르는 프랑스의 왕 루이 10세의 딸로, 필리프 4세의 손녀이자 필리프 3세의 증손녀이다. 5촌 아저씨와 5촌 조카딸이 된다. 필리프 3세 드 나바르잔느 2세 드 나바르의 딸 블랑슈 드 나바르필리프 6세와 결혼했다. 필리프 3세의 아들 발루아백작 샤를 드 발루아의 아들 필리프 6세는 배다른 삼촌 루이 10세 드 에브뢰의 아들 필리프 3세 드 나바르의 딸 블랑슈 드 나바르와 결혼했다. 필리프 6세는 나바라의 군주 필리프 3세 드 나바르의 사촌 형이고, 블랑슈 드 나바르에게는 5촌 아저씨가 된다.

블랑슈 드 나바르루이 10세의 외손녀이자 필리프 4세의 외증손녀로, 샤를 드 발루아는 아버지쪽으로는 할아버지 루이 10세 드 에브뢰의 형으로 종조부가 되고, 어머니 잔느 2세 드 나바르 쪽으로는 외종증조부가 된다. 남편 필리프 6세는 부계로는 5촌 아저씨가 되지만, 어머니쪽으로는 필리프 6세가 외할아버지 루이 10세의 사촌동생이 된다.

사촌 형제간이었던 루이 10세는 부르고뉴 공작 로베르 2세의 딸 마가렛과 결혼했고, 필리프 6세는 부르고뉴의 로베르의 다른 딸 조안과 결혼했다. 사촌형제이면서 처가로는 동서가 된다. 그러나 조안이 죽자 필리프 6세는 다시 삼촌 루이 10세 드 에브뢰의 손녀이자 사촌형 필리프 3세 드 나바르의 딸이자 동시에 다른 사촌 형 루이 10세의 외손녀이자 처형 마가렛의 외손녀인 블랑슈 드 나바르와 재혼한 것이다.

루이 10세 드 에브뢰의 아들 필리프 3세 드 나바르잔느 2세 드 나바르 부부는 서로 5촌 아저씨와 조카딸이 된다. 그들의 아들 샤를 2세 드 나바르의 아들 모르탕 백작 페트로는 알랑송 백작가문의 카트린 드 알랑송과 결혼했다. 카트린 드 알랑송은 피터 2세 드 알랑송의 딸로, 샤를 드 발루아의 증손녀이자 필리프 3세의 고손녀가 된다. 페트로는 필리프 3세-루이 10세 데브뢰-필리프 3세 드 나바르-샤를 2세 드 나바르-페트로로 가계가 이어지고, 카트린 드 알랑송은 필리프 3세-샤를 드 발루아-샤를 2세 달랑송-페트로 2세 달랑송-카트린 드 알랑송으로 서로 8촌 오빠와 8촌 여동생간이 된다. 페트로는 부계로는 카트린과 8촌 남매간이지만 할머니 잔느 2세 드 나바라를 기준으로 보면 필리프 3세-필리프 4세-루이 10세-잔느 2세 드 나바라-샤를 2세 드 나바라-페트로로서, 할머니 쪽으로는 9촌 아주머니가 된다.

한국의 근친혼[편집]

고려의 근친혼[편집]

  • 고려 태조의 자녀들
    • 고려 광종대목왕후 : 광종은 태조의 제3왕비 신명순성왕후의 셋째 아들이자 태조의 다섯째 아들이며, 대목왕후는 제4왕비 신정왕후 황보씨의 딸이다. 이복 오빠와 이복 여동생간이 된다.
    • 문원왕문혜왕후 : 문원왕은 태조의 제3왕비 신명순성왕후의 넷째 아들이자 태자 태, 고려정종, 광종의 친동생이다. 그는 태조의 제6왕비 정덕왕후 유씨의 딸 문혜왕후와 결혼했다. 역시 이복 남매간이 된다.
    • 고려 대종선의왕후 : 대종은 태조의 제4왕비 신정왕후 황보씨의 아들이고, 선의왕후는 태조의 제6왕비 정덕왕후 유씨의 딸이며 문혜왕후의 여동생이다. 역시 이복 남매간이 된다.
    • 고려 광종과 경화궁부인 : 고려 혜종은 태조 왕건의 제2왕비 장화왕후 오씨의 아들이었지만 병약하였다. 혜종은 자신의 아들 흥화군의 장래를 생각하여 이복 동생이자 제3왕비 신명순성왕후의 셋째 아들이고, 자신의 네번째 이복동생 광종에게 경화궁부인을 시집보냈다. 경화궁부인과 광종은 이복 삼촌과 조카딸이 되고, 혜종과 광종은 이복 형이자 장인, 이복 동생이자 사위가 된다.
  • 고려 태조의 손자, 손녀들
    • 천추전군과 천추전부인 : 천추전군은 태조의 아들 문원왕과 문혜왕후의 아들로, 천추전군의 부모는 각각 아버지이면서 이복 외삼촌이자 어머니이면서 이복 고모가 된다. 천추전부인은 태조의 제3왕비 소생 신명순성왕후의 아들 광종과 제4왕비 신정왕후 황보씨의 딸 대목왕후의 딸로, 친삼촌의 딸이자 친백부의 아들이며, 이복 외삼촌의 아들이자 이복 고모의 딸이 된다.
    • 고려 성종문덕왕후 : 문덕왕후는 태조의 손녀이며 고려 광종과 대목왕후의 딸이고, 성종은 태조의 4왕비 신정왕후 소생 아들 대종의 아들이다. 성종과 문덕왕후는 이복 삼촌의 아들이자 이복 백부의 딸이 된다. 또한 고모 겸 이복큰어머니의 딸이자 친외삼촌 겸 이복 친삼촌의 아들이 된다. 문덕왕후는 태조의 서자이자 후궁 헌목대부인 평씨의 아들 수명태자의 아들 홍덕원군 규에게 시집가서 딸을 얻었지만, 성종과 재혼하였다. 태조 왕건에게는 다른 수십명의 아들들이 있었으므로 성종은 자신의 이복 백부이자 고모부이며, 친누이들의 시아버지라는 점 외에 광종의 딸과 결혼하여 자신이 광종의 사위라는 자격을 취득함으로써 정통성을 더 강화할 수 있었다.
    • 고려 경종과 헌숙왕후 : 경종은 태조의 3왕비 신명순성왕후의 아들 광종의 아들이고, 헌숙왕후는 태조와 신명순성왕후의 딸 낙랑공주경순왕의 딸이다. 경종과 헌숙왕후는 서로 친고모의 딸이자 친외삼촌의 아들이 된다.
    • 고려 경종과 헌애왕후, 헌정왕후 : 경종은 태조의 3왕비 신명순성왕후의 아들 광종과 제4왕비 신정왕후 황보씨의 딸 대목왕후의 아들이고, 헌애왕후, 헌정왕후는 태조의 제4왕비 신정왕후 황보씨의 아들 대종과 제6왕비 정덕왕후 유씨의 딸 선의왕후의 딸이다. 경종과 헌애왕후, 헌정왕후는 각각 이복 큰아버지의 아들이자 이복 삼촌의 딸들이고, 대목왕후가 대종과 친누이간이므로 고모의 아들이자 외삼촌의 딸들도 된다. 헌정왕후 소생 고려 목종에게는 경종이 아버지이자 이모할머니의 아들이 되고, 어머니 헌정왕후는 어머니이자 친할머니의 조카딸이 된다.
  • 태조의 증손
    • 고려 목종과 선정왕후 : 고려 목종은 태조의 증손이자 광종의 손자이며 경종의 아들이다. 선정왕후는 태조의 후궁 헌목대부인 평씨의 아들 수명태자의 손녀이자 홍덕원군 규의 딸이다. 선정왕후에게는 어머니의 재혼한 양아버지 고려 성종이, 부계로는 광종의 조카로 이복 5촌아저씨이자 친할머니 대목왕후의 친정 조카가 된다. 선정왕후는 태조의 왕자 수명태자의 손녀이고, 목종은 광종의 손자이므로 6촌간이 된다.
  • 기타

고려 현종의 넷째 아들 정간왕은 덕종, 정종, 문종의 동생이었지만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고 문종보다 먼저 사망한다. 문종은 동생 왕기를 평양공에서 정간왕으로 승진시킴과 동시에 자신의 후손들 중 부마나 비빈, 혹은 문종 자신의 직계 후손들과 정간왕 왕기의 후손들간의 근친혼을 주선했다.

조선의 근친혼[편집]

  • 한명회의 두 딸
  • 한명회와 세조, 신숙주의 겹사돈관계
  • 순원왕후, 효현왕후, 철인왕후

순조비 순원왕후의 아버지 영안부원군 김조순과 헌종비 효헌왕후의 아버지 영흥부원군 김조근은 7촌 숙질간으로, 김조근의 부친 목사 김지순은 김조순과 6촌 재종형제간이다.[4] 헌종은 할머니의 8촌형제의 딸, 9촌 이모뻘과 결혼한 셈이 된다.

철종은 순조의 5촌 조카로 순조의 서삼촌 은언군의 서손자이자, 전계대원군의 서자가 된다. 따라서 10촌 범위를 넘어서는 무복친이지만 순조의 양자가 되었다. 철인왕후의 친정아버지 김문근 역시 김조순의 7촌 조카로, 철종의 양어머니 순원왕후의 8촌 동생의 딸이 된다.[5] 철종은 외가 10촌과 결혼한 셈이 된다.

  • 여흥부대부인민씨, 명성황후, 순명효황후 3대 혼인

1971년 대한민국 민법 개정 이후로 8촌 이상의 친척은 친척으로 보지 않지만, 1970년 이전까지만 해도 10촌 안팎의 친척까지도 가까운 친척으로 봤다. 따라서 흥선대원군의 어머니이자 남연군의 부인인 여흥군부인 민씨 조차도 근친혼으로 보고 삼대민취, 사대민취라는 풍자가 나돌기도 했다. 여흥군부인 민씨는 민정중의 후손으로, 민유중의 후손인 여흥부대부인 민씨, 명성황후, 순명효황후와는 10촌이 넘는다.

역사[편집]

한국에서는 삼국 시대신라의 왕실이나 귀족층에서 골품제도의 유지와 왕권 강화를 위한 근친혼이 성행하였다. 태종무열왕 김춘추진지왕의 아들인 김용춘진평왕의 딸인 천명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진지왕이 진평왕의 삼촌이므로 용춘은 천명의 5촌당숙이었다. 진성여왕은 자신의 숙부인 김위홍과 혼인했으며, 김춘추는 김유신의 누이인 문희, 보희와 혼인했는데 문희의 딸인 지소는 삼촌인 김유신에게 시집을 갔고, 김유신의 딸 신광은 고모인 문희의 아들 문무왕에게 시집을 갔다. 헌덕왕은 숙부의 딸과 사촌끼리 결혼하였다. 고려 초에도 왕실의 동성 근친혼이 성행하여 이복남매 간의 결혼까지도 행해졌다.

고려 중엽부터 유학의 영향으로 근친혈족 간의 혼인이 규제되기 시작해 고려 말에는 왕실 내의 근친혼풍습이 사라졌다. 유교이념을 기초로 건국된 조선 시대에는 성(姓)과 (本)이 같은 사람 사이의 혼인이 철저하게 금지되었고, 모계혈족도 6촌까지 혼인이 금지되었다.[6]

현재는 2005년 3월 31일에 개정된 민법에 따라 동성동본 여부를 불문하고 8촌 이내의 혈족 사이에서 혼인을 금지하고 있다.

관련 조문[편집]

제809조(근친혼 등의 금지) 
① 8촌 이내의 혈족(친양자의 입양 전의 혈족을 포함한다)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
② 6촌 이내의 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6촌 이내의 혈족, 배우자의 4촌 이내의 혈족의 배우자인 인척이거나 이러한 인척이었던 자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
③ 6촌 이내의 양부모계(養父母系)의 혈족이었던 자와 4촌 이내의 양부모계의 인척이었던 자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

민법

각국의 근친혼 금지[편집]

세계의 사촌간 결혼에 관한 법률
  사촌간 결혼이 가능
  종교나 문화에 따라 적법성을 따짐
  법령으로 사촌간 결혼을 금지
  예외 조항을 두고 금지
  범죄
  자료없음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사이에서는 혼인을 금지하는데, 이는 전세계적으로 근친금혼의 범위가 가장 넓은 편에 속한다.

중화민국은 6촌 이내의 혈족 간의 혼인을 금지하며, 그 밖에 중국, 필리핀 등 여러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사촌까지의 결혼을 금지하고 혼인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인도에서는 사촌 간의 결혼을 힌두교 문화에 따라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는데, 당사자 양쪽이 이슬람교도인 경우에만 허용한다. 반면, 일본, 중동(이슬람권)과 다수의 유럽[7]아메리카 국가들에서는 사촌 간의 결혼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에서 사촌 간의 결혼은 31개주가 금지하며,[8] 19개주는 허용한다. 다만, 금지하는 주 가운데 7개주는 생식능력이 없음을 증명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허용한다.

사촌 간의 결혼을 허용하는 국가 가운데 이슬람권 국가는 사촌 간의 결혼이 전체 혼인의 25%를 넘고, 이스라엘은 5.2%, 일본은 1.6%를 차지하지만, 서유럽, 북아메리카, 오세아니아에서는 매우 드물다.

이슬람권에서의 사촌혼은 대부분이 부계(父系)인 친사촌 간의 혼인이다.[9] 이슬람권에서도 율법적으로 3촌 이내의 혈족과의 혼인은 철저히 금지된다.[10] 그러나, 사촌 간의 혼인은 금지하지 않는다. 이슬람교 율법에서는 딸에게도 아들의 2분의 1만큼 상속권을 인정했는데, 부계 중심의 아랍 사회에서는 족외혼으로 다른 부족의 사위를 맞아들일 경우 재산의 일부(딸이 상속할 재산)를 잃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부계 가족의 재산을 지킬 의도로 이슬람교가 출현한 7세기 이후 사촌혼이 급증했다.[10]

주석[편집]

  1. 프리드리히 1세-세실리아-브룬스위크 르네부르크의 빌헬름4세-에릭 1세
    프리드리히 1세-알브레히트 3세 아킬레스-프리드리히 1세 안스바흐-알브레히트
  2. 프리드리히 1세-세실리아-브룬스위크 르네부르크의 빌헬름4세-에릭 1세
    프리드리히 1세-알브레히트 3세 아킬레스-요한 키케로-요아힘 1세 네스토르-엘리자베스
  3. 그의 아들 알베르트 프리드리히에게는 외할머니인 엘리자베스가 6촌 누나가 된다.
  4. 김제겸-김달행-김이중-김조순-순원왕후, 김제겸-김탄행-김이소-김지근-김조근-효헌왕후
  5. 김제겸-김달행-김이중-김조순-순원왕후, 김제겸-김성행-김이장-김인순-김문근-철인왕후
  6. "우리 나라의 풍속이 외친(外親)도 동성(同姓)과 다름없이 중히 여기는 까닭으로 6촌까지 분경(奔競)을 금하였으니, 이제부터는 외친(外親) 6촌이면 서로 혼인하는 것을 허락하지 말라." (조선왕조실록 성종 2년(1471) 6월 18일 10번째기사)
  7. 루마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공화국 등에서는 사촌 간의 결혼을 법으로 금지한다.
  8. 텍사스, 오클라호마, 네바다,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등은 사촌 간의 성관계를 근친상간의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9. 이슬람 세계의 독특한 成婚 풍습 뉴스웨이브 2009.5.13
  10. 《세계의 혼인 문화》p 178- 179. 한국외대국학종합연구센터 저. 2005.9.22.

관련 항목[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