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신 (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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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신 (승려)
왼쪽에 있는 사람이 도신이다. <선불기적> 제6권 도신대사의 판화.
출생580년
입적651년
속명사마(司馬)씨
칭호선종 4대 조사

도신(道信, 580년~651년)는 수나라당나라의 승려이며 선종(禪宗)의 제4대 조사이다.

이전 선종 선사들과는 달리 처음으로 500명 무리를 이루어서 집단수행을 하였다. 하나의 교단의 형태를 이룬 것으로, 중국 선종의 실질적 시조라고 볼 수 있다.[1]

생애[편집]

일곱 살 때 한 사람의 스승을 따라다니며 5년 동안 같이 생활했다. 그 후, 완공산에 나타난 승려 2명에게 10년간 선(禪)을 배웠다. 승려들은 나부산(羅浮山)으로 떠나버렸고, 도신은 길주(吉州)에 있는 사찰에 정식으로 출가하였다.[2]

사실 완공산에서 도신에게 10년 간 선을 가르친 승려는 3대 조사인 승찬이었다.[3]

어느 날, 도적떼가 길주의 읍내를 포위했는데, 도신이 사람들에게 반야(般若)를 염송하도록 했다. 그러자 도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남악(南嶽)으로 가려고 했지만 도중에 사람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4]

그래서 여산(廬山)의 대림사(大林寺)에 들어가 10년 동안 지냈다. 그 후, 기주 황매현(黃梅縣)의 쌍봉사(雙峰寺)로 옮겨가 30년간 제자들을 지도하였다. 651년 72세로 입적했다.[5]

게송[편집]

꽃씨에 나는 성품 있어
땅을 인연하여 씨앗 꽃이 피나
앞의 인연이 화합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나지 않는도다.[6]

각주[편집]

  1. 광전스님, 광전스님 (2010년 4월 24일). “중국의 선④ 도신〈1〉”.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21일에 확인함. 도신은 달마, 혜가, 승찬과는 달리 집단수행생활을 하였다. <속고승전>의 기록에 의하면 그를 따르는 무리가 5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도신에 이르러 하나의 교단의 형태를 이루어, 도신을 중국 선종의 실질적인 창시자라 해도 좋을 것이다. 
  2. 광전스님, 광전스님 (2010년 4월 24일). “중국의 선④ 도신〈1〉”.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21일에 확인함. 일곱 살 때 한 사람의 스승을 따라다니며 5년 동안 같이 생활했고, 그 후 어디에서 온지는 모르지만 완공산(公山)에 나타난 두 사람의 승려로부터 10년간 선(禪)을 배웠다. 두 사람은 이후 나부산(羅浮山)으로 떠났지만 도신은 함께 가지 못했다. 이후 정식으로 출가하여 길주(吉州)의 절에 승적을 두었다. 
  3. 창원전문대 교수, 창원전문대 교수 (2003년 6월 18일). “중국 선종 제3조 승찬(僧璨)스님”.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21일에 확인함. 어느 날 혜가스님은 승찬에게 옷과 법을 전한 뒤에 다시 말했다. “그대는 내 법을 받고는 깊은 산속에 들어앉아 얼른 교화에 나서지 말라. 머지않아 국난이 있으리라.” 승찬스님은 대법을 계승한 뒤 몸을 숨겨 서주(舒州)의 환공산(晥公山)에 들어가 깊이 은거했다. 승찬스님은 이후 도신스님(道信, 580∼651)을 만나 그의 그릇됨을 알아보고 옷과 법을 전해주고는 곧 나부산(羅浮山)으로 가서 은둔하다가는 다시 옛터로 돌아와서 
  4. 광전스님, 광전스님 (2010년 4월 24일). “중국의 선④ 도신〈1〉”.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21일에 확인함. 도적떼가 길주의 읍내를 포위했을 때, 도신이 사람들에게 반야(般若)를 염송하도록 해 도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그 후 남악(南嶽)으로 가려고 했지만 도중에 사람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5. 광전스님, 광전스님 (2010년 4월 24일). “중국의 선④ 도신〈1〉”.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21일에 확인함. 천태지의(天台智)의 제자인 지개가 창건한 여산(廬山)의 대림사(大林寺)에 들어가 10년 동안 지냈다. 그 후 기주 황매현(黃梅縣)의 쌍봉사(雙峰寺)로 옮겨가 30년간 제자들을 지도하고 651년 72세로 입적했다고 한다. 
  6. 혜능, 혜능. 《육조단경》. 29. 傳偈 - 게송을 전함. 
전임
승찬
제4대 중국 선종조사
606년 ~ 651년
후임
홍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