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슈카시 페렌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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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슈카시 페렌츠
개인 정보
본명 Puskás Ferenc
출생일 1927년 4월 2일
출생지 헝가리 부다페스트
사망일 2006년 11월 17일(2006-11-17)(79세)
사망지 헝가리 부다페스트
172cm
포지션 은퇴 (과거 공격수)
구단 기록*
연도 구단 출전 (득점)
1943-1956
1957
1958-1966
키슈페스트 AC
에스파뇰 (게스트)
레알 마드리드
341 (352)

180 (156)
국가대표팀 기록
1945-1956
1961-1962
헝가리
스페인
850(84)
40(0)
지도자 기록
1967
1967
1968
1968-1969
1970-1974
1975
1975-1976
1976-1977
1978-1979
1979-1982
1985-1986
1986-1989
1989-1992
1993
에르쿨레스
샌프란시스코 골든 게이트 게일스
밴쿠버 로열스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파나시나이코스 FC
레알 무르시아
콜로-콜로
사우디아라비아
AEK 아테네 FC
알마스리
솔 데 아메리카
세로 포르테뇨
사우스 멜버른 헬라스
헝가리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또한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03년 1월 1일 기준임.
‡ 국가대표팀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03년 1월 1일 기준임.
메달 기록
헝가리의 기 헝가리
남자 축구
올림픽
1952년 헬싱키 남자 축구
푸슈카시 페렌츠
출생지 헝가리 부다페스트
사망지 헝가리 부다페스트
복무 헝가리 육군
복무기간 1949년 ~ 1956년
최종계급 소령
기타 이력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 선수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 선수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사람의 이름은 성-이름 순서로 되어 있는 헝가리 이름으로 성은 '푸슈카시', 이름은 '{{{2}}}'입니다.

푸슈카시 페렌츠(헝가리어: Puskás Ferenc, 1927년 4월 2일 ~ 2006년 11월 17일)는 헝가리축구 선수이다. 1950년대 ‘마법의 마자르 군단’이라고도 부른 무적의 팀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활약했으며,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함께 레알 마드리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축구 역사상 많은 나라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최초의 국제적인 스타였다. 푸슈카시는 축구 선수 외에도 군인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으며 그의 계급은 소령이었다. 그가 군인이 된 것은 부다페스트 혼베드를 국방부에서 인수하였기 때문이며 이로 인하여 푸슈카시는 소령으로 임관했다. 이 때문에 푸슈카시는 질주하는 소령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푸슈카시는 1927년 푸르첼드 페렌츠(Purczeld Ferenc)라는 이름으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1943년 키슈페스트 AC (Kispest AC, 후에 부다페스트 혼베드) 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1945년 8월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대표팀 데뷔전을 치른 그는, 1952년 헬싱키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에 헝가리 대표로 출전해 남자 축구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1954년 스위스에 열린 월드컵에서 헝가리의 준우승에 기여한 푸슈카시는, 이 대회 조별 리그에서 서독과의 경기 중 부상을 당해 결승 두 경기를 결장하게 되었고, 중심 선수를 잃은 헝가리는 브라질우루과이를 연거푸 꺾고 결승전에 올랐으나, 조별 리그에서 이미 경기한 바 있었던 서독에게 3-2로 역전패 당하는 바람에 매직 마자르 (당시 헝가리 대표팀의 별명) 의 불패 신화는 막을 내렸다.

이후 1956년 헝가리에서 헝가리 혁명이 일어나자 부다페스트 혼베드 팀의 선수로서 유러피언컵 출전을 위해 스페인으로 출국한 푸슈카시는 헝가리로 귀국하지 않고 스페인으로 망명했으며 이 때문에 그는 헝가리 정부의 압력으로 2년간 공식 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게 되었다.

처분이 끝난 1958년 스페인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하였고,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등과 함께 레알 마드리드의 첫 황금 시대를 이룩하였다. 뒤에는 스페인 국적을 취득해 스페인 대표로도 뛰었으며, 레알 마드리드 소속 시절에는 프리메라리가 우승 6회, 유러피언컵 3회 우승에 일조하였다. 개인적으로는 피치치 트로피(Pichichi Trophy) 를 4번 수상하였으며, 레알 마드리드에서 통산 372경기에서 324골을 넣었다. 그 밖에 유러피언컵 1959-60 결승전에서 4골을 넣는 활약을 펼쳤는데,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결승전 개인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61년에는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선수로 국제 무대에 복귀하였다. 1962년 FIFA 월드컵에 스페인 대표로 출전하였으며, 스페인 대표팀에서는 통산 4경기에 출전하였다.

1966년 39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한 푸슈카시는 헝가리의 관점에서 복무 도중에 이탈한 군인 신분이였기 때문에 헝가리에 입국할 수 없었고 그 후 세계 각국에서 감독 생활을 하였으며 1971년에는 그리스파나시나이코스를 이끌어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 진출시키기도 하였다.

1981년 헝가리에 다시 돌아온 푸슈카시는 고국에서 여전히 복무 도중에 이탈한 군인으로 취급을 받은 탓에 소시지 공장 등에서 인부로 일하다가 다시 외국으로 나갔다. 그 후 1989년에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된 이후에야 헝가리로 다시 들어올 수 있었으며 헝가리 정부는 푸슈카시에 사면 및 복권 조치를 내렸다. 이 덕에 푸슈카시는 1993년 헝가리 대표팀 감독을 할 수 있었으며 이것을 마지막으로 감독에서 은퇴하였고, 그 후에 6년간 알츠하이머 병으로 인해 병원 생활을 하다가, 2006년 11월 17일 헝가리부다페스트에서 향년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1]

2001년에는 헝가리 국립 경기장이 푸슈카시 페렌츠 스타디움으로 이름이 바뀐 바 있다.

수상 경력

클럽

국가대표팀

개인

  • 중앙 유럽 인터내셔널컵: 최다 득점자 (10골): 1954
  • 헝가리 리그 최다 득점자: 1947–48, 1949–50, 1950, 1953
  • World Soccer Player and European Player of the Year: 1953
  • Winner Player European of the century XX 레키페
  • Winner Player Hungarian of the century XX
  • Winner Player Hungarian Top Goalscorer of the century XX
  • Silver Ball European Footballer of the Year 프랑스 축구 : 1960
  • FIFA 100 지명
  • 유로피언컵 최다 득점자 (12골)(7골): 1960, 1964
  • 피치치 트로피: 1959–60, 1960–61, 1962–63, 1963–64

감독

기타

  • 그의 킥력은 세계가 알아줄 정도로 강력했다. 1954년 FIFA 월드컵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로 출전한 바 있는 홍덕영에 의하면 "푸슈카시가 찬 공은 마치 대포알 같아서 선방하면 갈비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느낄 정도였으며 크로스바에 맞으면 골대가 한참 동안이나 흔들렸다. 게다가 머리 옆으로 푸슈카시가 쏜 공이 날아갈 때 윙하고 거칠게 소리가 날 정도였다."고 말했다.

주석

  1. 이지석 (2006년 11월 18일). “푸슈카시 사망, '세계 축구 큰 별 지다'. 2006년 11월 18일에 확인함. 

바깥 고리

틀:UEFA 창립 50주년 기념상 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