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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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위튼
영어: Edward Witten
에드워드 위튼
에드워드 위튼
출생 1951년 8월 26일(1951-08-26) (68세)
미국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거주지 미국 미국
국적 미국 미국
분야 이론물리학
소속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출신 대학 브랜다이스 대학교
프린스턴 대학교
지도 교수 데이비드 그로스
지도 학생 캄란 바파, 에바 실버스타인, 샤미트 카치루, 세르게이 구코프
주요 업적 그로모프-위튼 불변량
끈 장론
도널드슨 불변량의 물리학적 해석
베스-추미노-위튼 모형
BCFW 재귀 공식
M이론
와인버그-위튼 정리
위상 끈 이론
위튼 지표
위튼 효과
위튼형 위상 양자장론
자이베르그-위튼 이론
존스 다항식천-사이먼스 이론
하나니-위튼 전이
수상 필즈상(1990)
대니 하이너먼 수리물리학상(1998)
앙리 푸앵카레상(2006)
크라포르드상(2008)
기초물리학상(2012)

에드워드 위튼(영어: Edward Witten IPA[ˈɛdwɚd ˈwɪtən], 1951년 8월 26일~)은 미국물리학자이자 프린스턴 고등연구소(IAS)의 교수이다.

생애 및 경력[편집]

1951년, 위튼은 미국 메릴랜드주볼티모어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1] 그의 아버지는 중력일반 상대성이론에 대해 연구하던 이론물리학자 루이스 위튼이었다.[2] 15세에 브랜다이스 대학교에 입학하여 역사학을 전공했으며, 1971년 졸업 후 저널리스트로 일했다.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리처드 닉슨의 재선을 막기 위해 민주당 조지 맥거번의 선거 운동 참모로 일하였다. 그러나 주 선거인단 49:2라는 압도적 패배로 선거에 패배하자 위튼은 현실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저널리스트를 그만두게 된다.[3] 경제학응용수학을 한 학기 씩 공부해보고 흥미를 느끼지 못한 위튼은 홀연히 물리학으로 관심을 돌려 프린스턴 대학교 물리학과에 진학하였으며, 1976년 25세의 나이로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이후 하버드 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28세에 프린스턴 대학교 정교수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물리학에 입문한지 불과 5년만에 이룬 성과였다.

연구 업적[편집]

현재 고에너지 물리학에서 표준 모형의 최대 난점인 중력양자론 사이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양자 중력 이론의 후보로 끈이론을 꼽고 있는데, 위튼은 이 끈이론의 제1인자로 평가받고 있다. 끈이론의 초대칭 버전인 초끈이론은 열 개의 시공간 차원 중 여섯 개의 차원이 칼라비-야우 다양체의 형태로 꼬여 있다고 보는데, 1970년대 난부 요이치로, 홀거 닐센, 레너드 서스킨드에 의해 처음 제기된 이후, 여러 어려움 속에 발전을 거듭하다가 1980년대 후반 이후에는 이렇다 할 진전 없이 정체되는 상황에 처하였다. 10차원 상에서의 끈 이론이 5가지나 존재하는 등의 모순과 그 수학적 난해함으로 인하여, 물리학자들이 끈 이론의 효용성에 대해 의심하면서 회의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그러나 1995년 USC에서 열린 학회에서 위튼이 이들 다섯 가지 끈 이론이 그보다 한 차원 더 높은 11차원에 존재하는 M이론으로 통합된다고 선언함으로써 끈 이론의 2차 혁명이 시작되게 된다.

한편 1990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국제 수학자 회의에서, 위튼은 비수학자로서는 최초이자 최후로 필즈상을 수상하였다. 필즈상 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언급한 공헌으로는 아인슈타인 방정식에 관한 리차드 쉔야우싱퉁의 양 에너지 정리의 새로운 증명도 포함되어 있다.

각주[편집]

  1. Biography of Edward Witten
  2. The International Who's Who 1992-93, p. 1754.
  3. 그러나 이 선거의 승리 이후 리처드 닉슨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안이 통과된지 나을 뒤인 1974년 8월 9일 대통령직을 사퇴하였다.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