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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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2012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제학술대회 기조강연 '역사박물관의 출발점'
2012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제학술대회
기조강연 '역사박물관의 출발점'
대한민국의 초대 문화부 장관
임기 1990년 1월 3일~1991년 12월 19일
전임 (신설)
후임 이수정
대통령 노태우
총리 강영훈 국무총리
노재봉 총리 서리
노재봉 국무총리
정원식 총리 서리
정원식 국무총리
차관 허만일 문화부 차관

대통령 비서실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임기 1999년 4월 12일~2001년 1월 31일
대통령 김대중
총리 김종필 국무총리
박태준 국무총리
이헌재 총리 권한대행
이한동 총리 서리
이한동 국무총리
장관 김중권 비서실 실장
한광옥 비서실 실장

신상정보
출생일 1933년 12월 29일(1933-12-29)
출생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읍 좌부리
사망일 2022년 2월 26일(2022-02-26)(88세)
국적 대한민국
학력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경력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배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
배재대학교 한류문화산업대학원 석학교수
중앙일보 고문
정당 무소속
본관 우봉(牛峰)
부모 이병승(부), 원용숙(모)
형제자매 이덕녕(형)
이복녕(형)
이휘령(형)
이서령(형)
이인녕(아우)
이시령(아우)
이윤녕(아우)
배우자 강인숙
자녀 2남 1녀
친인척 이병도(재종숙부), 강철종(형부)
종교 유교(성리학) → 개신교(예장통합)

이어령(李御寧, 1933년 12월 29일[1]~2022년 2월 26일)은 대한민국의 문학평론가, 언론인, 저술가, 대학 교수를 지낸 국어국문학자이며, 노태우 정부에서 초대 문화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본관은 우봉. 호(號)는 능소(凌宵)이다.

배우자는 문학 평론가인 강인숙이며, 서울 관악구에 이어령의 '령'과 강인숙의 '인'을 딴 영인문학관을 운영하였다.

생애[편집]

국인문화소통포럼 2013에서 기조강연하고 있는 이어령

충청남도 아산 출생이다. 1956년 서울대학교 국문학 학사와 1960년 동 대학원 국문학과 문학 석사, 1987년 단국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문학박사 등을 취득하였다.

경기고등학교 교사, 단국대학교 전임강사를 지냈으며, 1960년부터 서울신문,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등에서 논설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67년 8월부터 1999년 2월까지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하였고 1999년 2월부터 2022년에 별세할 때까지 동교 명예교수를 지냈다. 그 외에도 2001년 8월부터 2012년 8월까지 배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2012년 8월부터 2022년에 별세할 때까지 배재대학교 한류문화산업대학원 석학교수를 지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의 총괄 기획을 맡아 '벽을 넘어서'라는 서울 올림픽 표어, 개회식의 굴렁쇠 소년 등 전세계에 인상적인 연출을 하였다.[2]


1990년 노태우 정부에서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1990년 1월 3일부터 1991년 12월 19일까지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2009년에는 경기디지로그창조학교를 설립하여 명예교장을 맡았다.

2022년 2월 26일 암 투병 끝에 숙환으로 별세하였다.[3]

학력[편집]

경력[편집]

  • 1960~1961: 서울신문 논설위원
  • 1961: 한국일보 논설위원
  • 1962~1965: 경향신문 논설위원
  • 1966~1972: 중앙일보 논설위원
  • 1966~1999: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학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교수
  • 1990.01~1991.12: 문화부 장관
  • 1992.09 올림픽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
  • 1993 한백연구재단 자문위원
  • 1993.12 범국민독서 새물결운동추진위원회 상임고문
  • 1994~2022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1994.03 국제화추진위원회 위원
  • 1994.03 광복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
  • 1995.01 세계화추진위원회 위원
  • 1995.02 조선일보21세기 정보화포럼 위원
  • 1998~1999.03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 1998.05 통일고문회의 통일고문
  • 1999.02~2022.02: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1999.04~2001.01: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 2001.01~2022.02: 중앙일보 고문
  • 2001.05 사이언스 북 스타트운동 공동대표
  • 2001.08~2012.08: 배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
  • 2005.11 앙코르-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06 조직위원회 한국측 조직위원
  • 2008.07 서울디자인올림픽 2008 조직위원회 위원
  • 2009.03.~2016.03. 경기디지로그창조학교 법인 이사장
  • 2009.07 제3회 제주세계델픽대회 명예고문
  • 2009.10~2022.02 Korea CEO Summit 명예이사장
  • 2010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
  • 2010.04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창조위원회 위원장
  • 2011.03 가족친화포럼 고문
  • 2012.08.~2022.02: 배재대학교 한류문화산업대학원 석학교수
  • 2014.12.~2022.02: 동아시아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 2016.03.~2022.02. 경기디지로그창조학교 명예 교장
  • 영인문학관 명예 이사장
  •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고문
  • 한반도선진화재단 고문

문단 활동[편집]

1956년 한국일보에 문학평론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4] 〈우상의 파괴〉에서 그는 김동리를 '미몽(迷夢)의 우상'이라고 하고 '모더니즘'의 기수를 자처하고 있는 조향을 '사기사의 우상', 이무영을 '우매(愚昧)의 우상', 최일수를 '영아(嬰兒)의 우상'이라고 깎아내렸을 뿐만 아니라 황순원, 조연현, 염상섭, 서정주 등을 '현대의 신라인들'로 묶어 신랄한 비평을 가했다.[5] 그는 우리 문학의 불모지적 상황에서 새로운 터전을 닦아야 할 것을 주장했으며, 이데올로기와 독재 체제의 금제에 맞서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작품의 실존성'을 문제로 김동리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조연현과 '전통논쟁'도 펼쳤다. 특히 1959년 3월 한 신문을 통해 전개된 소설가 김동리와 비평가 이어령 사이의 시비는 대한민국 문단사에서 은유와 비문(非文)에 관한 '험악한' 논쟁으로 기록된다. (남영신,<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

주요 작품[편집]

평론[편집]

  • 《이상론: 순수의식의 뇌옥(牢獄)과 그 파벽(破壁)》: 작가 이상의 문학적 진면목을 널리 알림[6]
  • 《우상의 파괴 (1956)》[7] : 스물두살에 기성세대를 비판하고 새로운 세대의 출발을 알림. 평론이 아닌 선언문 형식으로 단문임.
  • 《화전민의 선엉 (1958)》 :스물네살에 한국전쟁으로 모든 게 파괴된 이 땅에 창조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고 주장
  • 《비유법론고》
  • 《해학의 미적 범주》
  • 《사회참가의 문학》
  • 《현대소설 60년》

평론집[편집]

  • 《저항의 문학》
  • 《전후문학의 새물결》
  • 《한국작가전기연구》

소설[편집]

  • 《마호가니의 계절》
  • 《장군의 수염》
  • 《의상과 나신》
  • 《소년 봉신방》

소설집[편집]

  • 《환각의 다리》
  • 《둥지 속의 날개》
  • 《무익조》

수필[편집]

  • 《흙속에 저 바람속에 (1962년)》 한국인이란 누구인가, 한국문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한국인의 체험의 원형은 무엇인가를 묻고 답함
  • 《신한국인》
  • 《축소지향의 일본인》 이웃 일본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임
  • 《디지로그》선언편: 다지털과 아날로그를 결합한 디지로그를 만듦. 디지털 문화를 창출함으로써 한국 사회가 세계 사회의 새로운 리더가 되자고 주장.
  • 《지성의 오솔길》
  • 《지성에서 영성으로》

해외 출판[편집]

<축소지향의 일본인>(「縮み」志向の日本人)을 비롯 이어령의 책은 일본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하였고, 지금까지도 번역 출판되고 있다. 특히 2005년 4월 출간된 <장켐 문명론>(신조사)은 <축소지향의 일본인> 이후 문명 융합에 대한 해박한 경륜을 담아 한 중 일 삼국의 미래를 조망했다는 점에서 크게 평가받았다.[8]

평가[편집]

이어령은 이 시대 최고의 지성, 오천년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창조적 인물로 칭송을 받고 있지만 선천적인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일부에서는 강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9]

고령의 나이에 비해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 활용 능력이 뛰어나다. 서재에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7대의 컴퓨터가 있으며, 자료 정리는 에버노트를 주로 쓴다.[10] 김정운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에버노트에 저장된 노트의 수가 18,000개라고 밝혔다.[11]

한국적 인문주의[편집]

이어령은 천재적인 글쓰기의 역량을 발휘했다.[12]

가족[편집]

출연작[편집]

상훈[편집]

  • 1979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 1989년: 체육훈장 맹호장
  • 1992년: 일본 디자인문화상
  • 1996년: 일본 국제교류기금 대상
  • 2001년: 서울시문화상(문학부문)
  • 2003년: 제48회 대한민국 예술원상(문학부문)
  • 2007년: 제2회 마크 오브 리스펙트상
  • 2009년: 마사오카 시키 국제 하이쿠상
  • 2009년: 제2회 한민족문화예술대상 문학부문상
  • 2011년: 제24회 기독교문화대상 시상식 문학특상
  • 2011년: 제20회 소충 사선문화상 특별상
  • 2020년: 제11회 홍진기 창조인상 특별상
  • 2021년: 제50회 문화의 날 금관문화훈장

각주[편집]

  1. 1933년 음력 11월 13일 호적상 1934년 1월 15일 출생.
  2. “[뉴스메이커] 이어령”. 《연한뉴스 TV》. 2022년 2월 28일. 2022년 3월 4일에 확인함. 
  3. 이은정 (2022년 2월 26일). '시대의 지성' 지다…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별세(종합2보)”. 연합뉴스. 2022년 2월 26일에 확인함. 
  4. 김윤식 외, 《상상력의 거미줄: 이어령 문학의 길찾기》(생각의나무,2001) 속 날개 표지
  5. 이병주,〈동서의 복안적 시점〉,김윤식 외,《상상력의 거미줄:이어령 문학의 길찾기》(생각의나무,2001)》151쪽.
  6. “우상의 파괴, 그리고 이상의 발굴”. 2016년 4월 29일. 2023년 1월 6일에 확인함. 
  7. 퇴턍규 (2022년 1월 15일). “이어령 컬렉션 (2022)”. 2023년 1월 6일에 확인함. 
  8.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연합초대석)”. 연합신문(네이버). 2008년 8월 28일. 2011년 5월 30일에 확인함. 
  9.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보는 한국인의 미래는?”. 아주경제. 2009년 7월 15일. 2011년 5월 30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0. 고양이 일곱 마리를 기르는 서재 구경. 중앙일보.[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1. 에디톨로지. 2015년. 김정운 저.
  12. 교수·사회학, 김호기 (2013년 12월 1일). “[김호기의 ‘우리 시대 사상의 풍경’](6) 인문주의, 인간과 삶에 대한 질문 : 이어령과 김우창”. 2023년 1월 6일에 확인함.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 위키미디어 공용에 이어령 관련 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
전임
최병렬
(문화공보부 차관)
제19대 문화부 장관
1990년 1월 3일~1991년 12월 19일
후임
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