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치아노 파바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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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치아노 파바로티 Luciano Pavarott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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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노 파바로티(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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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935년 10월 12일 |
| 사망 | 2007년 9월 6일 (71세) |
| 국적 | |
| 직업 | 성악가 |
| 상훈 | 이탈리아 레조 에밀리아 국제 콩쿠르 입상(1961년) 이탈리아 공로 훈장 1등급(1988년) 그래미 레전드상(1998년) 런던시 자유상(2005년) |
루치아노 파바로티(이탈리아어: Luciano Pavarotti, Cavaliere di Gran Croce OMRI, 1935년 10월 12일~2007년 9월 6일)는 이탈리아의 성악가이다.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The three tenors(3명의 테너)라 불렸다. 그는 또한 테너들 중 가장 높은 판매율을 가지고 있다.[출처 필요]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1998년에 그래미 레전드상(Grammy Legend Award)을 받기도 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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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1935년 이탈리아 모데나 교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그의 가족은 가난했다. 아버지 페르난도는 빵을 굽는 사람이었고, 어머니 아델레 벤투리 파바로티는 시가(Cigar) 공장에서 일했는데,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학교에서는 음악이 아닌 교육학을 전공했으며, 교육자와 성악가의 길을 모두 걸을 수는 없다는 아버지의 충고로 성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2]
아마추어 테너로도 활동했던 아버지와 함께 모데나 지역의 로시니 말레 합창단에서 활동하면서 음악에 입문하였으며, 1961년 4월 29일 《라 보엠》의 로돌포 역으로 오페라에 데뷔했다. 같은 해에 당시 경제학을 공부하던 대학생이었던 아두아 베로니와 혼인하였으나, 이후 이혼하고 2003년 니콜레타 만토바니와 재혼하였다.
2006년 췌장암 수술을 받은 이후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가 2007년 9월 6일 모데나 자택에서 별세했으며, 장례 미사도 모데나의 교회에서 집전되었다.
유명한 공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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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악가 조안 서덜랜드와의 미국 공연(1965년)
- 도니체티의 〈연대의 딸〉 공연(1972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 〈사랑의 묘약〉 공연(1988년, 독일 오페라 하우스)
- 런던 하이드 파크 등에서의 대중음악가들과의 공연 《Pavarotti and Friends》
- 한반도 평화 콘서트(2000년, 남북정상회담 기념공연)
-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의 〈아무도 잠들지 말라(Nessun Dorma)〉(마지막 공연)
바깥 고리[편집]
주석[편집]
- ↑ GRAMMY.com
- ↑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이재철 지음/홍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