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산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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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산혜적
선불기적 6권 앙산혜적선사
출생803년
입적887년

앙산혜적(仰山慧寂, 803 ~ 887) 중국 당나라 시대의 선사이다. 작은 석가모니 부처라는 뜻으로 '소석가(小釋迦)'라고 불렸다.[1]

위앙종을 창시하였고, 스승은 위산영우이다. 위앙종이란 이름은 위산영우의 "위"와 앙산혜적의 "앙"을 딴 것이다.[2]

일화[편집]

손가락을 자르다[편집]

15살에 출가를 하려고 했으나, 부모의 반대로 무산됐다. 2년 뒤에, 부모 앞에서 손가락 2개를 자르고 출가를 하였다. 달마 앞에서 왼팔을 자른, 선종 2대 조사인 혜가처럼 말이다.[3]

각주[편집]

  1. 이, 일야 (2021년 8월 24일). “[죽음을 철학하는 시간] <27> 앙산혜적 : 꺼지지 않은 불씨”.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23일에 확인함.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앙산혜적(仰山慧寂, 803~887) 또한 리틀 붓다라 불렸기 때문이다. 한자로는 소석가(小釋迦)라고 한다. 
  2. 이, 일야 (2021년 8월 24일). “[죽음을 철학하는 시간] <27> 앙산혜적 : 꺼지지 않은 불씨”.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23일에 확인함.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앙산혜적(仰山慧寂, 803~887) 또한 리틀 붓다라 불렸기 때문이다. 한자로는 소석가(小釋迦)라고 한다. 붓다와 같이 지혜롭고 위대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다갔기에 작은 부처라 불리게 되었을까? 앙산은 광동성 소주(韶州) 출신으로 속성은 섭(葉)씨다. 그는 선불교를 대표하는 다섯 종파(五家) 가운데 위앙종(潙仰宗)을 창시한 인물이다. 위앙종은 스승인 위산영우(潙山靈祐, 771~853)의 ‘위’자와 앙산의 ‘앙’자를 합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3. 이, 일야 (2021년 8월 24일). “[죽음을 철학하는 시간] <27> 앙산혜적 : 꺼지지 않은 불씨”.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23일에 확인함. 그는 열다섯 살 때 출가를 결심했으나 부모가 허락을 하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앙산은 출가의 뜻을 굽히지 않고 2년 후에 다시 자신의 결심을 부모에게 전한다. 그런데 이때는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부모 앞에서 손가락 두 개를 자르는 결기를 보이기도 하였다. 마치 달마의 제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팔을 자른 혜가단비(慧可斷臂)의 일화가 연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