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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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 현 오스미 제도에도 ‘이오지마 섬’이 있다.
이오 섬의 위치

이오 섬(일본어: 硫黄島 (いおうとう))은 일본 남동쪽에 있는 화산섬이다. 이름은 을 뜻하는 일본어 낱말 ‘이오(硫黄)’에서 왔다.

목차

[편집] 명칭

이오지마, 혹은 한국어 발음 그대로 유황도라고도 부른다.[1]

그러나 정작 일본에서 이 섬을 부르는 명칭은 「이오지마(いおうじま)」가 아닌 「이오토(いおうとう)」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전 섬 주민은 이 섬을 이오토라고 불렀으나, 제 2차 세계대전 중 미군은 해도(海圖)에 적힌 대로 이 섬을 「Iwo Jima」라고 불렀고, 1968년 이 섬이 일본 통치하에 들게 되어서도 바뀌지 않은 채 일본 내에서도 2007년까지 이오지마로 불렀다. 그러나 섬의 주민 사이에서 섬의 이름을 이오토로 통일하고 싶다는 여론이 반영되어, 2007년 3월 오가사와라 촌(면)의회에서 섬의 호칭을 이오토로 통일한다는 안이 채택되었다. 이에 따라 일본 국토지리원은 같은 해 6월 18일 이후부터 촌의 신청(현지에서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채택하는 원칙)을 받아들여 이 섬을 '이오토'로 불렀다. 추가로 기타이오 섬(北硫黄島 북유황도)은 「기타이오토(きたいおうとう)」로, 미나미이오 섬(南硫黄島 남유황도)는 「미나미이오토(みなみいおうとう)」로 점차 변경되어, 가잔 열도(火山/硫黄列島)의 3개 섬은 島를 '지마(じま)'에서 '토(とう)'로 읽게 되었다.

[편집] 지리

행정상은 도쿄 도(東京都) 오가사와라 촌(小笠原村, おがさわらむら) 에 속한다. 도쿄에서부터 약 1050km 남쪽에 있다. 섬의 길이는 동서 8km, 남북 4km이다.

섬에서 해발 고도가 가장 높은 곳은 스리바치 산(摺鉢山)이고 169m이다.

[편집] 역사

이오 섬.

1543년 스페인의 베르나르도 데 라 토레(Bernardo de la Torre) 선장이 이끄는 배 '산 후안 데 레트란(San Juan de Letran)이 발견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까지 무인도로 있다가, 1887년 도쿄 부(東京府 동경부)에 의해 탐사가 진행되어 2년 뒤 일본인이 살기 시작하였다. 1891년 9월 9일 현재의 섬 이름이 정해졌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1000명 정도가 살고 있었다. 1945년 2월에 이 섬에 미군이 상륙하려 하자, 전투 상태가 되어 3월까지 계속되었다. 일본측 전사자는 20,129명. 미국측 전사자는 약 5,000명, 부상자는 21,865명(이오지마 전투)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는 미국의 시정권에 속하게 되었다가, 1968년 6월 26일 일본에 반환되었다.

[편집] 현재

현재 섬에는 자위대 기지가 있다. 불발탄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이전 살았던 주민들은 물론 일반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편집] 주석

  1. 구글 검색 결과 '이오 섬'은 95,300건, '유황도'는 515,000건이었다. 한편 '이오지마'는 414,000건이었다. 존 웨인이 주연한 1949년작 영화 《Sands Of Iwo Jima》는 그 제목이 《유황도의 모래》로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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