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황식 (19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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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식
김황식 (2011년)
김황식 (2011년)
대한민국 대한민국제41대 총리
임기 2010년 10월 1일~2013년 2월 26일
대통령 이명박
전임: 정운찬(제40대)
후임: 정홍원(제42대)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출생일 1948년 8월 9일(1948-08-09) (65세)
출생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전라남도 장성군
정당 무소속
종교 개신교

김황식(金滉植, 1948년 8월 9일 ~ )은 대한민국정치인이다. 2008년부터 감사원장을 지냈으며,[1] 2010년 10월 1일, 제41대 국무총리로 취임하여 2013년까지 재직하였다.[2]

생애[편집]

성장기[편집]

김황식은 전라남도 장성군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중학교를 졸업한 부친은 향교를 관리하는 전교였다. 김총리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배운 것이 이웃, 특히 약한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 했다. ‘지산통신’에 어머니에 대해 쓴 글이 있다. "어릴 적 마루에서 놀고 있노라니 거지가 구걸하러 대문간을 들어섭니다. 어머니, 거지 왔어요, 라고 소리치니 어머니는 쌀 한 웅큼을 그릇에 담아 나오시며 나직하게 '다음부터는 손님 오셨다고 해라' 하시는 거였습니다." 7남매의 막내로 광주에 나와 양말 공장, 메리야스 공장을 하기도 하던 부모님이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다시 장성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게되자 광주에서 누나들과 함께 살거나 하숙을 했다. 고3때, 전남체육회에서 광주일고는 전남체육대회에 농구로 출전하라는 지시가 왔으나 이미 농구부가 없어진 상태라 과거에 농구했던 학생들이 차출됐고, 이로 인해 대입준비에 차질을 빚어 재수를 했다. 농구부 시절, 팀웍을 이끄는 능력을 인정받아 주장을 맡았다.[3]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법관[편집]

서울법대를 졸업한 그는 1972년 제1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사법연수원 수석, 대법관, 감사원장 등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대통령 직선제 이후 최장수 총리[편집]

2010년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의 자진사퇴 후 최초의 전남출신 총리, 이미 2번의 인사청문회를 거친 청렴인물이라는 점을 높게 평가받아 총리후보로 발탁되었다. MB는 퇴임 인터뷰와 백서에서 김황식의 발탁을 ‘역사적 의미를 갖는 인사(人事)’라고까지 자부했다.[4] 이미 2번의 인사청문회를 거친 인물이었으나 야당은 김황식의 병역면제를 문제 삼았다. 72년 면제 당시 부동시(양 눈 도수의 차이가 '2디옵터'가 넘는 눈의 상태)가 있었는지가 주쟁점이 되었으나 김황식은 당시의 진단서 등을 제출하지 못했다[5] 청문회 당시 김황식은 5디옵터의 차이가 나는 고도 부동시였다. 야당은 면제사유가 불분명하다고 반대했으나 2010년 10월 1일,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은 재적 의원 299명 가운데 224명이 출석, 찬성 169표, 반대 71표, 기권 4표로 69.26%의 찬성률로 통과됐다.

취임 초기에는 청문회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대타총리’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취임 한 달후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부드러우면서도 핵심을 피하지 않는 카리스마 있는 답변으로 ‘대정부질문 스타’로 떠올랐다. 아랍에미리트 파병문제가 논란이 되자 “원전 수주와 파병을 직접 연계시켜 업무가 진행됐다면 적절하지는 않다”고 했고,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사건에 청와대에서 지급한 대포폰이 사용됐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극히 잘못된 일”이라고 했다.[6] 연평도 전사자 1주기 추모식에서 경호원의 우산을 물리치고 40분간 장대비를 맞으며 젊은 병사의 희생을 눈물로 추모하고, 총리실 내부에도 알리지 않은 채 평택 화재진압 중 숨진 소방관들의 빈소를 방문하는 등의 행보 또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중도우파도, 중도좌파도 아닌 소외계층을 보듬는 중도저파(中道低派)를 자처한 그는 민생을 최우선으로 한 탁월한 국정운영, 겸손하고 소탈한 성품으로 “대타가 홈런을 쳤다” “모처럼 명총리가 났다”는 찬사를 받았고, 무려 2년 5개월간 총리직을 수행하며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최장수 총리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슬비 총리[편집]

이슬비 총리란 별명은 김황식 총리가 2011년 1월 대학생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소나기가 아니라, 소리없이 내리지만 대지에 스며들어 새싹을 피우고 꽃을 피우는 이슬비 같은 총리가 되겠다”고 다짐한데서 생겼다. 이후 그의 진정성 있는 행보, 따뜻한 감성 때문에 ‘이슬비’는 그의 대표적인 별명이 되었다. 비와 관련해 생긴 그의 또다른 별명은 ‘비 맞는 총리’다. 2011년 11월 대전 현충원에서 열린 연평도 포격 도발 전사자 1주기 추모식장. 장대비가 오는데도 유독 한 사람만이 우산을 쓰지 않았다. 김황식 총리는 경호팀장이 우산을 씌워주자 “괜찮다. 치우라”고 말하곤 40분간 고스란히 그 비를 다 맞았다. 추모시가 낭독되자 속옷까지 젖은 김 총리의 눈은 붉게 충혈됐고, 두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옷이 흥건히 젖은 그는 전사자들의 묘역을 찾아 헌화하고 비석을 어루만졌다. 빗물이 얼굴을 타고 내렸고 눈은 충혈돼 있었다. 김황식 총리는 소방방재청 등 관계기관은 물론이고 총리실 내부에도 알리지 않고 평택 화재사고로 순직한 소방관의 빈소를 찾아 화제를 낳기도 했다. [7]


파독광부와 총리[편집]

김황식 국무총리는 2011년 1월 13일 1960~70년대 독일로 파견됐던 광부들과 간호사들 23명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초청, 오찬간담회를 가졌다. “1달러의 외화가 아쉬운 시절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해 번 돈을 국내로 송금한 것이 우리나라 발전에 유용하게 쓰였다. 여러분들의 활동을 기초로 나라가 발전했고 그 후 세계 곳곳에서 고국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훌륭한 전통이 생겼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김황식 총리는 판사로 재직하던 70년대 독일에 유학가 파독광부, 간호사들의 고생을 직접 보고 들은 경험이 있다. 김 총리는 광주지방법원장으로 재임 중이던 2004년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린 '60,70년대 독일로 간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도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었다. 그는 이 글에서 "독일에 있을 때 저는 능력만 있다면 이들의 사연을 취재·수집해 소설이라도 한 권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며 "이들의 나라사랑, 자기희생, 꿈의 실현과 좌절 등을 우리의 역사로, 자산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가족문제와 병역문제 등으로 곤욕을 치르던 총리후보 인사청문회에서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이 김 총리가 쓴 글을 우연히 봤다고 하자, 그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 얘기를 하니까 새삼스럽게 북받쳐 오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그 사람들이 이역만리에서 헌신하는 모습, 살아가는 모습, 박정희 대통령이 오셨을 때 부여안고 우는 모습을 보고 정말 그 사람들에 대한 공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답변했다.[8]

비판[편집]

병역면제 논란[편집]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의원들은 2번의 신검연기와 양 눈 도수의 차이가 '2디옵터'가 넘는 눈의 상태인 부동시로 인한 면제과정이 석연치 않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김황식 총리는 "현재도 5디옵터 차이가 나는 고도 부동시로 눈 상태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네 형제 중에 형님 세 분이 다 군역을 마쳤고, 아들도 전방에서 만기전역했다. 우리 집안이 그렇게 부도덕한 집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으나 면제 당시의 진료기록 등을 제출하지 못했다.

1972년에 부동시로 병역면제 처분을 받았지만 1974년 공무원 임용을 위해 적십자병원에서 실시한 신체검사에서는 정상 판정(나안시력 좌:0.2 우 0.1, 교정시력 좌우 0.5)을 받았다.

긴급조치 9호 사건과 사과[편집]

1975년 5월 13일부터 시행된 긴급조치 9호로 인해 1975년 유신반대 운동으로 고려대(사학과)에서 재적되었던 설훈이 1977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 받았는데 당시 판사 초년이었던 김황식은 재판합의부에서 그 재판에 배석판사로 관여했다. 2012년 9월 6일, 민주통합당 설훈 의원은 “나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살았다"면서 "우리는 이렇게 참혹한 역사를 만든 유신의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물었던 적이 있느냐. 법적인 책임은 몰라도 최소한 사회적, 도의적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에 김황식 총리는 “유신체제 하에서 고통 받은 분들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죄송하게 생각을 하고 평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신체제 주체들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역사적 평가에 맡겨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설 의원은 "김 총리는 유신헌법을 철폐하라는 주장을 한 내게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 2월 6월을 선고했는데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재차 물었다. 이에 김 총리는 "판사 초임시절, 합의부 재판부의 일원으로 재판에 관여했고, 당시 긴급조치 위반과 형법위반 등을 근거로 재판을 했었다"면서 "당시 실정법 하에서 법관으로서는 실정법을 존중해야하는 체제에서 그와 같이 재판을 했지만, 민주화를 위해서 노력하다 고통 받은 부분에 대해서는 저를 포함한 사법부에서 죄송하게 생각하고 반성의 생각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설 의원은 그 자리에서 김 총리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설 의원은 “사과를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9]

학력[편집]

경력[편집]

  • 2010년 10월 ~ 2013년 02월 : 제41대 국무총리
  • 2009년 10월 : 아시아감사원장회의 총장
  • 2008년 09월 ~ 2010년 09월 : 제21대 감사원장
  • 2005년 11월 ~ 2008년 09월 : 대법원 대법관
  • 2005년 02월 ~ 2005년 11월 : 법원행정처 차장
  • 2004년 02월 ~ 2005년 02월 : 광주지방법원장
  • 2000년 02월 ~ 2003년 09월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2000년 02월 ~ 2004년 02월 :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 1997년 02월 ~ 2000년 02월 :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
  • 1996년 02월 ~ 1997년 02월 : 광주고등법원 부장판사
  • 1991년 02월 ~ 1993년 02월 : 법원행정처 법정국장

가족[편집]

  • 아버지 김원만(작고) : 한학자, 장성향교의 전교(典校·향교를 대표해 각종 행사를 주관하는 직책)
  • 큰형 김광식(작고) : 의사, 우성병원원장
  • 둘째형 김강식 : 농촌진흥청 차장, 한국육류수출협회 회장 역임, 한국육류유통수출입협회 고문
  • 셋째형 김흥식(작고) : 장성군수 3기 역임
  • 큰누나 김효식(작고) : 교원
  • 둘째누나 김향식 : 일진그룹 허진규 회장의 부인
  • 셋째누나 김필식 : 동신대학교 총장

비판[편집]

주석[편집]

  1. 새 총리후보에 김황식 감사원장 지명 《연합뉴스》 2010년 9월 16일 조보희 기자
  2. 박수치는 김황식 국무총리 《연합뉴스》 2010년 10월 1일 안정원 기자
  3. 2년4개월간 나리살림 마치고 퇴임하는 김황식 총리의 소회 <<조선일보>> 2013년 2월18일자
  4. 비밀해제 MB5년 MB 손 부들부들 떨며 분노…“당신 많이 컸네” <<동아일보>> 2013년3월30일자
  5. [1] << MBC뉴스>> 김황식 인사청문회 이틀째‥'병역 문제' 쟁점. 2010년9월30일 방송]
  6. [2] 김황식 스타탄생 국회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카리스마 소신 돋보여 평가] <<조선일보> 2010년 11월6일자]
  7. [3] 돋보이는 김황식 총리의 ‘이슬비 행보’<<국민일보>> 2011년 12월6일자]
  8. [4]김황식 후보, 파독 광부 · 간호사 떠올리며 눈물 <<노컷뉴스> 2010년9월30일자]
  9. [5] 김황식 총리, '긴급조치 9호 위반' 설훈에 사과 <<머니투데이>> 2012년9월6일자]

바깥 고리[편집]

전 임
윤증현
(권한대행)
제41대 국무총리
2010년 10월 1일 ~ 2013년 2월 26일
후 임
정홍원
전 임
김종신
(직무대행)
제21대 감사원장
2008년 9월 8일 ~ 2010년 9월 30일
후 임
하복동
(직무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