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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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그룹
Daewoo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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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1967년 (대우실업 주식회사)
해체 1999년 11월 1일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사업 지역 아시아, 유럽, 남·북아메리카
핵심 인물 김우중
영업이익 90조원(1999년 기준)
순이익 5조원(1999년 기준)
자산 총액 자본금 20조 부채 90조
주요 주주 김우중
모기업 (주)대우
계열사 대우건설, 대우전자, 대우자동차
웹사이트 www.daewoo.co.kr[1]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창립했던 대우실업을 모태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대한민국 재계서열 2위를(1999년 자산과 매출액 기준) 지켜왔던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이다.[2]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1990년대 글로벌 우량기업으로 발돋움하는 듯 했으나 외환위기와 확장경영에 따른 막대한 자금난으로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돌입한 후 그룹 해체를 맞았다.

기업연혁[편집]

과거 대우그룹의 본사였던 서울스퀘어.

대우는 1967년 소규모 사업체로 창업하였으나,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최대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는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동유럽 및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 왔고, 1993년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고속성장을 거듭하였으나, 1997년 외환위기와 맞물려 갑작스럽게 어려워진 경영여건을 극복하지 못하고 1999년 워크아웃을 맞아 해체되었다.

창업기[편집]

1967년 대우실업 창립 이래, 1970년대 봉제품 및 섬유제품의 수출호조와 더불어 경제고도성장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신흥 사업체로 주목받았고, 더욱이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정책에 발맞춰 금융, 전자, 중공업,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들면서 대우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1967년 3월 22일 모태인 대우실업(주)(대우가족) 창립. (섬유류 봉제품 생산, 수출 주도)
1969년 8월 대한민국 기업 해외지사 1호 시드니에 개설.
1972년 9월 고려피혁(주) 인수.
1973년 쌍미섬유공업(주) 인수. 대우증권의 전신 동양증권(주) 인수. 대우건설(주) 설립.
1974년 대우전자(주) 설립. 대우빌딩 착공.
1975년 5월 대우실업(주), 종합무역상사 지정.
1976년 2월 한국기계공업(주) 인수. 10월 해외건설업면허 취득. 대우중공업(주) 출범.
1977년 대우센터 빌딩 준공. 8월 제철화학(주) 경영권 인수.
1978년 7월 산업은행으로부터 새한자동차(주) 지분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 인수 후 9월 대우조선공업(주) 설립.

도약기[편집]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새한자동차 경영권 장악,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현대, 삼성,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려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신시장 개척을 준비하였다.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 수출의날 15억불탑 수상. 대우실업(주) 및 대우개발(주) 합병 결의.
1982년 모기업 (주)대우 출범. 수출의날 20억불탑 수상.
1983년 대우자동차(주) 출범. 대우전자(주)에서 대한전선(주)의 가전부문을 흡수. 대우통신(주) 설립.
1984년 경남기업(주) 경영 참여. (주)대우경제연구소 설립. 10월 대우자동차부품(주) 설립. 대한민국 최초 VTR 수출.
1986년 대우증권 런던사무소 개설. 9월 경남기업(주) 계열 편입.
1987년 미얀마 현지 철도차량공장 준공.
1988년 (주)대우 동베를린지사 설치. 대우투자자문(주) 설립. 프랑스 롱위 전자레인지 공장 건립. 대우증권 홍콩사무소 개설.
1989년 제철화학 외 3개사 매각. 대우정보시스템 설립. 대우기전공업㈜ 출범. MHB-Daewoo Bank 설립.
1990년 (주)대우 모스크바지사 설치. 대우중공업(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멕시코 컬러TV 공장 건립.
1991년 (주)대우 북경지사 설치. 대우증권(주) 유럽현지법인 설립, 취리히사무소 개설.
1992년 4월 佛 컬러TV 공장 건립. 佛 컴퓨터 판매법인 설립. 대우증권 美 현지법인 설립. 대우차-GM 제휴관계 청산.

팽창기[편집]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국제적으로 널리 진출하는 '세계경영'은 1993년 '세계경영 우리기술' 슬로건 선포를 시점으로 본격화되었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선진업체가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으로, 현지법인 설립과 인수합병을 통해 단기간에 정착하여 사세확장을 꾀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활성화 목적에서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대우의 사업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대우자동차(주)의 경우는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판매하는 수량이 대한민국에서 판매하는 수량을 앞지르는 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같은 대우의 급속한 성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와 대한민국 외 국가 경제에 큰 반향을 가져다 주었다.

1993년 1월 대우자판 설립.
1993년 2월 베트남 합작은행 출자.
1993년 3월 세계경영 선포.
1993년 5월 우즈벡 가전 공장 설립.
1993년 7월 대우중공업(주) 미국현지법인 DEC 설립.
1993년 8월 폴란드 TV 공장 설립.
1993년 9월 세계최초 공기방울 세탁기 개발.
1994년 2월 대우할부금융 설립.
1994년 3월 인도 합작증권사 CRB-Daewoo Securities Ltd 출자.
1994년 5월 대우자동차(주) 영국 워딩 자동차 기술연구소 건립.
1994년 6월 대우중공업 영국현지법인 유로 대우 UK 설립.
1994년 10월 대우중공업(주) 대우조선공업 흡수 합병. 중국현지법인 대우중공업연대유한공사 설립.
1994년 11월 루마니아 자동차합작공장 DAEWOO-RODAE 설립. 대우중공업(주) 러시아 기술연구소 DISK 설립.
1995년 1월 대우중공업(주) 독일 현지법인 ECO 설립. 대우전자(주) 말레이지아 세탁기 공장 설립. 대우뱅크 출범.
1995년 2월 대우중공업(주) 일본 현지법인 대우건기 설립.
1995년 3월 체코 최대 국영상용차업체 AVIA사 인수. 대우증권(주) 홍콩현지법인 설립.
1995년 4월 대우증권(주) 상해사무소 개설.
1995년 5월 대한민국 기업 최초, 대북 협력사업 정부승인 획득.
1995년 6월 다이너스카드사 인수.
1995년 7월 동우개발(주)의 사명을 (주)대우개발로 변경.
1995년 9월 베트남 하노이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우즈벡 공화국에 교환기합작공장 알로카대우 설립.
1995년 10월 중국천진 팩스밀리 합작공장 설립.
1995년 11월 베트남 최초 타포린 합작생산 공장 준공. 폴란드 최대 자동차기업 FSO 인수, DAEWOO-FSO 출범.
1996년 3월 대우증권(주) 싱가폴사무소 개설. 루마니아 DAEWOO-RODAE 공장 준공.
1996년 5월 남북경협 최초회사 민족산업총회사 남포에 설립. 앙골라 대규모 유전발견.
1996년 6월 프랑스 롱위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인도뉴델리 첨단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센타 설립. 페루육상 유전인수 입찰수주.
1996년 7월 한진투자증권 합작 법인 서울투신운용(주) 설립. 우크라이나 대용량교환기 합작공장 드니프로-대우 설립.
1996년 10월 대우증권(주) 동경지점 개점. UZ-Daewoo 자동차 공장 준공. 베트남 비담코 자동차 공장 준공.
1996년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컬러브라운관 공장 준공. 중국 광케이블 합작회사 우시-대우 설립. 루마니아 합작은행 설립.
1997년 3월 우즈베키스탄 대우은행 (Uz-Daewoo Bank) 설립.
1997년 4월 인도 종합 가전공장 설립. 군산 종합 자동차공장 준공.
1997년 5월 인도 CRB증권 대우파이낸스로 상호 변경. 대우선물(주) 설립.
1997년 6월 대우증권(주) 싱가포르 현지법인 설립.
1997년 7월 대우리스 체코에 설립.
1997년 9월 대우자동차(주) 우크라이나 합작공장 설립계약 체결.
1997년 12월 한국전기초자(주) 인수.

해체[편집]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함으로써 1993년 당시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한민국 외 국가 현지법인을 1998년 11월에는 396개로 끌어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1997년부터 다가온 경제위기는 1993년부터 시행해온 차입경영을 바탕으로 성장해오던 대우의 경영여건을 급격히 악화시킨다. 대우는 IMF 위기를 기회로 삼아 쌍용자동차(주)의 인수를 시도하여 대한민국 4륜구동 SUV 시장에 진출하였고 이를 통해 기업가치의 극대화를 꾀하는등 확장 정책을 계속하여 1998년 삼성을 제치고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올랐다

1998년 1월 9일 대우자동차(주), 쌍용자동차(주) 인수.
1998년 5월 스페인 냉장고 공장 설립.
1998년 6월 우크라이나 자동차 법인 AUTOZAZ-DAEWOO 공장 본격 가동.
1998년 7월 미국 Fortune 선정 매출 500대 기업 중 세계 18위의 기업으로 도약.
1998년 10월 대우중공업(주) 이집트공장 준공.
1998년 11월 무역의 날 150억불 수출의 탑 수상.

그러나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쌍용자동차를 인수함과 동시에 막대한 빚을 지게 되어 그룹자체를 흔들게 만들었고, 너무 뒤늦게 실시한 구조조정도 실효성을 전혀 거두지 못하면서, 결정적으로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와 대우전자-삼성자동차 간 빅딜 협상이 모두 실패하면서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게다가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을 무려 300%를 훨씬 넘은 상태였다. 이로 인해 30년간 대한민국 최대규모의 기업집단으로 자리잡았던 대우는 결국 1999년 8월 16일 채권단의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과 더불어, 26일 채권단 관리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와해되고 말았다.

1998년 11월 대우그룹 1차 구조조정안 발표.
1998년 12월 대우전자(주) 및 삼성자동차(주) 빅딜 발표. (사업맞교환)
1999년 4월 19일 대우 2차 구조조정안 발표. (대우 조선, 상용차, 힐튼호텔 등 매각)
1999년 6월 30일 삼성자동차 워크아웃 돌입.
1999년 7월 16일 대우그룹 구조조정안 발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의 재탄생)
1999년 8월 4일 채권단 구조조정안 반려.
1999년 8월 16일 대우 채권단, 재무구조개선수정약정 체결.
1999년 8월 26일 (주)대우, 대우중공업(주), 대우자동차(주), 대우전자(주) 등 12개 회사 워크아웃 돌입.
1999년 8월 30일 대우증권(주) 계열 분리, 채권단으로 이양.
1999년 10월 김우중 회장,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부품공장 준공식 참석.
1999년 11월 1일 대우 회장 및 대우그룹 사장단 퇴진.

한 때 세계화를 이끌던 대우의 몰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대우사태는 당대 큰 기업은 절대 흥한다는 '대마불사'의 법칙을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건실한 기업풍토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 있는 반면, 대우가 밝혀지지 않은 요인(정치적 문제 또는 국제적 외압)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여론도 일부 존재하고 있어 지금도 눈길을 끈다.

구 대우그룹 계열사[편집]

대우의 계열사들은 그룹 해체 후 저마다 자립 혹은 새로운 기업의 인수를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대우인터내셔널,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몇몇 회사들은 여전히 대우의 이름을 유지하며 성공적으로 영업 중이다.

자동차[편집]

대우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자동차 사업은 1997년 신차 출시, 1998년 쌍용자동차 인수에 따른 사세 확장으로 대한민국 시장에서 호조를 거두었지만 부채 누적으로 인한 자금난에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되었다.

대우자동차(주)는 포드, 제너럴 모터스, 현대자동차 등에서 인수의사를 타진하였으나 최종적으로 협상이 모두 결렬되었으며 대우자동차(주)는 경영 정상화 실패로 인해 2000년 11월 결국 최종부도를 맞는다. 이후 대우자동차(주)의 승용차 부문이 GM에 매각되어 2002년 10월 지엠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로 새롭게 출범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실패하여 고전을 계속하였던 GM 대우는 이미지 쇄신책으로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하였으며, 2011년 한국GM(주)가 새롭게 출범하였다.

GM이 인수하지 않은 버스부문, 상용차부문, 부평공장은 대우버스(주), 대우상용차(주), 대우인천자동차(주)로 분할되었다.

대우자동차(주)의 버스부문인 대우버스(주)는 영안모자에 매각되었고, 트럭을 생산하는 상용차 부문은 인도 최대의 재벌인 타타(TATA)에 매각되어 타타대우상용차(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옛 대우자동차(주)의 부평공장인 대우인천자동차(주)는 2005년 GM대우에 흡수 합병되었다.

대우그룹 시절 대우 브랜드와의 완전 통합을 시도하였던 쌍용자동차(주)는 대우그룹 해체 당시 대우차와의 분리 매각이 결정되면서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후에 쌍용자동차(주)는 2005년 중국 국영자동차회사인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되나, 판매 부진이 거듭되면서 2009년 쌍용자동차(주)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한국 시장에 철수하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주)는 법정관리 체제에 들어갔으며 이 무렵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해고 사태로 노사간, 노조간 갈등으로 존립까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다가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그룹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무역, 건설[편집]

2000년 12월 모기업 (주)대우가 3개사로 재탄생한다. 청산을 위한 (주)대우 존속법인과 무역부문의 (주)대우인터내셔널, 건설부문의 (주)대우건설으로 나뉜다.

(주)대우인터내셔널은 무역, 백화점, 해운업 등을 담당하고 있으며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대우의 브랜드 가치를 고려해 옛 대우의 로고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주)대우건설는 워크아웃을 단기에 졸업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인해 극심한 자금난을 겪자 2010년 (주)대우건설을 한국산업은행에서 인수, 2011년 1월에 금호아시아나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되었다.

또 대우그룹 해체 당시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지정되었던 경남기업(주)는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아건설(주)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에 대아건설(주)을 합병했다. 2009년 대한민국 건설사들의 잇따른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에 또한번 맞게 되나 실적 개선 등을 바탕으로 2011년 5월 워크아웃을 졸업하여 경영정상화를 다시 이루어내었다.

중공업, 조선[편집]

2000년 대우중공업(주)도 대우종합기계(주), 대우조선공업(주) 그리고 대우중공업(주) 잔존법인으로 분할되었다.

주력부문이었던 중장비 및 군수물자 생산을 담당하는 대우종합기계(주)는 2005년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주)로 재탄생하였다.

신설법인 대우조선공업(주)는 대우조선해양(주)로 사명을 변경하였으며 경영 정상화에 성공하였다. 대우조선해양(주)는 수주잔량으로 세계 3위권에 드는 기업이며 자체적인 대규모 기업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주) 매각은 여러차례 추진되고 있다.

이보다 앞서 1999년 7월에 대우중공업(주)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철도차량부문의 경쟁사인 현대정공(주), 한진중공업(주)와 함께 현물출자 형식으로 통합법인 한국철도차량(주)를 설립하였다. 이후 대우종합기계(주)가 승계받은 한국철도차량(주)의 지분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1년 현대자동차(주)에 전량 매각되었고 이 회사가 지금의 현대로템(주)이다.

대우중공업(주)의 항공사업부문도 1999년 8월삼성항공산업(주), 현대우주항공(주)과 통합하여 새로이 한국항공우주산업(주)로 출범하였다.

전자, 통신[편집]

한때 세계 각국의 생산기지를 설치하며 세계적인 전자기업을 표방해 오던 대우전자(주)는 2000년 4월 대우전자 중심의 기업집단을 구축하고 비수익 사업의 매각을 통해 지속적으로 규모를 줄여왔으며 2002년 말 주력사업부문이 대우모터공업(주)로 양도되었고 이 회사는 2003년 (주)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하였다. 2013년 동부그룹의 인수로 동부대우전자가 되었다.

대우통신(주)도 정상화를 위해 통신 관련사업부문을 매각하여 현재 대우루컴즈, 대우텔레텍, 대우글로벌 등 중견업체로 탈바꿈하였으며 그밖에 대우정밀(주), 대우파워트레인(주), 대우프라스틱(주) 등도 새로이 출범하였다.

대우정밀(주)은 에스엔티(S&T그룹)에 인수되어 현재 S&T모티브로 운영 중이며 대우파워트레인(주)은 GM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컴퍼니에 매각되고, 대우프라스틱(주)는 삼라마이다스그룹(SM그룹)으로 매각된 후 대우라이프(주)로 바뀌었다가 계열사인 남선알미늄(주)에 합병되었다.

전자 계열사였던 오리온전기(주), 한국전기초자(주), 광전자(주) 등도 워크아웃을 맞은 후 제각기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다.

금융[편집]

대우증권(주)는 1999년 대우가 해체되기전 채권단이 인수하였으며 후에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된다. 2009년에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새로이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2001년 8월 (주)다이너스카드클럽코리아는 현대자동차(주)에 매각되어 현대카드(주)로 탈바꿈하였다.

대우캐피탈(주)는 아주그룹으로 편입되어 아주캐피탈(주)로 바뀌었다.

스포츠[편집]

대우그룹에서 운영중이던 부산 대우 로얄즈인천 대우 제우스는 각각 현대산업개발신세기통신에 인수되어 현재 부산 아이파크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주석[편집]

  1. 1995년부터 사용하다가 대우그룹 해체 이후 대우인터내셔널이 사용했으나 2007년 이후 완전히 사이트를 폐쇄하였다.
  2. 대우그룹, 쌍용自인수로 재계순위‘3위’《문화일보》1997년 12월 9일 김병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