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사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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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사밧(재위 기원전 870년경-848년경)은 분열 유다 왕국의 4대 왕으로 신을 잘 숭배하고 옳은 일을 해 히스기야 다음으로 유다에서 위대한 왕으로 꼽힌다.

즉위와 우상 숭배 금지[편집]

여호사밧은 전왕 아사실히의 딸 아주바의 아들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옳은 일을 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아버지 아사의 시대까지 남아 있던 아세라 목상들과 산당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유다의 모든 성읍에 군대를 배치해 튼튼하게 했다. 또한 유다 땅과 자기 아버지 아사가 정복한 에프라임의 성읍들에도 수비대를 두었다.

재위 3년째 되는 해에는 벤 하일, 오바드야, 즈카르야, 느탄엘, 미카야 등의 대신들을 유다 성읍들에 보내 백성들을 가르치게 했다. 또 그들과 함께 스마야, 느탄야, 즈바드야, 아사엘, 스미라못, 요나탄, 아도니야, 토비야, 톱, 아도니야 등의 레위인들을 엘리사마 사제와 여호람 사제와 함께 보냈다.

그들을 신의 율법서를 가지고 유다 백성들을 가르쳤다.

업적[편집]

이렇듯 유다가 강성해지자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여호사밧에게 전쟁을 걸지 못했다. 그리고 점차 주변 나라들이 유다에 조공을 보내기 시작하여 블레셋 인들은 은을 예물로 가져오기도 하고 아라비아인들도 숫양 7700마리와 숫염소 7700마리를 가져왔다.

여호사밧의 세력을 점점 세져 유다에 요새와 양곡 저장 성읍들을 세워 많은 일을 하고 예루살렘에는 전사들을 배치했다.

그리고 그의 재위기 때 유다군의 총 군사 수는 유다 집안의 천인대장 아드나 휘하의 군대 30만, 그 밑의 천인대장 여호하난과 그의 부하 휘하의 군대 28만, 그 밑에 신을 위해 자원한 지크리의 아들 아마스야 휘하의 군대 20만, 베냐민 집안의 용사 엘야다 휘하의 군대이자 할과 작은 방패로 무장한 군사 20만, 그 밑에 여호사밧과 그의 휘하 군대 18만 등 총 군사가 116만 명에 달했다.

이들은 임금이 모시는 군사로 임금은 그 밖에도 온 유다의 성읍들에 이들 군대를 배치하였다.

아람과의 전쟁[편집]

큰 부와 영광을 얻은 여호사밧은 이스라엘 왕국의 임금 아합과 혼인 관계를 맺고 몇 해 뒤에는 아합이 있는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로 내려갔다. 마침 아합은 아람에게 빼앗겼던 라못 길앗을 되찾기 위한 계획을 진행 중이었는데 아합은 여호사밧을 부추겨 함께 라못 길앗의 아람군을 몰아내기로 했다.

그러나 출전 전 예언자 미가야가 아합이 패할 것이라고 예언을 했고 아합은 미카야를 옥에 가두고 출정했다. 아합과 여호사밧은 라못 길앗을 공격했으나 전투 도중 아합이 한 아람 병사가 무턱대고 쏜 화살에 맞아 전사했고 이스라엘군이 철수하자 여호사밧의 유다군도 본국으로 철수했다.

여호사밧은 무사히 돌아왔으나 예루살렘에 이르자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와 여호사밧을 비판했다.

개혁[편집]

여호사밧은 예루살렘에 머물다가 다시 브에르 세바에서 에프라임 산악 지방의 백성들을 둘러보며 그들을 신을 믿게 하였다. 그는 유다 전역의 모든 요새 성읍에 일일이 판관들을 세웠으며 예루살렘에도 레위인들과 사제들과, 이스라엘 가문의 우두머리들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세워 신을 대신해 판견을 내리고 송사를 해결하게 하였다.

이것으로 신과 관련된 모든 문제들은 아마르야 사제가, 임금과 관련된 모든 문제들은 이스마엘의 아들 즈바드야가, 레위인들은 관리자로서 그들을 돕게 되었다.

암몬과의 전쟁[편집]

그 뒤 모압인들과 암몬인, 므운인들이 여호사밧에게 싸움을 걸어왔고 전령들이 여호사밧에게 이를 보고하였다. 이들 무리는 에돔에 주둔하여 하차촌 타마르, 곧 엔 게디에까지 진격했다.

여호사밧은 두려워 신에게 기도를 했고 그러던 가운데 즈카르야의 아들 회중 야하지엘에게 신이 내려 암몬인들을 이길 방법을 알려 주었다.

유다군은 군사를 재정비하여 노래하는 자들로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여 신을 찬송하여 이르기를 “야훼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때 신이 암몬인들과 모압인들과 세이르 산 주민들에게 복병을 보내 그들을 완전히 전멸시켰다. 여호사밧은 많은 전리품을 얻었는데 전리품이 너무 많아 그것을 다 거두는 데 3일이나 걸렸다고 한다.

9일째 되는 그들을 모두 모여 브라가 골짜기에서 신을 찬미하였다.

이 싸움으로 주변 국가들은 다시 여호사밧을 두려워 하게 되었고 여호사밧의 왕국을 크게 안정되었다.

말년[편집]

여호사밧은 우상 숭배를 금지했으나 백성들은 여전히 신에게 마음을 굳게 두지 않았다.

그 뒤 여호사밧은 이스라엘의 왕 아하시야와 동맹을 맺고 에츠욘 게베르에서 타르시스로 가 에피르에서 금을 가져오는 상선들을 만들었으나 마레사 출신의 예언자 도다와후의 아들 엘리에제르가 아하시야와 동맹을 맺은 것이 문제가 되어 더 이상 타르시스로 갈 수 없다고 예언하였다. 그의 예언대로 상선들이 다 부서져 더 이상 타르시스로 갈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