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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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준
1944년 10월 20일(1944-10-20) (69세)
태어난 곳 경기 경성(현 서울)
복무 Flag of the Army of of the Republic of Korea.svg 육군
복무 기간 1969년 ~ 2005년 4월
최종 계급 예비역 육군 대장
서훈 내역
  • 보국훈장 국선장
  • 보국훈장 천수장
기타 이력 육군참모총장, 국가정보원장

남재준 (南在俊, 1944년 10월 20일 ~ )은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정치인, 대학 교수로서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국정원장에 취임하였다. 육군사관학교 25기로 임관하여 36대 육군참모총장을 재직한 대한민국 국군의 장성이다. 예편 당시 계급은 대장이었다. 현역 재직 중 김오랑의 묘소에서 통곡한 일과 육군대학 강의 도중 전두환을 비난한 일로 화제가 되었다.

육군대학 교관, 제7보병사단 3연대 연대장, 1군사령부 작전처 작전과장, 1군사 작전차장을 거쳐 육군 준장으로 진급, 그해에 1군사령부 작전처장이 되었다. 이후 육군보병학교 교수부장, 수방사 참모장, 제6보병사단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부장,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등을 역임하고 2000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2002년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2003년에는 육군참모총장에 이르렀다.

퇴역 이후에는 충남대학교서경대학교의 군사학과 교수로 활동하였고, 2007년부터는 한나라당 박근혜의 국방안보담당 특보로 재직했다. 2013년 4월에는 국정원장이 되었다. 현역 재직 당시 직능이 작전으로 군생활의 대부분을 작전 분야에서 몸담았다.

생애[편집]

생애 초반[편집]

1944년 10월 20일 서울에서 태어나 1964년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해에 육군사관학교를 지원, 1965년 육군사관학교로 진학하였다. 1969년 2월 육군사관학교 25기로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참모총장에 이르렀다. 동기로서는 합동참모의장을 역임한 김종환 대장이 있다.

취미는 등산으로 철책에서 지휘관을 거치면서 병사들과 철책을 걷는게 좋아서였다고 한다. 한시나 한문에 상당히 능숙하다고 알려져 있으며, 항상 간부들에게 전문성이 투철하고 도덕성이 확립된 장교상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필요]

소대장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고 귀국하였으며 소령으로 재직 중 1979년 육군대학 교관으로 부임하였다. 한편 그해 12월12.12 사태 당시 정승화 참모총장을 지키다가 죽은 자신의 육사 동기 김오랑의 무덤을 찾아가 대성통곡하였다. 또한, 그 후에 육군대학 교관으로 강의하던 중 "자랑스러운 군복에 때를 묻힐 수 없다"며 12·12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을 강하게 비판했다가 훗날 진급심사 때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출처 필요]

지휘관 생활[편집]

그는 1988년 제7보병사단 3연대 연대장, 1990년 1군사령부 작전처 작전과장, 1991년 제1군사령부 작전차장을 거쳐 육군준장으로 진급, 그해에 1군사령부 작전처장이 되었다. 이후 육군보병학교 교수부장, 1993년 수도방위사령부 참모장, 1995년 제6보병사단 사단장, 1997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부장, 1998년 4월 중장으로 진급하였다. 그해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등을 역임하고 2000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군 복무 중에 경남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진학하여 1980년 대학원을 마치고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연대장 시절부터 병사들로부터 존경을 많이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상당히 보수적인 면이 많지만 청렴하고 됨됨이가 좋아서 군내에서도 존망이 높은 편이었다. [출처 필요] 2002년 4월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등을 거쳐 2003년 4월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

참모총장 재직[편집]

참모총장 재임 중 교육투자를 확대하고 장교단 정신(爲國獻身)을 제정하였으며, 제대군인 취업 보장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그는 육참총장 재직 중 병영시설 현대화 등 현역의 복무여건 개선 노력과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확대하였다. 또한 태평양·아시아지역 육군참모총장회의 회의(PACC-3)와 Defence Asia-2004 개최 등 활발한 군사외교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2005년 4월, 육군참모총장의 군인사법상 임기인 2년을 마치고 이임 후 전역하였다.

2004년 가을 진급심사기간 중 당시 청와대로 정체불명의 투서가 배달되었는데, 투서의 내용은 "남재준 총장이 자신의 인맥만 장성으로 진급시킨다"는 내용이었다. 2004년 11월 22일 불거진 '장성 진급 심사 비리' 사건이다. 군 검찰단 등이 진위여부를 파악하고 나섰다. 청와대 386 참모들의 인사 청탁을 거절해 일어난 군인사에 대한 잡음의 책임을 지고 2004년 11월 청와대에 전역지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군인사법상 2년인 육군참모총장의 임기를 지키기 위해 전역지원서를 반려하고 2년의 육군참모총장 임기를 보장했다.

하나회 이후 공식적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군내 사조직의 회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당 조직은 나눔회로 알려졌다.[1][2][3][4]

정계입문과 국정원장[편집]

퇴역 이후 충남대학교, 원광대학교의 교수로 출강하였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캠프의 국방안보 특보를 역임하였다.[5] 2010년 2월부터는 서경대학교 군사학과 석좌교수로도 출강하였다.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의 초대 국가정보원장에 취임하였으며, 남북정상회담록을 공개해 외교적으로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학위[편집]

주요 경력[편집]

  • 대령 : 7사단에서 연대장 / 1야전군 작전과장
  • 준장 : 1야전군 작전처장 / 보병교 교수부장
  • 소장 : 6사단장(청성) / 육본 인사참모부장
  • 중장 : 수도방위사령관 / 합참 작전본부장
  • 대장 :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 육군참모총장
  • 전역 이후 : 국가정보원장

상훈 경력[편집]

사건·사고 및 논란[편집]

정중부의 난 발언과 정부 비판 논란[편집]

2004년 8월 31일 군 현직 시절 남재준은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군 장성과 영관급 참모 20여명이 모인 가운데 회의를 열어 노무현정부의 군 개혁정책에 대한 입장을 피력했다. 남재준은 이 자리에서 “이런 식으로 하면 군인들은 다 굶어 죽으란 이야기냐. (고려) ‘정중부의 난’이 왜 일어났는지 아는가. 무인들을 무시하고 문인을 우대한 결과 아닌가”라고 발언한 것으로 당시 전해졌다. 정부가 군 검찰의 국방부 산하 이전 등 군 문민화 사업을 추진하던 때여서 남 후보자 발언은 군 개혁에 정면 반발한 것으로 해석되는 등 큰 파장이 일었다. 일각에선 ‘사실상 군사 쿠데타를 암시한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내놨다.[6]

이에 남 후보자는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며 진화에 나섰고, 군 당국이 진상조사에 나섰지만 진실규명 없이 흐지부지 종결됐다. 남 후보자는 이후 육군 장성 진급비리 의혹 수사에 반발해 사의를 밝혔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역지원서를 반려하면서 재신임을 받은 뒤 2005년 전역했다.[7]

청와대 허위보고 논란[편집]

2013년 3월 3일 당시 군 검찰 내사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가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군 장성 등을 상대로 내사를 벌인 결과 남 전 총장 발언이 사실임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관련 발언이 외부로 새나가자 남 전 총장은 관련자료를 폐기한 뒤 청와대에 허위보고하는 수법으로 진실을 은폐했다는 게 당시 군 검찰의 내사 결과였다”고 주장했다. 또 “남 전 총장은 당시 회의 참석자들에게 ‘그날 수첩에 필기한 것을 다 찢으라’고 직접 지시했다”며 “이후 청와대에는 ‘군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이 일으킨 거짓음모’라는 허위보고를 올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일이 불거지고 난 뒤 자료 은폐에 관여했던 일부 군 간부들은 ‘메모를 폐기했으니 승진시켜 달라’며 남 전 총장 측근과 ‘승진 거래’를 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시 남 후보자는 국방부를 통해 “청문회 전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취임 후 답변하겠다”며 “당시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등에서 대대적으로 조사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종결된 사항”이라고 부인했다.[8]

부인 부동산 투기 의혹[편집]

2004년 11월 남 후보자의 부인이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리에 위치한 밭 510㎡를 매입했다. 이는 남 후보자가 육군참모총장을 맡고 있던 2004~2005년 재산신고한 내역에 따르면 이 밭은 경춘고속도로에서 차로 불과 20분 정도 걸리는 위치에 있어 2004년 8월 고속도로 착공 이후 땅값이 급등했다. 이 지역의 땅값은 2004년 당시엔 3.3㎡당 1만~3만원에 불과했지만, 불과 1년만에 땅값이 7~8배로 급등했다.[9] 이에 따라 남 후보자는 전역 직전인 2005년 재산신고 때, 이 밭의 가치를 3.3㎡당 20만원 수준인 3080만원으로 신고했다.[10]

이에 남 후보자 쪽은 “3년 전부터 주말농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부동산 투기가 아니다”라며 "3년 전부터 주말 농장으로 쓰고 있다. 투기가 아니다"라며 "땅질이 좋지 않아서 복토도 하고 (남 내정자 부부가) 고생을 많이 하셨다. (주말농장으로 쓴지) 햇수로 3년됐다"고 말했다.[11]

비판[편집]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에 대한 비판[편집]

국가정보원장으로 재직하면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했는데, 이에 대해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다. 한겨레 신문은 사설을 통해, 국가 기밀을 무단으로 공개할 경우 국익에 어떤 손상이 올 것인지 등은 정보를 다루는 사람에게는 기본에 해당한다면서, 남재준 원장이 이런 것도 몰랐다면 국정원장으로서 최소한의 자격도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그가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했다는 국회 답변에 대해서도 국가보다 국정원의 명예를 앞세우는 것으로 어처구니없는 것이며, "일반적인 상식과 이성을 갖추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12]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 공개했다는 남재준의 발언은 안철수, 하태경 등을 비롯한 많은 이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안철수 의원은 국정원의 이익이 국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국정원장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하며 남재준의 사퇴를 요구했다.[13] 이재오 의원도 "국정원은 명예가 없다"면서 "음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무슨 명예를 찾는가”라고 비판했다.[14] 하태경 의원 역시, 국익을 위해서라면 더러운 일도 해야하는 국정원이 무슨 명예를 찾느냐 면서,“만약 국정원 직원들이 자신들의 명예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이 나라는 개판이 될 것”이라고 썼다. 하태경은 남재준에 대해서 “그런 면에서 남 원장이 명예를 위해서 자료를 공개했다고 발언한 것은 과연 그 분이 국정원장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심각히 의심케하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15]

관련 항목[편집]

주석[편집]

  1. 군 검찰 ‘사조직 박살’ 작전 펼쳤다 《시사저널》 2005년 1월 10일 정희상 기자
  2. 육군 4대 사조직 명단 & 진급실태 ‘유령조직’ 만나회·나눔회 (159명) 현 군부 장악, 하나회(250명) 극소수 구제, 알자회(120명) 전멸 《신동아》 2005년 2월 1일
  3. "진급비리 '나눔회' 개입 가능성" 《한국일보》 2005년 1월 12일 김정곤 기자
  4. 南후보 盧정부때 軍사조직 연루 논란 《동아일보》 2013년 3월 4일 강경석 기자
  5. 남재준, 철두철미한 원칙주의자…2007년부터 朴안보특보 《매일경제》 2013년 3월 3일 김성훈 기자
  6. 남재준, 노무현 정부 '군 문민화' 반대 선봉장 《오마이뉴스》 2013년 3월 2일 김동수 기자
  7. 남재준 육참총장 때 '측근들 장성 진급' 괴문서 軍 14개월간 재판… 인사개입 정황은 안 드러나 《조선일보》 2013년 3월 4일 조백건 기자
  8. 남재준, 靑에 허위보고로 진실은폐 의혹 《세계일보》 2013년 3월 4일 박현준 기자
  9. 남재준 부인, 경춘고속도 주변 투기 의혹 《한국일보》 2013년 3월 4일 김성환 기자
  10. 남재준 국정원장 후보, 홍천 땅 투기 의혹 《뷰스앤뉴스》 2013년 3월 4일 심언기 기자
  11. 남재준 국정원장 후보자 부인 ‘수상한 땅 거래’ 《한겨레》 2013년 3월 3일 윤형중 기자
  12. <사설> 남재준 원장 사퇴가 국정원 개혁 첫걸음 《한겨레》 2013년 7월 9일
  13. '안보 보수' 안철수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해야" 《경향신문》 2013년 6월 27일
  14. 여당서도 ‘국정원 개혁 필요’…이재오 “국내파트 폐지” 《한겨레》 2013년 7월 3일
  15. 새누리 하태경 "남재준, 기가 찰 노릇…무슨 짓 저지르는지" 《조선일보》 2013년 6월 27일
전 임
이종옥
제15대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2002년 4월 ~ 2003년 4월
후 임
신일순
전 임
김판규
제36대 육군참모총장
2003년 4월 7일 ~ 2005년 4월 7일
후 임
김장수
전 임
원세훈
제31대 국가정보원장
2013년 3월 2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