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노 프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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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노 프로디
Prodi27marzo2007.jpg
75,79대 이탈리아의 총리
재임기간 제75대 1996년 5월 17일
1998년 10월 21일
제79대 2006년 5월 17일 -
2008년 5월 8일
전임 제74대 람베르토 디니
제78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후임 제76대 마시모 달레마
제80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태어난 곳 이탈리아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주 스칸디아노
사망한 곳

로마노 프로디(Romano Prodi, 1939년 8월 9일-)는 이탈리아의 정치인이다. 1996년~1998년, 2006년~2008년 두 차례 총리를 지냈다.

성장 과정[편집]

에밀리아로마냐 주 볼로냐 근교의 스칸디아노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1961년밀라노에 있는 사크로 쿠오레 가톨릭 대학교(Università Cattolica del Sacro Cuore)에서 법학 학위를 취득했다. 그 직후 런던 정치경제대학(LSE)에서 경제학을 수학했다. 그 후 1963년부터 볼로냐 대학교의 정치학과 강사,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조교, 하버드 대학교 교환교수로 재직하는 등 학문적 경력을 쌓았다. 독실한 로마 가톨릭 신자로, 1970년대에는 보수당인 기독교민주당에 몸담았으나 개혁적 사회운동을 벌였으며, 1980년대에는 공기업 IRI최고경영자로도 일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제75대 총리[편집]

이러한 다양하고 독특한 경험을 바탕으로 1995년에 본격적으로 정치일선에 뛰어들어, 진보-개혁적 중도좌파연합체 이탈리아 올리브나무동맹 공동창설과 동시에 당의장에 올랐다. 그 이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와 수차례 격돌하며 정치적 앙숙이 되는데, 그 첫 번째 대결인 1996년총선에서 올리브동맹에서부터 공산주의까지 아우르는 범진보연합을 승리로 이끌며 총리에 올랐다. 유럽 진보적 중도개혁세력의 구심점이었던 '제1기 프로디 행정부'는 다양한 성향의 파벌을 일치단결하도록 이끌어, 세계대전 이후 수십 회 동안 지도자 및 정치세력이 수시로 교체될 정도로 복잡한 이탈리아의 정세 속에서도 3번째로 긴 행정부를 운영했다.

유럽 연합 (EU)의장[편집]

1998년의 신임투표 패배 후에는 지지자들과 함께 민주당을 창당하였다. 그 후 유럽 통합의 열렬한 지지자인 그는 1999년에 제10대 유럽 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의 의장직에 취임하였다. 재임중 회원국가간 이해관계의 조율에 노력했으며, 유로화 도입과 신규 가입국 확대,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확대 등을 이끌어내는 등 큰 성과를 올렸다.

제79대 총리[편집]

2004년, 5년간의 주어진 임기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후에는 다시 이탈리아 정계에 복귀하여, 야권이 된 범진보진영을 다시 추스르고, 유럽의 우경화를 주도하던 베를루스코니의 보수-극우 정권을 종식시키기 위해 2005년 10월, 대한민국새천년민주당이 성공적으로 실시한 바 있는 '국민경선제도'의 도입과 동시에 자신은 후보로 출마하였다. 4백만 명 이상의 높은 국민참여를 통해 약 70% 득표로 총리후보가 되었으며, 보수와 진보 양 진영간 치열한 공방전 끝에 '프로디 대 베를루스코니'의 두 번째 대결인 2006년 4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간발의 차로 범진보진영이 승리, 총리직에 재취임했다.

'제2기 프로디 행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이라크에 파병되었던 자국 군인들을 즉시 철수시키고, 대기업-중소기업과 부유층-중산서민층간의 양극화 해소를 위한 각종 세제혜택을 도입하였고, 유럽통합을 다시 가속화시키는데 주력하는 등 각종 개혁적 정책들을 폈으나, 2007년 초반 아프가니스탄 평화유지군 추가파병논란으로 촉발된 불신임 위기를 맞는 등 시련을 겪었고, 경기 침체를 해결할만한 뚜렷한 방안을 제시하지도 못해 국민과 정치권의 인기를 잃었다. 결국 그는 2008년 1월 25일 이탈리아 상원의회의 신임투표에서 찬성 156표 대 반대 161표로 불신임되었다. 이로써 연정은 붕괴되고 4월 조기 총선을 실시하게 되었다. 총선 결과 민주당은 패하고,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우파 연합이 다시 승리하였다. 5월 8일 그는 정식으로 베를루스코니에게 총리직을 넘겨주었다.

2010년 3월부터 중국의 중국유럽국제공상학원 (CEIBS)의 교수로서 활동하면서, 유럽연합의 정책결정 과정과 중국의 위상변화에 대해 강의 중이다.[1]

한국 방문[편집]

그는 2000년 ASEM 회의 때 EU 의장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하였고, 2000년 ASEM 회의 참석차 줄리아노 아마토 총리가 이탈리아 총리로는 처음 방한하였으나, 양국 정상 회담을 위한 방한은 2007년 4월 프로디 총리가 처음이었다. 버지니아 공과대학 테러 참사 당일에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회담 직후 한국의 아리랑TV와 직접 인터뷰하였다.

참고[편집]

  1. 정재용. "프로디 前 伊총리, 中경영대학원 교수로", 《연합뉴스》, 2010년 3월 18일 작성. 2010년 3월 19일 확인.

바깥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