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전보원
남전보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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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748년 중국 당나라 하남성(河南省) 정주(鄭州) 신정현(新鄭縣) |
입적 | 834년 |
남전보원(南泉普願, 748년 ~ 834년) 또는 남천보원은 조사선의 개조(開祖)이자 위앙종과 임제종에서 8대조사로 섬긴 마조도일(709년 ~ 788년)의 제자이다. 마조도일이 가장 아낀 제자였다.[1] 남전참묘(南泉斬猫) 이야기가 유명하다.
남전보원의 제자는 수백명이 있었는데, 가장 유명한 제자가 화두로 유명한 조주종심이다. 또한, 신라의 사자산문(獅子山門) 도윤(道允)도 제자이다.[2]
참고로 한자인 南泉普願을 그대로 읽으면 남천보원이지만, 불교신문 기사와 종단의 승려가 올린 유튜브 영상을 보면 대다수가 남천보원이 아닌 남전보원이라고 칭하는 것이 특이하다.[3][4]
이는 한국 불교 승가에서 釋迦牟尼를 글로는 석가모니로 쓰되, 읽기는 서가모니로 발음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보면, 승려 또는 불교매스컴(TV, 신문) 그리고 불교전문가는 남전보원이라 칭하는 경우가 다수이고, 비전문가나 개인 블로그, 소수의 신문기사는 남천보원이라 칭하는 경우가 다수이므로, 불교의 수백년 된 오랜 전통에 따라 여기서는 남전보원을 따르도록 한다.
일화
[편집]남전참묘(南泉斬猫)
[편집]남전선사가 있는 절에 승려들은 동당과 서당으로 나뉘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쪽 무리에서 키우던 고양이 다리를 다른 한 쪽 무리에 부러뜨려 버렸다. 그래서 동당과 서당의 승려들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5]
남전선사가 나오더니 고양이에게 칼을 들이대며, 말할 수 있다면 베지 않겠다고 했다. 싸우던 승려들이 답이 없자 남전선사는 고양이를 두 동강으로 베어 버렸다.[6]
제자인 조주종심이 외출에서 돌아오자, 남전선사는 조주종심에게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다시 물었다. 그러자 조주종심은 신발을 벗어 머리에 이고 나가버렸다. 이를 본 남전선사는 조주종심이 있었다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을텐데라고 말했다.[7]
암소가 되련다
[편집]남전선사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을 때, 한 제자가 세상을 뜨신 후에는 어디로 가시냐고 물었다. 남전선사는 산 아래 검은 암소(水牯牛)가 되려한다고 말했다.[8]
이 대답에 대해 남전선사가 고양이를 죽인 업보를 받겠다는 뜻이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진짜 뜻은 중생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다시 함께하려 이승으로 돌아오겠다는 다짐(서원)이라고 한다.[9]
마조완월(馬祖玩月) : 마조도일이 달을 희롱하다
[편집]어느 날, 마조도일이 수제자인 서당지장, 백장회해, 남전보원과 함께 달맞이를 갔다. 마조도일은 제자들에게 지금 같은 때에 무엇을 하면 가장 좋겠느냐고 물었다.[10]
서당지장은 공양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대답했다. 백장회해는 수행하기에 가장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남전보원은 소매를 뿌리치고 그냥 가버렸다.[11]
마조도일이 말하기를, 경(經)은 서당지장에게 들어가고, 선(禪)은 백장회해에게 돌아가는데, 오직 남전보원만이 경계에서 벗어낫구나라고 했다.[12]
열반송
[편집]834년 12월 15일 새벽에 남전보원은 다음과 같은 게송을 남기고 입적했다.[13]
별빛 반짝인지 이미 오래 되었구나(星翳燈幻亦久).
내가 가거나 온다고 하지 말라(勿謂吾有去來).
각주
[편집]- ↑ 정운 스님, 정운 스님 (2019년 7월 26일). “[선의 르네상스 선지식] 14. 남전보원 선사”. 《현대불교》. 현대불교신문사.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남전 보원(南泉普願, 748~834)은 조사선의 개조(開祖)인 마조(709~788)의 제자이다. 마치 안회가 공자의 총애를 받은 것처럼 남전도 마조의 총애를 받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 ↑ 정운 스님, 정운 스님 (2019년 7월 26일). “[선의 르네상스 선지식] 14. 남전보원 선사”. 《현대불교》. 현대불교신문사.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남전 문하에 수백여 명의 제자들이 있었으며, 신라 사자산문(獅子山門)의 도윤(道允)도 포함된다. 남전 문하를 대표하는 제자로는 장사 경잠(長沙景岑, ?~868)·자호 이종(子湖利?, 800~880)·조주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한 지역에서 선풍을 드날린 인물들이다.
- ↑ 문광스님, 문광스님 (2023년 6월 7일). “남전선사가 고양이 목을 베다. 남전참묘 (1) [화두의 바다 54화]”. 《유튜브 채널 : 한국불교 대표방송 BTN》. 구글 알파벳.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이번시간에 알아볼 내용은 "남전선사가 고양이 목을 베다" 입니다.
- ↑ 이, 일야 (2021년 7월 28일). “[죽음을 철학하는 시간] <23> 남전보원 : 언제나 그 자리에”.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이번 주제인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4)이 그 주인공이다.
- ↑ 강, 신주 (2013년 2월 19일). “6. 남전참묘(南泉斬猫)”. 《법보신문》. 법보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동당이든 서당이든 어느 한쪽 수행승들이 기르고 있던 고양이가 반대쪽 수행승의 실수로 다리가 부러졌나 봅니다. 문제는 동당과 서당에 속해 있던 수행승들은 평소에 반목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한쪽은 우리 대신 우리가 아끼던 고양이에게 위해를 가한 것 아니냐고 분노했고, 다른 한쪽은 실수로 그런 것을 가지고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냐고 화를 내는 형국이었을 겁니다.
- ↑ 법보신문(법거량), 법보신문(법거량) (2004년 6월 15일). “고양이를 벤 남전과 머리에 짚신 얹은 조주”. 《법보신문》. 법보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하루는 동서 양편 승당에서 고양이를 가지고 다투자, 남전 스님이 이를 보고서 마침내 고양이를 잡으며 말했다. “말할 수 있다면 베지 않겠다.” 대중들이 대답이 없자 남전 스님이 고양이를 두 동강으로 베어버렸다.
- ↑ 강, 신주 (2013년 2월 19일). “6. 남전참묘(南泉斬猫)”. 《법보신문》. 법보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남전 스님이 외출에서 돌아온 조주(趙州, 778~897)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다시 언급한 것도 이런 씁쓰레함이 마음에 남아 있어서인지도 모릅니다.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조주는 신발을 벗어 머리에 얹고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그러자 남전 스님은 고양이의 죽음이 더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스님의 말대로 “만일 조주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고양이를 구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 ↑ 이일야, 이일 (2021년 7월 28일). “[죽음을 철학하는 시간] <23> 남전보원 : 언제나 그 자리에”.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남전이 이승과 작별할 날이 다가오자 제자가 ‘세상을 뜨신 후에는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스승은 이렇게 답했다. “산 아래로 가서 한 마리 검은 암소(水牯牛)가 되려 한다.”
- ↑ 이일야, 이일 (2021년 7월 28일). “[죽음을 철학하는 시간] <23> 남전보원 : 언제나 그 자리에”.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혹여 고양이를 죽인 업보를 받고자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불교에서 중시하는 핵심 가치가 담겨있다. 그는 존재의 실상을 깨치고 제자들을 지도하다가 고요 속으로 들어갔지만, 중생들이 사는 이곳으로 다시 오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웠다. 그것은 다름 아닌 중생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윤회하는 세계로 다시 돌아온다는 뜻이다.
- ↑ 정운스님, 정운스님 (2019년 6월 13일). “[선의 르네상스 선지식] 10. 한국 禪의 원류, 서당지장”. 《현대불교》. 현대불교신문사. 2023년 9월 24일에 확인함.
어느 날 서당·백장·남전이 마조와 함께 달맞이를 갔다. 그 자리에서 마조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바로 지금 같은 때에 무엇을 하면 가장 좋겠는가?”
- ↑ 정운스님, 정운스님 (2019년 6월 13일). “[선의 르네상스 선지식] 10. 한국 禪의 원류, 서당지장”. 《현대불교》. 현대불교신문사. 2023년 9월 24일에 확인함.
서당지장이 말했다. “공양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 이에 백장회해는 “수행하기에 가장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남전만 소매를 뿌리치면서 그냥 가버렸다.
- ↑ 정운스님, 정운스님 (2019년 6월 13일). “[선의 르네상스 선지식] 10. 한국 禪의 원류, 서당지장”. 《현대불교》. 현대불교신문사. 2023년 9월 24일에 확인함.
그러자, 마조가 말했다. “경(經)은 서당에게 들어가고, 선(禪)은 백장에게로 돌아가는데, 오직 남전만이 경계에서 벗어났구나.” -<경덕전등록> 中
- ↑ 이, 일야 (2021년 7월 28일). “[죽음을 철학하는 시간] <23> 남전보원 : 언제나 그 자리에”.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9월 18일에 확인함.
834년 12월 15일 새벽, 다음과 같은 유훈을 남기고 고요 속으로 떠난다. “별빛 반짝인지 이미 오래 되었구나. 내가 가거나 온다고 하지 말라(星翳燈幻亦久 勿謂吾有去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