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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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씨는 중국한국의 성씨이다. 오(吳)씨는 춘추전국시대 오(吳) 나라 왕을 기원으로 한다. 오(吳: Wú)씨는 중국 《백가성》(百家姓) 제6위의 대성이다. 한국의 오씨는 신라고려중국에서 들어온 성씨이며, 인구는 약 70만명으로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1위이다.

기원[편집]

오씨의 유래는 춘추전국시대 중국 양자강 부근의 주나라 제후국이었던 오(吳) 나라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중국 양자강 부근의 주나라 일족으로 주나라의 고공단보(古公亶父, 주태왕(周太王)의 장남인 오태백(당시는 姬씨, 사마천의 사기의 오태백세가에서는 오태백으로 쓰여 있다.)을 시조로 하여 희(姬)씨 성에서 나왔다. 제후국 오(吳)나라는 오태백(주태왕의 장남) 초기 군주국으로 시작하여 하대 자손인 부차왕의 손자인 루양부터 천자로부터 오씨 성을 하사받아 오씨가 되었으며, 비로소 오(吳) 나라의 왕으로 되었다.

한국의 오씨[편집]

한국의 오씨는 중국에서 들어온 성씨이며, 중국에서 동래한 시기가 다른 두 계통이 있다. 하나는 신라 지증왕중국에서 신라로 입국한 뒤 중국으로 귀환한 오첨(吳瞻)을 도시조로 삼는 향파(鄕派)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 성종 때 중국 송(宋) 나라에서 귀화한 학자인 오인유(吳仁裕)를 시조로 삼는 해주 오씨 경파(京派)이다.[1] 두 계통은 서로 다른 인물을 시조로 삼고, 별개의 족보를 갖고 있다. 대부분의 오씨는 대종인 해주 오씨에서 분파된 것이다. 조선성씨통보에 210본까지 기록되어 있으나, 동국만성보에 의하면 20여본이 있다고 한다. 오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19명, 상신 4명, 대제학 3명, 개국공신 2명, 공신 8명, 청백리 3명을 배출했다. 주요 인물로는 조선 인조영의정에 오른 오윤겸(吳允謙)이 있다.[2]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오씨는 706,908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1위이다.

향파(鄕派)[편집]

휘 탁진이 작성한 1397년 오씨30세계도에 근거하면 오씨의 도시조는 500년(지증왕 1)에 중국에서 신라로 입국했다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간 오첨(吳瞻)이다. 그의 둘째 아들 오응(吳膺)은 나이가 어려 중국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그대로 신라에 남아 함양에서 살게 되어 한국 오씨의 뿌리가 되었다. 후손 중 나주의 토호가 된 오다련(吳多憐)이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하는데 공을 세웠으며, 그의 딸은 고려 태조의 비인 장화왕후로서 고려 혜종의 어머니이다. 오응의 12대손 오광우(吳光佑)가 다시 중국으로 들어갔었는데, 그의 현손인 오연총(吳延寵)이 고려 문종 때 다시 고려에 건너와 정착했으므로 오연총이 오씨의 중시조가 된다. 중국 사천성 출신의 오연총고려에 동래하여 윤관과 함께 부원수로 북변의 여진을 토벌하였으며, 이부, 예부, 병부상서를 역임하였다. 오연총의 5세손인 오수권(吳守權)은 오현보(吳賢輔), 오현좌(吳賢佐), 오현필(吳賢弼)이라는 세 아들을 두었다. 이들 삼형제는 고려를 침입해 온 거란군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워 각각 해주군(海州君), 동복군(同福君), 보성군(寶城君)에 봉해져, 해주 오씨, 동복 오씨, 보성 오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해주 오씨 경파(京派)[편집]

오광정, 오선경이 작성한 1401년 해주오씨족도에 의하면, 시조는 오인유이다. 오인유를 시조로 삼는 종파를 해주 오씨 경파(京派)라고 한다. 해주오씨대동보에 수록된 문양공 묘지명이라는 글에 의하면, 인유는 중국 송(宋) 나라의 대학사로, 984년(고려 성종 3년) 고려에 귀화하여 검교군기감을 역임하였고, 황해도 해주에 정착하면서 해주를 본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경기도 용인시해주 오씨 시조단이 있다. 울산 오씨는 해주 오씨에서 분파된 것이다.

본관[편집]

주석[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