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더 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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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더 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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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에런 코스민스키
피해자 수 최소 5명, 최대치 불명
사망자 수 최소5명
범행기간 1888년 8월 31일
~ 1888년 11월 9일
체포일자 체포되지 않음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는 1888년 8월 7일부터 11월 10일까지 3개월에 걸쳐 영국 런던의 이스트 런던 지역인 화이트채플에서 최소 다섯 명이 넘는 매춘부를 극도로 잔인한 방식으로 잇따라 살해한 연쇄 살인범이다.

개요[편집]

잭 더 리퍼에 의한 희생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목이 반쯤 해부되고 복부가 절개되어 장기가 파헤쳐지고 그 장기가 시신주위에 전시되다시피 널브러져 있는 등의 도를 넘어서는 매우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당하였다. 한국에서 ‘칼잡이 잭’, ‘면도날 잭’, ‘살인마 잭’, ‘토막 살인자 잭’ 등으로 불린다.

잭 더 리퍼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확인된 매춘부

수사와 영향[편집]

이 살인마가 살인을 하던 시기는 과학 수사가 매우 뒤떨어진 시대으므로 지문확보조차 되지 않아 많은 이들이 경찰에게 잭 리퍼 검거 방법을 써 보내었고, 심지어 당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까지 검거 방법을 보냈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단서가 거의 없으나 그가 남긴 단서는 단 한 가지였다고 한다. 영어로 휘갈겨 쓰여져 있었는데, “유태인들은 아무 책임이 없다. ("The Jewes are The men That Will not be Blamed For nothing")라는 뜻이라고 한다.일단 이 사건이전에 일어났던 살인 사건보다 더 독보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건이 되었다. 그 이유는 잔혹한 살해와 잡아보라는 도전장, 여왕의 분노와 용의자로 지명된 왕족, 언론의 빠르고 자세한 보도 때문이다.

용의자[편집]

클래런스와 에이번데일의 공작 앨버트 빅터를 포함한 수십 명이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최근[편집]

그렇게 영영 미제사건으로 남을 뻔하였지만 2014년 9월 10일 잭 더 리퍼를 연구해오던 아마추어 탐정인 러셀 에드워즈는 최근 발간한 책 네이밍 잭 더 리퍼에서, 당시 사건현장에서 수습한 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체액요도상피세포를 채취한 뒤 후손을 설득한 끝에 DNA검사를 한 결과 범인이 폴란드 출신의 유대계 이발사인 아론 코스민스키임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해당 DNA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기 때문에 증거로서 불충분하다고 반론하기도 했다. [1]

외부 링크[편집]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