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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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베를린
West-Berlin

1945년1990년
Flag of Berlin.svg Coat of arms of Berlin.svg
휘장
연합국의 통치령
West-Berlin in Germany.svg
정치
공용어 독일어
정부 형태 연합군의 분할 점령
역사
 • 설립 1945년
지리
면적 479.9km²
어림인구수
기타
통화 독일 마르크
서베를린
파란색이 프랑스의 점령지역
초록색이 영국의 점령지역
주황색이 미국의 점령지역
빨간색이 소비에트 연방의 점령지역
서베를린의 곰 상징
     프랑스 점령지역 - 대략 104Km²
      영국 점령지역 - 대략 164.4Km²
     미국 점령지역 - 대략 210Km²
서베를린 점령지역

서베를린(독일어: West-Berlin 베스트베를린[*], 서백림(西伯林), 문화어: 서부베를린)은 1945년부터 1990년까지 미국·영국·프랑스가 점령하였던 베를린의 서쪽 지역을 부르던 이름이다.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1990년 9월 12일에 서베를린에 대한 연합국 점령이 해제되고, 독일 연방 공화국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이후 1990년 10월 3일에 독일의 재통일이 실현되면서 서베를린의 구분은 그 의미를 상실하였다.


배경[편집]

서베를린은 미국, 프랑스, 영국이 점령하고 있던 지역을 통합하여 형성되었는데 옛 소련군의 점령지역 한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에, 동베를린을 비롯한 독일 민주 공화국(이하 동독) 내에 있는 자유주의 진영의 도시였다.

따라서 공산주의 국가였던 동독 안의 유일한 자유 진영의 도시였기 때문에 '육지의 섬'이라고 불렸다. 당시 동독에서 자국의 지도를 발행할 때에도 자유 진영의 땅인 서베를린을 인정하지 않아 따로 표기하지 않았다.

개요[편집]

서베를린에서는 외교와 통화 행정을 독일 연방 공화국(이하: 서독)정부가 대행한다는 협정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서독의 통화(독일 마르크)가 이용되며, 서독 국적의 사람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담당하는 시장과 시의원들도 서독의 정당에 소속되어 있었으므로, 사실상 서독의 영토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미국·영국·프랑스가 점령하는 지역이었으므로,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는 서독의 영토가 아니었다. 그래서 서독과 서베를린은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었다.

  • 서베를린에서 서독 연방 의회 의원을 인구에 따라 선출하고 의회에서 발언권 및 위원회의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총리 임명권·예산 심의권 등 연방 관한 결의안의 투표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 서베를린 주민의 신분증 및 여권은 서독의 것과 디자인은 비슷하였으나, 서독의 문장나 국장이 없다는 점에서 달랐다. 또한 신분증과 여권의 발행처는 베를린 시이며, 국적은 서베를린 시민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 서베를린은 미국·영국·프랑스가 공동으로 통치하는 지역으로서 이는 베를린 협정에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당시 서독에서 시행되고 있던 징병제가 적용되지 않고, 서베를린도 인구를 감소를 막기 위해서 보조금을 지급하였으므로, 징병을 싫어한 서독의 젊은이 가운데는 서베를린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있었다.
  • 서베를린에 출입하는 항공기의 출입은 서베를린을 점령한 영국의 단 에어(이후 영국 항공에 흡수), 미국의 팬암 항공에어 베를린, 프랑스의 에어 프랑스에 한정되어 서독의 루프트 한자는 들어가지 않았다.
  • 소련은 서베를린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협정이 1990년 9월 12일까지 존재했으며, 슈판다우 교도소의 경비를 4개월에 한번 맡고 있었을 뿐 아니라, 베를린에 제일 먼저 도착한 소련군 전차가 두고 있던 소련군 영웅 기념비의 경비 주둔권을 가지고 있었다.

수도[편집]

베를린독일의 전통적인 수도였다. 그러나, 나치 독일의 패망 이후 베를린의 지리적 위치는 독일의 중앙이 아닌 동부 지역에 치우쳤으므로, 동서 양 진영의 분할 점령 이후 수도 베를린 또한 동서로 나뉘게 되었다. 동베를린의 경우 다른 동독 영토와 이격하게 되지 않아 수도 역할을 계속할 수 있었지만, 서베를린은 서독의 본토와 이격하게 되어서 정상적인 수도의 기능을 구실하기가 꽤 어려웠다. 그래서 독일의 재통일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서독은 사실상 을 대안의 수도로 활용하였다.

유명한 연설[편집]

냉전을 상징하는 유명한 연설이 서베를린에서 행해졌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1963년 6월 26일에 서베를린을 방문하여 연설 중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 (Ich bin ein Berliner.)"라는 말을 남겼고 레이건 대통령이 1987년 6월 12일 브란덴부르크 개선문을 방문하여 "이 장벽을 허무시오.(Tear down this wall.)"라는 말을 남겼다.

같이 읽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