쾰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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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
Köln
Cologne montage.png
Koeln Flagge.gif DEU Koeln COA.svg
시기 휘장
쾰른 (독일)
쾰른
쾰른 위치
좌표 북위 50° 57′ 동경 6° 58′  / 북위 50.950° 동경 6.967° / 50.950; 6.967좌표: 북위 50° 57′ 동경 6° 58′  / 북위 50.950° 동경 6.967° / 50.950; 6.967
행정
나라 독일
행정구역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설립 기원전 38년
인구
인구 1,024,373명 (2012년)
인구밀도 2,500명/km²
지리
면적 405.15km²
해발 37m
기타
우편번호 50441–51149
지역번호 0221, 02203
웹사이트 http://www.stadt-koeln.de/

쾰른(독일어: Köln 듣기 , 쾰른어: Kölle)은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도시이다.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에 이어 독일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였으며, 과거 프로이센에서는 베를린 다음가는 제2의 도시였다. 기원전 38년 로마 제국에 의해 설립되었던,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들 중 하나이다. 쾰른은 서기 50년 로마의 "도시" 지위를 수여받았다.

쾰른은 라인 강에 위치한다. 시의 유명한 쾰른 대성당 (Kölner Dom)로마 가톨릭교회 쾰른 대주교의 소재지이다. 쾰른 대학교(Universität zu Köln)유럽의 가장 오래된 대학들 중 하나이다.

쾰른은 라인란트의 주요한 문화적 중심이며 활기에 넘치는 예술 현장을 갖고 있다. 30개 이상의 박물관과 수백여개 화랑의 터전이다. 전람회는 고대 로마 유적 에서 현대의 그림과 조각품까지 범위를 갖는다. 쾰른 무역 박람회는 예술 쾰른 박람회,국제 가구 박람회, 포토키나 (Photokina) 같은 수많은 무역 쇼를 주최한다. 쾰른은 또한 쾰른 카니발 제전, 연례 레게 썸머잼, 게이/레즈비언 프라이드 페스티벌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 (CSD) 으로 잘 알려져있다.

독일 안에서, 쾰른은 중요한 대중 매체 중심으로서 알려진 상태이다. WDR,RTL,VOX를 포함하는 몇몇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들은 쾰른에 기반을 둔다.

역사[편집]

고대[편집]

쾰른은 Colonia Claudia Ara Agrippinensium의 이름으로 서기 50년 로마인들의 도시로서 인식됐었다. 상당한 로마인의 유적이, 1900년된 옛 로마보트의 유명한 발견이 2007년 후반 이루어졌던 곳인 특히 부두 지역,동시대의 쾰른에서 발견될 수 있다.[1]260년에서 271년까지 쾰른은 포스투무스, 마리우스, 빅토리누스 황제가 통치하던 갈리아 제국의 수도였다. 310년콘스탄티누스 1세의 통치아래 다리가 쾰른에 라인강 너머로 건설되었다.

서기 313년 주교로서 선출되었던, 마데르누스는 최초의 알려진 쾰른의 주교였다. 도시는 서기 459년에 프랑크족에 의해 점령당할 때까지 로마 제국속주의 주도였다. 785년 쾰른은 대주교의 소재지가 되었다.

중세[편집]

중세신성 로마 제국의 시기 동안, 쾰른의 대주교는 일곱 선제후 중 한 명이자 세 명의 교회 선제후 중 한 명이었다. 대주교는 거대한 세속의 영지를 다스렸지만 1288년 지그프리드 2세가 전투 (battel of worringen)에서 패배하였고 에 망명할 것을 강요받게 된다.

19세기와 20세기[편집]

제2차 세계대전[편집]

2차대전 중, 영국 공군의 장군 아더.T.해리스의 지휘아래 있던 폭격기 1080여대가 쾰른시를 1942년 5월 31일에 폭격을 감행하는 일명 '밀레니엄 작전'을 실행해 20분만에 시는 괴멸, 6만여명의 민간인이 학살을 당하였다. 이때 쾰른 대성당은 문화유산이라는 명목하에 타겟에서 제외되었지만 이 역시 심하게 그을리는 등 피해를 입었다.

융단폭격이라는 개념을 성립한 해리스는 이 쾰른 대폭격 이후 이런 한 도시를 폭탄으로 도배해버리는 폭격을 자주 사용하였고 이는 3년뒤인 1945년 드레스덴 대폭격에서 미공군과 같이 3000여대의 폭격기로 1시간만에 도시를 초토화시키고 행방불명자만 10만여명이 나오는 학살을 저지르게 된다.

전후의 쾰른[편집]

인구[편집]

쾰른은 거주자라는 점에서 독일에서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다음으로 네 번째로 큰 도시이다. 공식적으로, 도시는 100만명(2006년 12월 31일로서 989,766명[2])보다 다소 적다. 쾰른은 (이웃하는 ,Hürth,레버쿠젠,베르기쉬 글라드바하 도시들을 포함하는) 2백만 가량의 대도시권의 중심지이다.

지역 통계에 따르면, 2006년 도시의 인구 밀도는 평방 킬로미터 당 2,528명이었다. 인구의 31.4%가 거기에 이주를 해온 상태이며, 쾰른 인구의 17.2%가 비 독일인 이었다. 전체 인구의 6.3%를 구성하는 가장 큰 그룹은 터키인이었다.[3] 2007년 9월로서, 쾰른에 사는 거의 터키 태생의 대략 12만명의 이슬람 교도들이 있었다.[4]시의 인구는 18세 아래 15.5%, 18세에서 64세까지 67.0%, 65세이상 17.4%로 나타났다. 전체 100명의 여성당 95명의 남성이 있었다.[5]

문화[편집]

향수 제조가
조안 마리아 파리나

쾰른은 쾰시 (Kölsch)로 불리는, 그곳의 맥주로 잘 알려져 있다. 쾰시는 또한 그 지역 방언의 이름이다. 이것은 쾰시가 당신이 마실 수 있는 유일한 언어라는 평범한 농담을 인도했다.

쾰른은 또한 '오 드 콜로뉴'(Eau de Cologne)으로 유명하다. 18세기 초기에, 향수 제조가 조안 마리아 파리나 (1685년 ~ 1766년)가 새로운 향기를 창조했고 그의 고향 쾰른의 이름을 따서, 오우 드 쾰른 ("쾰른의 물"을 뜻함) 이라 명명하였다. 18세기가 전개함에 따라 향기는 점점 인기있게 되었다. 마침내, 쾰른 상인 빌헬름 뮐헨스는 계약 아래 당시에 오우 드 쾰른을 위한 일상의 명칭이 되었었던 그 이름 파리나를 확보했고, 쾰른의 글락켄가스세에 조그만 공장을 열었다. 몇 년 뒤에 법정 싸움으로부터 압력 아래, 그의 손자 페르디난드 뮐헨스가 그 회사와 그들의 상품을 위한 새로운 이름을 선택했었다. 숫자 4711은 19세기 초기에 라인란트의 프랑스 점령동안 글락켄가스세에 그 공장에 주어졌던 번지 수였다. 1994년에, 뮐헨스 가는 그들의 회사를 독일의 웰라 법인에게 팔았었다. 2003년 프록터 앤드 갬블사가 웰라를 인수했다. 오늘날, 최초의 오우 드 쾰른은 아직도 현재 8대손 파리나 가 (1709년이래로 파리나 게겐뉘버)와 2006년 12월 상표 4711을 샀었던 Mäurer & Wirtz의해 쾰른에서 생산된다.

사육제[편집]

쾰른 사육제는 유럽에서 가장 큰 거리 축제 중 하나이다. 쾰른에서, 사육제 시즌은 공식적으로 새로운 사육제 시즌의 선언과 함께 11월 11일 오전 11시에 시작하며 재의 수요일까지 지속한다. 그러나 소위 "미친 날들" (Tolle Tage)은 거리 사육제의 시작인 '여성의 사육제' (Weiberfastnacht) 혹은 방언으로 'Wieverfastelovend'(재의 수요일 전 목요일)까지 시작하지 않는다. 수백, 수천의 방문자들이 이 기간 동안 쾰른에 모인다. 일반적으로 약 백만의 사람들이 재의 수요일 전 목요일에 거리에서 축제를 한다. [6]

자매도시[편집]

쾰른은 다음 도시들과 함께 "자매 결연" 된 상태이다:

참고[편집]

  1. C.Michael Hogan, Cologne Wharf, The Megalithic Portal, editor Andy Burnham, 2007
  2. Bevölkerung im Regierungsbezirk Köln
  3. 2007 - Einwohnerdaten im Überblick - Zahlen + Statistik - Bevölkerung - Stadt Köln
  4. WDR Article of 15.08.2007
  5. City of Cologne -> Figures Statistics Population (german)
  6. Carnival - Cologne`s “fifth season” - Cologne Sights & Events - Stadt Köln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