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리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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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 작전(영어: Operation GLory)은 한국전쟁 말기 유엔사령부 사상자 유해의 송환을 위해 진행되었던 활동이다. 1953년 7월 한국 전쟁 정전 협정에서 북한에게 모든 사상자와 국군포로의 송환을 요구하였고, 1954년 9월과 10월까지 약 4000여 명의 사망자 유해를 받았다.[1][2][3][4] 미국 유해 1868구 중에서 신원 확인이 되지 않은 유골 848구는 하와이 태평양 국립묘지에 무명(unknowns)이라는 이름으로 묻혔다.[5]

유해 중 일부는 중국군이 미군을 북한에서 나오게 할 때 버려졌던 북한 내 임시 군사묘지에서 나온 것이다.[6] 반환된 유골에 관련된 공개적인 의식에는 의장대가 포함되었으며,[6] 약 14,000여 명의 북한과 중국인 사망자의 유해도 교환됐다.[7]

같이 보기[편집]

출처[편집]

  1. Coleman, Bradley Lynn (2008년 1월). “Recovering the Korean War Dead, 1950–1958: Graves Registration, Forensic Anthropology, and Wartime Memorialization”. 《The Journal of Military History》 (프로젝트 뮤스) 72 (1): 179-222. doi:10.1353/jmh.2008.0013. ISSN 0899-3718. 
  2. “Operation GLORY: Historical Summary”. 《Condensed from Graves Registration Division, Korean Communications Zone (KCOMZ)》 (Army Quartermaster Museum). 2004년 7월 ~ 12월. 2007년 12월 2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0년 6월 26일에 확인함. 
  3. Sherrell, Chandler (1998). 《A Historical Analysis of United States Prisoner of War/Missing in Action Repatriation and Remains Recovery》. Fort Leavenworth, Kansas: U. S. Army Command and General Staff College. 38쪽. OCLC 831669354. 2016년 3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0년 6월 26일에 확인함. 글로리 작전 기간 동안에 1,879구의 유해가 반환되었다. 이 중 1020구의 신원이 확인되었으며, 859구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채로 발표되었다. 
  4. 모든 유해가 미국으로 반환된 것은 아니다. 부산 유엔 기념 묘지에 안장된 유해 2,300여 구 중 일부만 글로리 작전으로 반환되었다.
  5. Keene, Judith (2010년 2월). “Below Ground: The Treatment of American Remains from the Korean War”. 《퍼블릭 히스토리안》 (National Council on Public History) 32 (1): 58–78. doi:10.1525/tph.2010.32.1.59. ISSN 0272-3433. JSTOR 10.1525/tph.2010.32.1.59. 
  6. Sledge, Michael (2007). 《Soldier Dead: How We Recover, Identify, Bury, and Honor Our Military Fallen》. 뉴욕: Columbia University Press. 78, 199쪽. ISBN 9780231509374. OCLC 60527603. 
  7. Cole, Paul M. (1994). 〈Three: Efforts to Recover and Account for Korean War Casualties〉. 《POW/MIA Issues Volume 1, The Korean War》 (PDF). 산타모니카: National Defense Research Institute. 68쪽. OCLC 855303293. 

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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