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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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 전투
(한국전쟁의 일부)
날짜 1953년 7월 13일 ~ 7월 20일
장소 강원도 금성
결과 중국군 승리
교전국
대한민국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중국
지휘관
대한민국 임부택 제11사단장
대한민국 김용배 7사단장
중화인민공화국 펑더화이
병력
제11사단
제8사단
제6사단
제5사단
수도 사단
L-20 경비행기 30대
제24군
제54군
제60군
제67군
제68군
산하 12개 사단
피해 규모
2689명 전사
총 5만 명 사상
2400명 전사
총 2만 명 사상


금성 전투한국 전쟁 말기인 1953년 7월 휴전이 임박해지고 있을 때, 금성 지역 북방에 위치한 중국군과 국군이 치른 전투이다.

배경 [편집]

당시 중국군은 한국 전쟁에서 그들이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을 세계에 과시하려는 정치 목적과 중부전선에 돌출되어 있는 한국군 전선으로부터의 위협을 제거할 목적으로 중국군 4개 군 산하 12개 사단의 병력을 동원하여 국군 5개 사단이 방어하고 있던 금성 지역의 돌출부에 대한 최후공세를 감행했다.

이 전투는 일명, 7·13 공세라고 칭하기도 한다.

전투 과정 [편집]

국군 5개 사단은 7월 13일에 대대적인 중국군의 공격을 받고 금성 돌출부의 양견부가 돌파되었으며, 뒤이어 후방의 지휘소가 중국군의 기습을 받는 등 혼란이 야기됨으로써 국군은 금성천 남쪽의 백암산과 주파령, 적근산 부근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그러나 김종묵 소대장의 활약과 7월 16일부터 국군 제2군단이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미 제8군의 공격목표인 아이슬랜드 선(간진현-금성천-462고지)으로 진출하였으며, 원진지를 회복하지 못한 채 이 선에 머물게 되었다.

이 전투의 결과 국군 2689명, 중국군 60000명이 전사하고 중국군은 약 40km 정면에서 평균 4km를 남하하여 금성천 북안의 주요고지를 점령하게 되었으며, 국군은 임익순 대령이 포로가 되고 지원을 나온 기갑연대장 육근수 대령이 전사하는 등 막대한 손실을 입고 아이슬랜드 선 전방의 전 전방의 전초선만을 확보한 상태에서 휴전을 맞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