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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鄭明析, 1945년 3월 16일 ~ )은 대한민국의 종교지도자로서 기독교복음선교회의 총회장이며, 충청남도 금산군에 소재한 월명동 수련원의 창립자이다. 대한민국의 시인이기도 한 그는 1999년 월간 《문예사조》로 등단하여 지금까지 문학 및 다양한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구원의 말씀》, 설교집 《생명의 말씀》, 잠언집 《하늘말 내말》 1~9집, 《영감의 시》 1~5집 등이 있으며 한국 시문학 100년사를 망라한 《한국시 대사전》(2011)에 그의 시 10편이 등재되었다.[1] 또한 《지촌미술제》, 《도화개인전》, 《아시아청년국제교류전》 등 국내 및 국외(영국, 프랑스, 독일, 아르헨티나 등)에서 그림과 서예 작품 다수를 전시했고, 국제문화예술평화협회(GACP)의 총재로서 평화를 위한 예술, 스포츠 등의 활발한 문화교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2][3] 그리고 1999년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성추문이 제기되어 논란을 일으켰으며 성폭행 및 추행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선고 받고[4] 복역중에 있으나 방송의 각종 오보와 인터넷 상의 악성 댓글로 인한 불리한 여론이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는 논란, 종교재판이라는 논란이 일었다.[5]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린 《그것이 알고 싶다》는 기독교복음선교회의 방송보도금지청구2005년 8월 2일 법원으로부터 화해권고결정을 받아 법적으로 편파·왜곡보도가 인정됐으며[6], 이후에도 문제의 내용은 3회 더 방영되어 2010년 5월 26일 9,000만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7] 그러나 이 결정내용은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왜곡된 언론보도와 증거 없는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언론 일각의 재심요구가 뒤늦게 있었으나 여론화되지는 못했다. 언론은 여성들의 배후에 반JMS 조직이 있음을 폭로하고 이들이 정 총재에게 돈을 요구한 편지들을 공개하기도 했다.[8]

약력[편집]

  • 1945년 3월 전라북도 금산군(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석막리 월명동에서 출생
  • 1969년 9월 화랑무공 훈장, 인헌 훈장 등 4개 훈장 수여 [a]
  • 1981년 3월 MS선교회 창설(대표 취임), 애천교회 창립
  • 1983년 11월 웨슬레 신학원 졸업, 전국 8개 도시 교회 설립
  • 1986년 9월 예수교 대한 감리회(진리) 창립
  • 1989년 《영감의 시》 1집 출간 [b]
  • 1990년 《하늘말 내말》 1집 출간 [c]
  • 1991년 3월 자연수련원 월명동 개발 착공, 《비유론》 출간 [d]
  • 1995년 월간 《문예사조》 신인상 당선, 시인 등단
  • 1996년 《영감의 시》 2집 출간
  • 1998년 충남대학교 행정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생명의 말씀》 1집 출간 [e]
  • 1999년 8월 국제문화예술평화협회 세계문화교류 GACP 창설, 제 1회 프랑스 파리 대회 개최 [f]
  • 2001년 11월 스리랑카 유네스코 산하 오픈인터네셔날 대학교(The Open International University for Complementary Medicines) 철학박사 학위 취득 [g]
  • 2002년 8월 제 6회 국제문화예술평화협회(GACP) 컨퍼런스 개최, 한국 대전 [h]
  • 2003년 《생명의 말씀》 2집, 3집 출간
  • 2004년 《하늘말 내말》 2집, 3집, 4집 출간
  • 2005년 《구원의 말씀》 1집, 2집, 3집 출간 [i], 《하늘말 내말》 5집, 6집 출간
  • 2008년 기독교복음선교회 총재
  • 2011년 《한국시 대사전》에 시 10편 등재 [j]
  • 2011년 UWA퍼스국제아트페스티벌(UWA Perth International Arts Festival) 그림 《운명》 대표작 선정 [k]
  • 2012년 《하늘말 내말》 7집, 8집, 9집 출간
  • 2013년 영감의 시 3집 《시의 여인》, 영감의 시 4집 《시로 말한다》 출간 [l]
  • 2016년 영감의 시 5집 《행복은 온다》 출간


약력의 전반적인 사항은 기독교복음선교회 공식 홈페이지를 참조했다.
a 1966년 8월 베트남전 1차 참전(백마 9사단 : 현 대한민국 9보병사단), 1967년 10월 베트남 전쟁 2차 참전(백마 9사단).
b 정명석 시인이 시에서 노래한 것은 주로 만물과 인간이라는 지상의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보이는 현상세계와 보이지 않는 피안세계의 근본자가 하나님임을 증거한다. 영감의 시는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을 통해 물질 문명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얻게 하여 구원의 징검다리가 되어줄 것이다.[9]
c 정명석 총재가 32년간의 수도생활 기간 동안 다양한 환경과 사건을 겪으면서, 그때그때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이나 영감 혹은 교훈의 말씀들을 적어둔 것과 또 직접 깨달은 내용, 대중 앞에서 설교할 때 번개처럼 떠오른 깨달음 등을 모아 엮은 잠언집이다.[2]
d 성경은 비유로써 인봉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깨우쳐주지 않으면 인간의 그 어떤 노력이나 연구에 의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명석 총재의 최초의 저서인 《비유론》은 성경의 각종 비유에 대해 명쾌한 답을 주는 주석서이다.[10]
e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 교훈 삼을 수 있도록 묶어낸 설교집이다. 그의 설교는 이론에서 끝나거나 듣기 좋은 말씀에서 끝나지 않는다. 말보다 실천이 그의 철학인 만큼 그의 설교가 힘 있는 것은 삶 속에 실천하며 전하기 때문이다. [11]
f 국제적인 민간교류 연합단체인 지구촌평화문화연합(Global Association of Culture & Peace)은 스포츠와 예술 등 다양한 문화 교류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는 화합의 장을 제공, 국가와 민족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랑과 평화의 지구촌 실현을 위해 조직되었다.[12]
g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그에게 유네스코 산하 오픈인터내셔날 대학교(The Open Intermational University for Complementary Medicines)가 철학박사학위를 수여하면서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이 대학은 이전까지만 해도 철학박사학위 수여는 반드시 의학박사와 심리학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에게만 수여하는 아주 특별하며 상징적인 것이었다. 이 대학의 전임 교장인 고아벨 교수는 '정 총재로부터 심오한 말씀을 들었으며, 정 총재가 수많은 사람들의 척추를 교정해 주는 것을 목격한 후 그에게 철학박사학위를 수여키로 결정했다"고 전했다.[13]
h 2002년 한일월드컵 기간 중 펼쳐진 제6회 대회는 35개 국가에서 온 2천여 명의 외국인 회원과 함께 종교와 이념을 초월해 인류가 하나가 되는 길을 모색,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12]
i 처음에 정 총재는 지옥론을 집필하려고 했다. 지옥이 두려우니 거기 가지 말라는 결론으로 지옥에 대해 자세히 쓰고 마지막에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어라. 메시아를 믿어라.'라고 쓰려고 했다. 그런데 '누가 지옥이 두려운 줄 물라서 지옥에 가는 줄 아느냐? 두려운 줄 알면서도 간다.'는 음성을 듣고서 천국에 대해서 쓰려고 했는데 또 음성이 들리기를 '누가 천국이 좋은지 몰라서 못 가는 것이 겠느냐. 천국이 좋은 지는 다 안다. 천국이 좋은지 몰라서 못 가는 것이 아니다. 천국에 가는 법을 몰라서 못 가는 것이다.' 했다. 그래서 무엇을 쓸까 고심한 끝에 ‘구원을 받으면 천국도 가게 되고 지옥도 안 가게 된다.'라고 깨닫게 되면서 구원론(구원의 말씀)을 집필하게 됐다.[14]
j 2011년 3월에 발간된 《한국시 대사전》 2717쪽에는 정명석 시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대표시 '마음지세', '삶', '선악', '우리 사랑', '운명', '일편단심' 등 10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15]
k 2011년 국제 아트 페어전에서 대표작으로 선정돼 세계인의 찬사를 받은 《운명》은 강자 앞에 약자의 운명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작가는 “성자 예수의 구상을 받았으며 영감으로 주님이 보여 주셔서 순간 숨도 안 쉬고, 그렸다.”라고 밝혔다. 작품 《운명》을 보면 죽음의 벼랑에 있는 이 달팽이황새가 제일 맛있게 먹는 밥이다. 아무도 이 달팽이가 산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황새도 역시 물론이다. “넌 내 밥이다. 콕 찍으면 끝난다.”했다. 그러나 달팽이만 “나는 산다.”하고 죽음에 굴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죽음을 피해 가고 있다. 달팽이는 아무리 빨리 가도 황새 앞에는 초침 앞의 시침의 속력이다. 하늘에 운명을 맡기고 사는 자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3]
l 2013년 7월 동시 발간된 《시의 여인》과 《시로 말한다》는 교보문고 시 분야 1,2위를 다투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1996년 《영감의 시》 2집에 이어 17년 만에 발간된 이 시집들은 저자의 《영감의 시》 시리즈로 묶여 나온 것이다.[16]

일대기[편집]

정명석은 1945년 음력 2월 3일 전라북도 금산군에서 6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여러 해 동안 그의 고향 주변의 산 속에서 기도로 고독한 삶을 보냈다. 1966년 2월 23일 21세 때 군대에 입대했다. 1966년 8월에 1차, 1968년 7월에 2차로 두 차례에 걸쳐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다. 23세가 되어 그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애천교회를 설립하고, 1983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기독교복음선교회[편집]

그가 설립한 기독교복음선교회(CGM)는 이전에 애천교회, 예수교 대한 감리회 진리측, 세계 청년대학생 MS 연맹, 국제크리스찬연합 등의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성추문 관련[편집]

해외 도피 의혹[편집]

1999년 SBS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정명석 총재의 성추문에 대해 보도하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얼마 후, 그가 해외선교를 떠나면서 도피 의혹이 제기되자, 언론은 관련 의혹을 기정사실화 하여 보도했지만, 그는 2000년2001년 귀국하여 검찰조사를 받은 후, 무혐의 종결되어 다시 해외선교를 떠났다.[17] 그러나 정 총재에 대한 성추문은 국내·외에서 지속되었고, 중국에 입국한 뒤 그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다시금 해외 도피 의혹이 제기됐다.

2006년 8월 선교회는 한 월간지를 통해 성추문과 도피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선교회는 성추문과 관련한 소문과 사실은 전혀 다르며, 구약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의 이야기가 정 총재의 현실과 닮았다고 했다. 요셉은 노예생활을 하는 동안 자기 주인에게 충성을 다했으나 주인의 아내가 이성으로 요셉을 유혹했고, 이를 거부한 요셉은 오히려 성폭행의 누명을 받아 감옥에 갔다. 정 총재가 한국으로 들어와 진실을 밝히라는 목소리에 대해선,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라는 성경구절(디모데후서 2:4)을 들었다. 오히려 정당함을 밝히고 싶은 사람은 정 총재라며, 하나님의 사역자이기에 한걸음이라도 자기의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분이라고 했다. 더욱이 세계 50여 개국에 복음을 전파하기에는 지금의 시간도 모자라며, 그 오해를 풀기 위해 시간을 소모하기 보다는 오해와 굴욕을 감수하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길을 택한 것이라고 밝혔다.[18] 또한 2008년 이후, 정 총재는 “나는 죄를 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고소 건을 가볍게 보았다”, “늘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생각으로 해외선교에 애착을 보이며 집중해 왔다”, “한국에 와서 보니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보아, 2001년 이후 고소건에 대해서는 해외선교로 인한 일정에 일일이 대응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17]

2007년 5월 1일 중국공안은 그를 성폭행 혐의로 체포하여 관련 혐의를 조사한 후, 2008년 2월 한국으로 송환했다. 당시 대다수 언론들은 정 총재가 1999년부터 해외 도피를 지속해 오다가 중국에서 체포되어 한국으로 신병인도 됐다고 보도 했다. 그러나 정 총재는 두 차례 입국하여 검찰 조사를 받고 다시 출국한 사실이 있었고, 한국에서 제기된 고소에 대해 정 총재가 출두하지 않아 기소중지된 상태에서 또 다른 해외사건 발단으로 법무부가 신병인도를 요청해 중국이 받아들인 것이다.[17] 또한 말레이시아, 홍콩, 대만, 중국 등지에서 제기된 성추문은 사실상 모두 해프닝으로 끝났으며, 대만의 경우 허위사실을 유포한 제보자가 벌금형을 받고 신문에 사과성명을 발표했다.[8] 2014년 이후 몇몇 언론들은 정 총재에 관하여 “외국으로 달아났다”, “밀항했다”, "성상납을 받았다"와 같은 취지의 보도가 사실과 다르고 당시 정 총재는 정상적인 해외일정을 소화했다며 오보를 바로잡았다.[19][20][21]

한국 법원의 선고[편집]

한국으로 돌아온 정 총재는 2008년 2월 여성 5명의 고소로 법정분쟁에 휩싸였다. 법원은 1심에서 3명의 여성에 대해 성추행 및 성폭행 혐의를 인정하며 징역 6년을 선고했으나, 정 총재 측은 해당 공소사실은 사실무근이라며 항소했고, 2009년 2월 10일 정 총재에 대한 2심 판결에서는 1심에서 무죄 선고했던 여성 한 명에 대해 추가적인 혐의를 인정하며 징역 10년을 선고했다.[22] 이에 선교회 측은 재판결과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혔다.

고소인들의 피해주장은 명확한 물증이 없었으며, 총재님께 유리한 우리 측 증인들의 진술은 거듭 주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형사재판은 잘못된 여론으로부터 독립하여 판결하여야 하고, 민사소송과는 달리 엄격한 증거법에 따라야 하며, 법관으로 하여금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유죄판결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소인들의 피해 진술은 과장되거나 허위라고 의심할 여지가 분명히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에 따라 무죄를 선고하여야 하나 오늘의 판결은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도 대한민국의 선량한 국민으로서 법질서 유지 차원에서 법원의 판결을 마땅히 존중하지만 판결도 사람이 하는 이상 정치적 견해나 사회적 편견이나 오해로 인해 잘못될 수도 있음을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지난 2007년 10월에 서울시가 주관한 ‘서울특별시 봉사상 대상’에 선정된 봉사단체가 우리와 관련된 단체라는 이유로 수상이 취소된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사회적 편견의 벽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법정에서의 싸움도 정명석 총재에 대한 언론과 또 언론에 의해 형성된 여론을 바탕으로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편견에 위축되지 않고 물러서지도 않을 것입니다.[23]

언론에서도 정 총재에 대해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 역시 인권을 보호받아야 할 인물이므로 공정한 법의 판단에 앞서 여론의 선정적 보도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되며, 정 총재의 재판이 사회적으로 과장된 이슈가 되고 왜곡된 관심을 받게 된 것은 그가 이른바 이단으로 불리는 단체의 수장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그가 만일 기성교단의 제도권 목사였다면 이같이 여론의 희생양이 되진 않았을 것이라며, 반복적인 편파보도와 인터넷 상에 난무하는 자극적인 악성 글로 인해 정 총재는 최종판결 이전에 이미 극악한 범죄자로 단정지어졌음을 우려했다.[5]

항소심 판결은 믿을 수 없는 결과라는 입장을 밝힌 바와 같이,[23] 정 총재 측은 대법원에 상소했다. 심리미진, 채증법칙 위반 등을 제시하며 1심과 2심의 판결이 부당했음을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2009년 4월 23일 10년 형을 최종 확정했다.[24] 그러나 정 총재의 10년 선고는 객관적인 자료 없이 양측의 서로 다른 진술만 존재하는 상태에서 뚜렷한 증거 없이 법관의 자유심증에 의해 내려졌기에, 일각에서는 정 총재가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는 주장을 제기했다.[25] 이와 관련하여 선교회의 한 관계자는 정 총재의 재판이 기독교의 마녀사냥상업주의 언론이 합세해 만든 여론재판이었다고 주장한다. 기독교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정 총재의 재판에 한국기독교총회가 청원서를 냈고, 반 JMS조직의 주축이 기독교인들이라는 사실을 들었다. 2000년 전 유대교의 이단으로 규정된 예수가 증거없이 여론재판으로 십자가형을 받았고, 역사적으로 수많은 기독교 이단 논쟁이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했듯이, 이미 종교적 사회적 여론으로 이단의 괴수로 낙인찍힌 정 총재가 부당한 재판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는 설명이다.[25]

SBS의 편파방송[편집]

언론은 기독교복음선교회 교인들이 황 모양과 같이 수련원으로 이동하면서 발생한 사건을 일명 ‘황양납치사건’으로 보도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SBS, KBS, MBC는 일제히 관련 기사를 특종으로 다뤘다. 한편 경찰저널은 경찰이 조사한 결과에 따라 납치사건이 아닌 단순 폭행사건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언론은 이 문제를 계속 확대시켜 총재가 교인들을 성추행하고 해외로 도피하여 홍콩에서도 문제를 일으킨다는 보도를 하였다. 특히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는 교단 총재의 행각을 기정사실화 했고, 다른 매체들은 검증없이 받아쓰기 식으로 기사를 도배했지만, SBS의 방영은 명백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26]

  • 첫째, 정 총재가 ‘여자하나를 전도해오라’는 설교대목이다. 당시 방송에 보도된 장면은 1995년도에 촬영된 주일예배 영상으로 ‘감사하는 생활’이라는 설교였다. 원래는 ‘생명의 십일조 열의 하나를 전도하라’는 내용이었으나, ‘열의 하나’ 부분에 의도적인 기계음을 삽입했고 자막에는 ‘여자하나’라고 표기하여 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지도자라는 인식이 들 수밖게 없도록 편집했다.
  • 둘째, 정 총재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모두 여성이었던 장면이다. 실제 비디오를 검토해보면 남녀가 같이 있었던 장면이었음에도 여자들만 나오는 장면만 편집하여 방영하여 여자만 상대하는 교주라는 오해를 사도록 했다.
  • 셋째, 정 총재를 교주로 신봉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선교회 회원들 간에 쓰던 애칭인 Jesus Morning Star(예수님의 새벽별)의 이니셜인 JMS를 정 총재의 영문이름 이니셜이며 선교회의 공식명칭인 듯이 방영했다. 그러나 실제 선교회는 JMS라는 명칭을 한 번도 공식적으로 사용한 적이 없었고, SBS가 취재하던 당시에도 단체명으로 '국제크리스천연합'을 사용하고 있었다.
  • 넷째, 선교회의 월명동 수련원이 외부와 단절된 폐쇄적인 공간으로서 밀교의식이나 성추행 등이 일어나는 은밀한 장소인 것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실제 월명동 수련원은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고 지역 주민들, 인접한 대둔산 등산객들,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곳이었다.
  • 다섯째, 정 총재가 해외에서도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내용을 방송하면서 대만 검찰과의 인터뷰 내용을 조작했다. 방송에서는 인터뷰 내용을 “지금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일부 피해자의 진술을 확보한 상태입니다...”라고 번역했는데, 대만 검찰은 ‘피해자’ 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었다. 대만 검찰은 ‘상관인사’ 즉, 관련자라는 표현을 썼는데 방송은 한국어로 ‘피해자’라고 번역함으로써 대만에서의 성추행 의혹이 사실로 규명된 것처럼 호도했다. 그러나 대만 사건은 후에 무혐의로 밝혀졌고 대만 언론에 허위사실을 퍼뜨린 제보자는 신문에 사과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SBS는 반JMS 조직의 김도훈(가명), 김형수(가명)등의 제보내용에 기초하여 이같은 보도를 했다. 이에 법원은 화해권고결정을 내렸으며, 주 내용은 김도훈, 김형수의 일방적인 제보내용을 보도자료로 써서는 안 되며, 선교회에 대한 방송을 보도할 경우 48시간 전 고지할 것, 방송분의 5%를 반론 보도를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또한 이를 어길 시 건당 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결정이었다.[6] 그러나 편파방송의 오류를 법적으로 인정한 사실은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이미 여론에 의해 범죄자로 낙인 찍힌 정 총재는 계속해서 언론의 도마질을 당했다. 법원의 결정 이후에도 문제의 내용은 3회 더 방영되어 2010년 9,000만원의 손해배상이 결정됐다.[17][8][7]

반JMS 관련 의혹[편집]

기독교복음선교회의 대표적인 안티세력으로는 김도훈(가명)이 이끄는 반JMS(엑소더스)가 있다. 이 단체는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에 정보를 제공하고 피해자들의 법적소송을 대행하는데 앞장서 왔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보도내용 상당수도 ‘반JMS’의 제보내용에 바탕하고 있다. 정명석 총재의 성추문과 관련된 법적공방에서는 반JMS가 금전적 보상을 노리고 여성들을 포섭하여 위증교사를 했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법원은 해당 가능성을 일축,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들의 진술을 증거 삼아 유죄선고를 내렸다.[22] 그러나 언론은 반JMS를 이끈 김도훈의 수상한 정황을 포착하여 보도했다. 월간지 민정(구 경찰저널)에 소개된 기자의 경험담은 황양사건 당시 김 씨가 여론 선동을 시도한 정황을 제공하고 있으며, 김도훈이 정 총재에게 보낸 사과 편지와 선교회 관계자의 증언은 김 씨가 교단을 상대로 20억 상당의 합의금을 요구한 정황을 제공하고 있다.[17] 2010년 2월 몇몇 언론을 통해 소개된 관련 증거로는 반JMS 주동자들이 2005년 11월 17일에 선교회에 20억을 달라고 요구했던 녹취록과 1999년 11월 15일 작성한 반성문, 2005년 3월 17일, 7월 21일에 작성한 사과편지가 있다.[17][25]

김 씨는 친고죄라는 점을 이용해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들을 관리하며 그들로 하여금 고소하게 만들고 그 고소를 협박용으로 이용해 교단과 흥정한 후 고소인들 모르게 20억을 요구한 뒤, 합의를 끌어내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반의사불벌죄를 이용, 합의에 맞춰 소를 취하하려 했던 계획으로 보인다.[17] 그러나 정 총재는 ‘절대 돈으로 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으며, ‘진실은 진실로만 증명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여 김 씨는 기독교복음선교회 측으로부터 한 푼도 받지 못했다.[27] 결국 김 씨는 2006년 4월 18일, 피해를 주장하는 4명의 여성을 내세워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들은 정의의 편에서 노력한다는 김 씨의 말을 듣고자 노력했으며 김 씨는 ‘피해여성들이 심한 성폭행을 당해 걷기가 힘들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어 하혈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건 현장에 있던 CCTV를 살펴보면 피해자답지 않게 미소를 지었고, 걸음걸이 역시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사건의 피해자 검사결과에서도 처녀막에 이상이 없었고, 정액검사에서도 음성이 나와 어떠한 성폭행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이같은 결과를 증명하는듯,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며 그동안 법정고소를 함께 해온 Y양이 위증을 했다고 말하며 고소를 취하했다. Y양은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나와 경찰과 검찰 진술을 번복하며 피해사실을 완전히 부정했지만, 김 씨는 Y양을 위증죄 혐의로 고발했다. 언론에서는 시대의 정의를 위한다는 김 씨가 기자회견에서 거짓진술을 한 것과 법정에서 양심선언한 Y양을 고발한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17][28]

반JMS조직이 돈을 요구했다는 정황이 발견됨에 따라 일각에서는 정 총재의 재판과 관련해 재심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 된 바 있다.[25][29] 정 총재 측이 새롭게 드러난 증거에 따라 무죄를 요구하기 위한 재심을 청구할 경우 새로운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측되나, 이미 검찰과 법원은 이미 김 모씨를 포함한 원고들의 제보 내용이 맞다고 승소 판결했기 때문에, 이 사건이 재심에서 번복될지의 여부는 미지수이다.[29]

피대협 관련 의혹[편집]

2011년 11월부터 등장한 탈퇴자 조직 ‘JMS 피해보상대책협의회(피대협)’는 선교회와 정 총재를 상대로 집단피해보상을 요구했다. 피대협의 주장은 과거 반JMS의 주장과 대동소이하며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선교회 정명석 총재에게 측근들이 조직적으로 성상납을 해왔고, 현재도 성범죄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정 총재의 사주로 선교회가 조직적으로 반대자들을 테러해왔으며 정 총재가 현재도 테러를 사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대협은 언론보도와 시위를 통해 사회문제로 여론을 조성하면서 선교회 측에 집단피해보상을 요구해왔으나 이에 선교회가 응하지 않자 다수의 고소·고발 건을 내놓았다. 그 사이 피대협의 주장을 보도한 몇몇 언론사는 정정 보도반론 보도를 했다. 이 사건을 주로 보도하는 언론사는 일부 기독교 언론들이며, 메이저 언론사들은 신중하게 사건의 귀추를 주목했다. 피대협 주장을 뒷받침할 뚜렷한 증거가 없고, 몇 가지 모순점들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몇몇 언론들은 피대협 대표 김진형(가명) 씨가 사기죄를 선고받은 사실, 기성 기독교 교단에서 가짜 목사안수증을 받은 의혹 등을 폭로하며 김 씨의 여론몰이에 동조하지 말 것을 경고하기도 했다.[25]

김진형 씨는 과거 선교회 교인들을 상대로 사기사건을 일으켜, 2011년 12월 7일 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이 사건과는 별도로 김 씨는 선교회 교인들에게서 총 채무액 34억 원 이상, 피해자 70여 명에 달하는 사기사건에 고소 당했으나 2011년 10월 12일 채무변제에 대한 합의를 하고 모든 고소가 취하되어 불기소처분 되었다. 그러나 김 씨는 합의로 인해 고소가 취하된 사실, 아직도 수십억 원의 채무가 존재하는 사실을 감추고, 무리하게 고소를 당했다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피해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2011년 12월부터 인터넷 카페를 통해 피해사례를 접수하며 정 총재에게 “100건, 1000건도 고소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교도소에서 조사받느라 영원히 못나오게 할 수 있다.”고 공언했지만 실제로는 고소가 아니라 증거없는 진정고발, 여론몰이만을 계속했다. 오히려 김 씨가 유포한 자료들은 정보통신윤리강령 위반은 물론, 개인의 인권초상권을 지속적으로 침해하고 있어 문제다.[30]

선교회 측은 자신의 잘못을 겸허히 인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책임을 남탓으로 돌리려 하는 김 씨의 행동이 안타깝다고 했다. 또한 과거 엑소더스의 김도훈 씨가 20억을 요구한 정황을 언급하며, 이 또한 돈을 노린 행동이 아닌지 의심스럽고 법적으로 보면 업무방해공갈협박이 확실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에 참고 있다고 했다.[31] 김 씨가 제기한 고소·고발·진정건에 대해 2011년 6월부터 진행된 10여건의 검경 수사는 이듬해 10월을 끝으로 모두 무혐의 종결되어, 정 총재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반대 조직의 주장은 힘을 잃고 내부분열로 뿔뿔이 흩어졌다.[8][32]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정명석 (2013년). 《시로 말한다》. 도서출판 명. ISBN 9788991459144. 
  2. 정명석 (1990년). 《하늘말 내말 1》. 도서출판 명. ISBN 8995266694. 
  3.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총재 ‘회화 작품’ 전시회, 충남 금산서 개최 - 종교가로서 예술 흡수한 작가…장르의 벽 허물고, 미적 화합 꾀하는 실험정신 돋보여”. 우리들뉴스. 2014년 3월 10일. 2017년 2월 24일에 확인함. 
  4. “大法, JMS 정명석 징역 10년 확정”. 연합뉴스. 2009년 4월 23일. 
  5. 조은타임즈 (2009년 2월 1일). “정명석 총재는 여론재판의 희생자인가”. 뉴스웨이브. 2017년 2월 18일에 확인함. 
  6. 서울중앙지방법원, 2005.08.02. 2004가합64765 손해배상(기) 및 방송보도금지청구
  7. 서울고등법원, 2010.05.26. 손해배상
  8. “JMS 정명석 총재 사건 모두 무혐의 종결 - 지성이면 감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는 것”. 정경뉴스 153호. 2012년 12월. 
  9. 정명석 (1996년). 《영감의 시 2》. 도서출판 명. ISBN 8986813017. 
  10. 정명석 (1991년). 《비유론》. 도서출판 명. ISBN 9791195506200. 
  11. 정명석 (1998년). 《생명의 말씀》. 도서출판 명. ISBN 9788986813067. 
  12. “CGM자원봉사단, 하나 사랑회 등 산하 봉사단체”. Headline News. 2005년 6월 1일. 
  13. “새 말씀으로 시대의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기독교복음선교회 설립자 정명석 총재”. 주간인물 481호. 2006년 4월 6일. 
  14.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총재”. 시사저널. 2005년 8월. 
  15. 《한국시 대사전》. 이제이피북. 2011. ISBN 9788996612704. 
  16. “정명석 시인, ‘시의 여인’ ‘시로 말한다’ 감각적 구상 그림 돋보여”. NewsWave. 2013년 9월 30일. 2017년 2월 22일에 확인함. 
  17. “JMS(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총재는 왜? 누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가?”. 민정 19호. 2010년 2월 15일. 
  18. “기독교복음선교회를 둘러싼 소문과 진상”. 주간인물 495호. 2006년 8월 26일. 
  19. “정명석 총재 관련 보도에 대한 정정보도문”. 연합뉴스. 2015년 3월 16일. 2017년 2월 22일에 확인함. 
  20. “[정정보도문] 과거 종교집단 수사 저항…교주 ‘해외도피’”. MBN. 2015년 1월 13일. 2017년 2월 22일에 확인함. 
  21. “바로잡습니다 - 1155호”. 일요신문. 2014년 7월 7일. 2017년 2월 22일에 확인함. 
  22. 서울고등법원 2009. 2. 10. 선고 2008노2199 판결
  23. “재판결과에 대한 CGM의 입장”. 2009년 2월 11일. 
  24. 대법원, 2009.04.23. 2009 선고 2009도2001 판결
  25. “JMS 정명석 총재 사건 사회문제인가 종교전쟁인가 - 진실의 판명은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고 십자가의 길을 갈 뿐”. 정경뉴스 147호. 2012년 5월 31일. 
  26. 김준호 기자 (2010년 2월 12일). “기독교복음선교회(JMS)와 정명석 총재, 가려진 10년의 진실 <1부> S방송사 고발프로의 허위성”. 뉴스데일리. 2017년 2월 14일에 확인함. 
  27. 김준호 기자 (2010년 3월 31일). “기독교복음선교회(JMS)와 정명석 총재, 가려진 10년의 진실 <3부> 정명석 총재 알고 보니 피해자(?), K씨 20억 돈 요구”. 뉴스데일리. 2017년 2월 18일에 확인함. 
  28. 김준호 기자 (2010년 2월 26일). “기독교복음선교회(JMS)와 정명석 총재, 가려진 10년의 진실 <2부> 성폭력 피해자라 주장하던 Y씨, 법정서 양심선언”. 뉴스데일리. 2017년 2월 18일에 확인함. 
  29. 문일석 기자 (2010년 2월 15일). “월간지 記者 추적 “정명석 사건 재심필요””. 브레이크뉴스. 2017년 2월 18일에 확인함. 
  30. “기독교복음선교회, 다시 주목받는 이유”. NewsMaker. 2012년 4월. 
  31.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 JMS는 이단도 아니고 사탄도 아닙니다”. 민정 22호. 2012년 3월 1일. 
  32. 박원기 기자 (2012년 11월 2일). “검찰, 'JMS 미성년자 성범죄 의혹' 무혐의 처분”. KBS. 2017년 2월 22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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