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종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조주종심
《불조정종도영(佛祖正宗道影)》에 있는 조주종심의 목판화
출생778년
산동성(山東省) 임치현(臨淄縣)
입적897년
조주성(趙州城) 관음원
속명학씨

조주종심(趙州從諶, 778∼897)은 중국 당나라 산동성(山東省) 임치현(臨淄縣)에서 태어난 선승이고, 마조도일에서 이어지는 남전보원(또는 남천보원)의 제자이다.[1]

평생 검소한 생활을 하고, 시주를 해라고 권하지 않아서 오래된 부처(고불)라는 칭송을 받았다.[2]

120세에 입적을 하여 상당히 오래살았다. 특히, 화두를 많이 남겨 〈벽암록〉에 전하는 100개의 화두 중 12개가 조주종심의 것이다.[3]

생애[편집]

어려서 고향의 용흥사에서 출가했다. 숭산 소림사 유리계단(琉璃戒壇)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4]

80세 전까지는 행각(떠돌이 생활을 하며 수행)을 하였다. 이때 7살 사미라도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울 것이고, 100살 노인이라도 가르칠 것이 있으면 가르친다는 마음가짐으로 행각을 하였다.[5]

80세가 되어 조주성(趙州城) 동쪽 관음원의 주지가 되 머물러서, 호가 조주가 되었다. 897년 120세로 입적하였고, 제자들에게 사리를 줍지 말라고 하였다.[6]

[편집]

120세까지 장수했기에 풍요롭고 편안한 일생을 보냈을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다음은 <조주록>에 실려 있는 12시가(十二時歌) 중 일부이다. 조주종심의 솔직한 삶이 드러난다.[7]

닭 우는 축시(丑時)

가난한 마을인지라, 절 꼬락서니는 말할 것도 없다.

부처님께 마지 공양은 그만두고, 아침 죽 끓일 쌀알조차 없으니
창문 틈새마다 수북이 앉은 먼지나 바라볼 밖에…

반갑지 않은 참새만 짹짹대고, 친한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혼자 앉아 낙엽 지는 소리를 듣는다.

누가 말했던가! 출가자는 애증(愛憎)을 끊는 거라고…
생각할수록 눈물이 나 손수건을 적신다.

해가 높이 뜬 사시(巳時)

머리 깎고, 이 지경에 이를 줄을 누가 알았으랴

어쩌다 청을 받아 들여, 시골구석 중이 되고 보니
굴욕과 굶주림, 처량한 신세에 죽을 지경이다.

키다리 장삼(張三)과 껌둥이 이사(李四),
그들은 눈꼽만큼도 나를 존경하지 않는다.

아까는, 갑자기 문 앞에 나타나서는
‘차 꿔달라’, ‘종이 꿔달라’ 떼만 쓰고 가더라.

일화[편집]

조주가 남전(또는 남천)을 만나다[편집]

편집하기

남전선사가 조주종심이 자신의 절로 오자, 방장실에 누워있다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물었다. 조주종심은 서상원(瑞像院)에서 왔다고 했다. 그러자 남전선사는 상서로운 모습을 보았는가라고 물었다.[8]

이건 서상원(瑞像院)의 한자가 상서로울 서(瑞), 모양 상(像), 절 원(院)이라서 언어유희를 한 것이다. 그러자 조주종심은 서상(상서로운 모양)은 보지 못하고, 누워있는 부처는 보았다고 말했다.[9]

남전선사가 흥미를 보이며 일어나더니 다시 묻기를, 주인이 있는 사미(유주사미)인지 주인이 없는 사미(무주사미)인지를 물었다. 그러니 조주종심이 주인이 있는 사미라고 했다. 남전선사가 주인이 누구냐고 하자, 조주종심은 동짓날이 매우 추우니 큰스님(화상)께서는 몸조심하시라고 말하였다. 이에 남전선사는 조주종심을 기특히 여겼다.[10]

뜰 앞의 잣나무[편집]

어느 한 스님이 조주종심에게 와서 조사께서 서쪽에서 온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다.[11] 이는 인도에서 달마대사가 동쪽인 중국 당나라로 온 이유를 묻는 말이다.

그러자 조주종심은 뜰 앞의 잣나무라고 말했다. 질문을 했던 스님은 큰 스님께서는 경계를 써서 응하지 말라고 하였다. 조주종심은 산승(산에 사는 승려)은 경계를 써서 응하지 않는다고 하였다.[12]

질문 했던 스님이 다시 조사께서 서쪽에서 온 이유를 물으니, 조주종심은 뜰 앞의 잣나무라고 말했다.[13]

끽다거(喫茶去) : 차나 마시거라[편집]

조주종심이 자신의 절에 온 승려에게 전에 온 적이 있는 지를 물었다. 승려는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조주종심을 차 한잔 마셔라고 했다.[14]

조주종심이 또 다른 승려에게도 똑같이 절에 온 적이 있는 지 묻자, 다른 승려가 없다고 말했다. 조주조심이 또 다시 차 한잔 마셔라고 했다.[15]

이걸 본 원주(주지)가 조주종심에게 왜 절에 온 적이 있던지 없던지 차를 한잔 마시라고 하는 지를 묻자, 조주종심은 원주에게도 자네도 차 한잔 마시고 가라고 했다.[16]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편집]

한 학인이 조주종심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냐고 물었다. 조주종심은 없다고 말했다.[17]

그러자 학인은 불성은 부처님으로부터 개미지 다 있는데, 개는 어떻게 없냐고 다시 물었다. 조주종심은 업식성(業識性 : 중생심이 밝지 못하여 망념이 일어나 업이 움직이는 첫 모양의 성질)을 버리지 못기 때문이라고 했다.[18]

이것이 조주종심의 화두 중 가장 유명한 일명 무자(無字) 화두이다.

주석[편집]

  1. 불교신문, 불교신문 (2003년 10월 29일). “‘무자화두’의 고불, 조주종심스님”.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조주종심(趙州從諶, 778∼897)스님의 속성은 학씨이며, 산동성(山東省) 임치현(臨淄縣)출신이다. 
  2. 불교신문, 불교신문 (2003년 10월 29일). “‘무자화두’의 고불, 조주종심스님”.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평생 검소한 생활을 하고 시주를 권하는 일이 없어 고불(古佛)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3. 불교신문, 불교신문 (2003년 10월 29일). “‘무자화두’의 고불, 조주종심스님”.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897년 120세로 입적하였으며, 제자들에게 사리를 줍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스님은 특히 화두를 많이 남겨 후대 선승들의 수행 과제가 되었는데, 〈벽암록〉에 전하는 100개의 화두 중 12개가 스님의 것으로 
  4. 불교신문, 불교신문 (2003년 10월 29일). “‘무자화두’의 고불, 조주종심스님”.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스님은 어려서 고향의 용흥사에서 출가하였으며, 숭산 소림사 유리계단(琉璃戒壇)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으나, 
  5. 문화부, 문화부 (2018년 1월 20일). “[종교칼럼] 조주의 신발”. 《매일신문》. 매일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80세가 되어서 비로소 행각을 그치고 처음으로 관음원 주지를 하시며 40년 동안 신도 집에 도움의 편지 한 장 보내지 않았다. 스승 남전 선사의 '평상시의 마음이 도'(平常心是道)라는 말씀을 쉬운 말과 비유로 중생을 제도하셨다. 스스로에게 경계하시길 "일곱 살 먹은 어린 사미라도 나보다 나은 이는 내가 그에게 물을 것이요. 백세 먹은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한 이는 내가 그를 가르치리라." 
  6. 불교신문, 불교신문 (2003년 10월 29일). “‘무자화두’의 고불, 조주종심스님”.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0세 때부터 조주성(趙州城) 동쪽 관음원에 머물러 호를 조주라 하였으며, 평생 검소한 생활을 하고 시주를 권하는 일이 없어 고불(古佛)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897년 120세로 입적하였으며, 제자들에게 사리를 줍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7. 정운 스님, 정운 스님 (2019년 8월 18일). “[선의 르네상스 선지식] 15. 조주 고불 선사”. 《현대불교》. 현대불교신문사.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조주록〉 위의 선시는 조주 종심(趙州從?, 778~897)의 ‘12시가(十二時歌)’ 중 일부이다. 12시가는 자시부터 해시까지 12단락으로 나누어진 시구이다. 근엄한 선사의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솔직함이 드러나 있어 정감이 간다. 
  8. 법거량, 법거량 (2005년 7월 19일). “조주가 남전을 만났을 때”. 《법보신문》. 법보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조주 스님이 남전 스님을 친견할 때의 일이다. 남전 화상이 방장실에 누워 있는데 조주가 오는 것을 보고 대뜸 물었다. “어느 곳에서 왔는가?”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상서로운 모습을 보았는가?” 
  9. 법거량, 법거량 (2005년 7월 19일). “조주가 남전을 만났을 때”. 《법보신문》. 법보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서상은 보지 못하고 누워 있는 여래는 보았습니다.” 
  10. 법거량, 법거량 (2005년 7월 19일). “조주가 남전을 만났을 때”. 《법보신문》. 법보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남전 화상은 곧 일어나서 다시 물었다.“그대는 유주(有主)사미냐, 무주(無主)사미냐?”“주인이 있는 사미입니다.”“주인이 누구인가?”“동짓날은 매우 춥습니다. 바라건대 화상께서는 몸조심하십시오.”이에 남전 화상은 기특하게 여겨 조주의 입실을 허락했다. 
  11. 불교신문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불교신문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2008년 7월 1일). ““뜰 앞의 잣나무니라””.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이때 한 스님이 조주스님께 여쭈었다. “여하시 조사서래의(如何是 祖師西來意,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12. 불교신문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불교신문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2008년 7월 1일). ““뜰 앞의 잣나무니라””.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정전 백수자(庭前 栢樹子, 뜰 앞의 잣나무니라)!” “화상께서도 경계(境界)를 써서 응하지 마십시오!”조주스님이 이르셨다. “산승은 경계를 써가면서 응하지 않느니라.” 
  13. 불교신문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불교신문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2008년 7월 1일). ““뜰 앞의 잣나무니라””.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스님이 조주스님께 다시 여쭈었다. “여하시 조사서래의(如何是 祖師西來意,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정전 백수자(庭前栢樹子, 뜰 앞의 잣나무니라)!” 
  14. 이, 병철 (2011년 8월 18일). “불화의 세계-조주 선사의 끽다거(喫茶去) 화두”. 《제주불교》. 제주불교.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조주 선사가 어떤 승려에게 물었다. “여기에 온 적이 있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온 적이 있습니다.” 화상이 “차 한 잔을 마셔라”고 말했다. 
  15. 이, 병철 (2011년 8월 18일). “불화의 세계-조주 선사의 끽다거(喫茶去) 화두”. 《제주불교》. 제주불교.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또 다른 승려가 찾아왔다. 조주 선사는 “여기에 온 적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 승려는 “온 적이 없습니다”고 대답했다. 그때 조주 선사는 “차 한 잔을 마셔라”고 말했다. 
  16. 이, 병철 (2011년 8월 18일). “불화의 세계-조주 선사의 끽다거(喫茶去) 화두”. 《제주불교》. 제주불교.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이것을 옆에서 지켜본 원주가 물었다. “온 적이 있는 사람이나 온 적이 없는 사람에게 모두 차 한 잔을 마시라는 뜻은 무엇입니까?”그러자 조주 선사는 “원주, 자네도 차 한 잔 들고 가게”라고 말했다. 
  17. 불교신문, 불교신문 (2003년 10월 29일). “‘무자화두’의 고불, 조주종심스님”.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한 학인이 스님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스님이 말했다. “없다.” 
  18. 불교신문, 불교신문 (2003년 10월 29일). “‘무자화두’의 고불, 조주종심스님”.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학인이 다시 물었다. “위로는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아래로는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두 불성이 있는데 개에게는 어찌하여 없습니까?” 스님이 말하였다. “그것은 업식성(業識性)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