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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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범
출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본관 정선
부모 아버지 전주화, 어머니 홍숙자
배우자 심화진
친척 고모 전혜성, 내종형 하워드 고, 해럴드 고
종교 개신교[1]
복무 대한민국 대한민국 육군
복무기간 1981년 ~ 현재
최종계급 중장
기타 이력 2006.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
2007. 카불 군사협조단장
2015. 뉴 웨스트민스터 대학 특별연구원
서훈 1983. 보국훈장 광복장
1992. 美 육군표창훈장
2000. 국무총리 표창
2002. 美 근무공로훈장
2005. 美 동성무공훈장
2005. 화랑무공훈장
2008. 대통령 표창
2011. 美 공로훈장
2013. 보국훈장 천수장
2013. 美 공로훈장

전인범(全仁釩, 1958년 9월 6일 ~ )은 대한민국군인으로 제1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에 재임 중이다.

약력

학력

명예 박사 학위

경력

  • 30사단 작전장교
  • 한미연합사 기획참모부 우발계획장교
  • 특전사 연합작전장교
  • 육본 참모총장실 정책장교
  • 22사단 55연대 3대대장
  • 22사단 인사참모
  • 22사단 작전참모
  • 9사단 29연대장
  • 이라크 다국적군사령부(MNF-I) 선거지원과장
  • 국방부 국제협력관실 대미(對美)정책과장
  • 합참 작전기획부 공동작계 추진단장
  • 합참 전략기획부 전략기획차장
  • 합참 전략기획부 전작권 전환 추진단장
  • 27사단장
  • 한미연합사 작전참모차장
  •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겸 한미연합사 부참모장
  • 특전사령관
  • 1야전군 부사령관

생애

생애 초반

전인범은 서울에서 한의사인 아버지 전주화와 외교관인 어머니 홍숙자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의 대부분은 서울에서 살았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외교관인 모친을 따라 7세 때 미국으로 이주하여 5년간 뉴욕 맨해튼에서 생활하였다. 이후 1969년 귀국하여 리라초등학교대경중학교를 거쳐 1977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37기로 입교, 1981년 4월 3일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군인 생활

1981년 초임지인 30사단에서 소대장으로 근무 중 1군단장 이기백 중장에게 발탁되어 대한민국 육군 최초로 중위 계급을 달고 군단장(3성 장군) 전속부관을 맡게 되었다. 1983년 10월 아웅 산 묘역 테러 사건 당시 이기백 대장합동참모의장으로 대통령을 수행했으며, 전인범 중위 또한 이기백 장군의 전속부관으로서 아웅 산 묘소 참배에 동행하였다.[3] 당시 폭탄 테러로 아수라장이 된 묘역에서 추가 폭발의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 뛰어든 그는 중상을 입은 이기백 장군을 구출해내어 보국훈장 광복장을 수훈하였다.

1986년 중대장 시절에는 육군의 우수 전투중대장에게 주는 재구상을 받기도 했다. 소령으로 진급한 뒤에는 육군참모총장실에서 정책장교 및 군사외교협력장교 보직을 받아 많은 통번역 임무를 수행하였고, 이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 한미연합사령관 로버트 리즈카시 대장으로부터 육군표창훈장(Army Commendation Medal)을 받았다. 중령 때에는 한미연합사 작전참모부 연습처 을지포커스렌즈 연습 담당관을 맡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연합모의 연습을 기획하고 실행한 공로로 2002년 근무공로훈장(Meritorious Service Medal)을 받았다.

2004년 12월에는 이라크 다국적군사령부 선거지원과장으로 근무하면서 공정한 선거업무의 주역으로 외국군(미국, 영국, 호주, 루마니아)을 지휘·감독, 이라크 민주주의 탄생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는 미군영국군, 호주군 장교 10여 명을 지휘해 5400개 선거구에서 치러지는 이라크 유권자 1400만 명의 투표를 지원 및 감독하였으며, 3500t에 이르는 선거 관련 물자를 각 투표소에 공급하고 치안 유지를 지원하는 일도 맡았다.[4] 선거가 무사히 끝난 뒤 이라크 평화정착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화랑무공훈장을, 한국 군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정부로부터 동성무공훈장(Bronze Star Medal)을 받았다.[5][6]

2007년 7월 국제 테러단체인 탈레반에 의한 아프간 한국인 납치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한 카불 군사협조단장으로 급파, 인질 구출작전을 지휘하여 사건 발생 43일 만에 21명의 인질을 구출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군사협조단을 통해 수집된 인질 및 탈레반 세력의 동향 첩보 등은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는데 기초자료가 됐고, 특히 인질 억류지역에서 동맹군의 불필요한 군사행동을 억제한 노력은 인질의 생명을 보호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7] 이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8]

2009년 11월 소장으로 진급해 제27보병사단장에 임명되었으며, 2011년 5월에는 한·미 연합작전 태세를 발전시킨 공과 한·미 우호관계 증진 노력을 인정받아 미국이 외국군에게 주는 최고등급 훈장인 공로훈장(Legion of Merit)을 수훈하였다.[9] 그는 2008년 11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합동참모본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추진단장으로 근무 중 한미가 2007년에 합의한 전작권 전환을 구체적으로 진행하면서 150개에 달하는 전환 과제를 계발하고 진행을 감독하며 미측과의 긴밀한 협의를 추진, 복잡한 전환 과정을 관리하는 총 책임을 맡은 바 있다. 미국으로부터 이 훈장을 수훈한 외국인으로는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 영국 국왕 조지 6세, 소련군 총사령관 원수 게오르기 주코프,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 골 등이 있다.

2011년 11월 18일 미국 국방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영화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시사하는 교훈을 언급하였다. 그는 “《스파이더맨 1》은 우리에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는 것을 가르쳐 주고 《스파이더맨 2》는 원하지 않아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음을 알려준다”며 안보의식 고취를 위해 미국인들은 《스파이더맨 1, 2》를 평생 동안 적어도 세 번 이상 보아야 한다고 권하기도 했다.[10] 같은 달 21일 사단장 임기를 마치고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차장으로 영전했으며, 1년 5개월 뒤인 2013년 4월에는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 겸 한미연합사 부참모장에 임명되었다.

2013년 美 공로훈장을 수훈한 전인범 중장

2013년 10월 중장 진급과 함께 특수전사령관에 임명되었고, 동년 11월에는 한미연합방위체계 구축과 한미동맹 강화, 상호 유대관계 증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정부로부터 공로훈장을 다시 한 번 수훈하였다.[11] 2013년 현재 그는 한미 양국으로부터 총 8개의 훈장을 받아 대한민국 현역 장성 중 최다 훈장 수상자로 알려져 있다.[12]

특전사령관 취임 후 부대의 장비 구입을 위한 예산 확보, 새로운 장비의 개발, 해외 특수부대와의 교류협력 등 특전사의 전투력 강화를 위한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13] 피카티니 레일이나 광학장비와 같이 관행적으로 몰래 사용하던 사제 장비들의 사용을 허용하는 등 기존의 과도한 제재 규정들은 폐지시켰으며, 특히 헬기 사격, 천리행군 인증제 도입과 같이 과거에 하지 않던 실전적 훈련들을 대거 강화하였다.[14] 이러한 훈련들은 특전사의 실제 전투력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15][16] 또한 긴박한 전장상황에서 오역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한미 연합작전 수행능력 향상을 위해 전군 최초로 한국군은 영어로, 미군은 한국어로 브리핑하는 제도를 시행했다.[17] 훗날 그가 사령관을 이임한 뒤 특전사에 부대장비 및 개인물자를 납품하고 연구하는 특전사 출신의 한 예비역 대위는 “우리 군은 지나치게 ‘군복제 규정’에 얽매여 있다.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은 유연한 사고를 가진 지휘관이었다. 그는 “‘군복제 규정’보다 임무와 전술향상이 더 중요하다. 사고를 유연히 하고 우수 장비라면 사제라도 활용하라”라고 이야기하면서 전술장비 및 피복의 사용과 발전을 장려했지만, 그가 교체되면서 이런 유연한 사고는 다시 움츠러들었다. 우리 군의 유연한 사고는 지휘관에 따라 들쑥날쑥 하다”며 아쉬움을 소회했다.[18]

2014년 12월에는 공무 출장 중 터키군 총사령부 재활병원을 방문, 6·25 전쟁 참전용사인 알리 젱기스 투르크오울루를 위문하였다. 그는 6·25 전쟁 기간 가장 치열한 격전지 중 한 곳으로 꼽히는 평안북도 군우리 전투에서 터키군 1여단 소속 소대를 이끌었고, 보육원도 운영하며 많은 전쟁고아를 보살폈다. 전인범 중장은 “우리나라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19]

2015년 4월 5일부터 12일까지는 미군 통합특수전사령부미 육군 특수전사령부를 직접 방문, 미 통합특전사령관 조셉 보텔 대장과 미 육군 특전사령관 찰스 클리브렌드 중장을 만나 한·미 연합 특수작전에 대한 실질적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그는 저격용 소총과 미군 주력 소총인 M4, 권총, 산탄총, 박격포, 방탄복 등을 점검하고 체험하는 등 미군 특전사의 장비와 무기를 현장 견학하고 실제 사격도 하였다.[20] 이와 함께 방미 기간 동안 시애틀에 있는 6·25 참전 기념공원을 찾아 참전용사비에 헌화하기도 했다.[21]

2015년 4월 14일 특수전사령관 임기를 마치고 제1야전군 부사령관으로 영전하였다. 특전사령관 이임사에서 그는 “우리는 야수의 본능을 잃어가는 동물원의 사자가 아닌 초원을 질주하며 천하를 호령하는 용맹함을 간직한 대한민국 육군의 대표부대 특전사 검은 베레 용사들”이라며 “누구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안 되면 되게 하라’는 투철한 사명감으로 도전하고 노력하는 정신이 바로 특전정신이다. 우리들 특전용사에게 결코 불가능은 없다”고 강조했다.[22][23][24]

2015년 6월 뉴 웨스트민스터 대학(New Westminster College)의 특별연구원(Distinguished Fellow)으로 선정되었다. 뉴 웨스트민스터 대학 총장 로버트 굿윈 3세는 “그는 윤리적 리더십에서 괄목한 성과를 내었고 교육훈련에 평생 동안 헌신해왔다”며 “현 세계의 국가적 안보 위협에 대한 이해는 그가 정부의 국제적, 국가적, 지역 단위 이해관계자들의 민군 상호운용성과 방위협약에 대한 가치 있는 통찰력을 갖추게 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리더십, 외교와 사이버 보안에 관한 연구의 설계와 전달에 있어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것이다. 위원회와 나는 그가 우리 뉴 웨스트민스터 대학의 새로운 특별연구원이 된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인범 중장은 특별연구원으로서 학문적 수월성의 최고위 기준에 대한 지원에 공헌해왔고, 뉴 웨스트민스터 대학과 연구원들의 세계적인 조직망 발전에 헌신해왔다고 알려졌다.[25] 이 대학의 특별연구원으로는 필리핀 대통령 피델 라모스, 체코 대통령 바츨라프 클라우스, 캐나다 국방참모총장 대장 레이 헤노 등이 있으며, 특별연구원으로 선정된 인물 125명 가운데 한국인은 그가 최초이다.

평가

통역이 필요없는 유창한 영어 실력과 뛰어난 업무 추진력으로 주한미군 지휘부와 깊은 신뢰관계를 유지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불리고 있다.[26]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유용원은 그를 ‘군내에서 영어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고 언급하였다.[27] 주한미군사령관 커티스 스캐퍼로티 대장은 그를 일컬어 ‘가장 절친’이라 칭할 정도로 미군들의 신뢰를 받으며 강력한 한·미 군사동맹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28] 미8군사령관 버나드 샴포 중장 역시 ‘한국 군인 중에서는 가장 오랜 절친이며 항상 올바른 조언을 해 주는 고문(顧問)이자 한미 군사동맹의 미래’라고 강조했다.[29]

일화

  • 사관생도 시절 후배들을 엄하게 교육해 그의 별명은 ‘잔인범’이었다.

(육사 37기생인) 박지만 씨에 대해 특별대우는 없었을까. 동기생들은 입을 모아 “특혜는커녕 대통령 아들과 동기생이라는 이유로 곤욕을 치른 경우가 더 많았다”고 했다. 육사 38기의 한 대령은 “당시 37기의 선배 기수들은 박지만 선배가 포함된 37기에 편견을 갖고, 다른 기수라면 그냥 넘어갈 일도 더 엄격하게 얼차려를 줬다”고 했다. (중략) 37기 동기회의 한 간부는 “하도 36기 선배들에게 들볶이다 보니 38기 후배들을 교육시킬 여력이 없어 동기들 사이에선 38기들이 기어오른다는 이야기도 했었다”며 “동기생 중 전인범 특전사령관이 ‘잔인범’ 소리를 들어 가며 후배들 교육을 시키지 않았으면 선배 노릇도 못할 뻔했다”고 했다.

— 오동룡. 2013. “朴志晩 同期 陸士 37期生들.” 『月刊朝鮮』 2013년 12월호, 98-115.

가족 관계

같이 보기

각주

  1. “하나님이 곁에… 두려움 없어져”… 전인범 준장 사순절 간증, 《국민일보》, 2007년 2월 20일
  2. [人脈] 경기고등학교 출신 군장성들‥ 문·무겸비 군실세… 뜨는 KY그룹, 《한국경제》, 2005년 6월 26일
  3. "아, 가슴 아픈 이 사진... 거기에 내가 있었다", 《조선일보》, 2012년 10월 12일
  4. 이라크 총선지원 전인범 대령 “이라크 민주주의 탄생 기여에 자부심”, 《서울신문》, 2005년 1월 31일
  5. 노대통령 전 이라크 다국적군사령부 선거지원과장, 《연합뉴스》, 2005년 7월 11일
  6. 이라크 총선 성공지원 공로, 전인범 육군대령 美 동성 무공훈장 받아, 《국방일보》, 2005년 7월 6일
  7. <軍, 아프간 인질 석방 숨은 공로자>-1,2, 《연합뉴스》, 2007년 9월 2일
  8. 아프간 인질석방 공로 군인 '훈·포장' 수여, 《국방일보》, 2008년 3월 3일
  9. 전인범 육군 27사단장 '美 공로훈장' 수상, 《브레이크뉴스》, 2011년 5월 13일
  10. Korean General tells Americans to watch Spiderman 1 & 2, 《USAG-Humphreys》, 2011년 11월 18일
  11. 전인범 특전사령관, 美최고 공로훈장 받아, 《연합뉴스》, 2013년 11월 19일
  12. 대한민국 특전사 사령관 전인범, 《군사저널》, 2013년 12월 31일
  13.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괴짜 사령관’과 특전사의 환골탈태, 《서울신문》, 2014년 10월 23일
  14. [한국군 코멘터리] 불굴의 ‘지옥훈련’ 더 독해진 특전사, 《주간경향》, 2014년 12월 17일
  15. 왜 우릴 특전용사라고 부르는가?, 《아시아투데이》, 2015년 1월 8일
  16. 육군 특수전사령부 설한지 극복-생존훈련, 《브레이크뉴스》, 2015년 1월 9일
  17. 특전사 창설 57주년 기념식… 내년 2월 이천시대 개막, 《연합뉴스》, 2014년 4월 1일
  18. [무기와 사회] 한국군 전투복, 《한겨레》, 2015년 8월 19일
  19. 특전사령관, 터키 방문 참전용사 위문, 《연합뉴스》, 2014년 12월 18일
  20. 미군 주력 소총 M4 쏘는 전인범 특전사령관, 《아시아투데이》, 2015년 4월 13일
  21. 한미연합 특수작전사령부 시애틀 방문 6·25 참전용사비 헌화식, 《KOAM-TV》, 2015년 4월 10일
  22. 육군 특수전사령관 이·취임식 - 전인범 25대 특전사령관 이임사, 2015년 4월 14일
  23.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 "천하 호령하는 특전사 명예 지켜달라", 《뉴시스》, 2015년 4월 16일
  24. 특전사는 '적 도발은 곧 파멸 인식' 세계 최강 부대다, 《아시아투데이》, 2015년 4월 19일
  25. Lieutenant General In-bum Chun, PhD, Deputy Commander, First ROK Army, is appointed Distinguished Fellow of New Westminster College, 《New Westminster College》, 2015년 6월 16일
  26. ‘전작권 전환 기여’ 전인범 소장이 받는다, 《동아일보》, 2011년 5월 12일
  27. 박지만씨 육사 37기 동기들, 청와대·국정원·軍 요직 올라, 《조선일보》, 2013년 4월 20일
  28. 주한미군사령관 "한반도 평화·안정 온힘 쏟겠다", 《아시아투데이》, 2014년 11월 16일
  29. 주한 미8군사령관 "한미 군사동맹 강력하다", 《아시아투데이》, 2015년 2월 8일
  30. 글로벌 사회에서 주목받는 아이로 키우는 법, 《레이디경향》, 2013년 1월 10일
  31. 고광림 박사 주요 이력.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32. 사명, 목적 있는 삶… 나를 이끈 건 부모 가르침, 《중앙일보》, 2014년 7월 21일
  33. [女 세상의 중심]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 《매일경제》, 2010년 7월 29일

바깥 고리

전임
장준규
제25대 특수전사령관
2013년 10월 31일 ~ 2015년 4월 14일
후임
장경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