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백 (19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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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백
李基百
별명 호(號)는 석관(石寬)
출생일 1931년 10월 20일(1931-10-20)
출생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연기군
사망일 2019년 12월 16일(2019-12-16)(88세)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
본관 고성(固城)
복무 대한민국 육군
복무기간 1955년~1985년
근무 합동참모본부
최종계급 대장(大將)
지휘 합동참모총장
주요 참전 베트남 전쟁
기타 이력 국방부 장관
한나라당 특임고문
자유민주연합 특임고문

이기백(李基百, 1931년 10월 20일[1]~2019년 12월 16일)은 대한민국군인을 지낸 정치인이다.

본관은 고성(固城)이고 호는 석관(石寬)이며 세종특별자치시 출생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육군사관학교 동기이며, 제5공화국에서 합참의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냈다. 평화의 댐 사건의 주역 중 한 명이다. 전직 군장성 모임인 성우회 회원과 한나라당 특임고문으로 활동하였고, 군사 현안에 대해 보수주의적 목소리를 내었다.[2]

일화[편집]

이기백은 아웅 산 묘역 폭탄테러사건 당시 합동참모본부 의장의 자격으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수행하여 아웅산 묘소를 참배하러 갔다. 그런데 이때 아웅 산 묘역 폭탄테러사건이 발생하자 피해를 입었지만 사건 당시 전속부관이었던 전인범 중위의 신속한 응급조치로 인하여 18명의 장·차관들 중 유일하게 생존했다. 이 사고를 당한 이기백은 귀국 후 자신의 모교인 육군사관학교에 이 당시 입고있던 정복을 기증하였으며 현재도 이 정복은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대국민 사기극 평화의 댐 건설을 주도한 주역이다. 1986년 북한이 추진하던 금강산댐의 위협을 과대 포장했다. 이규호 건설부 장관은 1986년10월말 무시무시한 특별 담화를 내놓았다. ‘북한이 200억t의 담수용량을 가진 금강산댐(임남댐)을 건설 중이며 댐이 무너지면 63빌딩 중턱까지 물이 차오르게 될 것이다.’ 주요 신문들의 ‘물의 남침’, ‘서울 전역 침수’ 등 보도에 국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결정적으로 이기백 국방부 장관의 “200억t 물로 수공작전을 전개하면 그 위력이 핵무기보다 크다.”는 발표가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3]

학력[편집]

약력[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 및 참고 문헌[편집]

  1. “이기백”. 엠파스 인물검색. 2008년 4월 9일에 확인함. 
  2. 김민석 (2006년 12월 27일). “현 정부 첫 합참의장, 육참총장도 가세”. 중앙일보. 2008년 4월 9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3. 데이터 자료 미디어
전임
김윤호
제19대 합동참모의장
1983년 6월 3일~1985년 6월 3일
후임
정진권
전임
윤성민
제24대 국방부 장관
1986년 1월 8일~1987년 7월 14일
후임
정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