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에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후에(베트남어: Huế, 중국어: 順化)는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도시로 투아티엔후에 성(베트남어: Thừa Thiên-Huế)의 성도이다. 1802년부터 1945년까지는 베트남(응우옌 왕조)의 수도였다. 많은 역사적 기념물과 건축물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도시에 있는 후에사원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인구는 약 340,000명이다.

지리[편집]

흐엉 강(후에 강)

베트남 중부의 흐엉 강(베트남어: Sông Hương香江) 하구에 자리하고 있으며, 남중국해와 매우 가깝다. 수도 하노이와는 540km, 베트남 최대도시인 호찌민 시와는 644km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베트남은 역사, 문화적으로 북부와 남부가 서로 별개의 과정을 거쳐왔는데, 북과 남을 가르는 기준점이 바로 이 후에이다. 현대에는 베트남전쟁 최대의 유혈전투였던 후에전투가 벌어지는 현대사의 무대가 되었다.

볼거리[편집]

후에 황궁[편집]

왕궁 평면도

가장 뛰어난 관광지이자 볼거리는 후에 황궁(베트남어: Kinh thành Huế, Imperial City, Huế)으로서 인근에 황제가 머물던 궁과 묘가 있다. 후에 전체를 통틀어 흐엉 강의 북쪽 지역인 구 시가지에 대부분의 유적이 자리한다. 응우옌 왕조의 황제는 성 안에서 머물렀는데 이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공간이었다. 이 성 안쪽의 왕궁은 금지된 도시였고, 오직 황제들과 첩들 그리고 측근들만이 접근할 수 있었다.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사형을 당하였다. 후에의 역사 관광지로서 유지하기 위하여 재건축의 노력이 진행되고 있으나 오늘날 금지된 영역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1802년부터 1945년까지 13대에 걸쳐 이어진 응우옌 왕조의 왕궁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요새이자 궁전이다. 이곳의 뜰은 가로 세로 각각 2킬로미터, 높이 5미터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성벽은 다시, 해자로 둘러싸여 있었다. 해자에 담을 물은 후에를 관통하여 흐르는 흐엉강에서 끌어왔다. 이러한 구조물을 시터들(citadel)이라고 한다. 시터들 안에는 거의 2.5킬로미터의 방어선을 구축한 왕궁이 있었다. 대개의 관광객이 입장하는 왕궁의 정문인 남문 누각에 오르면 왕궁 전체가 한눈에 보인다. 남문 정면에 중국의 자금성을 본떠 지은 디엔타이호아(베트남어: Điện Thái Hoà太和殿 태화전)가 있으며 디엔타이호아의 왼쪽에 각 왕의 위패가 모셔진 사원인 현임각이 있다. 그 외에도 왕궁 안에는 왕족의 저택과 사원들, 황제를 위한 인클로져(enclosure)인 자금성(베트남어: Tử Cấm thành紫禁城 뚜깜탄, the Purple Forbidden City)이 있다. 그 명칭은 중국의 자금성을 본딴 것이다. 이름만을 본딴 것이 아니어서, 자금성에는 수많은 궁전과 문, 궁정들이 있었다. 자금성은 응우옌 왕조의 황족들을 위한 곳이었다. [1]

카이딘 황릉

대략적으로 후에에서 흐엉 강을 따라서, 후에의 외곽 남쪽에 민망(베트남어: Minh Mạng)황제, 뜨득(베트남어: Tự Đức)황제, 카이딘(베트남어: Khải Địn) 황제 등의 묘지들을 포함한 무수히 많은 또다른 기념물들이 있다. 카이딘 황릉은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릉으로 1931년 완성됐다. 베트남과 유럽의 건축양식이 섞인 특이한 구조의 황릉이다. 콘크리트 석상이 유럽인의 모습과 유사하다. 내부의 옥좌에는 청동에 금박을 입힌 카이딘 황제의 등신상이 있으며 그 아래 황제의 시신이 안치돼 있다. 민망 황제릉은 내외부 장식이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입구에 들어서면 초승달 모양의 인공 호수가 눈에 들어오며,황제의 공덕비가 세워진 정자 아래 쪽에 문무석 및 동물 모양의 석상들이 늘어서 있다. [2]

구시가지 및 기타[편집]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는 전통을 간직한 채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199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3] 남쪽 지역(신 시가지)은 서울의 강남과 같이 신개발지역이 많기 때문에 거주지와 비즈니스 거점이다.

또한 티엔무 사원(베트남어: Chùa Thiên Mụ天姥寺)이 유명한데, 이 사원은 강을 따라 도심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후에에서 가장 큰 사원이며 이 도시의 공식 상징이기도 하다. 레쯕(Le Truc) 거리 3번지에 있는 훼 박물관(Hue Museum of Royal Fine Arts)은 응우옌 왕조의 여러가지 다앙한 유물들을 보존하고 있다. 궁정에서 사용되었던 물건과 외국에서 온 선물 등을 전시해놓은 전통가옥 모양의 본관과 철제, 석제 전시품들을 전시해놓은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4] 후에는 베트남 중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한적하면서도 별난 곳이다. 베트남의 유명인들 다수가 이곳 태생이거나 후에에서 한번쯤은 머물고자 한다. [출처 필요]

역사[편집]

후에는 원래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베트남의 남부 전역을 통치했던 봉건 왕조인 응우옌 왕조에 수도로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찐삼(베트남어: Trịnh Sâm)이 점령했던 1775년에는, 도시 이름이 푸쑤안(베트남어: Phú Xuân)이었다. 1802년 자롱은 응우옌 왕조를 세우고 베트남 전역의 통치권을 양도받게 되자, 후에는 국가 전체의 수도가 되었다. 이후 1945년까지 베트남의 수도로 자리매김한다. 황제 바오다이가 퇴위당하고 공산 정부가 출범하자 하노이가 수도로 승격된다. 1949년 친프랑스 인사와 합작하여 황제가 다시 복권을 시도하였지만 그때 황제는 후에가 아닌 사이공으로 정부청사를 세우고자 한다. 공산주의자를 비롯해 전 베트남 국민은 황제의 복고에 반대하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 후에는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의 경계에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하였고 매우 중요한 요새 역할을 하였다. 후에는 그 경계의 남쪽, 즉 남베트남에 속해 있었는데, 후에 전투(Battle of Huế)에 속하는 1968년 구정 대공세 때, 이 도시는 물리적으로도 심각하게 피해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그 명성도 손상되었다.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건물에 미군이 폭격을 가하여 역사적인 유물과 유적이 송두리째 파괴되었다. 또한 공산주의 세력에 의하여, 악명 높은 후에 학살(massacre at Huế)이 자행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난 뒤에도 상당 기간 동안 "봉건 시대의 유산"이라는 이유로, 역사 유적 복원과 봉건 유적에 대한 관심이 미비하여 한동안 방치되었다. 베트남 정부의 정책 쇄신을 통해 중세 왕조의 유적 복원 작업이 완료 혹은 진행 단계에 머물고 있다.

음식[편집]

후에의 음식은 베트남 전역으로부터 가져온 재료들이 쓰인다. 다른 지방과 가장 큰 차이점은 채식주의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완전 채식주의인 식당들이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고, 불교적인 믿음에서 한달에 두번 채식을 하는 전통을 가진 이 지역 사람들이 이곳을 이용한다.

그림 모음[편집]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김재일 기자 (2008년 6월 9일). 오행산에 올라 `五行`을 헤아려봐!. 한국경제신문사. 2008년 8월 2일에 확인. “응우옌 왕조 왕궁은 1802년부터 1945년까지 13대에 걸쳐 이어진 응우옌 왕조의 왕궁이다. 높이 5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왕궁 안에는 왕족의 저택과 사원들이 남아 있다. 대개의 관광객이 입장하는 왕궁의 정문인 남문 누각에 오르면 왕궁 전체가 한눈에 보인다. 남문 정면에 베이징의 자금성을 본떠 지은 태화전이 있으며 태화전 왼쪽에 각 왕의 위패가 모셔진 사원 현임각이 있다.”
  2. 김재일 기자. 앞의 문서. “후에 외곽 남쪽에 왕릉과 사원들이 많다. 카이딘 왕릉은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왕릉으로 1931년 완성됐다. 베트남과 유럽의 건축양식이 섞인 특이한 구조의 왕릉이다. 콘크리트 석상이 유럽인의 모습과 유사하다. 내부의 옥좌에는 청동에 금박을 입힌 카이딘 황제의 등신상이 있으며 그 아래 황제의 시신이 안치돼 있다. 민망 황제릉은 내외부 장식이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입구에 들어서면 초승달 모양의 인공 호수가 눈에 들어오며,황제의 공덕비가 세워진 정자 아래 쪽에 문무석 및 동물 모양의 석상들이 늘어서 있다.”
  3. [2005년 1월 10일] (2006년 8월 25일) 트래블게릴라: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100배 즐기기》, 개정2판, 서울: 랜덤하우스코리아(주), 494쪽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는 전통을 간직한 채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199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4. [2005년 1월 10일] (2006년 8월 25일) 트래블게릴라: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100배 즐기기》, 개정2판, 서울: 랜덤하우스코리아(주), 502~503쪽 “주로 응우옌 왕조 때의 유물들을 전시해놓은 박물관이다. 궁정에서 사용되었던 물건과 외국에서 온 선물 등을 전시해놓은 전통가옥 모양의 본관과 철제, 석제 전시품들을 전시해놓은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