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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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
蔡萬植
출생 1902년 7월 21일(1902-07-21)
대한제국의 기 대한제국 전라북도 임피군 군내면 동상리
(現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읍내리)
사망 1950년 6월 11일 (47세)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전라북도 이리시
(現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전라북도 익산시)
필명 아호(雅號)는 백릉(白菱), 채옹(采翁)
직업 소설가
극작가
문학평론가
수필가
축구 선수
학력 일본 와세다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중퇴
활동기간 1922년 ~ 1950년
장르 소설, 희곡
부모 채규판(부), 조우섭(모)
친지 형 4명, 누나 1명
배우자 은선흥
종교 유교(성리학)
웹사이트
채만식 문학관

채만식(蔡萬植, 1902년 7월 21일 ~ 1950년 6월 11일)은 일제 강점기대한민국소설가, 극작가, 문학평론가, 수필가이다. 본관은 평강(平康)이며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이다.

생애[편집]

전라북도 임피군 군내면 동상리(現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동상리)의 부농 가정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전라북도 옥구군 옥구면 오곡리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1920년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에 은선흥(殷善興)과 결혼하며 그 후 일본 와세다 대학 문과에 들어갔다가 간토 대지진으로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하고 귀국했다. 그 후 장기결석으로 퇴학 처분되었다. 1924년부터 1936년까지 《동아일보》, 《개벽》, 《조선일보》의 기자로 근무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924년 《조선문단》에 단편 〈새길로〉를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카프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희곡 《인형의 집을 나와서》(1933) 등에서 엿보이는 초기의 작품 경향은 카프의 경향파 문학과 심정적으로 유사한 점이 있어 동반자 작가로 분류된다. 1934년 발표한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은 지식인 실직자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는 대표작 중 하나이다. 〈레디메이드 인생〉의 반어적이고 풍자적인 회화 기법은 채만식의 작품에서 자주 관찰되는 특징으로, 채만식은 이 작품을 계기로 사회 고발적 동반자 문학에서 냉소적 풍자 문학으로 작풍을 전환했다.

1936년부터는 기자직을 버리고 본격적인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는데, 농촌의 현실을 그린 《보리방아》가 검열로 인해 연재 중단되는 일을 겪었다. 이후 대표작인 중편 《태평천하》(1938)와 장편 《탁류》(1938)를 발표했다. 역설적인 풍자 기법이 돋보이는 〈태평천하〉와 1930년대의 부조리한 사회상을 바라보는 냉소적 시선에 통속성이 가미된 《탁류》 이후, 《매일신보》에 연재한 《금의 정열》(1939)는 완전한 통속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발표한 《아름다운 새벽》(1942), 《여인전기》(1945)는 친일 소설이다. 그 이후 친일 행적을 반성하는 의미로《민족의 죄인》을 발표했다.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민족문제연구소2008년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에 선정되었다. 2002년까지 밝혀진 친일 작품은 소설 2편을 포함하여 총 13편[1] 이었으나 이후 《아름다운 새벽》이 추가 발굴된 바 있다. 관념적이거나 구호적인 친일이 아닌, 등장인물의 의식과 생활에 밀접히 연관되는 내재적 친일성으로 인해 채만식 문학에서는 친일의 내면화 정도가 높다는 평가도 있다.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에 평의원으로 가담하여, 민족문제연구소의 명단 중 친일단체 부문에도 포함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광복 후 자전적 성격의 단편 〈민족의 죄인〉(1947)을 통해 자신의 친일 행위를 고백하고 변명했으며 이 때문에 자신의 친일 행적을 최초로 인정한 작가로 불린다.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직전 49세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김재용 (2002년 8월). “친일문학 작품목록”. 《실천문학》 (67호): 123~148쪽. 

참고자료[편집]

외부 링크[편집]