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관대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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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과 가토 기요마사, 나베시마는 명나라 군대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한양으로 퇴각하고 있었으며, 조선군은 명군의 도움을 받아 함경도를 재탈환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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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7일 (화) 00:21 판
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2012년 11월) |
북관대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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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일부 | |||||||
북관유적도첩 중 북관대첩을 그린 창의토왜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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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배론 |
여진족 함경도 반란군 | ||||||
지휘관 | |||||||
정문부 의병 총대장 정현룡 종성 부사 이붕수† 창의별장 강문우 척후장 유경천 고령 첨사 오응태 경원 부사 원충서 안의 의병장 이희당† 우을온만호 신세준 오윤적 구황 오촌권관 |
정말수† 국경인† 국세필† | ||||||
병력 | |||||||
5000명 | 2만 2000명 | ||||||
피해 규모 | |||||||
불명 | 8864명 |
북관대첩(北關大捷)은 1592년~1593년 함경도에서 의병장 정문부가 경성과 길주 등지에서 반란을 일으킨 국경인과 여진족들을 모두 무찌르고 함경도를 탈환한 전투이다.
배경
임진왜란 때 한양을 함락시킨 조선침공군 제2군인 가토 기요마사의 2만 2000 군대는 곧바로 함경도로 진격했다. 곳곳에서 조선군이 속수무책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함경도도 곧바로 무너지고 왕자 임해군과 순화군이 붙잡혔으며 국토의 끝 온성까지 왜군이 진격해 만주의 여진족과도 전투를 벌일 지경이었다.
만주의 여진족이 준동하고 정말수, 국경인, 국세필 함경도 토호반란까지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의주에 명나라군이 도착하여 가토 기요마사와 일본군은 한양으로 퇴각하고 있었다.
전투
일본군과 가토 기요마사, 나베시마는 명나라 군대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한양으로 퇴각하고 있었으며, 조선군은 명군의 도움을 받아 함경도를 재탈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