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남북 정상 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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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남북 정상 회담(二千年南北頂上會談) 은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회 위원장이 평양에서 2000년 6월 13일에서 6월 15일까지 진행한 회담이다. 회담 결과로 6·15 남북 공동선언이 발표됐다.

목차

개요[편집]

정상 회담 이후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북한의 남한 주최 스포츠 경기 행사 참가 등 민간 교류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남북 당국간 회담이 지속됐으며, 북한은 일본, 미국과도 화해 분위기를 유지하며 국교 정상화 교섭에 나섰다. 김정일의 조기 서울 방문도 예견됐으나 국제정세의 급변 등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1948년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로, 두 당국의 대표가 처음으로 만난 회담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 정상회담과 햇볕정책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킨 공로로 2000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정상회담 대가 송금[편집]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과정에서 김대중 정부는 북한에 4억 5천만 달러를 송금했고 2003년 대북송금특검이 도입돼 수사를 했다.[1] 2003년 대북송금 특검법에 의한 특검팀 수사결과 "북한에 송금된 돈의 액수는 총 5억달러이며 이 중 5000만 달러는 현물로 보내졌다." 고 발표하고 "5억 달러 중에는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김대중 정부가 북측에 건네기로 약속한 1억 달러가 포함돼있다."라고 밝혔다.

현대 상선이 조달한 2억 달러는 2000년 6월 9일 북한 대남 공작기구인 대성은행의 계좌 (중국 마카오 지점) 으로 송금되었으며 현대전자와 현대건설이 조달한 2억 5000 만 달러는 홍콩과 싱가포르의 김정일 비밀계좌로 송금되었다고 진술된 기록이 공개되었다.

김정일의 목적[편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김일성의 사망 당시 경제 실패와 냉전에서 불리한 상황에서도 김정일은 헤네시 코냑의 구매비용으로 1989년 ~ 1999년까지 1년에 65만 ~ 80만 달러 사용하고 여러 곳 관저 건립 등 사생활에 탕진해오다 정권유지에 대한 압박감과 미국을 의식하였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미국을 두려워한 김정일이 미국의 제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의 편지를 받고 무척 기뻐했다고 말했다. 평양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전해준 서한을 받고 빌 클린턴에게 편지를 받았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고 하며, 올브라이트가 방북할 때 아리랑 공연 등에 잔치를 벌였다. 한편, 피터슨 국제 경제 연구소, 백악관 고문인 마커스 놀랜드 박사는 동독의 소득은 서독의 50% 수준이었지만 남한과 북한의 소득 차는 15배, 20배에 달한다고 전했다.[2]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대북송금특검 및 정몽헌회장자살사건> 한국근현대사사전, 한국사사전편찬위원회, 2005년 09월 10일 출간, 2012년 05월 24일 확인
  2. 프랑스 방송 제작 <긴급입수 김정일, 금지된 과거> KBS 2011년 3월 4일 방송

참고 자료[편집]

  • <긴급입수 김정일, 금지된 과거> KBS 2011년 3월 4일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