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록터 앤드 갬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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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록터 & 갬블
Procter & Gamble Co.
그림칸 Procter and Gamble Logo.svg
창립 1837년
창립자 윌리엄 프록터, 제임스 갬블
시장 정보 NYSE: PG
본사 미국 미국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핵심 인물 A. G. 래플리 (회장 겸 CEO)
제품 소비재
자본금 US $ 634억 3천만 (2012)
매출액 Green Arrow Up Darker.svg US $ 836억 8천만 (2012)
영업이익 Red Arrow Down.svg US $ 132억 9천만 (2012)
순이익 Red Arrow Down.svg US $ 107억 5천만 (2012)
자산 총액 Red Arrow Down.svg US $ 132억 2천만 (2012)
종업원 126,000 명 (2012년)
웹사이트 프록터 앤드 갬블
신시내티 본사

프록터 앤드 갬블(Procter & Gamble Co.)는 미국 신시내티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이다. 비누, 샴푸, 칫솔, 기저귀 등 다양한 종류의 소비재를 제조 판매한다. 줄임말로 P&G라고 부른다.

2007년 기준으로, P&G는 매출액으로 따져서 미국에서 25번째로 큰 기업이며, 이익규모로는 18번째로 큰 기업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발간한 가장 존경 받는 기업 목록 TOP 500(2007년)에는 10위에 올라 있다. [1][2] 프록터 & 갬블의 브랜드 관리는 경영 분야에서 이름 높다. 솝 오페라(비누 오페라, soap opera), "커넥트 & 디벨롭" 혁신은 유명한 경영 사례로 꼽히고 있다.

닐슨 컴패니의 자료에 의하면, 2007년 기준으로 프록터 & 갬블은 미국에서 가장 많은 광고비를 쓰고 있는 기업이다; 1년에 약 26억 2천만 달러의 광고비를 지출하는데, 이것은 2위인 제너럴 모터스의 광고비의 거의 2배에 달한다. [3]

대한민국 지사는 한국 P&G이다.

역사[편집]

회사의 창업자는 윌리엄 프록터(William Procter)와 제임스 갬블(James Gamble)이다. 프록터는 양초 제조업자였고, 제임스 갬블은 비누 제조업자였다. 1837년 프록터 앤드 갬블이라는 회사를 창업하였다. 각각 영국, 아일랜드 이민자이며, 동서지간이었다. [4]

사실, 양초와 비누를 만드는 데에는 비슷한 재료가 쓰인다. 그 까닭에 1837년 미국 대공황 시기에 접어들면서 그 둘의 불화가 심해졌다. 그들의 장인이었던 알렉산더 노리스(Alexander Norris)가 사위 둘을 불러 모아 놓고서는 서로 동업하도록 그들을 설득하였다. 1837년 10월 31일 그들은 이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에 그들은 프록터 & 갬블(Procter & Gamble)이라는 회사를 창립하였다.

19세기 들어서, 회사는 번창하였다. 1859년 매출액은 1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이 시기, 프록터 & 갬블은 대략 80여 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었다. P&G는 남북 전쟁 시기, 남부 연합군비누양초를 공급하는 계약을 따냈다. 군수 물자를 조달함으로써, 전쟁 중 회사의 순이익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병사들로 하여금 P&G의 제품을 쓰게 할 수 있었다. 전쟁 후, 병사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서도 계속 P&G의 제품을 구매하여 사용하였다.

1880년대, 프록터 & 갬블은 신상품을 내놓았다. 비누인데, 가벼워서 물 위에 떴다. 회사는 이 제품을 아이보리(Ivory)라고 이름지었다. 이후 수십 년간 계속, 회사는 성장을 거듭하였다. 19세기말에는, 회사의 진보적인 업무 환경을 가지고 유명세를 탔다. 윌리엄 프록터의 손자인 윌리엄 아넷 프록터(Willaim Arnett Procter)는 1887년 회사의 노동자들을 위해 이익 배분(Profit sharing, PS) 제도을 만들었다. 윌리엄 아넷 프록터는 종업원들에게도 회사의 결실을 나누어 줌으로써, 종업원들의 파업을 좀 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점차, 회사는 양초보다는 비누에 좀 더 집중해나갔다. 1890년대에는 약 30 여 종의 비누를 제조하였다. 대부분의 가정에 전기가 들어가게 되자, 양초를 쓸 일이 점차 없어졌다. 창업 때부터 만들어 오던 양초는 생산량이 점점 줄어갔다. 결국, P&G는 1920년에 양초 제조를 중지하였다.

20세기 초, 프록터&갬블은 성장을 계속해 나갔다. P&G는 해외에도 공장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신시내티에 있는 공장들만 가지고는 생산량이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회사의 경영진들은 생산하는 제품을 다양화 하였다. 1911년에는 동물성 기름이 아닌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쇼트닝크리스코를 제조하기 시작하였다. 1900년대 초반, 프록터 & 갬블 회사 내 연구소들이 유명했었는데, 여기서 연구원들은 신상품들을 연구/개발해나갔다. 회사 경영진들은 또한 시장 조사라는 당시에는 생소했던 분야를 개척해 나갔다. 시장 조사를 통해서 소비자들의 필요(need)와 제품의 매력(product appeal)을 연구하였다. 1920년대에서 1930년대에 걸쳐, 라디오가 유행하였다. 이에 회사는 꽤 많은 수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협찬하였다. 그 결과 이러한 종류의 라디오 쇼에는 "솝 오페라"(soap opera, 비누 오페라)라는 별명이 붙었다.

2012년 2월 15일, 프록터 앤드 갬블에서는 스낵 브랜드인 프링글스켈로그에 매각했다.

윤리 경영[편집]

프록터 앤드 갬블에는 "뉴욕 타임즈 룰(New York Times Rule)"이라는 것이 있다. 자신이 오늘 한 일이 내일 아침 뉴욕 타임즈 1면에 나오더라도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는 지침이다. 이 예로, 프록터 앤드 갬블은 서부 아프리카의 한 국가에서 통관 시 돈을 요구하는 세관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지 않고 대신 합법적인 절차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공장운영을 4개월 중단 한 바 있다. [5]

브랜드[편집]

주석[편집]

  1. CNN Fortune ranking
  2. America's Most Admired Companies 2007: Top 20 - FORTUNE
  3. The Nielsen Company Issues Top Ten U.S. Lists For 2007, from the Nielsen Company website
  4. Dyer, Davis, Frederick Dalzell, Rowena Olegario. 《Rising Tide: Lessons from 165 Years of Brand Building at Procter & Gamble》.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ISBN 1591391474
  5. 상생을 통한 지속가능경영. P&G 한국.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