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 제국의 관직과 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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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바실레우스 2세. 제국 왕관천사가 손을 얹고 있는 전승의 황제 복장과 그림의 전형적인 예이다.

비잔티움 제국로마 제국을 계승하여, 복잡한 귀족 제도관료 제도 체계가 있었다. 피라미드의 정점에는 전제군주(단독황제)와 왕권신수설로 기인된 황제가 서 있었다. 그의 아래로는 무수히 많은 고관들과 황실 수행원들이 비잔티움 국가의 행정 조직을 관리하고 있었다. 게다가, 황제가 종속하는 의미 또는 우호적인 의미로 외국의 통치자들에게 수여하는 다수의 경칭이 존재했다.

황제가 실재하는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른 칭호들이 채택되거나 폐지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명성을 잃거나 얻었다. 처음의 비잔티움 제국은 그 때까지만 해도 로마 제국과 구별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국의 다양한 칭호들은 후기 로마 제국의 칭호들과 같았다. 7세기에 헤라클리우스 시대 경부터 많은 칭호들이 구식이 되었다. 알렉시우스 1세 시대 경에, 많은 지위들이 새롭게 또는 철저히 바뀌었지만, 알렉시우스 통치 기간 부터 1453년에 제국의 몰락 때까지 그들은 근본적으로 같은 칭호들을 유지했다.

역사적 배경[편집]

초기 비잔티움 시대(4세기~7세기 초반)에, 정부의 체계는 디오클레티아누스콘스탄티누스 대제 통치 하의 후기 로마 시대에 성립된 표준을 따랐다. 그 시대의 체계에서는 내정 고관과 군사 고관 그리고 고관에 상응하는 칭호들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고, 원로원에서 일원임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중요한 특징이 있었다.[1] 7세기에 무슬림 정복으로 인해 광대한 영토를 상실하게 된 비잔티움의 국면 변화로 그 체제는 폐지되었고, "고전" 또는 비잔티움의 중기 시대(8~11세기) 동안에, 새로운 왕실의 중앙관리 체계가 부상하게 되었다. 그 체계에서, 옛 칭호들에서, 구식 칭호들에서, 공공 기관에서 파생된 새로운 칭호들과 특정한 위계의 칭호들이 관리들 각자에게 수여되었다. 프로토스파타리오스 계급의 모든 관리들은 원로원의 의원에 의해서 임명되었기 때문에, 원로원 계층은 상류층 관료주의의 거대한 부분과 결속된 위치를 유지했다.[1] 그 시대에, 많은 가문들이 여러 세기 동안 중요한 위치를 유지했고, 황제들 중 몇 명은 귀족 계층에 의해서 옹립되었다. 그 체계는 크게 두 집단으로 구별되는데, 메트로폴리스의 내정 귀족과 지방 군사 귀족이 그 두 집단이다. 후자는 지역적에 기인하여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동시대의 서유럽과는 대조되게 그들 소유의 군대는 갖지 못했다. 11세기에 후자 측에서 대이변의 손실로 다시 제국의 행정관리 체계의 재편성을 촉진시켰다. 체계의 변화는 콤네누스 왕조의 관할로 이루어졌는데 과거의 직위와 칭호들은 차츰 폐지 되었고, 반면에 대부분 제국과의 관계를 수용한 가문들과의 친밀함을 나타내는 새로운 경칭들의 배열이 떠올랐다.[1] 콤네누스조 제국 황제권과 그 다음의 팔라이올로구스조의 계승권은 기본적으로 귀족 가문들과의 제한된 교혼에 의해 엄중히 통제되는 국가 정부를 유지하는 토지 소유 귀족 제도가 기반에 있었다. 예를들어, 11세기와 12세기에 약 80 가문의 내정 귀족들과 64 가문의 군사 귀족들이 확인되었는데 매우 거대한 나라에 비해서 너무나 적은 수이다.[2] 예를 들어, 게오르게 코디누스의 보고를 보면, 팔라이올로스조 체계에서, 수 세기 동안에 결국에 고위 계급은 평가 절하되고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위치를 차지했으며 고관 명칭과 존엄 칭호가 분류되던 옛 구별법은 소멸되었는지에 대해서와 함께 그 동안에 축적된 체계적 명명법들을 이해할 수 있다.[1]

제국 칭호[편집]

다음의 칭호들은 가장 높은 칭호들이며, 황족 가문 일원들 또는 황제의 바램에 따라 친교를 맺은 소수의 선택된 외국의 통치자들에게만 한정되었다.

황제 칭호[편집]

마누엘 1세 콤네누스가 새겨진 동전이며, 뒷면에는 그의 칭호인 포르피로게네토스가 새겨져 있다.
  • 바실레우스(βασιλεύς) : 그리스어로 "군주"이며 처음에는 로마 제국의 그리스어 문화권 영토의 왕들이 사용했다. 이 칭호는 페르시아의 황제가 사용하기도 했다. 헤라클레우스가 629년에 그 칭호를 옛 라틴어 칭호인 아우구스투스에 대체하여 채택하였으며 그리스어로 "황제"의 뜻이 되었다. 헤라클리우스는 아우토크라토르(αὑτοκράτωρ : "전제 군주(autocrat)", "절대 군주(self-ruler)")라는 칭호와 키리오스(κύριος : "제국의 주인(lord)")라는 칭호도 사용했다.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콘스탄티 노플에서 "바실레우스" 칭호는 기독교 통치자인 황제만을 위하여 마련되었으며, 서유럽의 왕은 라틴어 '렉스("왕")을 그리스어화 한 레가스라 칭했다. 여성형 바실리사는 "여제"였다. 여제들은 유세베스타테 아브고우스타("가장 독실한 아우구스타")로 알려졌으며, 키리아("제국의 여성 주인(Lady)") 또는 디스포니아("여성 절대 군주(despotes)")라고도 불렸다. 장자 상속을 해주거나 또는 실제로 장자 상속을 받는 경우는 비잔티움 제국권의 계승에서는 단 한번도 합법적으로 성립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원칙상 로마의 황제는 원로회, 시민, 군대의 공통 발성 투표로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그 원칙은 로마의 "공화정" 전통에 확고한 뿌리를 두고 있었으므로, 황권의 세습은 기각되었고 공화정의 다양한 직분의 의원들이 한 사람을 집중 지목하여 지명되었다. 많은 황제들이 맏아들들의 황위 계승권을 보호하는데 관심을 기울였고, 황제가 죽더라도 잠시간 황위의 공백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의 맏아들들이 어릴 때 부터 섭정 황제의 황위에 올렸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황제를 선출에 의해 옹립할 필요성이 전혀 없었다. 전황제의 미망인이 재혼한 후이거나, 진정으로 강제 퇴위된 황제가 수사가 된 다음에, 새로운 황제가 황위에 오르는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몇 황제들은 무능하다고 간주되어 퇴위 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군사적 패배 이후에 몇 명은 살해당했다.
  • 포르피로게니토스(πορφυρογέννητος) ─ "티레의 자색 태생" : 그들의 황위 등극의 합법성을 강조하기 원하는 황제들은 그들의 이름에 (자색(puple) 대리석 현판이 문 위에 붙어 있어서 포르피라라고 불린) 황궁 분만실에서 이 칭호를 덧붙혔다, 그래서 그렇게 정권을 잡고 있는 황제는 황권의 합법성에 대한 어떠한 극심한 논란과 반대를 초월하여 군림 할 수 있었다.

황족 칭호[편집]

마누엘 2세 팔라이올로고스 황제와 그의 가족들: 헬레나 드라가스 황후(오른쪽), 그들의 아들 요한네스, 안드로니코스, 테오도레, 요한네스는 그의 부친의 세자이며 섭정황제로, 황제의 전통의상의 레플리카를 입고 있다.
  • 데스포트(δεσπότης) ─ "제국의 주인(lord)" :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대 때부터 황제들 자신을 칭하였으며, 군림하고 있는 황제들의 아들들에게 경칭으로 부여했다. 동전에 바실레우스 대신에 데스포트가 널리 사용되었다. 12세기, 마누엘 1세 콤네노스는 이 칭호를 황제 다음으로 가장 높은 "부여된" 칭호로 구분했다. 처음에 데스포트 칭호는 사실상 외국의 헝가리의 벨라 3세에게 쓰여 헝가리가 비잔티움의 공납국이라는 의미로 여기게 했다. 나중에, 데스포트는 데스포타테의 보유자가 될 수 있었는데, 그 국가는 1291년 이후에 비잔티움의 황위 계승권을 보유했던 미스트라스가 수도인 모레아 데스포타테를 예로 들 수있다. 이 칭호의 여성형인 데스포이나는 여성 데스포트 또는 데스포트의 황후를 칭했지만, 여제라고도 알려졌다.
  • 세바스토크라토르(σεβαστοκράτωρ) ─ "존경받는 통치자(Venerable Ruler)" : 알렉시우스 1세 콤네노스아우토크라토르세바스토스(아래 참조)를 결합해서 만들었다. 최초의 세바스토크라토르는 알렉시오스의 형제 이사아키오스였다. 이 칭호는 황제와 가까운 인척관계라는 의미 만을 지닌 본질적으로 목적 없는 칭호였지만 데스포테스 바로 다음으로 높았다. 여성형은 세바스토크라토리사이다. 세바스토크라토르라고 불린 최초의 외국인은 1161년에 이 칭호를 받은 세르비아스테판 네마냐이다. 이름이 칼로이안인 불가리아의 상류층도 이 칭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 카이사르(καῖσαρ) ─ "시저(Caesar)" : 원래는 초기 로마의 황제 칭호였고, 하위의 섭정황제나 명백한 황위 계승권자에게 사용되었으며, "수여된" 존엄 칭호 가운데 으뜸이었다. 이 칭호를 지닌 사람은 광범위한 특권, 커다란 명성과 권력을 누렸다. 알렉시우스 1세가 세파스토크라토르를 만들었을때, 카이사르는 세 번째로 유력한 칭호가 되었고, 마누엘 1세가 데스포테스를 만든 다음에는 네 번째로 유력한 칭호가 되었다. 여성형은 카이사리사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 칭호를 지닌 사람은 가장 아주 중요한 지위에 있었고 소수의 고위층 사람들과 특히 뛰어난 고관들에게 수여되었으며, 드물게 딱 한번 외국인에게 수여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 2세는 705년에 불가르족의 칸 불가리아의 테르벨에게 카이사르의 칭호를 붙혀 줬다. 그 후에 그 칭호는 (라틴어에서 유래하여 불가리아어를 거쳐 러시아어, 세르비아어, 그 외의 언어들로 변화하며) 슬라브어파 용어 차르로 발전했다. 안드로티쿠스 2세 팔라이올로고스는 1302년에 카탈로니아의 당당한 중대의 지도자 로게르 데 플로르에게 이 칭호를 붙혀주기도 했다.
  • 노빌리시모스(νωβελίσσιμος) ─ 라틴어 노빌리시무스(Nobilissimus, "가장 고귀한")에서 유래 : 이 칭호는 원래 오직 카이사르보다 하위인 황제와 가까운 인척에게만 주었다. 콤네노스 황조 시대 동안에, 이 칭호는 고관들과 외국의 고위 인사들에게 수여되어 그 지위에 대한 의미가 희석되었다. 이 칭호를 대신해서 프로토노빌리시모스 칭호가 만들어졌고, 그 의미가 쇠퇴하기 시작할 때 부터는, 더 증음된 형태의 칭호인 프로토노빌리시모히페르타토스 만으로 대부분 대체 되어 사용되었다. 후기 팔라이올로고스 시대 쯤에, 전자 먼저의 칭호는 사라졌고, 반면에 후자의 칭호가 지방 고관들에게 사용되었다.
  • 쿠로팔라테스(κουροπαλάτης) ─ 라틴어 쿠라 팔라티(cura palatii, "황궁 담당관")에서 유래 :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에 처음 사용되었다고 전해지며, 제국 황궁의 관리 담당관이었다. 그러나, 이 칭호를 지닌 사람은 황제와 매우 근접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직위에서 파생되는 영향력이 큰 권력과 커다란 부로 그 칭호에 엄청난 명성이 축적되었음을 의미했다. 이 칭호는 황족 가문의 중요한 구성원에게 수여 되었지만, 11세기부터 축소되어, 아르메니아캅카스 이베리아의 속국 통치자들에게 주로 수여 되었다.
  • 세바스토스(σεβαστός) ─ "한 명의 아우구스트(August One)" : 이 칭호는 라틴어의 용어 아우구스투스 또는 아우고우스토스의 그리스어로 번역된 축어이며, 때때로 황제가 사용하였다. 11세기의 2반세기에는 분류된 칭호가 나타나났고,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가 그 칭호를 그의 형제들과 인척들에게 수여했다. 이 칭호의 여성형은 세바스테이다. 특별 칭호 프로토세바스토스(가장 존경받는 한 사람, "First Venerable One")은 알렉시오스의 둘째 형 하드리아노스에게 수여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으며, 베니스의 도게와 이코니움의 술탄에게 수여되기도 앴다. 12세기 동안, 그 칭호는 황제의 자녀들과 세바스토크라토르의 자녀들과 외국의 연장자인 고관들에게 사용되는 칭호에 머물렀다. 그러나, 12세기 동안에 이 칭호의 확산과 평가절하의 평행 절차는 종종 (모든, "all"), 히페르(상위의, "above"), 프로토(첫 번째, "first")인 터무니 없이 과장된 접미사가 사용되게 하여, 예를 들어, 판세바스토스, 판히페르세바스토스 또는 히페르프로토판세바스토히페르타토스와 같은 뒤얽혀 배열된 단어가 만들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 혼합 칭호들 중 몇은 사실상 12세기까지 실존했으며, 그 모든 칭호들은 급격히 의미의 중요성이 쇠퇴했다.

8~11세기 황실 칭호[편집]

니케포루스 3세 황제. 1070년대에 필사본 삽화이다. 황제의 측면에는 진실과 정의가 인격화 되어 있고, 연장자인 황실 고관들이 있다. 왼쪽에서 부터: 프로에드로스에피 토우 카니클레이오우, 프로에드로스프로토베스티아리오스(수염 없는 환관), 황제, 프리에드로스데카노스, 프리에드로스메가스 프리미케리오스. [3]

타크티콘 우스펜스키와 필로테오스의 클레토롤로기온(899년)과 콘스탄티누스 포르피로게네토스의 저서들과 아래의 칭호들이 제공하는 정보에 따르면, 8~11세기에, 비잔티움 제국은 작위(ἀξίαι)에 대하여 별개인 두 부류로 구분지었다. 한 분류는 순수한 경칭인 황실 칭호이며 계층의 상징으로 수여된 수여 작위(διά λόγου ἀξίαι, "dignities by award")와 또 한 분류는 국가 고관들에게 제국의 선언으로 협의 수여된 선언 작위(διά λόγου ἀξίαι, "dignities by proclamation")이다. 전자는 수염난 사람(바르바토이 : 라틴어 barbati 에서 유래한 βαρβάτοι로 환관이 아님, "Bearded Ones")과 환관(ἐκτομίαι, " eunuchs")과 여성에게 각각 다르게 구별되어 수여되는 실제 칭호로 그 들중 적격자에인 사람에게 의존하는 그 3 분류의 하위 범주로 세분된다. 국가 관리들은 통상 중요한 두 분류가 혼합되었으므로, 국가 고관들은 마기스트로스("수여된" 칭호)와 로고데테스 토우 드로모우("선언된" 칭호) 모두를 지니게 되었다.

"수염난 사람"의 칭호[편집]

"수염난 사람"(남성)들에게 "수여 되는" 칭호들은 다음과 같은 순서의 위계를 가진다. :

  • 프로에드로스(πρόεδρος) ─ "대표(president)" : 본래는 환관에게 마련해둔 칭호였고,(아래 참조) 11세기가 되서야 "수염난 사람"의 칭호가 되었으며, 그 뿐만 아니라, 특히 군사 관리에게 사용되었다.[4]
  • 마기스트로스'(μάγιστρος) : 초기 비잔티움 국가에서는, 마기스테르 오피키오룸은 가장 연장자인 공무원이었지만, 그의 의무들은 차츰 다른 공무원에게 돌아갔으며, 8세기 쯤에는 그 칭호만 남았다. 이 칭호는 매우 고위의 명예 칭호가 되어, 10세기까지 드물게 수여 될 뿐이었다.[5] 10세기 경에는, 이 칭호를 지닌 사람은 12명 이었으며, 그들은 프로토마기스트로스 칭호를 가진 사람들 가운데 가장 선임인 사람들이었다. 그 후 그 칭호의 보유자들의 수는 급등했고, 12세기에 관청은 때때로 그 칭호를 폐지했다.[6]
  • 베스타르체스(βεστάρχης) : 10세기의 2반기에 고위층 환관에게 채택되었고, 1050년 부터 "수염난" 연장자인 군사 장교와 콘스탄티노플의 재판관에게 수여 되었다. 그 칭호는 12세기 초반에 사라졌다.[7]
  • 베스테스(βέστης) ─ 연장자의 경칭으로, 요한네스 1세 치미스케스 집권기에 처음으로 증명된다. 이 칭호는 환관과 환관이 아닌 사람 모두에게 수여되어 12세기 까지 실존했다.[7]
  • 안티파토스(πατρίκιος) ─ "지방 총독(Proconsul)" : 처음에는 가장 고위의 지방 통치자를 의미했으며, 9세기에 테마 제도가 생성 될 때까지 실존으며, 그리고 순수한 경칭이 되었다. 11세기에는 그 중요성이 쇠퇴하여 대응으로 상이한 프로탄티파토스가 제정되었지만, 12세기 말쯤에는 두 칭호 모두 다 사라졌다.
  • 파트리키오스 ─ "도시귀족(patrician)" : 콘스탄티누스 대제 집정기에 가장 높은 귀족의 칭호로 성립되었으며, 콤네누스 왕조 시대에 소멸 될 때까지 가장 높은 존엄 칭호 가운데 하나로 남았으며, 화관과 외국의 통치자를 포함한 고위 관리들에게 수여되었다. 파트리키안의 배우자는 파트리키아 칭호를 지녔다. (조스테 파트리키아와는 다름. 아래 참조)[8]
  • 프로토스파타리오스(πρωτοσπαθάριος) ─ "첫 번째 스파타리오스(first spatharios)". 이 칭호가 뜻하는 바는, 처음에는스파타리오이의 지도자의 의미로 가지는 칭호였다. 예를 들면, 6세기에 나르세스가 이 칭호를 지녔다.[9] 나중에 이 칭호는 가장 일반적인 고위 황실 칭호들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한 테마를 당당하는 제국의 타그마타 또는 스트라테고이의 지휘관인 로고테타이와 같은 연장자인 관리에게 수여되었다.'프로토스파타리오스 칭호는 원로회에 입회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음을 의미 하기도 했다. 그의 관청은 팔라이올로고이 시대 때까지 실존했으나, 직무 서열은 35위로 내려갔다.
  • 디시파토스(δισύπατος) ─ "두배의 집정관(twice consul)". 매우 드문 존엄 칭호로, 8세기부터 유래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9]
  • 스파타로칸디다토스(σπαθαροκανδιδάτος)
  • 스파타리오스 ─ "스파타-소유자(spatha-bearer)" : 그 칭호가 의미하는 바로는, 스파타리오이(스파타리오스들)은 제국의 특수 경비 요원들이었다. 그들은 황궁 안에서 특정 의무들을 이행했다. 이 칭호는 12세기 초반까지 실존했다.
  • 히파토스(ὕπατος) ─ "집정관(consul)" : 로마 공화정과 제국에서, 그 칭호는 처음에 매년마다 특히 우수한 시민들 두 명("보통 집정관들" : the "ordinary consuls")에게 수여했고, 그 직분에 뒤얽힌 터무니 없이 많은 지출때문에,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그 칭호 제도를 중지시켰다. 7세기 까지 이 칭호 제도는 황제들의 동의 하에 가끔씩 지속되었다. 그러나 '히파토스 또는 아포 히파톤("전임 집정관")의 표장들로 보아, 명예상의 집정관이 이 칭호를 계속해서 사용되했음을 알 수있다.[10] 이 칭호는 종종 남이탈리아 시국의 통치자에게 협의 수여 되었다.
  • 스트라토르(στράτωρ) ─ "말 사육가(groom)"
  • 칸디다토스(κανδιδάτος) : 라틴어 candidatus에서 유래했고, 그 칭호를 지닌 사람들의 흰색 튜닉에 기인해서 이름 지어졌다. 그들은 본래 스콜라에 팔라티네에서 선발된 경호대원들 이었다. 이 칭호는 콤네누스 왕조 시대에 사라졌다.
  • 바실리코스 만다토르(βασιλικός μανδάτωρ) ─ "제국의 전령(imperial messenger)"
  • 베스테토르(βεστήτωρ, 라틴어: vestiarium)들은 제국의 의상부(wardrobe) 관리들 이었다. [11]
  • 실렌티아리오스(σιλεντιάριος), 본래는 황실의 관습 유지를 책임지고 있던 조신들의 집단이었다.
  • 스트라텔라테스(στρατηλάτης), 라틴어 아키스테르 밀리툼의 번역 칭호이며, 라틴어 ex praefectis의 번역 칭호 아포에파르촌(ἀποεπάρχων 또는 ἀπὸ ἐπάρχων)이다. 이 두 칭호들은 필로테오스 명부에 동등하게 올려졌다. 6세기 까지도 두 칭호들 모두 다 커다란 존엄성을 지녔지만, 그 이후 부터는 평가절하 되었다.[12]


환관 칭호[편집]

환관들에게 "수여 되는" 칭호들은 다음과 같은 순서의 내림차순의 서열을 가진다. :

  • 프로에드로스(πρόεδρος) ─ "대표(president)" : 이 칭호는 960년대에 니케포루스 2세 포카스에 의해 창안된 완전히 새로운 지위를 나타내는 칭호로 환관 파라코이모메노스바실 레카페노스에게 맨처음 수여되었다. 그 존엄 칭호의 보유자는 원로회 의장이기도 했으며 용어 프로에드로스는 종종 예를 들어, 프로토노타리오스를 의미하는 노타리오이(노타리오스들)의 프로에드로스가 되는, 상위 지위의 표시로 사용되었다. 이 칭호는 11세기에 그 칭호의 보유자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서 프로토프로에드로스가 제정됨에 따라, 환관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수여 자격이 부여되어, 더 폭 넓게 수여되었다.[4]
  • 베스타르체스(βεστάρχης) : 10세기의 2반기에 고위급 환관에게 채택되었고, 1050년 경에 "수염난" 선임 군사 장교들과 콘스탄티노플 사법관들에게 수여되었다. 이 칭호는 12세기 초반에 사라졌다.[7]
  • 파트리키오스 : "수염난 사람"에게 수여되는 파트리키오스' 칭호와 같다.
  • 베스테스(βέστης) : "수염난 사람"에게 수여되는 베르테스 칭호와 같다.[7]
  • 프라이포시토스(πραιπόσιτος) : 라틴어 praepositus에서 유래 했으며, "바로 위의 칭호와 서열이 같다."
  • 프로토스파타리오스 : "수염난 사람"에게 수여되는 프로토스파타리오스 칭호와 같다.
  • 프리미케리오스 (πριμικήριος) : 라틴어 프리미케리우스(primicerius)에서 유래 했으며, "서열은 이 환관 칭호 목록의 첫 번째와 같다."
  • 오스티아리오스 (ὁστιάριος) : 라틴어 ostiarius에서 유래했으며, "경비원(doorkeeper), 문지기(usher)"의 뜻이다.
  • 스파타로코우비코울라리오스(σπαθαροκουβικουλάριος)
  • 코우비코울라리오스(κουβικουλάριος) : 라틴어 cubicularius에서 유래했고, "시종(chamberlain)"이다.
  • 니피스티아리오스 라틴어 ostiarius

여성에게 마련된 단일형 특수 칭호는 조스테 파트리키아(ζωστὴ πατρικία, "무장한 파트리키아, Girded patrikia")이다. 이 칭호는 횡후가 명예칭호로 받았고, 필로테오스에 따르면, 마기스트로스 뿐만아니라 프로에드로스보다 높았을 뿐더러, 단지 쿠로팔라테스보다 아래일 뿐으로, 그 위계서열이 매우 높았다. 그 칭호는 9세기부터 알려졌고 11세기에 사라졌다.[13] 그 외의 경우에, 여성은 남편의 칭호의 여성형 칭호를 보유했다.

황실 관리[편집]

  • 파라코이모메노스 ─ "가까이에서 잠을 자는 사람"의 축어 : 황제의 침실에서 잠을 가는 황실 고관이다. 이 직분의 보유자는 통상적으로 환관이었으며, 9~10세기 동안에, 종종 사실상(데 팍토) 황궁관리장(chief ministers)으로 역할했다.
  • 프로토베스티아리오스 : 일반적으로 황제의 개인 의상실을 담당하는 황제의 어린 친척 가운에 한 명이었으며, 특별히 군사 작전에 투입 되었다. 그는 때때로 제국 황족의 다른 일원으로서 황제의 개인 재무 담당관으로 책임이 있기도 하였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대 이전의 옛 용어는 쿠로팔라타( 또는 그리스어로 코우로팔라테스)이다. 이 용어는 초기 공식 재무 요소 담당관인 코우라토르(쿠라토르), 에서 유래 했다. 베스티아리오스는 보다 하급 관리였다. 프로토베스티아리아베스티아리아는 황후를 위해서도 같은 기능을 수행했다.
  • 파피아스 : 매일마다 황실 대문을 열고 닫아야하는 책임을 지닌, 제국 황실의 고위 문지기였다.
  • 핀케르네스 : 처음에는 황제에게 술 따르는 사람이었으나, 후일에 연장자의 경칭이 되었다.
  • 카니클리오스 : 제국 잉크스탠드의 경비원으로, 제국 대법관청의 연장자 관리들 가운데 한 명이 담당했다. 콤네누스와 팔라이올로고스 시대에, 그 칭호의 보유자 중에 몇 명은 사실상(데 팍토) 제국의 황실관리장(chief ministers)이었다.
  • 에피 테스 트라페제스 : 연회기간 동안 제국의 테이블을 관리하는 공무 책임관이었다.

군사 관리[편집]

비잔티움 군대의 휘장

육군[편집]

엑사르초스 : 엑사르츠들은 이탈리아나 아프리카 처럼 제국의 원거리 지역들의 통치자들 이었다. 그들은 내정과 군사 권력을 모두 겸해, 사실상 부왕으로 역할하며, 다른 지방의 통치자들보다 훨씬 더 커다란 독립 지위를 누렸다. 도메스티코스 : 도메스티코이(도메스티코스들)은 처음에는 제국 경비대였고, 나중에 후기 로마 군대에서 선임 참모 장교로 역할했다. 비잔티움 시대에, 그들은 최고위급 군사 장교들과 공존 했으며, 포함되는 칭호들은 다음과 같다. :

  • 메가스 도메스티코스(고위 도메스티크, "Grand Domestic") : 육군 종합 사령관.
  • 도메스티코스 톤 스촐론(군사 학교의 도메스티크, "Domestic of the Schools") : '처음에는 여러 경비대들이었고 나중에는 타그마가 된 스촐라에 팔라티나에의 사령관이다. 이 칭호는 매우 명성있는 칭호였고, 9세기 경에, 이 칭호의 보유자는 육군 총사령관의 임무를 수행했다. 959년 경에, 이 직위는 동도메스티코스와 서도메스티코스로 분할되었다.
  • 도메스티코스 토우 테마토스(테마의 도메스티크, "Domestic of the Themes") : 유럽 테마들의 한 사람, 아시아 테마들의 한 사람으로, 군사 테마들의 사령관이며 조직자이다.
  • 스트라테고스 : 빈번히 변경 부대의 대장의 칭호를 가지기도 한, 군인이며 나중에는 테마의 내정군 사령관이 되기도 하였다.
  • 카테파노 : 9세기에 전개된 칭호로 이탈리아의 카테판과 같이 속령을 포함한 두 지역 또는 그 이상의 테마들을 겸한 지역의 통치자이다.
  • 토우르마체스 : 군사 부대인 투르마의 지휘관이다.
  • 프로스트라토르 : 콤네누스조 황제들과 팔라이올로고스조 황제들 통치 하에서 마굿간 관리인(stable master) 칭호를 시작으로, 이 용어는 육군의 제2급 지휘관에게 사용되었다.
  • 스트라토페트라체스(병영 관리자, "Master of the Camp") : 이 직위애 있는 사람은 군대의 식량과 무기들을 확실히 비축하는 임무가 있었다.
  • 호플라타르체스 또는 아르체게테스 : 보병군이 재편성되고 그 중요도가 높아지던 10세기 중반에 처음 나타났으며, 대규모 군대에서 보병의 총지휘관이다.
  • 프로토켄타르초스 또는 켄타르초스 : 소규모 야전 부대의 사령관이다. 이 이름은 라틴어 켄투리온(centurion)에서 유래했다.
  • 메라르체스 : 육군의 한 (메로스) 부대의 지휘관이다. 일반적으로 육군은 이와 같은 사령관들 두세명으로 각각 분리되어 있었다.
  • 탁시아츠에스 또는 칠리아츠에스 : 육군에서 보병 연대(탁시아치아 또는 칠라르치아)의 지휘관이다.
  • 카발라리오스 : 이 칭호는 라틴어 caballarius에서 차용되었으며, 본래는 기병 군인을 의미했다. 팔라이올로고스 시대에 이 칭호는 소수 황실 칭호가 되었다.[14]


해군[편집]

  • 메가스 도욱스 : 대공작 또는 대공, 현시대의 해군 사령 장관과 기본적으로 동등하다. 이 직위는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가 제국과 테마들의 나머지 해군 부대들을 단일 제국 해군으로 통합할 때, 제정했으다. 팔라이올로고스 왕조 시대 말 경에 대공은 해군에만 국한되지 않고 정부와 관료의 수장이었다.
  • 아미랄리오스 : "제독(Admiral)"의 그리스어 번역 용어, 이 직위는 후기 팔라이올로고스 시대에 성립되었으며, 아미랄리오스메가스 도욱스 대리였다.
  • 메가스 드로웅가리오스 : 비잔티움 해군의 총사령관장직으로 사작하여, 제정된 이후의 메가스 도욱스의 해군 장교 직분의 위관이 되었다.
  • 드로웅가리오스 : 이 칭호는 육군과 해군에 모두 존재했다. 8~11세기 해군에서, 드로웅가리오스는 제국 중앙 함대 또는 테마 함대의 한 함대의 사령관이었다.
  • 코메스 또는 드로웅가로코메스 : 전함 소함대의 지휘관.
  • 켄타르초스 또는 나우아르초스 - 배의 선장.

다른 군사 칭호들[편집]

행정 관리[편집]

테오필루스 황제와 그 측면의 조신들. 스킬리트제스 연대기에서 발췌.

광대한 비잔티움의 관료 제도에는 많은 칭호가 있었으며 귀족과 군사 칭호들 보다 더 다양한 칭호들이 있었다. 그 시대에 콘스탄티노플에서, 관료 칭호들이 수천 가지는 안되어도, 수백가지는 되었다. 교회와 군사처럼 , 그들은 차별화된 정성들인 의상을 입었고, 종종 거대한 모자를 쓰기도 하였다. 이 칭호의 소유자들에는 황제를 직접적으로 시종들었던 더 평범한 사람들의 일부도 포함된다.

  • 파에토리안 프레페크트 : 처음에 집정관의 장관(Praetorian Prefect) 칭호는 제국의 동부와 서부 지구의 사령관에게 사용되었던 옛 로마의 직위였다. 그 칭호는 3세기에 대폭적인 내정과 군사 개혁으로 인해 폐지되었다. 이 칭호는 도메스티코스로 발전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개혁 이후에, 프레페크트의 기능은 행정, 재무, 사법, 입법에도 이르는 넓은 범위를 포괄했다. 지방 통치자들은 그의 추천으로 임명되었고, 그가 황제에게 승인을 받아야 해임되었다. 그는 지방들의 통치자들에게 정기적으로 행정에 관해서 보고 받았다. 그는 사유재산을 가질 수 있었으며 세금으로 충당되는 수입이 있었고, 그에게 양도된 군대에 대한 식량 지원을 받았다. 그는 항소에 관한 최고 재판권도 있었다. 피고인들이 하급 재판소에서 그의 법정으로 보내진 사례라면, 더 이상 황제에게 호소 할 수 없었다. 그는 그의 권한으로 집정관 칙령들을 공포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세부 사항들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 바실레오파토르(βασιλεοπάτωρ) ─ "황제의 부친" : 비잔티움 역사에서 딱 두번 수여되었던 예외의 칭였다. 바실레오파토르는 황제의 친부가 아니며, 그 칭호는 가계를 통틀어 황제와 친족이라는 필연적인 표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수여자들 둘은 콘스탄티누스 7세와 단기간 섭정했던 황제의 계부 즉, 스틸리아노스 자오우트제스들인 현명한 레오 6세로마노스 1세 레카페노스였다. 그 직위는 "법령" 관저 서열 가운데 으뜸이었으며 폭넓은 행정 의무들이 수반되었다.
  • 프로타세크레티스 : 상서원(chancery) 수장의 초기 칭호로, 정부 공문서 보존 책임관이었다. 아세크레티스는 그 보다 하급이었다. 다른 하급 직위들에는 차르토울라리오스(제국 문서 담당관) , 카스트렌시오스(황실 출납계원) , 미스티코스(보좌관), 에디키오스(국고 관리관)들이 포함된다.
  • 로고테테스 : 광범위한 관료 제도에서 장관직이며, 엄밀한 근무지에 따라 결정되는 다양한 직분이 있었다. 로고테테스들은 가장 중요한 관료들 가운데 일부였다. 그들은 다음과 같다.:

로그테테스들은 처음에는 황제에게 약간의 영향을 끼쳤지만, 마침내 명예직이 되었다. 제국 후기 시대에, 대로고테테는 메사존("조정자")로 대체 되었다.

다른 행정직 칭호들은 다음과 같다.:

  • 콘스탄티노플 경찰청장 : 콘스탄티노플의 시 경찰정장(praefectus urbi, 프라에페크투스 우르비).
  • 검찰관(Quaestor) : 처음에는 법관이었고, 마지막에는 콘스탄티노플의 사법관이 되었다.
  • 트리보우노스 : 로마의 호민관(tribune)과 동등하며, 콘스탄티노플의 길, 기념물, 건물의 관리직을 수행했다.
  • 마기스테르(마기스테르 오피키오룸, 마기스테르 밀리툼, 그리스어로 "maistor") : 옛 로마의 용어로, 관청장, 육군 원수를 뜻한다. 레오 3세 시대 경에, 이 칭호들은 명예직 칭호가 되었고, 결국에는 사라졌다.[15]
  • 사켈라리오스 : 헤라클리우스 집권기에, 로고테테스와 그외 다른 황궁 행정관의 명예직 감독관이었다. 나중에, 제국의 수석 재무 감사관이 되었다.
  • 프라에토르 : 본래는 세금 징수를 담당하는 콘스탄티노플의 행정관이었다. 10세기 후반부터 1024년까지, 한 테마의 내정 통치자였다.
  • 케팔레 : "수장"의 뜻으로 팔라이올로고스 시대에, 작은 지방과, 통상 그 마을과 둘러싸고 있는 영토의 통치자였다.
  • 호레아리오스 : 국가 곡창의 식량 분배를 담당했다.

이 중에서 프로타세크레티스, 로고테테스, 장관, 집정관, 검찰관, 마기스테르, 사켈라리오스의회의 의원들이었다.

황실 생활[편집]

중세 비잔티움에 평화가 높이 드리웠을 때, 황제 폰스탄티누스 포르피로게네투스의 엄청나게 상세히 설명된 연례의 예식 기록(Book of Ceremonies)에 따르면, "발레 무대를 지나가는"[16] 황궁의 생활은 어느 때곤 꼼꼼한 의식들로 "제국권이 조화와 질서를 이룰수 있었다.", "그러므로 창조자께서 만드신 것과 같이 제국은 만물의 섭리를 반영할 수 있었다."는 의미를 나타냈다고 한다. 특정 시기에 사람들이 많은 계층들의 사람들이 입는 특정 의복의 형태는 다음과 같다. 황제 또는 황후의 영명 축일 저녁 만찬 때에 고위 관리들의 여러 단체들은 의식의 "춤"을 공연했고, 그들 중 한 무리는 "청색과 백색의 단소매 의류를 입고, 금띠와 금발찌를 착용했으며, 그들의 손에는 펭기아라고 불리는 것을 들고 있었다." 두 번째 무리는 첫 번째와 같은 공연을 했지만, "나눠서 녹색과 적색 의류를 입고 금띠를 두르고 있었다." 그 색상들은 옛 전차 경주단들의 상징이었고, 네 단체는 청색과 녹색으로만 혼합되었고, 관리 서열은 합병 되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에서와 같이, 정성들인 드레스와 황실 의식은 정치적 긴장에 대한 은폐와 주의분산에 대한 최소한의 노력의 일환 이었을지도 모른다.[출처 필요]

그러나, 황제가 오랜 시간 동안 군사 작전으로 원정을 떠난, 안나 콤네네나 시대 경에 되서야, 그 생활 방식은 괘 많이 바뀌어, 십자군의 점령 이후에, 실질적으로는 사라졌다. 프랑스인 사절[누가?]은 황후가 프랑스의 왕비보다 교회에 덜 참석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출처 필요] 황족들은 대부분 대황궁에서 상대적으로 밀집된 블라체르나에 궁전으로 유기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 문헌[편집]

  1. Kazhdan (1991), p. 623
  2. Robin Cormack, "Writing in Gold, Byzantine Society and its Icons", 1985, George Philip, London, p180, using Kazhdan A.P. , 1974 (in Russian) ISBN 0-540-01085-5
  3. Spatharakis, Iohannis (1976). 《The portrait in Byzantine illuminated manuscripts》. Brill Archive, 110쪽. ISBN 9789004047839
  4. Kazhdan (1991), p. 1727
  5. Bury (1911), p. 21
  6. Kazhdan (1991), p. 1267
  7. Kazhdan (1991), p. 2162
  8. Kazhdan (1991), p. 1600
  9. Bury (1911), p. 27
  10. Bury (1911), p. 26
  11. Bury (1911), p. 25
  12. Bury (1911), pp. 21, 23-24
  13. Kazhdan (1991), p. 2231
  14. Mark C. Bartusis, "The Kavallarioi of Byzantium" in Speculum, Vol. 63, No. 2 (Apr., 1988), pp. 343-350
  15. Bury (1911), p. 32
  16. Steven Runciman, Byzantine Style and Civilization, 1975, Penguin

참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