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노 가네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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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노 가네스케 『三十六歌仙額』

후지와라노 가네스케(일본어: 藤原兼輔 (ふじわら の かねすけ))는 일본36가선중 한명이다. 헤이안(平安) 중기의 공가(公家)이자 가인(歌人)이다.

겐케이(일본어: 元慶 (げんけい)) 원년(877년) 우중장(右中将) 후지와라노 도시모토(일본어: 藤原利基 (ふじわらの としもと))의 아들로 태어났다. 간헤이(일본어: 寛平 (かんべい)) 9년 (897년)에 다이고 천황(醍醐天皇)이 즉위하면서 승전(昇殿)이 허용되었다. 쇼타이(일본어: 昌泰 (しょうたい)) 4년 (901년)에 우위문소위(右衛門少尉)[1], 엔기(일본어: 延喜 (えんぎ)) 2년 (902년)에 종5위하(従五位下)직에 서하되었다. 그 다음해에는 내장조(内蔵寮)에 발탁되었고, 이후로도 좌병위좌(左兵衛佐), 우위문좌(右衛門佐), 좌근위소장(左近衛少将), 무관 5위장인(五位蔵人)을 역임했다. 엔기 16년 (916년)에는 종4위하(従四位下)직으로 승진되었다. 그 다음해에는 장인두(일본어: 蔵人頭 (くろうどのとう), 천황 비서격)서임. 2년 후에는 좌권위권중장(左近衛権中将)으로 그 직책이 높아진다. 엔기 21년 (921년)에는 태정관 참의(参議)에 서임되었고, 엔초(일본어: 延長 (えんちょう))에 종3위(従三位), 권중납언(権中納言)의 자리에 오른다. 조헤이(일본어: 承平 (じょうへい)) 3년 (933년)에 5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무사임에도 와카와 기악에 능통했다고 전해진다. 백인일수 중 한명인 후지와라노 사다카타(일본어: 藤原定方 (ふじわら の さだかた))등과 갖은 가단(歌壇)의 핵심 인물이었다. 기노 쓰라유키(일본어: 紀貫之 (き の つらゆき))나 오시코치노 미쓰네(일본어: 凡河内躬恒 (おおしこうち の みつね)) 등 유명한 시인들과 교류하였다.

고금화가집(일본어: 古今和歌集 (こきんわかしゅう) 코킨와카슈[*])에 그의 작품 56수(首)가 정리[2]되어 있다.

각주[편집]

  1. 혹자는 쇼타이 3년 (900년)이라는 주장도 있다.
  2. 『勅撰作者部類』

참고문헌[편집]

  • 『公卿補任 第一篇』吉川弘文館、1982年
  • 『尊卑分脈 第二篇』吉川弘文館、1987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