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페겔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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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페겔라인
Hermann Fegelein
연대지도자 계급장을 단 페겔라인
연대지도자 계급장을 단 페겔라인
출생지 독일 제국 바이에른 왕국 안스바흐
사망지 나치 독일 프로이센 자유주 베를린
복무 나치 독일의 기 나치 독일
복무기간 1925년 ~ 1945년
최종계급 장성 금장 SS집단지도자(SS-Gruppenführer)
지휘 SS기병여단
제8SS기병사단 플로리안 가이어
주요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서훈

금색 독일십자장

한스 오토 게오르크 헤르만 페겔라인(독일어: Hans Otto Georg Hermann Fegelein, 1906년 10월 30일 ~ 1945년 4월 28일)은 나치 독일무장친위대 대원으로 최종 계급은 집단지도자(중장급)이다. 아돌프 히틀러의 인척으로, 에바 브라운의 여동생 그레틀 브라운과 결혼하여 히틀러에게는 동서가 된다.

약력[편집]

1925년 바이마르 공화국 국가방위군의 제17기병연대에 입대하여 군인이 되었고 1933년 4월 10일 친위대로 옮긴다. 이후 친위대 기병대 대장이 되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기마행사를 준비감독했다.[1]

1939년 9월 폴란드 침공이 성공한 뒤 페겔라인은 친위대 해골기병연대(Totenkopf Reiterstandarte)를 지휘하게 되어 12월까지 바르샤바에 주둔했다. 1940년 5-6월 벨기에 공방전프랑스 공방전친위대 특무부대(무장친위대의 전신)의 일원으로서 종군한다. 프랑스 전역에서의 공적으로 1940년 12월 15일 2급 철십자장을 수훈받았다. 1941년 동부전선에서 페겔라인이 지휘하는 부대는 벨로루시 SSR에서 17,000 명 이상의 민간인을 살해했다(프리피야트 늪). 1943년 제8SS기병사단 플로리안 가이어의 사단장이 된 페겔라인은 파르티잔 토벌 및 붉은 군대에 대한 방어전에 참여하여 동백병전장을 수훈한다.[2][3]

1943년 9월 심각한 부상을 입은 페겔라인은 하인리히 히믈러의 명령에 의해 전선에서 물러나 히틀러의 본부에 머무르며 친위대를 대표하는 연락장교 일을 하게 된다. 1944년 7월 20일 음모 당시 페겔라인은 히틀러와 함께 늑대소굴에 있었고 죽을 뻔 했다. 1945년 봄, 전쟁 막바지에 이르러 페겔라인은 히틀러 및 다른 나치 수뇌부와 함께 퓌러엄폐호에 들어갔다. 히틀러가 자살하기 이틀 전인 4월 28일 중립국(스웨덴 또는 스위스)으로의 도피를 꾀하여 엄폐호를 빠져나와 민간인으로 변장하고 도망치다가 국가보안국(RSD)에게 잡혀 처형당했다.[4]

각주[편집]

참고 문헌[편집]

전임
(신설)
제1대 SS기병여단 여단장
1941년 8월 5일 – 1942년 3월 2일
후임
여단지도자 빌헬름 비트리히
전임
예비역 연대지도자 구스타프 롬바르트
제4대 제8SS기병사단 플로리안 가이어 사단장
1943년 4월 20일 – 1943년 9월 30일
후임
집단지도자 브루노 슈트레켄바흐
전임
집단지도자 브루노 슈트레켄바흐
제6대 제8SS기병사단 플로리안 가이어 사단장
1943년 10월 22일 – 1944년 1월 1일
후임
집단지도자 브루노 슈트레켄바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